지난 2월 말, 한국에서 감염자가 대거 발생해 전 세계 이목이 쏠리던 바로 그 시기,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 있던 3명의 한국인 활동가들은 어떤 마음으로 그 땅을 떠나왔을까요?

각각 폴란드와 영국을 거쳐 팔레스타인에 온 지 3주가 훌쩍 넘은 활동가들은 ‘2주 이내 입국자’라는 격리 대상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국인 활동가들은 ‘코로나19여서’가 아니라, ‘동양인’이었기에, 모두의 눈길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나블루스의 대학교에서 하기로 계획되었던 2번의 일본인 ‘위안부’ 강의도 줄줄이 취소되고, 현대중공업의 굴삭기가 파괴한 가옥파괴 피해자와 약속된 인터뷰도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더는 아무도 포옹과 볼 키스를 건네지 않았고 출국 전 머무를 공항 주변 숙소도 ‘방이 없다’며 줄줄이 예약을 받지 않았지요.

(이번 팟캐스트에서 언급된, 활동가들의 증언을 윤문한 내용입니다.)

“숙소를 구할 수 없어 출국 전날 공항에서 자면서도, 사실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동양인’이니까 누가 와서 화풀이를 할 수도 있잖아요.”

“새벽 열두 시가 넘은 늦은 밤에 밖에 차가 와서 문도 안 두드리고 경적만 울려댔어요 (결론은 연락 없이 찾아온 보건당국). 우리가 여기 머무르는 걸 마을 사람들이 아니까, 해코지라도 하러 온 것일까? 너무 무서웠어요. 프라이팬을 손에 쥐고 문을 열었죠.”

“이스라엘 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밟으면서, 해외여행 경험이 적은 것도 아닌데 여기서는 겁이 났었어요. 악명높은 심문과 짐 검사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으니까요. 이스라엘에서는 말이 안 통할 것 같은 느낌이 있어요.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들이 그저 ‘안돼’라고 하면 정말 그게 ‘끝’일 거 같다는 그런 느낌?”

“(“이스라엘”땅으로 보통 알려진) 48년 팔레스타인의 싱그러운 공원들을 보면서, 그저 여행객으로 오지 않고 팔레스타인을 알고 활동을 하러 와서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모르고 와서 너무 아름답다는 감상만 안고 갔으면, 나중에 알았으면, 죄지은 거 같아서 평생 힘들었을 거예요. 인간다움이라는 건 무엇인가, 생각하게 만들었던 거 같아요. 팔레스타인 마을을 부수고 그 위에 지어진 공원들은 분명 아름다웠지만, 너무너무, 무서웠어요.”

역설적이게도, 존재 자체만으로 철저히 배제당했던 활동가들의 이번 경험은, 이스라엘의 군사 점령 아래 존재를 부정당하며 숨죽인 채 살아가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처지를 다시금 바라보는, 십분 체험하는 기회가 됐습니다. 한 가지 다른 것이 있다면, 한국인 활동가들은 한국 땅으로 하루 만에 떠나오면 그만인지만,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숨을 고를 다른 안식처가 없다는 것이죠. 바로 이 땅이, 가장 안전을 담보 받아 마땅한, 바로 그 땅이니까요.

팔연대 활동가들의 설움을 위로해준 것은, 또 한번 역설적이게도, 팔레스타인 현지 활동가들이었습니다.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졸지에 민폐가 된 우리 활동가들을 데리고 다니는 그들에게도 따가운 눈초리가 퍼부어졌고, 동네 사람들의 민원으로 휴대폰에는 불이 났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끝까지 내색 없이 허그와 볼 키스를 건네며, 고통받고 있을 한국 내 확진자들의 쾌유와 안녕까지 빌어주더군요. 위로를 ‘하러’ 갔다가 형용할 수 없는 빅 위로를 받아 힘을 다시 내는 게 새삼 ‘연대’ 활동이었지 하는 것을, 코로나19가 깨우쳐줬네요.

과연 우리는 언제 다시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하고 온 팔레스타인 땅에 가게 될까요. 우리가 만나고 온 그 많은 유쾌하고 역동적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 시국을 어떻게 살아내고 있을까요. 눈을 감으면, 매일 아침 바르달라의 과수원을 바라보며 마시던 차 한잔, 딱 그만큼의 욕심 없는 평온함이 눈물나게 아름다웠던 팔레스타인이 생생하게 피어납니다. 반드시 다시 갈거고, 다시 만날 겁니다. 함께 가실까요?

2020년 팔연대 현지 활동기, 이쯤에서 마침표를 찍어봅니다.


* 코로나-팔레스타인에서의 경험 / <워커스>

Intro music
<Gamar> by 47Soul
from the album “Balfron Promise”
(47soul.lnk.to/BalP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