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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학생들처럼 우리도 평화롭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미국 어린이들처럼 어린이들이 누릴 수 있는 것을 우리도 누렸으면 좋겠어요."
사진출처 www.motherjones.com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한지 3년이 넘었다. 침략당한 땅에서는 많은 것들이 변했을 것이다.

죽음에 대해서는 잠시 잊기로 한다. 잘잘못도 잠시 접기로 한다. 전쟁을 직접 겪어보지 않은 입장이다. 그래서 그들이 겪는 고통의 깊이가 어느 정도일지 헤아리기 힘들다. 무력감 속에서도, 일상의 미세한 조각들이 궁금하다. 미안하고 걱정된다.

장사하던 사람들은 여전히 물건을 팔고 있을까. TV는 볼까. 본다면 뭘 볼까. 약속한 연인들은 결혼을 할까. 진통이 시작된 여인은 어디서 아이를 낳을까. 아무리 두렵고 아파도 때로는 심심할 때가 있을텐데, 뭐 하며 놀까….

또 있다. '아이들이 학교는 제대로 다닐까?'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진보적 시사잡지 Mother Jones 인터넷판은 지난 12일자에 '왜 자신들이 준비돼야 하는지 모르는 이라크의 어린 학생들(Iraqi School Kids: "They don’t see why they should prepare themselves)'이란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기사는 전쟁이 양산하는 파괴와 폭력, 이슬람 종파간 분쟁 등으로 학생이 학교에 가지 못하고 제대로 수업을 받지 못하는 사연을 전하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 직후 이라크의 현지 소식을 전해 온 자유기고가이며, <바그다드 보고서(Baghdad Bulletin)>의 저자이기도 한 데이빗 앤더스(David Enders)가 썼다.

최대 가해자인 미국의 책임에 대한 언급 없이, 학교가 처한 현실의 원인을 종파 간 분쟁에 치중해 초점을 맞추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을 남기는 기사이다.

하지만 나름의 거리를 유지하며 본다면, 전쟁이라는 거대한 퍼즐의 유용한 조각은 될 수 있을 것 같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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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의 서쪽 지역에 자리 잡은 디즐라 초등학교 학생들이 휴식시간을 마치고 자리에 앉았다.

교장은 나를 교실로 안내한 후 아이들에게 몇 마디 주의사항을 전달했다.

지난해 10월 한 교실이 박격포탄에 맞아 학생 한 명이 숨지고, 열 명이 부상을 입은 사건을 겪은 학교이다.

교장은 "학교가 공격을 받지 않도록 애를 씁니다. 학생들은 다시 교실로 들어가기를 무서워합니다"라고 말했다.

사담 후세인이 실각한 후 이라크의 학교들은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교과 내용이 개선됐다. 예컨대 "사담 후세인이 전기를 발명해, 이라크에 도입했다"는 식의 독재자에게 아부하는 문구들이 교과서에서 빠졌다. 또 화장실, 하수구, 그리고 새 교실들이 갖춰졌다.

그러나 아직도 해결돼야 할 일들이 많다. 끊이지 않는 전투와 폭력 또한 교육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수백 명의 학생들이 디즐라 학교를 떠났다. 주로 부모들이 자식들의 안전을 우려해 집 밖에 나가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바그다드의 교사들은 이라크 교육부가 학생들이 집에서 공부하고 시험을 치를 때만 학교에 올 수 있도록 허용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10월 27일부터 지난 2월 28일까지 교사들과 교육부 직원들 중 400여 명이 숨지고, 17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라크 교육부 간부인 팔라흐 알 코라시는 알 안바, 디얄라, 그리고 바그다드 서쪽 지역에서만 417개의 학교들이 공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들 지역은 이라크에서 가장 교전이 치열한 곳이다.

학교에 대한 공격이 소름끼칠 정도인 경우도 많았다.
"지난 3월 25일 안바의 한 중학교에서 반군들이 공격해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교사를 참수한 적이 있었어요." 알 코라시가 말했다.

알 코라시는 학교에 대한 공격은 지난 2월말부터 줄어들었는데, 이는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경비원들을 배치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교육부는 학교마다 두 명씩 경비를 배치했다. 하지만 교사들은 회의적이다. 무장하지 않은 경비원들이기 때문이다.

"우리 교사들은 경비원에게 무기를 사주기 위해 월급을 떼어 모으기도 했습니다."
교사를 지망하는 학생들이 다니는 특수고등학교인 교사양성학교 교사 알 만수르의 말이다.

지난 달 통학버스가 학교로 오늘 길에 공격을 받아 운전수가 숨진 학교다.

학생 및 교사들에 대한 공격이, 이라크가 직면한 유일한 문제가 아니다. 미영 연합군이 이라크 침공의 성공 사례로 학교의 재건을 선전해왔지만(2년 전 전쟁 지지자들은, 이라크 학교들이 페인트칠을 다시 하고 있다는 사실을 날조한 바 있다)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벡텔(Bechtel, 미국 최대 건설업체: 역자)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이라크 임시정부와 1천200개 이상의 학교에 대한 복구 계약을 맺었다. 페인트칠도 다시하고 전선도 설치하겠다는 계약이었다. 그러나 이루어진 것은 거의 없다고 알려졌다.
이라크 교육부는 전국 1천300여 개 이상의 학교들이 심각한 타격을 입어 폐허 수준에 이르렀다고 추산했다. 이라크의 학교들은 정원 초과 상태에 있다. 학생들을 수용하기 위해 2부제 수업을 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마저도 종파 간 교전으로 인해 상당수 학교들을 폐쇄하기 전의 상황이다.

