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빈곤사회연대 페이스북

용산정비창 일대와 지금은 용산센트럴파크해링턴스퀘어가 들어선 용산참사현장을 아우르는 용산다크투어에 참가했다. 시작은 용산역 광장. 이 광장은 공공역사가 아니고 민간자본으로 지어진 역사라 상업시설 규모가 남다른데 시민들이 공공공간으로서 열차를 기다리는 대합실 등의 시설은 10%, 나머지 90%는 상업공간이다. 집에 와서 더 찾아보니 보통 유럽은 민자화를 해도 누구나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공시설은 적어도 30% 확보한다고.

올해 1월부터 투어를 해온 진행자들은 한번은 어느 행인으로부터 이런 문의를 받았다고 했다. (대안적 도시개발을 함께 모색해보자는) 투어 취지는 공감하는데 여기가 당신들이 소유하고 있는 공간도 아닌데 왜 남의 몫을 갖고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고. 과연 그는 소유한 자들에게도 어쩌다 당신들이 소유하게 되었느냐고 질문해봤거나 스스로 궁금해봤을까. 그는 평소 공공공간에 대해 어떤 감각을 갖고 살길래 그렇게 지나가다 본 이 투어에 깜짝분노를 표출했을까. 이 사람 말대로 도시에 대한 모든 결정과 권리는 소유권자에게만 귀속되도 되는 것일까. 내 삶을 이어가는 공간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해도, 소유하지 않았으면 끊임없이 밀려나고 무너뜨려 지는 걸 받아들이라는 걸까.

노숙인 대신 왜 홈리스라는 말을 쓰나 봤더니 투어 리플렛에 쓰여있기를 홈리스는 ‘거리에서 생활하는 사람뿐 아니라 고시원이나 쪽방촌 등 비주택에 거주하거나 불안정한 거처를 전전하는 사람 모두를 뜻한다’고 한다. ‘주거 결핍’에 방점을 두어 더 많은 이들의 문제를 포괄할 수 있는 표현이라는 것. 주거 결핍이라… 나부터도 곧 돌아오는 전세계약 만료 기한에 또다시 스트레스 시즌이 시작되었고 사실 주택뿐 아니라 소규모 상가도 마찬가지 아닌가. 을지오비베어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고…

‘홈리스’와 같은 단어들이 종종 있다. 한국말로는 그 현상을 딱 떨어지게 표현하기 어려워서 낯설지만 반복적으로 사용하다보니 굳어진 영단어들. 엄청 어려운 단어 젠트리피케이션이 대표적이고. 그만큼 이 땅의 맥락에서 충분히 논의된 적이 없어서 가져다 쓰고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야핑과나누며 걸었다.

얼마전 활동가들끼리 팔레스타인 가족들에게 날마다 일어나는 home demolition을 보통 한국어로 가옥파괴라고 쓰는 데 그게 영 맘에 안드는데 그럼 뭐라고 부를지를 두고 오래 이야기했던 것도 생각났다. 그저 건물을 부수는 게 아닌데, 하루 아침에 삶의 터전과 이유를 앗아간 것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지 아직도 모르겠다.

구청에서 받은 관리처분계획 인가 공문을 가슴에 품고 망루에 올라가 결국 목숨을 잃은 철거민 이야기에, 공문이 결국 유서가 됐다는 표현이 정말 많이 아팠다. 어떤 행정명령은 사람을 죽인다.



팔레스타인에서 본 여러 참상이 유독 겹쳐져 보였다. 국제업무지구 만든다는 용산정비창을 둘러싼 높다란 공사장 펜스보고는 거대한 이스라엘 콘크리트 분리장벽이 떠올랐고, 텐트촌 부지 바로 옆에 펜스쳐놓고 쑹덩쑹덩 파둔 땅은 서안지구 불법정착촌 크파르 아두밈 주변 베두인 마을이랑 닮았고, 텅텅 비어 쓰레기가 쌓인 전자상가 아케이드를 보고는 상점 거리 위에 그물망이 쳐진 헤브론 시장이 생각났다. 그러면서 나는 왜 그런 닮은 모습들을 한국에서 20년 넘게 살 때는 절대 못보다가 먼 팔레스타인 땅에서 보고 원형으로 삼게 됐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짐작가는 이유는, 말그대로 그냥 내 심장이 쿵하고 나댔기 때문이다. 우연한 기회에 그 곳에 갔고, ‘양쪽 얘기’ 다 안들어보고 국제법상 적절한 주거권 요소 등 아무것도 몰랐어도 그저 쇼킹한 광경을 ‘봤기’ 때문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가 안 먹히는 순간. 그냥 인간으로서 욱하는 날 것의 분노. 이건 정말 아니다, 다 모르겠고 나는 이거 unacceptable하다며 부리는 마지막 자존심 같은 게 발동될 때가 있다. 사람마다 역치가 다르지만 결국 이 감정이 밤을 새워 관련 내용을 찾아보고 잘 모르겠는 거는 용기내서 물어봐가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 같은데…

많은 경우 나는 내가 직접 ‘봐야했다’. 나는 2009년 용산참사를 너무나도 나중에야 마주하고 말았는데 13주기를 맞은 오늘날까지 이렇게 계속해서 ‘보여주시는’ 분들 덕분에 뒤늦게라도 가능했구나 싶어 많이 감사했다. 그리고 그렇게 직접 보고 전하려다 이스라엘 군인에게 살해당한 알자지라 기자 쉬린 아부 아클레가 생각나서 또 심장이 마구 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