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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정치세력, 중동정치의 주역으로 등장

by 올리브 posted Jan 28,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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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람정치세력, 중동정치의 주역으로 등장"  
  〈분석〉 사우디에서 팔레스타인까지 선거 통해 권력 접근
  
  지난 25일 치러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강경 이슬람단체인 하마스가 일약 제1당으로 떠오르면서 미국, 이스라엘을 비롯한 서방측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그러나 중동지역 정세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하마스처럼 이슬람교에 바탕을 둔 정치세력(이슬람 정치세력: Political Islam)의 발흥은 전혀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미 지난해에만도 사우디, 이라크, 이집트, 시리아 등에서 선거를 통한 이슬람 정치세력의 약진이 이어졌으며 이같은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난 1950-60년대 아랍지역을 풍미했던 아랍민족주의,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이후 미국 주도에 의한 자본주의 도입이 민중들의 생활을 개선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키는 상황에서 아랍민중들은 이제 이슬람이라는 종교에서 그 해결책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중동지역에서는 이슬람에 바탕을 둔 정치세력이 더욱 힘을 얻어갈 것이며 미국식 자본주의와 서구식 민주주의를 이 지역에 도입하려는 미국의 노력은 중대한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이들 이슬람정치세력이 과거와는 달리 폭력혁명이 아닌 선거라는 의회정치의 수단을 통해 힘을 얻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다음은 미국의 중동지역 전문가인 딜립 히로(Dilip Hiro)의 '이슬람 정치세력의 흥기: 팔레스타인 총선과 중동의 민주주의(The Rise of Political Islam: The Palestinian Election and Democracy in the Middle East)'의 주요 내용이다.
이 글은 팔레스타인 총선 당일인 지난 25일에 씌어진 것으로 원문은
http://www.commondreams.org/views06/0125-24.htm에서 볼 수 있다. 〈편집자〉
  
  '정치적 이슬람의 흥기: 팔레스타인 총선과 중동의 민주주의'
  
  이번 팔레스타인 총선은 중동지역의 의회정치(electoral politics)에서 정치적 이슬람주의 세력의 흥기(興起)를 보여주는 가장 최근의 사례가 될 것이다. 이같은 사태의 진전, 즉 이슬람 정치세력의 흥기는, 중동지역의 민주개혁을 지지한다는 부시행정부의 수많은 다짐에도 불구하고, 워싱턴의 최고위 정책결정자들에게 깊은 우려를 낳을 것이 분명하다.
  
  2005년은 사우디아라비아 지방선거(최초의, 그러나 매우 제한적인 지방의회 선거)에서 이슬람계 후보들이 대부분의 의석을 차지하는 것에서 시작돼 12월 이라크 총선에서 (시아파, 수니파를 막론하고) 종교세력의 정당들이 대부분의 의석을 차지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지난 21일 발표된 이라크 총선의 공식 개표 결과에 따르면 다수파인 시아파가 차지한 의석 중 80% 가까이가 (종교정당인) '시아이라크연맹'에 돌아갔다. 마찬가지로 소수파의 수니파의 의석 중 80%를 '이슬람이라크당'이 차지했다.
  
  이 2개의 선거 중간인 지난해 여름 치러진 레바논 총선에서는 레바논 시아파를 대변하는 헤즈볼라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시아파는 인구로는 레바논 최대의 분파이지만 의회 정치세력은 대단히 미약했다. 또한 처음으로 무바라크정권의 관권개입이 배제된 이집트 총선에서 '무슬림형제단'은 소속 후보가 출마한 150석 중 88석을 차지함으로써 60% 가까운 성공률을 기록했다. 무슬림형제단은 마음만 먹었다면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할 수도 있었지만 친미 무바라크정권을 자극해 야당에 대한 무차별 탄압을 초래하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도전 의석 수를 줄였다.
  
  이 모든 총선 결과들을 합쳐 놓고 보면 중동지역을 휩쓸고 있는 하나의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총선 결과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이슬람 정치세력 약진의 원인이 각 나라마다 다를 뿐만 아니라 그 나라만의 고유한 상황에 의해 일어났음을 알게 된다.
  
  우선 이라크의 경우. 역사를 살펴보면 특정한 종족이나 사회적 분파가 극심한 탄압을 받았을 때, 종교에서 안식처를 찾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미주대륙에 노예로 끌려온 아프리카인들이 그러했다. 오늘날 미국의 흑인들이 백인들보다 훨씬 더 종교적이라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1638년 이라크가 (수니파) 오스만제국의 일부가 되자, 시아파는 탄압받고 차별받았다. 오스만제국의 해체 이후에도, 영국에 의해 파이잘왕이 이라크의 지배자가 되면서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파이잘왕은 수니파였고, 그의 뒤를 이은 바트당 지도자들도 수니파였던 것이다. 이라크 시아파의 최후의 도피처는 이슬람사원과 종교였다. 부시행정부의 침략에 의해 바트당이 축출되고 나자, 시아파의 종교적 네트워크는 이라크 내에서 가장 응집력 있고 효율적인 조직으로 떠올랐으며 지금까지도 그러하다. 1970년대말 이란의 세속적 샤정권이 무너진 이후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었다. 소수파이면서도 지배세력이었던 수니파의 경우, 12년에 걸친 유엔의 경제제재로 비(非)수니파 이라크인들과 똑같은 타격을 입었다. 갈수록 심화되는 빈곤과 비참함으로 수니파 대중 역시 이슬람에서 위안과 지원을 구했다. 따라서 수니파가 12월 총선에 참여하기로 결정하면서 그 표의 대부분이 '이라크이슬람당'에 몰린 것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사담 후세인 집권시절의 이라크인들이 압도적으로 세속적이었다고 주장할 만한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당시에는 이라크인들의 실제적인 생각을 알아낼 수 있는 여론조사가 없었다. (당시 이라크의 지배정당이었던) '아랍바트사회주의당' 역시 3명의 설립자 중 한 명인 미셀 아플라크(후세인의 이념적 스승으로 베이루트에서 바그다드로 옮겨 왔으며 1989년 사망했다)가 기독교인이었다는 의미에서 세속적인 정당이었다.
  
