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9일 조디 딘
번역: 리시올

패러글라이더들이 이스라엘의 방공 체계를 빠져나가는 10월 7일 이미지는 우리 다수에게 짜릿함으로 다가왔다. 점령과 봉쇄에 [팔레스타인인이] 굴복하리라는 시온주의의 예상을 무찌른 자유의 순간이었다. 이 이미지들에서 우리는 어떤 참화가 뒤따를지 익히 알면서도(이스라엘이 비대칭적인 군사력으로 전쟁을 수행하고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무력으로 대응한다는 사실은 비밀도 아니다) 용기와 대담함으로 벌인 불가능에 가까운 행동을 목격했다. 억압받는 인민이 자신을 에워싼 철책을 불도저로 밀어 버리고, 탈출을 위해 하늘로 날아오르고, 공중을 자유롭게 비행하는 모습을 보며 활력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가능한 것에 대한 집단적인 감각이 산산이 조각났고, 이로써 누구든 자유로워질 수 있는 듯이, 제국주의와 점령과 억압이 타도될 수 있고 앞으로 타도될 듯이 보이게 되었다. 팔레스타인 투사 레일라 칼레드는 회고록 『내 민족은 살아남을 것이다』에서 성공한 비행기 납치에 대해 이렇게 썼다. “행동이 더욱 장관일수록 우리 민족의 사기도 충전되는 듯이 보였다.” 이런 행동은 예상에 구멍을 내고 가능성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창출하며, 그렇게 인민을 절망과 체념으로부터 해방한다.

그런 행동을 목격할 때 우리 다수는 또 열림이라는 이 감각을 느낀다. 우리의 반응은 행동이 주체 효과를 촉발했음을 나타낸다. 어떤 주체가 주어진 것에 틈새를 낸 덕분에 세계의 무언가가 바뀐 것이다. 알랭 바디우의 발상을 차용해 말하면 우리는 한 주체가 행동을 야기했고, 그리하여 행동이 그 주체를 행동의 소급 효과로서 생산하는 것을 본다. 제국주의는 이 느낌들이 너무 멀리까지 퍼져 나가기 전에 차단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제국주의는 그런 느낌들을 비난하면서 출입 금지를 선포한다.

우리의 제국주의적 환경에서 우리는 보통 황폐화, 사별, 죽음을 찍은 사진으로 팔레스타인인의 이미지를 접한다. 팔레스타인인은 고통을 겪고 있고 많은 것을 상실했으며 견뎌 내고 있다는 조건이 달려야만 인간성을 인정받는다. 팔레스타인인은 동정을 얻지만 해방은 성취하지 못한다. 해방은 동정을 갉아 먹으리라. 희생자라는 이미지는 ‘좋은’ 팔레스타인인을 생산한다. 이들은 시민이며, 어린이, 여성, 노인이라면 더더욱 좋다. 맞서 싸우는 이들, 특히 조직화된 집단의 일원들은 나쁘다. 이들은 괴물 같은 적,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적이다. 하지만 누구도 표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좋은’ 팔레스타인인을 표적으로 삼더라도 그 책임은 ‘나쁜’ 팔레스타인인에게 전가되며, 그들의 박멸을 정당화할 구실도 마련돼 있다. 가자 구석구석에 테러리스트를 위한 은신처를 제공했다는 것. 정서의 치안은 자유로운 팔레스타인인의 가능성을 몰아낸다.

정서 치안은 정치 투쟁의 일부다. 피억압자가 자유를 쟁취하리라는, 점령과 봉쇄가 종언을 고하리라는 느낌을 점화하는 그 무엇도 진화되어야 한다. 제국주의자와 시온주의자 들은 10월 7일을 참상 중 하나로 축소한다. 식민주의, 점령, 봉쇄의 역사와 실상을 보지 못하게 막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그들은 파열의 틈새에서 그 파열을 야기한 주체가 생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리한다.

