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쓰기

(*.231.133.50) 조회 수 1585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글쓴이: 바보둘 http://babodool.tistory.com

2차 세계대전 패전의 결과 동독과 서독으로 나뉘었던 독일. 1989년 베를린 시내를 가르던 장벽의 붕괴는 공산권 국가 해체의 가장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나치 독일이 저질렀던 유대인 학살은 인류사에서 최악의 사건으로 꼽힙니다(저는 인디언 학살과 유럽의 남미 점령이 더 잔혹한 학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건으로 시온주의 운동은 국제적 정당성을 획득하고 결국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 이스라엘을 세웁니다. 시온주의 단체가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협력하기까지 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그 학살을 시온주의 국가 건설의 정당한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참 씁쓸한 일입니다(랄프 쇤만 '잔인한 이스라엘'ㆍ링크).

학살 피해자들의 후예가 세웠다는 이스라엘은 1989년 이후 지구상에서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겨졌던 장벽을 2002년부터 세우기 시작합니다.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은 다시 한 번 우리 시대의 상징으로 팔레스타인 땅을 가릅니다. 꼭 콘크리트 장벽만은 아닙니다. 때론 철조망과 이스라엘군의 총구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을 가릅니다(영화 '레몬트리'ㆍ링크).

퀘벡 출신의 만화가 기 들릴은 1년간의 예루살렘 생활을 바탕으로 그린 '굿모닝 예루살렘'에서 장벽에 가로막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을 다룹니다.

8960522155_f.jpg
굿모닝 예루살렘|기 들릴 지음|서수민ㆍ맹슬기ㆍ이하규 옮김|길찾기

그가 이스라엘을 찾은 것은 딱히 어떤 사명감이나 목표를 가졌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는 국경없는 의사회의 임무로 이스라엘에서 일하게 된 아내를 따라 예루살렘에 거주하게 됩니다. 2008년부터 2009년까지 그가 1년간 살게 된 곳은 예루살렘의 동쪽 지역. 성지가 있는 구시가지의 동쪽에 자리한 이곳은 1967년 6일 전쟁으로 이스라엘에 합병된 지역입니다. 국제법상으로는 팔레스타인에 속하는 지역으로 이스라엘이 불법적으로 점령하고 있는 지역이죠.

팔레스타인을 관찰한 많은 이가 주목하듯 그도 이스라엘 정부의 부당한 억압에 분노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는 보다 냉정한 태도를 취합니다. 팔레스타인의 처지에 대한 공감이 부족해서는 아닙니다. 그는 무엇보다 삶이라는 측면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을 관찰합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입니다. 그는 어느날 자신이 사는 동예루살렘보다 훨씬 깨끗하고 풍요로운 정착촌을 둘러봅니다. 그곳에서 발견한 슈퍼마켓. 국경없는 의사회의 원칙(정착촌 확장 반대)상 정착촌 슈퍼마켓에서 물견을 살 수는 없었습니다. 구경만 하고 나오는 그가 목격한 것은 "슈퍼마켓에서 양손 가득 장을 보고 돌아가는 무슬림 여성"입니다.

또 이런 것도 있습니다. 이슬람ㆍ유대교ㆍ기독교의 성지가 모여있는 구시가지. 성지순례객들이 끊이지 않죠. 이곳을 찾은 이 중에는 예수의 십자가 고난을 체험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기 들릴에 의하면 "한 아랍인 가족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재연해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십자가를 대여"줍니다. "체험이 끝나면 점원은 그것을 다시 가게까지 가지고 와야" 하죠. 넘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이슬람과 기독교 사이 갈등의 장벽은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 앞에서는 장애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주목하는 것은 '이스라엘'이라는 폭력적인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이라는 특정 '지역'의 상황입니다. 갈라지고 끊어진 이 지역에서 유대인들의 삶도 온전치는 못합니다. 비록 이스라엘 정부의 지원으로 훨씬 깨끗하고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인구 5만명의 소도시인 피스갓 제브는 그가 자주 찾은 정착촌입니다. 이곳 정착촌의 임대료는 다른 곳보다 싸기 때문에 유대인 만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을 찾습니다. 유대인 정착촌이 성장하면서 그 내부에서부터 이민족ㆍ타종파의 정착촌이 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정착촌의 상황은 더 아이러니합니다. (적대적일 것이라고 단정된) 팔레스타인 사람들 지역에 고립된 정착촌 사람들은 직업도 없이 오직 팔레스타인과의 분쟁 만을 유일한 일상으로 갖고 있습니다. 그들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미국ㆍ이스라엘 정부의 총탄과 미국의 보수적 기독교인들의 지원 때문입니다. 그들이 운영하는 정착촌 투어는 보수적 기독교인들에게 후원을 호소하는 중요한 이벤트이기도 합니다. 정착촌은 가난한 유대인이 선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선택지 중 하나가 되는 것이죠.

기 들릴의 '굿모닝 예루살렘'에서 특히 관심이 가는 부분은 이스라엘의 양심적 세력과 함께한 부분입니다. 앞서 얘기한 정착촌 투어와 달리 정착촌의 부조리함과 부당함을 고발하고자 하는 정착촌 투어도 있습니다. 이 투어는 정착촌에서 군인으로 복무했던 사람들이 만든 NGO 'Breaking The Silence'에 의해 진행됩니다. 그가 처음으로 장벽을 통과하는 검문소를 찾은 것도 그곳에서의 인권 침해를 감시하는 이스라엘 여성 인권단체 '마흐솜 와치'와 함께였습니다.

심지어 가장 근본주의적인 유대인 집단, 토라 연구를 일생의 소명으로 받아들이는 초정통바 유대인 지역인 '메아 셰아림'은 시온주의와 자신들 사이에 단 하나의 공통점도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플래카드에 이렇게 적어놓기도 합니다.