  (이라크) 대중들의 마음상태를 알려주는 훨씬 믿을 만한 자료는 지난 2004년 7월말 미국 공화당의 산하기관인 '국제공화연구소(International Republican Institute)'의 의뢰로 실시돼 그 해 9월 언론에 유출된 비밀 여론조사 결과다. 이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0명 중 7명은 샤리아(이슬람종교법)가 이라크 법률의 '유일한 원천'이 돼야 한다고 말했으며, 같은 비율(70%)이 '종교국가'에서 살기 원한다고 답했다. 세속적 국가를 원하는 사람은 23%에 불과했다. 그 뒤 치러진 2번의 총선은 이 여론조사의 정확성을 입증하고 강화해 주었을 뿐이다.
  
  이집트는 1928년 무슬림형제단이 최초로 설립된 나라다. 1967년 6일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아랍사회주의'의 주창자 가말 압델 나세르가 이끄는 이집트에 신속하고도 굴욕적인 패배를 안겨줌으로써 중동지역에 세속적 아랍민족주의를 발전시키겠다는 희망에 치명적 타격을 입혔다. 당시의 몰락에 직면했던 대부분의 이집트인들은 이스라엘의 승리는 유태인들의 종교적 신앙 때문이었다고 생각하게 됐고, 이런 생각에 따라 이슬람에서 영적인 힘을 얻고자 했다. 불법단체였던 무슬림형제단이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된 것은 바로 이 무렵이었다.
  
  1970년, 젊은 시절 무슬림형제단에 동조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진 안와르 사다트가 나세르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되면서 무슬림형제단에 대한 당국의 압력은 완화됐다. 그 뒤 무바라크정부가 한 줌밖에 안 되는 부유한 엘리트와 가난한 대중들 사이의 빈부격차를 줄이는 데 실패함으로써 '이슬람만이 대안'이라는 무슬림형제단의 유토피아적이고 매혹적인 슬로건은 더욱 힘을 얻게 됐다.
  
  아랍사회주의와 미국식 자본주의 모두 대중들이 필요로 하는 생활필수품을 공급하는 데 실패한 오늘날, 대다수 이집트인들이 이슬람이라는 '제3의 길'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겠다.
  
  팔레스타인의 경우는 위의 사례들과는 전혀 다르다. 38년에 걸친 이스라엘의 군사점령, 그리고 이에 따른 피점령 팔레스타인인들의 비참한 일상생활은 아랍지역 그 어느 곳과도 비교될 수 없는 정치상황을 만들어냈다. 그 두드러진 특징은 다음과 같다.
  
  팔레스타인 현지에 남아 있던 지도자와 오랜 해외망명 생활을 했던 지도자들 간의 심각한 갈등, 높은 정치의식, 일반 국가나 정치체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지도자와 추종자 간의 긴밀한 관계, 그리고 종교에서 안식처 찾기.
  
  집권 파타당은 1993년 오슬로협정에 의해 귀환하기 이전부터 현지지도자와 해외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지도자들간의 긴장으로 타격을 입었다. 반면 하마스의 지도부 거의 전부는 현지에 뿌리를 박고 있다.
  
  팔레스타인에는 아직 완전한 국가가 성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각 정파의 추종자들이 지도부에 대해 직접적인 압력을 가할 수 있다. 행정주체로서 팔레스타인 자치체를 이끌어오면서 부패와 무능을 보여 온 파타당의 위상은 날로 추락하고 있다. 반면 하마스는 가난한 이들에게 의료, 교육 등 사회적 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해 온 역사를 갖고 있으며 부패나 정실주의에 물들지 않았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중동지역에 새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의회정치에서 정치적 이슬람은 상승세를 타고 있으며, 그 성공의 원인은 각국의 특수한 사정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단 한 가지 요인으로는 정치적 이슬람의 흥기를 설명할 수 없다는 말이다. 미국에서 공론을 형성하는 사람이라면 이는 반드시 알아야 할 최소한의 필수지식이다.
  
  조만간 부시행정부의 정책결정자들은 그들이 군사점령한 이라크에서 이미 여러 종교정당들과 게임을 벌여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이슬람의 흥기, 나아가 하마스라든가 무슬림형제단 등을 다뤄야 하는 현실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딜립 히로/미 중동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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