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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30 19:20

아, 나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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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폭격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내 가슴은 뛴다. 같이 당구 치러 갔었던 나블루스의 아베드와 무타즈는 잘 있는지, 얼마 전에 애기 아빠가 된 라말라의 칼리드와 가족들은 어떤지, 먼 곳에서 왔다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시내 안내도 해 주던 헤브론의 아마니와 그의 가족들은 잘 있는지… 폭격이라는 말은 그렇게 내게 사람들의 얼굴로 먼저 다가온다.

그리고 이번에는 가자지구다. 내가 만약 가자지구가 아름답다고 하면 사람들은 믿지 않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언제나 언론에서 가자지구는 폭격, 가난, 죽음, 눈물로 비쳐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가자지구는 아름답다. 푸른 하늘과 출렁이는 바다, 활기찬 시장 사람들과 외국인이 사진 찍는다고 몰려들던 학생들… 그런데 지금은 그들의 모습이 결코 아름다울 수 없는 '가자지구 폭격'이라는 말과 함께 다가온다.


▲ 라파의 거리에서 딸기를 팔던 사람들 ⓒ미니
30일 아침 <알자지라>에 접속해 보니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29일까지 적어도 345명이 사망하고 1450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그리고 어제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남부에 있는 라파 지역을 집중 폭격하였고, 폭격 때문에 부서지고 망가진 라파 거리가 화면에 나왔다.

낯선 사람이 길을 지나는 것을 보고 뭐라도 먹고 가라고 나를 붙잡던 사람들이 머물던 라파, 한국인들이 미국 대사관 앞에서 집회하는 것을 TV에서 봤다며 잘 했다고 응원을 해 주던 사람들이 거닐던 라파의 거리가 지금은 온통 부서진 채 내 눈 앞에 다가온다. 나와 함께 웃고, 얘기하고, 악수를 하던 그 사람들은 지금 살아는 있는지.

한국에 와 있으면서 고향인 가자로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마나르와 알라딘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가자지구 폭격이라는 말에 나보다 100배는 더 많은 분노와 울분이 쌓이고, 나보다 천배는 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겠지. 왜 우리는 가자지구를 아름답게만 기억하면 안 되는 걸까. 왜 그들은 우리가 가자지구를 아름답게 기억할 권리를 빼앗는 것일까.

테러리스트를 잡겠다?

이스라엘 외무장관이 인터뷰 하는 내용을 보니 자신들은 테러리스트와 하마스만을 공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민간인들의 희생은 불행한 일이라고 한다.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면서 잘 써 먹었던 '부수적 피해'와 같은 논리다.

가자지구는 150여 만 명이 북적대며 살고 있는 좁은 지역이다. 그런데 수 십 대의 전투기를 동원해 100톤이 넘는 폭탄을 퍼붓는데 과연 어떤 피해가 부수적이란 말인가? 한 집안에서 5명의 아이들이 몰살을 당했는데 이것이 부수적이란 말인가?


▲ 가자지구 한 난민촌의 어린이와 청소년들 ⓒ미니
많은 언론에서 하마스에 대해 얘기할 때마다 하마스 앞에는 꼭 '강경무장정파' 또는 '무장정파'라는 말이 붙는다. 하마스가 강경한 것도 맞고 무장을 한 것도 맞다. 그런데 난 하마스가 팔레스타인의 정치 권력을 잡기 위해 총을 쏘고 로켓을 날렸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오히려 2006년 1월 총선에서 집권한 하마스 정부를 향해 쿠데타를 일으킨 것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지원하는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대통령과 파타의 지도부였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온건한'이라는 머리말을 달고 다닌다. 사실 그들은 미국과 이스라엘에게 '온순'할 뿐이며, 그 온순의 대가로 부와 권력을 쌓고 있다.


▲ 우리 할머니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무사하신지. ⓒ미니

미국은 이번 공습의 책임이 하마스에게 있고 하마스가 휴전 중단을 선언했기 때문에 공습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2007년 회계연도에만 약 25억 달러를 미국은 이스라엘에게 지원했고, 지원 받은 돈을 가지고 이스라엘은 미국산 F-15, F-16 전투기며 아파치 헬기를 사들여 팔레스타인인들을 공격했다. 그리고 지금 미국은 이스라엘을 정치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또다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마스가 휴전 중단을 선언한 것은 휴전이 무의미했기 때문이다. 쿠데타 실패 이후 2007년 6월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장악하자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대한 봉쇄를 강화했다. 두들겨 패도 안 되니깐 이제는 굶겨서 길들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식량·석유·의약품 등이 바닥난 팔레스타인인들은 휴전을 해서라도 뭔가 상황이 나아지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봉쇄는 풀리지 않았고, 사람들은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죽어 나갔다. 이런 상황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이대로 죽느니 차라리 싸우자'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들이 좋아서 투쟁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 봐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니 또 다른 선택으로 내몰린 것뿐이다.