1987년의 1차 인티파다는 ‘글라이더들의 밤’으로 시작되었다. 11월 25~26일, PFLP-GC(팔레스타인 인민 해방 전선 총사령부) 소속의 팔레스타인인 게릴라 전투원 두 명이 이스라엘이 점령한 영토에 착지했다[이는 이스라엘을 말한다. 조디 딘은 이스라엘 영토도 점령지라고 보는 듯하다]. 두 사람 모두 살해당했다. 죽기 전에 한 명은 이스라엘 군인 여섯 명을 살해하고 일곱 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그 뒤 게릴라는 민족의 영웅이 되었고, 가자 주민들은 이스라엘군을 놀림거리로 삼기 위해 ‘6대 1’이라는 문구를 이곳저곳의 벽에 남겼다.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 의장이었던 야세르 아라파트조차 전투원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어떤 장벽이나 방해물로도 순교자가 되기로 결심한 게릴라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이 공격이 증명했다.” 이들이 비상하겠다는 의지를 다진 이상 무엇으로도 이들을 잡아 내리거나 저지할 수 없었다. 글라이더들의 밤은 팔레스타인 혁명―1967년 6월 전쟁[3차 중동 전쟁]에서 아랍 세계가 패배한 뒤 펼쳐졌고 1968년 3월 카라메 전투 이후 게릴라 운동의 성장을 자극한―의 정서적 에너지를 재점화했다. 글라이더들의 밤에 이어 1차 인티파다가 발발했을 때, 팔레스타인인이 된다는 것은 다시 한번 이등 시민과 난민 지위에 대한 묵종이 아니라 반란과 저항을 뜻하게 되었다.

2018년의 귀환 대행진(Great March of Return) 기간에 가자 주민들은 이스라엘 방공 체계를 빠져나가 이스라엘 영토에 사격을 개시하기 위해 연과 풍선을 이용했다. 방화용 연(fire kite)을 처음 날려 보낸 이는 팔레스타인 청년이었던 듯하고, 이후 하마스가 이 방법을 받아들여 방화용 연과 풍선을 주로 제작하고 발사하는 알-주아리 부대(al-Zouari unit)를 창설했다. 연과 풍선은 가자에서 사기를 드높이는 동시에 이스라엘 경제에 피해를 입히고 가자 장벽 인근의 이스라엘인들이 열받게 만들었다. “아이콘이 된 신무기”가 “이스라엘을 미칠 지경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라는 어느 이탈리아 언론인의 말에 하마스 지도자 야히야 신와르는 이렇게 대답했다. “연은 무기가 아닙니다. 기껏해야 일부 그루터기에 불을 붙이는 정도예요. 소화기 하나면 진화하고도 남습니다. 연은 무기가 아니라 메시지입니다. 연의 재료라고 해 봐야 노끈과 종이, 기름투성이인 누더기가 다예요. 반면 아이언 돔[이스라엘의 전천후 이동식 방공 시스템]의 배터리는 하나당 1억 달러나 하니까요. 저 연들은 이렇게 말하는 셈입니다. 너희가 엄청나게 더 강한 건 맞아. 그래도 결코 이길 수 없을 거야. 정말이야. 결코.”

가자에서 띄워 올린 연을 굴복을 거부하는 인민의 메시지로 읽는 데는 또 다른 맥락이 있다. 2011년에 1만 5천 명의 팔레스타인 어린이가 가자 해변에서 동시에 연을 띄워 세계 기록을 갱신했다. 그중 다수의 연에 팔레스타인 깃발과 상징물이, 또 평화와 희망의 염원이 새겨져 있었다. 자기 연에 팔레스타인 깃발 색을 입힌 열한 살 라위아는 이렇게 말했다. “연을 날렸을 때 우리 나라와 우리 깃발을 하늘 위로 들어 올리는 기분이 들었어요.” 니틴 소니와 로저 힐이 연출한 2013년 다큐멘터리 「하늘을 나는 종이」는 연을 날린 몇몇 청소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연을 날리면 우리도 하늘을 나는 기분이 들어요. 자유로워진 기분, 가자가 봉쇄되어 있지 않다는 기분이에요. 연을 날릴 때 우리는 자유가 존재한다는 걸 깨달아요.” 올해 초 세계 전역에서 열린 연대 시위들에서도 하늘로 날아오른 연이 팔레스타인의 자유를 위한 희망과 의지를 표출하고 증폭했다.

