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크시가 장벽에 그린 풍선을 타고 장벽을 넘는 소녀는, 현실에선 행글라이더를 탄 전투원의 모습으로 재현됐습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자녀이자 팔레스타인 해방에 오래 연대한 핀켈슈타인 교수는 이를 “강제수용소의 문을 뚫고 나왔다”고 표현합니다.

깊은굴쥐@ghoulGee님께 부탁드려 만화를 받았습니다. 흔쾌히 그려주신 깊은굴쥐님 고맙습니다.

핀켈슈타인 교수가 인터뷰에서 했던 답변 전문과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에 실린 옮긴이 해제 중 관련된 부분도 같이 올립니다.

질문자(피어스 모건): 2차 세계대전의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아 강제 수용소에서 나온 부모님이 당신의 글을 봤다면 어떻게 생각하셨을까요?

우선 제가 글을 쓸 때마다 은유적인 의미에서 부모님이 제 어깨 너머로 화면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저는 제 존재의 모든 순간이 가족의 순교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을 매우 의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질문은 제가 생각해 보지 못한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고, 반대로 부모님이 돌아가신 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부모님의 순교와 그들의 가족이 몰살당한 것을 기준으로 도덕적인 검증을 하곤 하죠.

부모님이 어떻게 반응하셨을까요? 제 추측으로는, 강제 수용소 수감자들이 수용소 문을 뚫고 나왔다는 소식을 첫날 들으셨다면, 사건이 더 명확해지면서 부모님은 그 사실에 매우 기뻐하셨을 것 같습니다. 순전한 추측이지만, 제 추측으로는 부모님은 온 마음을 다해 밖으로 나가서 수용소 문을 뚫고 나온 사람들, 삶이 파괴되었던 그 사람들에게 갈 것입니다.

이제 당신은 저에게 (완전히 합법적으로) 그 날 잔학 행위로 학살당한 무고한 사람들에 대해 부모님이 어떻게 느끼실지 물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가까운 답변을 드려 보겠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께 여쭤본 적이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도시들이 테러 폭격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셨냐고요. 민간인을 표적으로 삼아 독일 도시들을 융단 폭격 했을 때 어떤 기분이셨냐고요. 어머니의 대답은 “우리가 죽는다면 저 놈들 몇 명은 우리가 데려가겠구나”였어요. 지금 들을 때 그다지 도덕적으로 고상한 말은 아니지만요. 저도 동의합니다. 제 어머니와 아버지가 독일 민간인의 목숨에 대해 더 높은 감수성을 가졌으면 좋았을까요? 그랬으면 좋겠지만, 피어스, 부모님이 생의 마지막 날까지 독일인에 대해 친절한 말을 할 거라는 건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점에 대해 제가 부모님과 다투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분들의 삶의 경험을 고려할 때 그분들은 자신의 삶을 파괴한 사람들을 증오할 권리가 있다는 걸 인정했습니다. 가자 주민들 역시 자신의 삶을 파괴한 사람들을 증오할 권리가 있는 것이고요.

* 핀켈슈타인 인터뷰 영상

첫날 작전은 스펙터클했다. 2007년 이래 17년간 육해공이 봉쇄된 가자 지구의 해방을 상징하듯 땅에선 불도저로 이스라엘이 설치한 스마트 펜스를 부수고, 바다에선 배로, 공중에선 패러글라이딩으로 봉쇄를 뚫고 금지된 고향 땅으로 귀환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촬영해 공유한 것이다. 조악한 해군력으로 바다에 나간 전원이 곧바로 이스라엘 점령군에 살해당한 걸 보면 이들이 무리하면서까지 공들여 해방의 이미지를 연출했음을 알 수 있다. 팔레스타인 민중과 연대자들은 즉각 환호성을 보냈다. 가자 주민의 80퍼센트가 난민이고 이 중 대다수가 지금은 이스라엘이 된 가자 인근 마을들 출신임을 생각하면 그 기쁨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들뜬 순간은 잠시뿐이었다. 곧바로 전례 없는 규모의 집단 학살이 개시됐고, 저항 세력이 이스라엘 민간인을 대량으로 살해했다는 뉴스도 범람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은 가자 주민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격하하기 위해 이들이 이스라엘 민간인 살해에 환호했다고 진실을 오도하지만, 가자 주민은 저항 세력이 비무장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이스라엘의 선전을 믿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그 오랜 세월 수많은 선전과 선동으로 진실을 왜곡해 온 역사가 있는데 어찌 이스라엘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겠는가.

* 옮긴이의 말 중.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