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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1 12:46

신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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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웬즈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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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또 일을 저질렀다.


알 자지라 방송에서는 하루 종일 이 얘기만 나온다.

이스라엘 특공대가 구호단체의 물품을 실은 배에 타고 있던 민간인들을 죽였다. 열 명 이상.

그들은 구호단체 회원이고 군인이 아닌 민간인이었으며

이스라엘인들의 만행으로 인간 답게 살 권리를 박탈당한 가자의 팔레스타인들을 위해,

이스라엘이 저지른 잘못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가던 중이었다.

이스라엘은 끊임 없이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불법으로 영해를 침범했으며 돌아가라는 경고를 듣지 않았고 무기를 소지하고 있었던 데다 선제 공격을 했기 때문에

그걸 막는 와중에서 어쩔 수 없이 사상자가 나왔다고.

전 세계 사람들을 바보로 아는 건가.

민간 구호 단체가 무기를 소지했다면 총을 가지고 있었겠나, 칼을 가지고 있었겠나,

기껏해야 곤봉이나 막대기로 군인들이 승선하는 것을 막고자 했을 텐데 거기에 총을 쏴대는 것이 정당방위라니.

며칠 전까지는 한국 얘기, 꼴 보기 싫은 대통령 얼굴이 계속 뉴스에 나왔었다.

천안함으로 촉발된 긴장이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정작 아무 걱정 없는 건 한국 사람들 뿐이었다.

'니네 나라 전쟁 날 거 같은데, 어떡하니?' 하고 물으면 '전쟁 절대 안 나, 걱정마, 선거가 코 앞이라 그래' 하고 심드렁하게 넘겼는데

아, 이제는 불안하다. 두려운 마음도 생긴다.

앞, 뒤 안가리는 아랍 사람들의 특성을 잘 알기에 '욱' 하는 마음에 전쟁이라도 나지 않을까 싶은 노파심이 생긴다.

전쟁이 난다 치면

이집트야 전쟁 때 뺏긴 땅 돌려 받느라 이스라엘과 급친 모드로 돌변한 경력이 있으니 참여 안 할 것이고

요르단은 대표적인 친미 국가이니 이 또한 제외,

이란은 민족 자체가 다르니 참여할 이유가 없고

사우디 아라비아나 카타르, 쿠웨이트 같은 잘 사는 산유국들이야 또 뒷짐지고 있을 것이고

그럼 남은 것은 이스라엘에게 뼛 속까지 당한 시리아와 레바논 뿐인데

아, 이 두 나라로 과연 대적이 가능이나 할까. 터키까지 얹어서 간다해도 결과는 너무 뻔하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한국인 여행자 분이 묻는다.

'전쟁이 나길 원하시는 거에요? 그렇게 보여요'

'그랬나요?'

'전쟁이 나면 얼른 빠져나갈 루트를 생각하셔야지, 어느 나라가 참여할까, 결과는 어떻게 될까 그런 거 생각할 겨를이 어딨어요'

가만 생각해보니 전쟁이 나면 난 정말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다리. 아직도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리 때문에라도 전쟁이 나서는 안 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누군가 나서서 이 비정하고 잔인하고 오만한 것들을 싹 몰아내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나보다.

물론 그건,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아랍 국가 전체가 다 들고 일어서서 3차까지 전쟁을 벌였어도,

완전 궁지까지 몰렸었다가도 결국 남의 땅까지 뺏어버리며 모든 아랍 국가들을 굴복시킨 나라가 이스라엘이다.

숨겨진 진정한 악의 축, 미국을 등에 업고 있었으니까.


어쨌든 이 일촉즉발의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길은

이스라엘의 진심이 담긴 공식적인 사과가 있어야 하는데, 사실 그렇게 해도 사람들이 진정이 될까 싶기도 하지만

내 보기엔 이스라엘은 절대 그럴 생각이 없다.

여전히 뉴스에서는 그들이 불법으로 영해를 침범했고 선제 공격을 했기에 정당방위라고 우기는 내용이 나오고 있다.

정말 거지같은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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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진정 이렇게 썰렁한 다마스커스 게이트는 본 적이 없다.

쩔룩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나가본 다마스커스 게이트는 휑했다.

다마스커스 게이트는 무슬림 쿼터에 있다.

자치 지구는 아니지만 어쨌든 팔레스타인들이 주로 사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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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면 이 정도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저 좁은 입구 주위는 사람들로 인해 병목현상까지 일어나기도 한다.

오늘은 평일이라서 이 정도까지는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다 해도

그래도 너무 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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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스커스 안의 알 와드 스트릿은 밖에까지 진열된 물건들과 사람들로 언제나 북적거린다.

그런데 3일간은 애도 기간이라 모든 팔레스타인 상점들이 문을 닫는다.

밖에 나가 돌아다니면 다리가 더 더디게 회복되는 것 같아 꼼짝 않고 있었는데

팔레스타인들의 상점이 모두 문을 닫았다는 소리에 번개같이 달려나갔다. 정말이었다.

하루 벌이를 위한 노점상들은 종종 눈에 띄고 올드 시티 밖의 상점들은 띄엄띄엄 열기도 했지만

올드 시티 내의 팔레스타인 상점들은 100% 문을 닫았다.

팔레스타인도 아니고 팔레스타인을 도와주기 위해 오던 사람들을 죽였다.

그렇다면 도대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이란 나라에서 어떤 대우를 받고 있다는 얘기인 걸까.

속에서 울컥 하고 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쳐죽일 놈들.

원색적이라 비난해도 좋고 너무 편파적인 생각이라 해도 좋다.

이렇게 모두 문이 닫힌 상점 사이를 총을 메고 낄낄거리며 노닐던 이스라엘의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군인들을 보는 순간,

내 머리 속에 든 생각은 그저 '이런 쳐 죽일 놈들' 뿐이었다.



썰렁하기만 한 무슬림 쿼터를 지나가던 까만 옷의 유대인.

난 보았다.

그 사람이 지나간 후, 싸늘하게 그의 뒷모습을 노려보던 몇 몇 아랍인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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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있다면 묻고 싶다.

야훼, 알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믿는 신과 유대인들이 믿는 신은 이름만 다를 뿐, 결국은 같은 대상인데

어째서 부르는 이름은 다르지만 한결같이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을 이렇게 가르고 나누어

어린 소년이 그저 탱크에 돌을 던졌다는 이유로 때론 총을 맞고 때론 개떼같이 몰려드는 군인들을 피해 도망가야 하는지,

죽을 걸 알면서도 자신의 몸에 폭탄을 장착하고 마지막 순간에 가족의 이름을 부르며 스위치를 눌러야 하는지,

내 땅에서 올리브를 키우며 평안하게 살 권리를 빼앗겨야 하는지,

예루살렘으로 맘대로 이사올 수도 없고 나갈 수도 없어서 멀쩡한 부부가 떨어져서 살아야 하는 지,

허리가 굽어 거동이 힘든 할머니가 예루살렘 검문소를 통과하기 위해 신발까지 벗고도

몇 번이나 검색대를 통과하고 다시 돌아가 다시 통과하고 그들이 '됐다'고 할 때까지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왔다갔다 해야 하는지.

왜 그래야만 하는지 진정 묻고 싶다.



아마도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 웬즈데이님은 팔레스타인에 있다. 출처 : http://blog.naver.com/huhdj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