레파트 알-아리르의 마지막 시 「내가 죽어야 한다면」If I Must Die은 연과 희망의 연상 작용에 기댄다. 알-아리르는 이스라엘군이 그가 있는 건물을 공습했을 때 살해당했다. 그 뒤 배우 브라이언 콕스가 이 시를 낭독하는 영상이 온라인에서 널리 공유되었다.

내가 죽어야 한다면,
당신은 살아서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내 물건들을 팔고
천 조각 하나와
실 몇 가닥을 사 줘요
(긴 꼬리가 달린 하얀 녀석으로 만들어 줘요)
가자 어딘가에 있는, 한 아이가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불길 속에서 떠난 아버지를―
누구에게도
심지어 자신의 육신에도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도 작별을 고하지 않은―기다리며
당신이 만든, 위로 날아오르는 연을, 바라볼 수 있도록,
그리고 잠시나마 생각할 수 있도록, 그곳에 천사가 있어
사랑을 되찾아 준다고.
내가 죽어야 한대도
그것이 희망을 가져다주길,
그것이 하나의 이야기가 되길.

연은 사랑의 메시지다. 하늘을 날기 위해 만들어지는 연은 비행하면서 희망을 창조한다. 알-아리르의 시는 연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뿐 아니라 천 조각과 실로 연을 정성껏 만드는 과정에도 주의를 기울인다. 연 만들기는 애도를 넘어선다. 그것은 실천적인 낙관주의에 참여하는 것으로, 어느 정치의 주체를, 즉 연을 만들고 화자의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당부를 듣는 “당신”을 수립하는 주체적 과정의 요소다.

1998년에 팔레스타인인들은 야세르 아라파트 국제 공항을 지었다. 2차 인티파다 기간이던 2001년에 이스라엘 불도저가 공항을 허물었다. 힌디 쿠다리가 설명한 바 있듯 공항은 팔레스타인 국가라는 꿈과 긴밀히 접속해 있었다. 잔해와 모래 신세가 된 활주로를 건설한 노동자들을 인터뷰한 뒤 쿠다리는 이렇게 쓴다. “가자 공항은 하나의 프로젝트 이상이었다. 공항은 팔레스타인인을 위한 자유의 상징이었다. 팔레스타인 깃발이 창공을 부유하는 것이 모든 팔레스타인인의 꿈이었다.”

10월 7일에 이스라엘로 날아든 패러글라이더들은 해방과 비행의 혁명적 연상 작용을 이어 가고 있다. 제국주의와 시온주의 군대는 이 행동을 하마스 테러리즘이라는 단일한 형상으로 압축하려 애쓰면서 모든 증거를 거슬러 하마스를 절멸하면 팔레스타인의 저항도 사라질 것이라고 고집한다. 그렇지만 팔레스타인의 자유를 위해 싸우겠다는 의지는 이 행동에 선행하고 그를 초과한다. 하마스는 10월 7일 행동의 주체가 아니었다. 팔레스타인 혁명의 최근 예시인 그 행동의 효과로 주체가 출연하길 희망하는 대리인이었다.

PFLP의 납치 전략이 정당함을 방어하면서 레일라 칼리드가 사용한 말이 10월 7일에도 적용될 수 있다. 칼리드는 쓴다. “어느 동지가 이렇게 말했다. 적이 무적이 아니라는 걸 비겁한 세계에 증명하기 위해 우리는 영웅적으로 행동했습니다. 우리는 귀를 틀어막은 서양 자유주의자들의 귀지를 입바람으로 날려 버리기 위해, 그리고 그의 시야를 가로막는 짚 더미를 치우기 위해 ‘폭력적으로’ 행동했습니다. 우리는 반혁명 시대에 대중을 고무하고 혁명적 대변동을 촉발하기 위해 혁명가로서 행동했습니다.”

