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5일 월요일 저녁, 전 세계 동시 행동 A15 Economic Blockades for a Free Palestine의 일환으로 연남동 경의선숲길 인근에서 팔레스타인 시 낭송회를 갖고 거리 선전전을 했습니다. (이후 영상 업로드 예정)

▶️ 프로그램
ⓐ 안나 오프닝 공연 – «해방, 해방, 팔레스타인에 해방을» :: 리베 팔레스티나 번안곡
ⓑ UG – 오늘 버스킹 기조 발언 및 시낭송 소개
ⓒ 시 낭송
1) 마흐무드 다르위시 «신분증» – 미음
2) (영시) 엘 쿠르드 «Martyrs», «No Moses in Siege » – 소피아
3) 라피프 지아다 «선생님, 우리는 삶을 가르칩니다» – 지연
4) 리파트 알아리르 «내가 죽어야 한다면»(정새벽 번역) – 젬마
5) 왈리드 다까 에세이 «문이 없는 장소» – 보리
6) (영시) 파드와 투칸 «Hamza» – 윤

버스킹 소개

오늘은 4월 15일입니다. 우리에게는 별다른 의미가 없이 지나가는 또다른 하루이지만, 지구 반대편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는 이스라엘의 무차별적인 침공이 시작된지 191일째가 되는 날입니다. 공식 집계상으로 3만 3천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사망했고 실종자 수까지 합하면 4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스라엘 점령군은 가자의 의료, 수도, 전기 등 핵심 인프라를 테러리스트 활동 구역이랍시고 체계적으로 파괴하고 구호물자의 반입 역시 폭력적으로 방해, 차단해 죽음이 가자지구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저지르고 있는 이 학살이 국제법상 최악의 전쟁범죄인 제노사이드, 집단학살에 해당한다는 주장은 이제 현장의 수많은 구호단체 활동가, 의료진과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증언과 수난이 증명하고 UN 특별보고관의 보고서가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 절망적인 상황을 반 년동안 지켜보며 느끼는 생각 중 하나는, 그 잘난 소위 선진국, 자유 세계란 것들이 이 학살에 깊게 연루된 공범이며 세계 시민들에게 지도력을 행사할 자격이 없다는 겁니다. 수만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데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지만 이스라엘이 구호단체의 선진국 국민들을 살해하거나 자국 대사관 공격에 대한 이란의 보복으로 이스라엘 본토에 미사일이 날아가야 소위 선진국의 지도자들, 정부 부처들은 반응을 합니다. 그렇게 외교적 수사는 내놓지만 여전히 이스라엘에 살인 무기를 지원하고 팔레스타인 민중들을 모르모트로 삼아 만들어진 감시기술을 구입합니다. 미국이나 영국, 독일 같은 곳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한국도 매한가지입니다. 한국 정부와 군수기업들은 여전히 이스라엘과 무기와 감시기술을 주고받고 있고, hd현대건설기계의 중장비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파괴하는데 쓰이며 우리가 마시는 음료와 아이스크림엔 이스라엘이 불법 점령한 팔레스타인 땅에서 생산된 과일로 만든 피묻은 과즙이 들어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중동 문제에 대해 던지는 질문은 ‘그래서 기름값이 또 오른대?’정도일 겁니다.

물론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곳곳의 양심적인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 팔레스타인에 평화가 있기를, 그 선결조건으로 이스라엘의 강제점령, 인종차별의 종식과 팔레스타인 주권의 자유로운 보장이 이뤄지기를 요구하고 나서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나온 우리도 지난 반 년을 백수십개 단체들과 함께 거리에서, 토론회장에서, SNS에서 그런 요구들을 외치며 보내왔습니다. 그래도 지치는 나날들이 많습니다.