"1천900개 학교들을 재건한 이후 아직도 공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알 코라시는 덧붙였다.
"그러나 이라크는 4천500개의 새 학교를 새로 지어야 합니다. 기존 학교의 안전을 위해 들이는 비용으로 학교들을 지울 수 있습니다. 아마라가 학교를 지을 수 있는 곳입니다."

아마라는 이라크에서 가장 가난한 주(州)인 미산의 주도이다. 미산은 안전에는 문제가 없지만, 이라크에서 기간시설이 가장 빈약하다.

25년 이상 교사 생활을 한 나카시는 사담 후세인 치하에서 5달러이던 교사의 월급이 미국 침략 이후 100달러로 올랐지만, 인플레이션 때문에 구매력은 예전과 같다고 말했다. (일자리 찾기가 어려운 이라크에서는 교사가 부족하지 않다.)

나카시는 교사들 중에서도 무척 많은 임금을 받는 편에 속한다. 월급이 50만 이라크 디나(dinar, 약 330달러)지만 치솟는 물가 때문에 겨우 생계를 꾸린다.

"매월 이웃의 발전기로 전기를 끌어다 쓰는 데만 10만 디나를 씁니다."
그리고 기름 값이며, 고기, 그리고 다른 식료품 가격들이 얼마나 올랐는지 한참을 말했다.
1년 전보다 40배나 물가가 오른 것들도 있었다.

나카시는 자신이 몸담은 학교 교사들은 도로 봉쇄 등 통학의 어려움 때문에, 또는 가족과 친구를 잃은 슬픔 때문에 학교에 오지 않는 학생들에게 수업을 받게 하느라 애를 쓰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바그다드에 있는 거의 모든 학생들이 겪고 있는 문제인 듯하다.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안전 문제와 관련, 각종 편의를 제공하려고 노력합니다. 정상적인 일정대로라면 아마 학생 중 절반은 수업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나카시는 말했다.

이라크를 분열시킬 위험을 안고 있는 종파 간 분쟁 역시 바그다드의 학교들에서 감지되고 있다.

한 여학생이 전해줬다.
"수니파인 여학생과 시아파 여학생이 있었어요. 둘은 오랫동안 친구였지요. 그러다 언젠가 시아파 여학생은, 친구와 다른 여학생이 얘기를 나누는 걸 봤어요. 시아파 여학생은 친구에게 '쟤와는 얘기하지 마. 수니파니까'라고 말했지요. 친구는 '나도 수니파야'라고 대꾸했어요. 그러자 '그래? 그럼 이제 너와도 얘기 안 할 거야'라고 쏘아붙였어요."

여학생의 오빠는 자신의 학교에서 일어난 더 심각한 얘기를 들려줬다.
"우리학교 교장선생님은 한 학생을 못살게 굴었어요. 그 학생은 (수니파 지역인)팔루자 출신이었고, 교장선생님은 시아파였거든요. 하루는 그 학생이 학교에 총을 가져와 교장선생님에게 쐈어요. 교장선생님은 몇 주 동안 숨어 지냈어요."

비록 일반적인 현상은 아닐지라도, 시아파 교사가 수니파 학생을 차별하거나 또는 수니파 교사가 시아파 학생을 차별하는 사례가 계속 들려오고 있다.

교사양성학교 교장인 파티마 이브라힘 아흐메드는 "지식을 쌓는 것이야말로 학생들이 종파주의를 극복하는 최선의 방책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교사들이 아무리 최선을 다하더라도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변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학교는 갈수록 종파 다툼으로 분열되고 있다. 시아파가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에 살고 있는 수니파 가족들은 수니파가 많이 사는 지역으로 이사를 가고 자식들도 그곳으로 전학시키고 있다. 물론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교사인 자바는 "가장 큰 문제는 수많은 학생들이 바그다드에 만연한 유괴, 암살, 그리고 무차별 살인으로 상처를 받아온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학생들은 공부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왜 자신들이 '준비돼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이지요."

디즐라 초등학교 교장인 파르한은 잘라 말했다.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어요."

하지만 모든 학생들이 이런 평가에 동의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어떤 학생들은 아주 낙천적이기까지 하다.

"부모님께서는 지금 상황이 안 좋으니, 학교에 가지 않아도 좋다고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계속 다니겠다고 말했어요. 나는 착한 학생이니까요."
열한 살 아민 칼둔이 말했다. 디즐라 초등학교가 박격포 공격을 받았을 때 교실에 있었던 어린이다.

"미국 학생들처럼 우리도 평화롭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미국 어린이들처럼 어린이들이 누릴 수 있는 것을 우리도 누렸으면 좋겠어요."
(David Enders / 번역 유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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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다 2006.04.29 08:17 (*.108.25.249)
    지오리포트 ( www.georeport.co.kr )에서 퍼왔어요. 예전엔 자주 들어가던 사이튼데 활동이 정지된 것 같아서 한동안 멀리 하다가 다시 가봤더니 간간히 운영되고 있나봐요. 글도 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