피억압 인민이 어떻게 변화가 가능함을 믿을 수 있을까? 수십 년간 패배를 경험한 운동들이 어떻게 승리가 가능함을 느낄 수 있을까? 세라 로이는 10월 7일 이전에 가자와 서안 지구에 팽배했던 절망을 기록했다. 분파주의, 그리고 파타뿐 아니라 하마스도 너무나 많이 이스라엘에 협조하고 있다는 감각은 민족 통합 기획에 대한 확신을 흐트러뜨렸다. 한 친구가 로이에게 말했다. “우리의 과거 요구들은 무의미한 게 되고 말았어. 누구도 예루살렘이나 [난민의] 귀환권을 말하지 않아. 우리는 그저 음식을 보장받고 건너편으로 넘어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야.” 알-아크사 홍수 작전이 공격한 것은 이 절망이었다.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이슬람 지하드Palestinian Islamic Jihad가 주도한 저항 전투원 연합은 패배를 받아들이길, 그리고 느린 죽음이라는 치욕에 굴복하길 거부했다. 이들의 행동은 그 효과로 혁명적 주체가 나타나도록 설계되었다.

***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학살 전쟁이 시작되고 6개월간 팔레스타인과의 전 지구적 연대가 급증했다. 1970~1980년대의 물결을 상기시킬 정도였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우리에게 말해 주었듯 70년대 말에 “팔레스타인 운동과 스스로를 동일시하지 않은 진보적인 정치적 대의는 존재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과의 연대는 좌파를 하나로 묶었고 해방 투쟁을 지구적인 반제국주의 전선과 결합했다. 역사가 로빈 D. G. 켈리가 말하듯 “우리 급진파는 PLO를 발전에 대한 ‘비자본주의적 길’을 걷는 지구적 제3세계 투쟁의 전위로 여겼다.” 팔레스타인 투쟁의 전투성과 헌신은 이 투쟁의 혁명적인 전투원들을 좌파의 모델로 만들었다.

오늘날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투쟁을 주도하는 집단은 이슬람 저항 운동Islamic Resistance Movement 즉 하마스다. 하마스는 팔레스타인의 조직된 좌파 세력 전체의 지지를 받고 있다. 혹자는 제국 심장부 나라들의 좌파도 팔레스타인 좌파 지도부를 따라 하마스를 지지할 것이라고 예상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우 좌파 지식인은 제국주의 국가가 팔레스타인에 관한 발화의 조건으로 설정한 규탄들을 그대로 되풀이할 뿐이다. 그 과정에서 지식인들은 팔레스타인 혁명에 대립하는 쪽을 편들게 된다. 팔레스타인의 정치 기획에 대한 억압에 진보적인 얼굴을 부여하고 앞선 세대의 반제국주의적 열망을 배신하는 것이다.

10월 19일에 발표한 주디스 버틀러의 런던 리뷰 오브 북스 기고문이 대표적인 사례다[한글 번역본]. 75년간 이어진 나크바와 팔레스타인인의 저항을 분석의 중심에 두는 대신, 버틀러는 하마스의 끔찍한 살해를 면죄한다며 하버드 대학 학생들을 비판한다. 하버드의 팔레스타인 연대 집단들은 이스라엘 체제가 “전개 중인 모든 폭력에 전적인 책임이 있다”는 입장을 담은 성명을 발표했다. 버틀러의 에세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학계에 팽배해진―컬럼비아, 코넬, 펜실베이니아, 하버드, 로체스터 등등의 대학에서 생겨난―특정 태도의 전조가 되었다. 이 글은 가자에서 자행 중인 집단 학살 폭력의 실상에서 관심을 거두고는 안전이라는 정서적 환경과 특권화된 미국 대학들로 관심을 돌린다. 버틀러가 학생들을―그들이 어떤 언어를 사용하고 어떤 느낌을 표출했는지, 그들이 스스로를 어떻게 표현했는지를―표적으로 삼은 방식은 하원 청문회의 사전 모델로 기능했으며, 청문회의 여파로 하버드와 펜실베이니아 대학 총장이 사임한 바 있다.