제대로 점령을 지원하는 시스템, 경제체제에 타격을 주는 행동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점령과 폭력의 연쇄는 끊어지지 않는다는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늘어나고 있습니다. 미국, 호주, 스페인, 콜롬비아, 베트남,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17개국 의 주요 도시들에서는 오늘 4월 15일을 맞아 이스라엘에 물자를 지원하는 항만, 군수기업 등에 직접 타격을 가하는 행동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세계가 팔레스타인의 수난을 묵과한다면, 모든 이들이 똑똑히 알아먹을 하나의 방식인 경제적 타격을 입히는 행동만이 유일하게 효과적인 것이란 생각인 겁니다. 호주의 활동가들은 오늘 아침부터 무기공장 정문 게이트에 쇠사슬로 몸을 옭아매고 봉쇄행동에 들어갔습니다. 바르셀로나와 벨파스트의 항만과 위트레흐트의 고속도로에선 이스라엘로의 물자 수송을 방해하고자 많은 이들이 맨몸으로 도로를 막고 경찰과 대치했습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하는 행동은 그에 비하면 다소 소박합니다. 아직은 여러분의 일상을 방해하지 않는 작은 버스킹 겸 낭독회입니다. 악몽같은 점령 속에서도 팔레스타인 인들의 양심과 지성, 열정과 고뇌가 만들어낸 시와 노래같은 예술의 산물들을 소개하면서 우리도 그들의 뜻에 함께하자는 것을 호소하는 것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이 작은 퍼포먼스를 보는 시민 여러분 중 단 한 분이라도 앞으로 팔레스타인의 수난과 그에 맞선 해방운동에 관심을 가진다면 우리도 더 크고 강력하고 진짜로 파급력있는 운동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을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가까운 일본에서도 양심적인 시민들의 활동이 일본 굴지의 무역회사 이토츄 상사로 하여금 이스라엘 군수업체와 거래를 중단하도록 이끌어낸 바 있습니다. 우리도 롯데칠성이, HD현대 건설기계가, GS, 한화, KAI와 방위산업청이 그렇게 하도록 강제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과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체제가 국내외의 연대 운동과 점증하는 정치경제적 압력, 제재, 보이콧으로 무너졌듯,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인종분리와 차별, 군사점령도 BDS 운동과 같은 세계인들의 단결로 끝낼 수 있다는 상상력을 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낭독회에서 소개할 마흐무드 다르윗시, 엘 쿠르드, 라피프 지아다, 리파트 알라리르, 왈리드 다까, 파드와 투칸. 이 팔레스타인 민족시인들의 이름을 잊지 말아주십시오. 팔레스타인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참극의 근본 원인이 이스라엘의 시온주의 기획과 서구의 제국주의가 만드는 폭력적 점령, 봉쇄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주십시오. 팔레스타인이 해방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자유’란게 사실 허황된 것이란 걸 느껴주십시오.

팔레스타인에 자유를! Free, Free, Palestine!

 

신분증

마흐무드 다르위시.

 

기록하시오
나는 아랍인이오
신분증 번호는 5만번이오
아이들은 여덟
여름이 가면 아홉째가 나온다오
그래서 당신은 화가 난단 말이오?

 

기록하시오
나는 아랍인이오
채석장에서 땀흘리는 동무들과 함께 일하오
그리고 내 아이들은 여덟이오
나는 그 아이들을 위하여 빵조각을 얻어내오
그리고 옷가지와 공책도
바위로부터
그리고 나는 당신의 대문으로부터 자선을 구걸하지도 않소
또한 당신의 현관 앞에서 비굴하지도 않소
그래서 당신은 화가 난단 말이오?

 

기록하시오
나는 아랍인이오
나는 성도 없이 이름뿐인 놈이라오
나라 안의 모든 것이
들끓는 분노 속에서 살고 있는 그런 나라에서
참고 사는 사람이오
나의 뿌리는 내려졌소
세월이 태어나기도 전에
그리고 영겁이 열리기도 전에
그리고 측백나무와 올리브나무보다 먼저
그리고 풀들이 무성하기도 전에
내 아비는 쟁기의 가족이오
행세하는 양반이 아니오
그리고 내 할아버지는 농부였소
가문도 혈통도 없는
그는 내게 책읽기보다 먼저 태양의 긍지를 가르쳤소
그리고 나의 집 과수원지기의 초막은
나무막대와 갈대로 만들어졌소
그래 내 처지가 마음에 드오?

 

기록하시오
나는 아랍인이오
내 머리 색깔은 검은색이고
내 눈 빛깔은 커피색이오
그리고 내 특징은
나의 머리에 이깔을 두른 쿠피예가 있소
그리고 내 손바닥은 바위처럼 딱딱하오
누구든지 닿기만 하면 할퀸다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올리브 기름과 자따르요
그리고 나의 주소는
나는 잊혀진 외딴 마을 사람이오
마을의 거리들은 이름도 없소
그리고 사내들은 모두 들판과 채석장에 있소
그래서 화가 난단 말이오?

