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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6일 개막하는 제11회 EBS 다큐영화제에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거부의사를 밝혔습니다. <송환>의 김동원 감독, <어머니> 태준식 감독, <두 개의 문> 김일란 감독, <마이 플레이스> 박문칠 감독 등 국내 다큐멘터리 관련 주요 인사들이 성명까지 냈는데요. 올해 영화제가 이스라엘 특별전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 영화제의 주요 프로그램으로 '이스라엘 다큐멘터리 컬렉션' 섹션과 '이스라엘 다큐멘터리 컨퍼런스', '아비브 국제 다큐 영화제 예술감독 초청 강연' 등이 있습니다.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은 이들 행사들을 후원하는 공식 기관으로 예정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대해 다큐영화제 한 관계자는 <프레시안>과 통화에서 "후원을 받은 것은 아니"라고 수차례 언급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이스라엘 대사관이 후원 기관으로 등록되려는 것과 관련해 "후원을 받았다고 하면 금전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금전적인 부분은 없다"며 "작품을 만드는 나라의 문화원이나 대사관 이름을 올리는 것은 외교적인, 문화적인 의례"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공습으로 2000명이 넘는 민간인이 사망한 상황에서 이러한 이스라엘 특별전은 자칫 이스라엘의 이번 공격을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측면이 있는 것도 부인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이처럼 문화 콘텐츠를 이용한 이스라엘의 여론 형성 전략에 대해 김태언 팔레스타인 평화연대 활동가가 분석해봤습니다. <편집자>  


국내 최초의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인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가 오는 8월 26일 개막할 예정이다. 올해 11회째를 맞은 이번 영화제는 10년의 세월을 거치는 동안 EBS는 다양한 분야의 좋은 다큐멘터리 작품을 국내에 소개해왔고, 이런 영화제가 장수 한다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번 11회 국제다큐영화제(EIDF) "다큐, 희망을 말하다" 는 이 모든 장점을 넘어서는 심각한 오류를 안고 있다. 30일 째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피비린내 나는 학살을 지속하고 있는 이스라엘 정부가 이번 영화제의 "공식 후원단체"이다.

7월 7일 시작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은 전례 없는 대규모로 진행되고 있고, 아직도 그 총성이 멎지 않고 있다. 서울 절반 크기에 180만 명의 높은 인구밀도를 자랑하는 가자지구에 이스라엘은 공중에서, 해안에서, 육지에서 무차별적으로 폭탄을 퍼부어 팔레스타인인 2000명을 넘게 살해했고, 1만 명의 부상자를 발생시켰다. 가자지구 집권정부 하마스를 "테러리스트"라는 주홍글씨를 새겨 공격의 정당성을 부여한 이스라엘은, 사망자와 부상자의 80% 이상이 민간인이라는 사실에 대해 어쩔 수 없는 '부수적인 피해' 혹은 하마스가 민간인을 '인간방패'로 사용한 결과라는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하지만 가자지구의 모든 병원, 유엔학교 등의 위치가 통보됐음에도, 전체 26개 병원 중 10개 이상의 병원과 피난처로 사용되고 있는 5개 이상의 유엔학교가 직접 폭격됐다는 사실을 고려했을 때 이스라엘 정부의 입장은 궤변에 가깝다. 이번 공격은 이전의 공격들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정치적 이익을 위한 그리고, 이스라엘 역사가 일란 파페의 말처럼 "지속적으로 아랍인을 죽이기"라는 이스라엘의 정책에 부합하는 '학살'이다. 이 목적 달성에 있어 희생자가 민간인이냐 전투원이냐는 구별은 사치나 다름없다.

이스라엘 정부는 가해자의 역사를 겪으며 국제사회에서 정상국가로 생존하는 법을 터득했다. 홀로코스트/유대인 박해 등의 강조를 통해 영구적인 피해자의 이미지를 국제사회에 각인 시켜왔고, 이를 통해 이스라엘이 저지른 모든 국가범죄를 '생존의 문제'라는 감정에 호소해 왔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유대인이 문화·학문·과학기술 등 인류발전을 위한 여러 분야에서 "정상적"이고, "우월한" 발전 국가임을 강조해, 중동의 다양한 문제의 원인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미개한 아랍 주변국'이라는 점을 우회적으로 강조해왔다. 