하버드 학생들에게 반대하며 버틀러는 “하마스가 저지른 폭력을 어떤 유보 조건도 없이” 규탄한다. 버틀러는 그런 규탄이 정치의 종언임을, 중동 지역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게 가로막음을 사고하지 않는다. 버틀러는 자신의 규탄이 도덕적 비전에 동반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버틀러에 따르면] 그런 비전은 동등한 애도 가능성(grievability)과 애도권(right to mourn)만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정치적 자유와 정의”를 포함하거나 포함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버틀러는 그 비전에서 하마스를 제외한다. 버틀러는 하마스를 10월 7일에 책임이 있는 유일한 집단으로 대하면서 여러 팔레스타인 집단의 무장 세력이 그 행동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그럼으로써 그는 가자를 통치하기 위해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당[하마스]의 군사 분파를 훨씬 넘어서는 행동을 지지한다는 신호를 보낸다. 게다가 버틀러는 “하마스 같은 집단이 사라지도록 강제할” 평등을 위한 “상상과 투쟁”의 일부가 되길 원한다. [하지만] “하마스 같은”이 무엇을 뜻하는지, 어떤 특징 때문에 한 집단이 사라져야 하는지를 분명히 밝히지는 않는다. 예컨대 관건이 폭력적인 무력 사용이라면 피식민, 피점령, 피억압 인민의 해방 투쟁은 사전 배제된다. 70년대 말에 진보 세력을 하나로 묶었던 정치적 지평은 축소된다.

“하마스 같은 집단이 사라지도록 강제”하길 원하는 버틀러의 입장은 조 바이든이나 베냐민 네타냐후의 입장과 포개진다. 물론 이들과 달리 버틀러는 점령을 거론하고 거부한다. 그럼에도 버틀러는 이들의 입장을, 그리고 하마스를 팔레스타인에서 분리하고 이 분리를 팔레스타인 해방의 조건으로 만드는 이들의 전략을 되풀이한다. 하마스가 자유 팔레스타인을 위한 투쟁의 지도 세력으로 널리 인정되고 받아들여지는 상황에서, 하마스의 소멸을 희망하는 것은 국제 연대의 실패다. 그것은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으로 뭉친 전선에 타격을 입히고 쐐기를 박는다. 하마스에 대한 옹호는 입 밖에 꺼낼 수도 없을 만큼 비양심적인 언사가 된다. 그것은 규탄에 의해 사전에 저지된다. 굳게 닫아 잠가 놓은 문에 봉인 처리까지 하는 것처럼. ‘하마스 편에 선다는 것’은 근본적인 갈등에서 점한 위치에 대한 인정이 아니라 하나의 고발, 혹독한 비난이 된다.