 

기록하시오
나는 아랍인이오
당신은 내 조상의 과수원을 빼았았소
그리고 나와 내 아들들 모두가
경작하던 땅도
그리고 우리에게는 그리고 나의 자손 모두에게는
이 돌들밖에 남긴 게 없소
그런데 그마저
듣기로는
당신들의 정부가 가져간다고?
그렇다면

 

기록하시오 맨 첫머리에
나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소
누구도 약탈하지 않소
그러나 나는 내가 배고팠다 하면
나는 나의 것을 빼앗은 자의 살을 먹을 것이오
조심하시오 조심하시오 나의 배고픔을

 

Martyrs

Mohammmed el-kurd.

 

Did the war wage itself?
—Sinan Antoon

 

We should continue to call our dead martyrs.

Foes rifled that word so we emphasize our neutrality. [Martyr] wasn’t participating in the fighting, human rights in em dashes. [Martyr] without monkeys or motives.

[Martyrs] who swept airplanes off balconies, [martyrs] fanatic, Biden livid at the Palestinians once more. [Martyrs] are a talking point.

[Martyr] I knew in high school waited for his fangs to grow.

[Martyr] was in love scraping underneath the bus.

[Martyr] at the bar and he was gone in two shots. [Martyr] my cousin couldn’t even choose the fight.

[Martyr] at the border, snort off of the rifle. Rifle to the [martyr], coin to the vending machine.

[Martyr] never knocked.

[Martyr’s] breaks unwed the concrete, and the forensics agree, but [martyr] is in the fridge still. His mother is parsley going bad.

[Martyr] my black rooster announcing the morning before the pigs.

[Martyr] brought to the sink and washed. [Martyr’s] death ten years later the government sends out Hallmark cards, and Washington spat on Mandela a few breaths before it kissed him.

[Martyr] bought three oranges and never made the juice.

 

No Moses in Siege

Mohammmed el-kurd.

 

On July 16, 2014, four boys—aged between nine and fourteen—
were killed by Israeli naval fire while playing soccer on a beach in
Gaza City.

 

Was it because there were no more graves in Gaza
that you brought us to the beach to die?

Was it because rubbling us in our houses,
like our cousins, like our futures, like our gods,
would be a bore?

Was it because our cemeteries need cemeteries and
our tombstones need homes?

Was it because our fathers needed more grief?

We were limbs in the wind,o
ur joy breaking against the shore.
Soccer ball in between our feet
we were soccer in between their feet.
No place to run. No Moses in siege.
Waves stitched together, embroidered, weavedun-walkable, indivisible, passage—implausible,on most days we weep in advance.

We looked up to the clouds, got up on clouds.

Here, we know two suns: earth’s friend and white phosphorus.
Here, we know two things: death and the few breaths before it.

What do you say to children for whom the Red Sea doesn’t part?

 

선생님, 우리는 삶을 가르칩니다

라피프 지야다.

 

오늘, 나의 학살은 TV로 중계됐습니다.
오늘, 나의 학살은 한 마디로 편집된 채 중계됐습니다.
오늘, 나의 학살은 한 마디로 편집되고 글자 분량에 맞춰
그들이 되풀이하는 지겨운 질문에 응답하기 위한 통계가 되어 중계됐습니다.

나는 더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기 위해 거듭 연습을 하고,
UN결의안을 달달 외웠지만 여전히 그는 내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지야다씨. 당신들이 아이들에게 그토록 많은 증오를 가르치기를 멈춘다면,
모든 게 좀 나아질 거란 생각은 안 드나요?”
(한번의 심호흡)
나는 깊게 심호흡을 하고 흥분하지 않으려 애를 씁니다.
하지만 가자에 끊임없이 쏟아지는 폭탄 소리에
내 안의 평정심은 자꾸만 달아나 버립니다.
(한번의 심호흡, 그리고 미소)
선생님, 우리는 삶을 가르칩니다.
라피프, 미소 짓는 걸 잊지마
(한번의 심호흡)
선생님, 우리는 삶을 가르칩니다.
우리 팔레스타인인들은 그들이 마지막 하늘을 점령한 뒤에도 삶을 가르칩니다.
그들이 점령한 하늘 아래 불법정착촌과 분리장벽을 지은 뒤에도 우리는 삶을 가르칩니다.

