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르트헤이트는 노골적인 인종분리정책임에도 정치공학적으로는 ‘자주’ 혹은 ‘자치’ 라는 가면을 쓰고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역시 트란스케이, 크와줄루 반투스탄 같은 흑인 자치구역 및 정부가 있었습니다.

노먼 핀켈슈타인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이미지와 현실>에 따르면, 최초의 자치정부였던 “트란스케이 정부는 세금 징수나 교육, 지역의 공공 업무, 농업, 법원과 복지 등의 대민 업무”를 할 수 있었지만 “대내외적인 안보에 관한 사법권과 외교 업무, 통신, 운송, 재정 기관, 인구 이동 통제” 등은 남아공에 의해 장악되었습니다. 이러한 자치 시스템에 대해 저자는 “백인들이 자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흑인들을 전적인 노예 상태에 효과적으로 빠져들게 하는 정치적 분리안”이며, “흑인들은 반투스탄의 건국을 통해 기술적으로는 남아공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워지지만 자기들의 비참한 처지에 대해 그들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고 서술합니다.

아파르트헤이트 분리정책의 기반이되는 이러한 ‘자치’ 개념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불법점령에서도 똑같이 나타납니다. 1993, 1995 1,2차 오슬로협정을 통해 팔레스타인은 A, B, C구역으로 나뉘어지게 되고 예루살람을 제외한 서안지구의 30%에 한해서 PLO (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는 행정 및 치안을 맡게됩니다. 그러나 자치정부는 허울일 뿐,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일상은 이스라엘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이스라엘의 국경경찰에 의해 일상을 방해받고, 지속적인 차별과 무시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동이나 통행이 일상적으로 제한되고 통제되며, 아랍인구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 지역의 성장이 불가능하도록 기형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도시개발 정책들을 고수합니다. 사법권과, 도시계획행정권을 장악한 이스라엘은 이미 1967년 전쟁 직후부터 건축허가 심사과정을 모두 이스라엘 공무원에 의해 이루어지게 함으로써 사실상 팔레스타인이 건축허가를 받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정책을 채택해왔습니다.

동예루살렘과 서안지구 C 영역과 같이 이스라엘 행정구역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가옥파괴는 일상입니다. 수 대째 살아온 집이지만 집을 증축하기 위한 건축허가증을 받을 수 없거나, 이스라엘 정부의 고속도로 건설계획으로 하루아침에 철거장을 받고 길거리로 내몰립니다. 육안으로 멀리 내다만 보아도 이스라엘 행정구역과 팔레스타인 행정구역의 개발정도의 차이는 현저합니다. 두 구역이 경계를 맞닿는 예루살렘 분리장벽 안과 밖을 보면, 한 쪽은 하얀 3층 별장들이 군을 이루어 자립자족이 가능한 마을을 이룬 것과 달리 다른 한 쪽은 높은 건물도, 제반시설도 없이 집들만 덩그러니 곧곧에 흩어져 있습니다. 사실상 이스라엘 정부의 점령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치구역이라는 핑계로 수십년간 지방정부의 개발정책 밖에 나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개발 중점지역들이 모두 이스라엘 지역에 편중된 것 또한 사실상 ‘자치’를 통한 분리정책이 얼마나 불평등한지를 보여줍니다.

자원의 평등한 분배 없이 이스라엘 정부는 너무나 쉽게 팔레스타인 지역의 낙후는 아라파트를 위시한 PLO의 무능과 비민주적인 독재정권때문이라고 몰아갑니다. 하지만 이는 일부 반투스탄 정부의 심각한 독재와 부패를 비판하는데 집중하는 나머지, 문제의 근원인 불평등한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대해서는 적절한 비난을 하지 않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노먼 핀켈슈타인은 이를 두고 “남아프라카 공화국의 억압적 지배가 ‘흑인들의 흑인 지배’라는 폭력의 장막 뒤에서 부분적으로 은폐”된다고 지적합니다. 이스라엘의 점령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자원이 불공평하게 분배되도록 설계된 이스라엘의 분리정책 하에서 행정 및 치안에 대한 자치권을 얻는 것은종속된 자치에 불과하며, 팔레스타인인들의 경제적 정치적 일상은 사실상 이스라엘에 종속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점령이 72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제반시설도, 지역투자도 없는 팔레스타인 지역민들은 자신들의 가업을 떠나 이른 새벽 4시부터 이스라엘 지역으로 향하는 버스를 탑니다.

메론 벤베니스티가 “현재의 권력 관계에 기반을 둔 ‘협력’이란 곧 위장한 이스라엘의 영구적 지배일 뿐이며, 팔레스타인의 자치란 단지 반투스탄화의 완곡어법일 뿐이다.”라고 주장한 것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왜 이스라엘에의 경제적 종속이라는 결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는 지를 잘 설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