이 뛰어난 PR에 간접적으로 아인슈타인, 구스타프 말러, 프로이트 등 역사적으로 유명한 유대인 인사들이 이용돼 왔고, 유대인이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미국이 이를 위한 발판이 되었다. <피아니스트>, <쉰들러리스트> 등의 넘쳐나는 2차 대전 유대인에 관련한 할리우드 영화와, CNN 등의 강력한 미국발 미디어 등의 편파적 보도는 유대인의 '피해자적'인 이미지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여러 국가들과 기독교, 군사, 학문, 문화 등의 다양한 교류는 이스라엘의 선택 받은 고귀하고 이성적인 이미지를 공고히 해왔다. 이러한 노력들 덕에 많은 이스라엘의 전쟁범죄는 가려지고, 용서되고, 그리고 반복돼왔다.

그래서 이번 이스라엘 정부 "공식 후원"의 11회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가 문제인 것이다. 2000명의 팔레스타인인이 학살당하고 있는 와중에도, 국제사회의 입을 틀어막고, 각국 시민들의 눈과 귀를 멀게 할 수 있는 방법인 바로 '문화' 콘텐츠를 통한 이스라엘의 '정상국가화' 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범한 국가처럼 일상의 문화를 중시하고, 인류의 진일보한 발전을 위한 학문, 과학을 위해 힘쓰는 '정상국가' 가 '비정상적'학살을 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혹은 그렇다 치더라도 무언가 이유가 있겠거니 믿게 만들기 때문이다. 혹자는 문화와 정치는 분리되어야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그 문화가 정치적 목적을 위한 투자라는 관점은 보려고 하지도, 잘 보이지도 않는다. 바로 이렇게 지속되어 온 이스라엘의 점령과 전쟁을 정당화시키는 도구로써 이번 EBS 국제다큐영화제는 2000명 가자 대학살의 공범이자, 가림막 이다.  
 
이스라엘과의 문화적 교류가 이스라엘의 침략 전쟁을 위한 도구라는 점은 비단 이번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학살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건국 이후 꾸준히 침략전쟁을 치러왔고, 21세기만 하더라도 3500명 사망자를 낸 2차 인티파다(2001~2005), 사망자 1800명의 2006년 레바논 전쟁, 가자지구만 집중적으로 타겟으로 한 2006~2007년 공습(250명 사망), 2008~2009년 침공(1500명 사망), 2012년 폭격(150명) 등 전 세계적으로 가장 대규모의 민간인 사망자를 발생시킨 전쟁을 통해 정치, 경제적으로 이득을 취해왔다. 하지만 이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가장 큰 핵심은 60년 넘게 지속되어 온 팔레스타인의 점령이다. 정상국가 이스라엘의 국민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동안 피점령지 국민으로서 팔레스타인 사람은 착취되고, 무직으로, 이동의 자유가 없이, 언제 체포될지 혹은 폭격 당해 죽을지 모르는 '비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11번째 EBS 국제다큐영화제 '희망을 말하다'는 이스라엘 대사관의 "공식 후원"를 통해 준비되었다. EIDF 조직위원장이자 한국교육방송공사 신용섭 사장은 국제다큐영화제 인사말에서 "비록 언어와 문화는 다를지라도 가슴 깊은 곳에 있는 감성의 본질만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다른 나라의 다큐멘터리를 대하면서 울고 웃고 배울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입니다." 라고 감성의 보편성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진정 감성의 본질이 다르지 않다면 팔레스타인이 울고 이스라엘이 웃고 있는 현재 상황을 정당화하는 이 다큐영화제의 진정성에 대해 의심해 보지 않을 수고 없다.

이미 팔레스타인 평화연대, 그리고 영화인 모임 등 다양한 시민사회 단체, 문화계가 EBS의 제11회 다큐영화제를 거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우리는 보편적 감성을 기반으로 과연 '점령당국' 이스라엘을 등에 업은 EBS가 팔레스타인의 '절망'을 밟아 이스라엘의 '희망'을 말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