하지만 오늘, 나의 학살은 TV로 중계됐습니다.
“스토리가 될만한 이야기를 좀 해주세요. 휴먼 스토리 같은 거 있잖아요”
“정치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니예요”
“우리는 그저 당신과 당신 사람들에 대해 알리고 싶으니 공감할만한 이야기를 좀 해주세요”
“아파르트헤이트라던가 점령같은 정치적인 단어는 언급하지 마시고요”
“복잡한 정치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니라니까요”
“제가 언론인으로서 당신들을 도울 수 있도록, 제발 정치적인 이야기는 빼고 해주세요”

오늘, 나의 학살은 TV로 중계됐습니다.
“의약품이 필요한 가자지구의 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면 어때요?”
“당신은 기분이 어떤가요?
“사방에 널린 찢어진 팔다리들이 태양을 가릴만큼 넘쳐난다 생각하진 않나요?”
“저에게 주어진 1200자 분량에 맞게 사망자 수와 죽은자들의 이름을 좀 불러주세요.”

오늘, 나의 학살은 한 마디로 편집된 채 TV로 중계됐습니다.
오늘 나의 학살은 한 마디로 편집되고 글자 분량에 맞춰
‘테러리스트’가 흘리는 피에 둔감해진 이들의 마음을 건드려보고자 TV로 중계됐습니다.

그들은 그저 참 안됐다고 하더군요.
공습으로 인해 갈 곳 잃은 가자지구 소 떼를 보면서도 했던 그 말, 참 안됐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나는,
그들이 어기고 있는 유엔결의안과 통계를 반복하고
우리는 이 상황을 충분히 규탄하고 비난하고 거부하고 있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양측은 결코 대등한 상황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점령자와 피점령자 구도라고 말합니다.

그 와중에도 사망자 수는 계속 늘어납니다.
백명, 이백명, 천명, 아니 만명

전쟁범죄와 학살을 마주하는 그 와중에도
나는 이 모든 단어들을 쏟아내며 미소를 잃으면 안됩니다.
이질적인 느낌을 풍기지 않도록. 테러리스트로 보이지 않도록.
나는 계속해서 바뀐 사망자 수를 고쳐 말합니다.
백명, 이백명, 천명, 아니 만명

거기 누구 없나요?
우리 이야기를 들어줄 이가 있긴 한 건가요?

할 수만 있다면 내가 벽이 되어 사람들을 지켜주고 싶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 맨발로 모든 난민 캠프로 달려가
포탄소리로부터 아이들의 두 귀를 막아주고 싶습니다.
그럴수만 있다면.
그렇게 해서라도 내가 평생 듣고 살아온 그 소리를 아이들이 모를 수만 있다면.

오늘, 나의 학살은 TV로 중계됐습니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당신들의 유엔결의안이 해 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어떤 한마디도, 그 어떤 한마디도,
내가 아무리 유창한 영어로 말해도,
그 어떤 한마디도, 그 어떤 한마디도,
그 어떤 한마디도, 그 어떤 한마디도,
죽은이들의 삶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그 어떤 한 마디도, 지금 이 학살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 우리는 삶을 가르칩니다.
우리는 삶을 가르칩니다.
우리 팔레스타인인들은 매일 아침 온 세상에 삶을 가르치기 위해 오늘도 눈을 뜹니다.

 

내가 죽어야 한다면

리파트 알-아리르. (정새벽 번역)

내가 죽어야 한다면
당신은 살아야 합니다
내 이야기를 전하고
내 물건을 팔아
한 조각의 천과
몇 가닥의 실을 사서
(하얗고 긴 꼬리가 달린 것으로 만들어주세요)
가자에 있는 아이가
하늘을 바라보며
아무에게도
자신에게도
자신의 육신에게도
작별 인사를 하지 않고
불길 속에서 떠난 아버지를 기다리면서
당신이 만든 내 연이 하늘로 솟구치는 것을 볼 때
잠시 사랑을 되찾아 주는
천사가 거기에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만약 내가 죽어야 한다면
그것이 희망을 가져다 주기를
그것이 하나의 이야기가 되기를

 

문이 없는 장소

왈리드 다까.

한 번은, 바다에 놀러갔다 돌아온 딸 밀라드와의 통화에서 다음 번에는 내가 데려다 주겠다고 약속했다. 밀라드는 나에게 충격을 주고 싶지 않아서인지 몇 초 멈칫하고서 결국 입을 뗐다. “아냐, 아빠는 문이 없잖아.”