버틀러는 정착민 식민주의의 지배가 종식된 이후에 어떤 세계가 가능하냐는 질문에 하마스가 “한 가지 두렵고 오싹한 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버틀러는 하마스의 답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 집단이 2017년에 발표한 문건도 언급하지 않는다. 이에 따르면 “1967년에 그어진 국경 위에 팔레스타인 국가 건립, 귀환권을 명시한 유엔 결의안 194호, 국제법이 부과하는 한계 내에서 작동하도록 무장 투쟁을 제한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이 하마스의 답이다. 나는 이 문서가 두렵지도 오싹하지도 않다. 서안 지구에서 이스라엘의 불법 정착촌이 확산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이 방안이 실현되는 모습을 상상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말이다. 12월 13일에 버틀러는 하버드 학생들에게 사과했다. 그는 하마스가 오랜 무장 투쟁 역사에 자리 잡은 “무장 저항 운동”일 가능성을 인정했고, 적어도 그것들이 “중요한 질문”임을 인정했다.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운동의 지도 세력을 옹호하는 것은 여전히 논의되지 않았다. 2024년 3월 11일에 버틀러는 “모든 ‘저항’ 형태가 정당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피억압 인민은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억압자에 맞서 싸운다. 이들은 승리에 필요한 전략과 전술을 택한다(이들이 해방 투쟁을 벌이는 환경이 그런 선택을 강제한다). 억압자는 이의 제기를 얼마만큼 용인할까?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억압자는 얼마만큼의 무력을 사용할까? 억압자는 피억압자의 순종에 얼마나 의존할까? 도덕적 비난을 억압자는 얼마만큼이나 기꺼이 받아들일까? 억압자에게 저항할 권리를, 민족 자결의 권리를 인정한다는 것은 억압자에 맞서 싸울 의지가 있으며 싸울 수 있는 이들을 옹호함을 뜻한다. 그런 옹호가 꼭 무비판적일 필요는 없다. 개인이나 집단, 국가가 자신과 의견이 다른 이들을 옹호하는 정치적 입장에 서는 경우도 많지 않나. 하지만 이 옹호는 해방 투쟁 중인 피억압자들로부터―억압자 혹은 억압을 가능케 하고 승인하는 그보다 넓은 제국주의 질서가 아니라―자신의 지향을 취해야 한다. 로빈 켈리의 말을 빌리면 연대는 “억압의 공동성들”이 아니라 “저항의 공동성들”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이는 새로울 것 없는 발상이다. 반제국주의 투쟁과 민족 해방 투쟁에서 긴 역사를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버틀러의 것과 같은 입장에서 드러나는 반제국주의 연대의 쇠퇴는 그보다 폭넓은 탈정치화를, 위축된 일련의 전제를 반영한다. 최근―적어도 10월 7일 이전에―사람들은 좌파가 실존하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불평하지 않는 이들도 좌파 정치를 단독성들의 다중이라는 측면에서, 각자의 고유한 선택과 느낌을 가진 무수한 개인이라는 측면에서 상상했다. 상호 교차성에 대한 호소가 신자유주의 파편화의 40년이 떼어 놓으려 했던 쟁점들을 연결하려 했지만, 상호 교차성 개념의 자유주의적인 법적 토대들은 너무나 자주 교차 지점을 개인으로 정체성의 문제를 쟁점으로 한정했다. 조직화 층위에서 탈정치화된 쟁점들은 개인들 속에서 그리고 개인적인 것으로서 재정치화되었다. 어떤 표현들이 안락함을 위협하며 안전하다는 감각을 침식하는가? 개인의 불안을 관리하는 것으로―대학 캠퍼스에서든 공공 시위를 규제하는 지역성에서든―정치가 위축됨에 따라 자기 중심성이 도덕적인 것으로 재구성되었다. 그런데 이 위축은 정치를 도덕주의로 대체하는 한층 일반적이고 체계적인 경향의 한 계기다. 전투적인 정치 조직화를 원조 업무로 대신하고, 투쟁을 행정으로 대신하며, 혁명 정당을 NGO와 CSO로 대신하는 것에서 이 경향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우리가 마주해 있는 것은 탈정치화가 아니라 패배다. 정치는 계속되지만, 이 패배에 의해 구조화된 형태로 계속된다. 제국주의에 맞선 투쟁에서 스스로를 일관된 하나의 편으로 구성하지 못하는 우리는 편을 정하는 데 곤란을 겪으며 우리가 어느 편인지 이해하거나 묻는 데 실패한다. 그리고 어느 편인지 알아보더라도 이분법적 사고에 젖어 있다거나 유치할 정도로 복잡성과 모호성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며 일축당한다.

