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아랍

[새 책] 팔레스타인의 눈물

by 다다 posted Sep 22,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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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오수연(42)씨는 문단에서 팔레스타인의 대변인으로 통한다. 그는 2003년 제2차 이라크전쟁이 한창일 때 민족문학작가회의의 파견작가 겸 국제반전평화팀의 일원으로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에서 취재와 평화감시 활동을 펼쳤다. <한겨레>에 연재했던 현지 기록을 포함한 글들은 <아부 알리, 죽지 마>라는 책으로 묶여 나왔다. 오씨는 당시 팔레스타인에서 만났던 시인 자카리아 무함마드(56)를 두 차례 한국으로 초청해서 한국의 문인들과 만나도록 주선했다. 지금 그는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라는 모임을 주도적으로 만들어 꾸려 나가고 있다.

팔레스타인 문인 아홉 사람의 산문집 <팔레스타인의 눈물>은 오수연씨와 자카리아의 협업으로 태어났다. 자카리아가 현지의 동료 문인들을 독려해서 글을 쓰게 했고, 그 글들의 영어 번역본을 오씨가 직접 우리말로 옮겼다. 아랍어가 한국어로 바뀌기 위해 영어의 중개를 거쳐야 했지만, 책의 진정성과 호소력이 그 때문에 조금이라도 훼손되지는 않았다. 오씨는 옮긴이의 말에 “이 책은 가물거리는 희망을 위해 기획되었다(…)늘 그렇듯이 희망은 가장 고통 받는 사람들로부터 나온다”고 적었다.

자카리아 자신이 쓴 <취한 새>라는 글이 흥미롭다. 이 글에서 작가는 ‘목을 틀어 뒤를 바라보며 눈을 기다리는 새’에 관해 이야기한다. 팔레스타인 남쪽 지방에서 발견되는 옛 도자기들에 그려진 이 새 문양의 상징성이 궁금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새의 기이한 모습에서 자신을 비롯한 팔레스타인인들의 현재를 본다.

“나도 이 새처럼 뒤를, 과거를 바라보고 있다. 진실로 모든 팔레스타인인들이 과거를 바라보고 있다. 600만 난민들이 뒤를 바라보고 있다. 그들은 자기들이 제 땅에 있던 시절을 회고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잃어버린 천국을 그리워한다. 내게는 이 새가 그런 사람들의 상징으로 여겨진다.”(<취한 새>)

자카리아가 묘사하는 신화 속 새 ‘필리스트’의 형상은 역시 뒤를 돌아보는 포즈로 유명한 파울 클레의 그림 <새로운 천사>와 흡사하다. 그리고 이런 유사성은 발터 베냐민이 파울 클레의 그림에 대해 붙인 해석을 떠오르게 한다.

“이것이 바로 역사의 천사가 지니는 모습일 것이다. 그의 얼굴은 과거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의 현장에서 그는 파편 위에 계속 파편을 쌓아 올리며 그 더미를 그의 발치에 던져 놓는 단 하나의 파국을 바라보고 있다. 천사는 머물러 있고 싶어하고, 죽은 자들을 불러일으키고 또 산산이 부서진 것들을 모아 다시 결합시키고 싶어한다. 그러나 천국으로부터는 계속 폭풍이 불어오고 있으며, 그 폭풍은 이미 천사의 날개를 더 이상 접을 수 없도록 세차게 불어와 그의 날개를 향해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그를 떠밀고 있으며, 한편 그의 앞에 쌓이는 파편의 더미는 하늘을 향해 치솟고 있다. 이 폭풍이 바로 우리가 진보라 부르는 것이다.”(발터 베냐민 <역사철학테제>)

나치에 쫓기다 자살한 유대인 철학자의 말이 이스라엘에 점령당한 팔레스타인 시인의 글에서 메아리치는 것은 아이러니한 감동을 준다. 자카리아가 베냐민의 글을 언급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두 사람의 글을 함께 읽으면, 유대인에 대한 나치의 탄압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에서 고스란히 되풀이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짙게 든다.

자카리아의 또 다른 글 <귀환>과 시인 모리드 바르구티의 <나는 라말라를 보았다>는 이른바 ‘6일 전쟁’으로 불리는 1967년 전쟁 이후 30년 만에야 조국 팔레스타인 땅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 지식인들의 회한과 분노를 묘사한다.

“25년이나 고국을 떠나 있었다면, 결코 그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다.(…)그러나 2천 년이나 여기 없었으면서도 돌아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기억이 없으므로 그들은 거리낄 것도 없다.(…)그래서 그들은 뿌리째 뽑히는 나무를 봐도 화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내가 어릴 적에 그 밑에서 자곤 했던 나무가 보이지 않으면 슬프고 맥이 빠진다.”(<귀환>)

이스라엘의 탈법적 지배와 폭압 아래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친구들의 생존을 확인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검문소를 통과하는 작가의 이야기인 <먼지>(아다니아 쉬불리), 80년대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가담자들에 대한 혹독한 대접을 연상시키는 이스라엘 수사관들의 고문 실상이 드러나는 <심문>(아이샤 오디), “무기는 제1세계의 것을 갖고 있지만 정신상태는 이디 아민의 군대”와 같은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도 라말라를 침공한 2002년 4월의 스무 날 남짓한 무렵을 현장에서 기록한 <도시에 밀어닥친 폭풍우: 침략에 대한 일지>(자밀 힐랄),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예루살렘 ‘여권’을 발급 받은 애완견을 차에 태우고 그 개의 운전사를 자처하면서 검문소를 통과하는 과정을 우스꽝스럽게 다룬 <개 같은 인생>(수아드 아미리), 아라파트의 장례식 풍경을 생생하게 그린 같은 작가의 <자식이 자라기를 바라지 않았던 아버지> 등의 글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은 “엄청난 고통” 속에서 “가물거리는 빛”(<취한 새>)을 찾는 지난한 몸부림으로 다가온다.

2천 년이나 여기 없었으면서도…

책 말미에는 홍미정 한국외국어대 중동역사 연구교수의 해설이 곁들여져 있어 팔레스타인 문제의 객관적 이해를 돕는다. 마지막으로, 근본주의적 저항세력인 하마스가 올 초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승리한 뒤 언론인 알리 제인이 쓴 글 <나를 너무 밀지 마>에 귀를 기울여 보자.

“하마스의 승리가 나는 전혀 기쁘지 않다. 세속적인 사람으로서 나는 내 자유가 굉장히 염려된다. 내가 어떻게 먹고, 입고, 무엇을 읽을지 참견하는 그 누구한테도 통치받고 싶지 않다. 나는 합법적인 수단으로 이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울 준비가 돼 있다. 그러나 나를 진정 화나게 하는 건, 전 세계가 팔레스타인인들의 선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우리 동포들을 벌주려고 열을 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도 이스라엘의 점령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팔레스타인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감수성 부족이 하마스가 더 많은 표를 얻도록 도왔다. 나는 두렵다. 만약 그들이 앞으로도 계속 둔감하다면, 그들은 나 역시 밀어붙여 하마스 편에 서게 만들 터이므로.”(<나를 너무 밀지 마>)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