"유대인들은 시온주의자가 아니며, 시온주의자들도 유대인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인종차별주의자일 뿐이다. 우리는 시오니즘과 그들의 점령이 당장 중단될 것을 신께 기도드린다."

물론 그가 이스라엘 정부의 부조리함, 폭력에서 눈을 돌리진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잔인한 신무기 백린탄을 이용해 가자지구를 폭격한 2008년 12월 말, 그는 바로 그곳에 있었으니까요. 그의 아내와 국경없는 의사회, 세계에서 몰려든 인권 단체들은 어떻게든 가자지구 안으로 들어가고자 했으나 이스라엘 정부의 방해 때문에 폭격이 시작되고 일주일이 지나서야 들어갈 수 있었죠. 이미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이후였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도 가장 뜨거운 감자인 가자지구에 기 들릴이 관심을 가진 것은 어쩌면 매우 당연한 일일 겁니다. 그는 가자지구에 들어가보고자 시도하지만 불허 통보를 받습니다. "만화가는 안 됩니다"라고. 그 말을 들은 그는 "조 사코랑 나를 헷갈렸나?"라고 답하죠.

결국 가자지구엔 들어가지 못하지만 그는 이스라엘 곳곳을 누비며 장벽을 스케치합니다. 그 장벽 자체가 삶을 파괴하기도 합니다. 영화 '레몬트리'에서처럼 콘크리트 장벽이 자신의 농장에 세워지면서 생업을 바꿔야 했던 이의 이야기도 나옵니다.

1년간 예루살렘에 거주한다고 모두가 그와 같은 것을 보진 못할 것입니다. 어찌보면 그의 쉬지 않는 유머가 그와 같은 관찰을 가능케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의 넓은 시야는 우리가 팔레스타인에 대해 얘기할 때 보통 놓치기 쉬운 초정통파 유대인, 팔레스타인 기독교인, 베두인족, 사마리아인, 예루살렘 구시가지의 여러 종단도 놓치지 않습니다. 분노에 눈이 멀지 않고 극단적 폭력이 자행되고 있는 현장의 이면까지 살피는 그의 사려깊음은 누군가에게 단점으로 보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슬람과 유대교의 봉합할 수 없는 갈등 만을 강조한다면 우리에게 대안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완전한 분할만이 대안이 될 것입니다. 오히려 이는 더 큰 갈등과 충돌의 씨앗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종교적이지 않은 세속국가의 건설 만이 유일하게 가능한 대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 대안을 얘기할 때, 그토록 '종교적'인 사람들로 가득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그게 가능한 대안일까 하는 질문을 받곤 했습니다. 제 자신도 의문이 들곤 했죠. 기 들릴은 비록 아주 미약한 가능성이긴 하지만 바로 그러한 가능성을 자신의 1년간의 예루살렘 생활을 담은 책 '굿모닝 예루살렘'에서 보여줍니다. 현대 세계를 움직이는 가장 큰 갈등이 진행 중인 지역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역의 평화 가능성을 기 들릴의 '굿모닝 예루살렘'과 함께 고민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1. [2012/12/18] 남은 2012년 2주 동안 방학입니다~ by 뎡야핑 (6911)
  2. [2009/12/23] [펌] 용산에서 무너진 것은 망루만이 아니다 by 뎡야핑 (4389) *1
  3. [2009/12/19] 만화가 원혜진 님과 만남_091218 by 뎡야핑 (15402) *4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날짜 글쓴이 조회 수
130 MUJI (무인양품)의 이스라엘 출점 중지 결정에 대한 성명서! 5 file 2010.12.05 올리브 25664
129 "평화" 협상 가운데 들리는 "다음의 전쟁" 6 file 2012.02.09 서장수 20711
128 이스라엘, 그리고 후쿠시마 (福島) 4 file 2011.04.23 올리브 19390
127 [10/13(토)] 레일라 칼리드, 하이재커 상영회 file 2012.10.04 뎡야핑 19227
126 「무인양품 (無印良品)」,「혈인악품 (血印惡品)」이 될 것인가? 1 file 2010.08.20 반다 18479
125 팔레스타인의 교통수단 file 2011.07.25 냐옹 18025
124 가자 릴(Gaza Reels) : 애니메이션 file 2011.09.02 뎡야핑 17952
123 이중 잣대 - 이란의 핵 개발을 둘러싼 국제 사회의 담론에 대하여 file 2011.12.19 올리브 17694
122 [펌] 중동정세의 가늠자, 이집트 민정 file 2012.06.27 뎡야핑 17439
121 [번역] 보이콧 운동(BDS)과 보이콧처럼보이는 미묘한 안티BDS 5 2012.04.01 GomGomLover 17223
120 [리뷰] 연극 <아이에게 말 하세요> 2011.12.12 올리브 17094
119 [서평]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비망록 file 2012.08.14 냐옹 16914
118 이스라엘에서 공연을 취소한 Tuba Skinny의 공식입장문 file 2012.01.18 냐옹 16550
117 한국-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삼관관계를 밝히다 2012.05.10 뎡야핑 16200
116 살해당한 3인의 국제활동가 file 2012.10.18 뎡야핑 16064
115 비폭력 저항에 관심을..!! (10분짜리 강연 영상) 2011.10.16 뎡야핑 15935
» [서평] 굿모닝 예루살렘 file 2012.08.17 뎡야핑 15851
113 '3.11' 이후의 '우리' 와 '팔레스타인' file 2011.10.07 올리브 15777
112 서평 <사과나무 아래서 너를 낳으려 했다> 1 2012.06.04 아미라페트로비치김 15710
111 좌절된 축구 선수의 꿈: 행정 구금을 철폐하라! file 2012.06.21 뎡야핑 15349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Next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