한 동안은 밀라드가 전화로 내게 “아빠 어디에 있어?” 물어볼 때 나는 “감옥”이라는 말을 피했다. 밀라드가 그 말의 무게를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리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고민에 빠졌다. 그럼에도 나는 딸에게 진실을 말해야할까? 아니면 감옥이라는 단어가 딸의 상상 속에 자리 잡지 않도록 쓰라린 현실을 숨겨야 할까?

밀라드는 면회를 오면서 감옥이라는 단어를 배우기 한참 이전에 감옥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딸에게 감옥은 문이 없는 장소였다. 아빠가 수감되어서 나갈 수 없는 곳이었다. 문이 없으니 바다로 놀러갈 수 없었다. 문이 없으니 아침밤을 함께 먹을 수 없었다. 문이 없으니 딸이 학교라고 부르는 보육원에 함께 갈 수도 없었다.

삶의 가장 이른 순간부터 우리의 아이들은 벽, 장벽, 그리고 검문소의 현실을 이해하게 된다. “점령”이라는 단어를 배우기 전 한참 이전에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아이들의 교육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하지만 성가신 질문을 맞딱뜨리게 된다. 어떻게 해야 이 현실이 만들어내는 억압된 느낌을 긍정적 실천의 동력으로 바꾸어서 아이들의 건설적인 성장에 기여할까?

밀라드에게 “감옥”이라는 말을 사용해도 될지 고민하면서 수감 생활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수감되면서 나는 하나가 아니라 세 세대의 수감자들을 만났다: 아버지, 아들, 손자. 어린이들이 수감된 가족을 자주 면회하면서 삶에 감옥이 너무 만연해졌고 결국 스스로 수감자가 되어 감옥을 다시 찾게 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아저씨, 담배 하나 주세요”라는 제목의 수감 생활 이야기 중 한 편에서는 12살짜리 어린이 수감자가 내게 담배를 달라고 부탁했다. 감옥 밖의 보통의 상황이었다면 거절했을 것이다. 아이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환경에서 아이는 빨리 성장해서 앞으로 다가올 수년간의 감금에 더 잘 맞서거나 체포 당시의 폭력에서 회복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배를 피우는 행동으로 아이는 “나를 보라, 나는 어른이다.”이라고 선언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담배를 건넸다. 그리고 밀라드 앞에서 나는 마침내 “감옥”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결국 나는 밀라드가 나에게 준 신호를 따랐다. 딸은 아이를 키울 때 정직함과 진실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쳐주었다. 결국 내가 딸 앞에서 “감옥”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밀라드는 이미 그 단어의 의미를 마음속으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감옥은 문이 없는 장소이다.

 

Hamza

Fadwa Tuqan.

 

Hamza was just an ordinary man
like others in my hometown
who work only with their hands for bread.
When I met him the other day,
this land was wearing a cloak of mourning
in windless silence. And I felt defeated.
But Hamza-the-ordinary said:
‘My sister, our land has a throbbing heart,
it doesn’t cease to beat, and it endures
the unendurable. It keeps the secrets
of hills and wombs. This land sprouting
with spikes and palms is also the land
that gives birth to a freedom-fighter.
This land, my sister, is a woman.’

Days rolled by. I saw Hamza nowhere.
Yet I felt the belly of the land
was heaving in pain.
Hamza — sixty-five — weighs
heavy like a rock on his own back.
‘Burn, burn his house,’
a command screamed,
‘and tie his son in a cell.’
The military ruler of our town later explained:
it was necessary for law and order,
that is, for love and peace!
Armed soldiers gherraoed his house:
the serpent’s coil came full circle.
The bang at the door was but an order —
‘evacuate, damn it!’
And generous as they were with time, they could say:
‘in an hour, yes!’

Hamza opened the window.
Face to face with the sun blazing outside,
he cried: ‘in this house my children
and I will live and die
for Palestine.’
Hamza’s voice echoed clean
across the bleeding silence of the town.
An hour later, impeccably,
the house came crumbling down,
the rooms were blown to pieces in the sky,
and the bricks and the stones all burst forth,
burying dreams and memories of a lifetime
of labor, tears, and some happy moments.
Yesterday I saw Hamza
walking down a street in our town —
Hamza the ordinary man as he always was:
always secure in his determination.

진보넷 활동가기도 하다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