***

팔레스타인 해방 인민 전선(PFLP)의 1969년 전략 문건은 사이드와 켈리가 환기한 바 있는 정치 세계로 이어지는 창을 제공한다. 버틀러의 도덕주의는 이 창을 가로막고 있을 뿐 아니라 발화에 대한 시온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조건들을 고수함으로써 그에 적극 대립하고 있기도 하다. 1967년 6월 전쟁에서 아랍이 패배한 이후에 작성된 이 문건은 PFLP의 창립 문서다. 문건의 중심에는 제국주의 문제가 있다. 문건에 따르면 2차 대전이 종전하고 식민주의적 자본주의 세력들은 미국 자본의 주도로 하나의 진영으로 뭉쳤고, 사회주의 나라와 해방 투쟁 들은 그에 대립하는 혁명 진영을 구성했다. 미국은 민족 해방 투쟁을 억누르기 위한 신식민주의적 기법들을 사용해 자신의 이해 관계를 실현하려 했다. 그뿐 아니라 미국은 군사력 사용도 전혀 꺼리지 않았고, 베트남, 쿠바, 도미니카 공화국 침공에서 이 의지가 확인되었다. “세계 혁명 진영과” 융합된 아랍 운동을 저지하는 데 실패한 이후 미국 제국주의는 이스라엘에 군사력을 지원했다. PFLP 입장에서 이는 팔레스타인 투쟁이 제국주의의 막대한 권력 및 기술적 우위와 맞닥뜨리지 않을 수 없음을 뜻했다. 그러므로 전략 차원에서 팔레스타인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할 선택지는 “세계적인 수준에서 모든 혁명 세력과의 완전한 동맹에 이르는 것”이다.

문건은 이렇게 진술한다: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인민은 매일매일 비참, 빈곤, 무시, 낙후의 삶으로 고통받고 있다. 이는 식민주의와 제국주의가 그들 삶에 초래한 결과다. 오늘날 세계가 경험하는 주요 갈등은 착취하는 세계 제국주의와 이 인민 및 사회주의 진영 사이의 갈등이다. 팔레스타인과 아랍의 민족 해방 운동과 베트남의 해방 운동, 쿠바와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의 혁명적 상황,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의 민족 해방 운동의 동맹이야말로 제국주의 진영에 맞서 승리할 수 있는 진영을 창출할 유일한 길이다.

그리하여 팔레스타인 문제의 정치적 해결책은 필연적으로 제국주의에 맞선 지구적 투쟁으로서 전개된다. “우리 모두 팔레스타인이다”의 “우리”는 우리 모두를 대신해 싸우는 편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이 문건의 2017년판 서문에는 소설가이자 시인, PFLP의 창립 성원으로 1972년에 이스라엘에 암살당한 가산 카나파니의 말이 인용되어 있다. 카나파니는 이렇게 말한다. “팔레스타인의 대의는 팔레스타인인만을 위한 대의가 아니라, 우리 시대의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대중의 대의로서 모든 혁명가―어느 곳의 혁명가든―를 위한 대의다.”

여러 대학이 ‘요르단강에서 지중해까지 팔레스타인은 해방되리라’라는 구호를 금지했다. 심지어 이 슬로건을 둘러싸고 국제적인 논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는 팔레스타인에 연대 감정을 느끼는 것을 막고 10월 7일이 촉발한 주체적 과정을 소멸시키려는 전쟁의 일환이다. 제국주의자들이 진정으로 질색해야 하는 것은 ‘우리 수천 명, 우리 수백만 명이 모두 팔레스타인인이다’라는 또 다른 구호다. 이는 파편화를 사양하고 반제국주의 주체가 팔레스타인의 대의의 효과임을 알아본다. 이 슬로건은 신자유주의적 관리주의와 인도주의가 상정하는 개인화를 반제국주의의 분열적 보편주의(divisive universalism)로 대체한다.

하마스를 옹호하는 우리는 팔레스타인 저항 편에 자리를 잡으며, 그럼으로써 어느 혁명적 주체―점령과 억압에 맞서 싸우는 주체―에 반응하고 이 주체가 열린 상태로 경합을 벌이는 과정의 효과임을 알아본다. 당신은 어느 편인가? 해방인가 아니면 시온주의와 제국주의인가? 억압자와 피억압자의 관계에서는 대안도 교섭도 없고 두 가지 편이 있을 뿐이다. 억압은 허용된 발화에 대한 규범들을 약화시키는 양보를 통해 관리되지 않는다. 억압은 전복된다[전복되어야 한다]. 정치적인 것을 구성하는 분열이 그 모든 적나라한 잔혹함 속에서 나타날 때 중도와 다중이라는 미망은 시들고 만다.