▲ 팔레스타인인들이 탄 버스를 검문검색하는 이스라엘 군인 ⓒ미니

가자지구 봉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가자지구에 대한 봉쇄가 강화되던 2007년 6월 이전에도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 지역으로 일을 하러 가기 위해 검문소에서 전신 X-RAY 촬영을 당해야 했다. 물론 이스라엘이 예고도 없이 검문소를 닫아걸면 고스란히 일자리를 잃어야 했다.

2005년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를 떠났다고는 하지만 이집트와의 국경에 있는 검문소에는 이스라엘이 여전히 감시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누가 움직이는지를 지켜보고 있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라파 국경을 공동 관리하고 있던 유럽연합(EU)은 이스라엘의 편을 들며 수시로 국경을 닫아걸었다.

이렇게 먹을 것도 떨어지고, 의약품도 바닥나고, 옴짝달싹 할 수 없이 가자지구라는 감옥에 갇힌 팔레스타인인들이 도대체 무슨 좋은 말을 할 거라고 기대하는가?

지금 이스라엘이 때려잡고 있는 것은 하마스도 테러리스트도 아니다. 흔히 하마스라고 하면 우리와는 특별히 다른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일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가 만나본 하마스 사람들과 하마스 지지자들은 그냥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테러리스트여서 이스라엘과 미국이 때려잡겠다는 것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인들을 때려잡을 명분이 필요하니깐 하마스와 팔레스타인인들을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는 것이다.

다시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오늘은 경계를넘어, 나눔문화, 다함께, 팔레스타인평화연대 등 16개 단체의 공동주최로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 학살을 중단하라'라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몇 해 동안 100번도 넘게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집회도 하고 1인 시위도 하고 캠페인도 하고 노래도 했었는데 그 가운데 오늘은 가장 많은 100여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사회당도 오고, 일제고사 문제로 해직된 최혜원·김윤주 선생님도 오시고, 방글라데시 난민 로넬 씨와 버마 난민 마웅저 씨도 오시고, 팔레스타인 문제를 연구하시는 홍미정 교수도 오시고, 아직은 한국말이 서툰 재미교포 미셸 리 씨도 오셨다. 우리는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연설도 하고, 이스라엘 대사관을 향해 함성도 지르고, 핏빛 얼룩진 이스라엘 깃발을 짓밟기도 했다.


▲ 30일 열린 집회 장면

우리의 요구는 간단하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살인과 억압을 중단하라는 거다. 팔레스타인인들도 자유롭게 거리를 걸을 권리가 있고, 하늘이 안겨 준 수명대로 살 권리가 있다. 그들도 때가 되면 먹어야 하고 아프면 치료를 받아야 한다. 도대체 언제까지 임산부가 검문소에서 막혀 병원으로 가지 못하고 길에서 아이를 낳아야 한단 말인가.

우리는 집회를 하기 위해 집회를 하는 것도 아니고, 큰 소리를 외치기 위해서 외치는 것도 아니다. 하룻밤 눈 뜨고 나면 200명에서 300명, 400명으로 늘어만 가는 저 죽음의 행렬을 보면서 도무지 참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거리로 나선 것이다. 미래에 죽어갈 그 누군가의 목숨을 하나라도 더 살려 보자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여러분만 아무도 모른 채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400만 가량 밖에 되지 않는 팔레스타인 사람 가운데 2000년 9월부터 지금까지 이미 5000명 정도가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죽었다. 심지어 그 5천명 가운데 1/4 가량은 18세 이하의 어린이와 청소년이었다. 이스라엘이 테러리스트이고 학살자가 아니라면 도대체 이 세상에 누가 테러리스트이고 학살자란 말인가.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죽어야 된단 말인가. 이건 아니다. 사람의 탈을 쓰고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이스라엘은 지금 당장 학살을 멈추어야 한다. 내일이 아니라 지금 당장!

- 글 : 미니

* 뎡야핑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9-07-18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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