내 주장이 정치적인 것에 대한 카를 슈미트의 고전적인 정식화를 상기시킬지도 모르겠다. 친구/적이라는 관계를 강화한다는 측면에서 말이다. 하지만 내 주장은 위계를 인지한다는 점에서 슈미트의 정식화와 다르다. 식민주의적 점령과 제국주의적 착취는 적개심(enmity)을 생산하는데, 이는 갈등을 빚는 동등한 쌍방이 느끼는 정서가 아니다. 이것[점령과 착취에 맞선 투쟁]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이 아니다. 억압자에 맞선 피억압자의 전쟁, 자결권을 부정당한 이들이 그것을 부정한 이들에 맞서 일으키는 반란이다. 쌍방은 근본적으로 다른 의미 질서들을 채택한다. 따라서 양쪽 모두 상대방을 정신 나간 괴물 같은 존재로, 터무니없을 만큼 앞뒤가 맞지 않는 존재로 여긴다. 상황을 평가할 수 있는 제삼의 지점도, 적법성을 보유한 중립적인 최고 권위나 체계―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도 없다. 죽음들을 도표화해 계산에 대입하는 것만으로는 이 모든 것이 언제 잠잠해질지 보장할 수 없다. 역사는 사태를 규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날짜를 통해 사건들의 순서를 서사화하기 시작하는데, 이런 일자들은 대체 가능한 것이 아니다. 정치적인 것에 구성적인 분열은 시종일관한다.

팔레스타인을 더욱 커다란 실패―국제법과 인권 체제의, 지구화된 신자유주의라는 매끈한 세계의―의 증상으로 취급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수도 있다. 여기서 팔레스타인은 이 체계들이 스스로와 모순을 빚게 되는, 구성적 배제에 이르게 되는 지점을 표시할 것이다. 이 유혹에 저항해야 한다. 법은 언제나 까다로운 사건과 맞닥뜨리며, 집행은 붕괴 없이 이의를 제기한다. 지구화된 신자유주의는 파편화와 분리를 확산했으며, 정치 공간을 무수한 개인적 구역으로 쪼갰다. 퀸 슬로보디언이 증명했듯 탈중심화는 자본가 계급의 이해 관계를 보호하는 주된 메커니즘 중 하나로 기능해 왔다. 팔레스타인은 어떤 증상을 가리키는 이름이 아니다. 팔레스타인은 제국주의에 맞서 투쟁하는 편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팔레스타인 저항이 점령과 억압이라는 환경에 극적으로 구멍을 뚫을 때 이 편[제국주의에 맞서 투쟁하는]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다시 출현한다. 이 편은 자신을 무시하고자 하는 질서에 정면으로 대립한다. 끈질기게 존속하려는, 불의를 바로잡으려는, 빼앗긴 것을 되찾으려는, 자결권을 보유한 하나의 인민,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로 인정받으려는 변함없는 의지라는 사실과 더불어 말이다. 팔레스타인은 어떤 정치적 주체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풍부한 문헌이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주체성이라는 이념을 채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핵심 요점에는 다음의 것들이 포함될 것이다: 나크바 이후 민족 정체성을 상상하는 데 있어 저항이 차지하는 중심성; 종교적 다양성(무슬림, 그리스도교, 유대교)을 보유한 팔레스타인의 특수성; 이스라엘, 점령지 영토, 디아스포라를 아우르는 팔레스타인인의 산포성. 그보다 더욱 설득력 있는 것은 우리 모두가 팔레스타인인이라는 도발적인 주장이다. 이 주장을 모종의 감상적 동일시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런 동일시는 모든 형태의 고통이 같은 고통의 변형이므로 모두가 화합하면 된다고 말한다. 반대로 우리 모두가 팔레스타인인이라는 주장은 급진적 보편 해방을 외치는 정치적 구호로, 이는 팔레스타인의 대의의 효과로 생산된 주체에 응답하는 것이다. 모두가 팔레스타인을 대신해 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은 모두를 대신해 말하고 있다.

 

원문: Palestine speaks for every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