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라라비 2023년 12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10월 7일 이후 “가자지구는 어린이 수 천 명에겐 무덤이, 남은 모든 이들에겐 산 지옥이 됐다.”

유니세프의 말입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침공한 지 단 3주 만에 살해된 팔레스타인 아동 수는 2019년 이후 전 세계 분쟁 지역에서 살해된 연간 아동 수를 넘어섰습니다. 이 속도는 줄지 않아 십 분에 한 명 꼴로 가자지구 아동이 살해되고 있습니다. 방송 기자인 아버지를 좇아 가자지구의 참상을 영상으로 만들어 세계에 전하던 소년이 살해됐습니다. 난민촌의 집에 전기가 끊겨도 공부를 멈추지 않았다던 대입 시험 1등 수험생이 살해됐습니다. 수어통역을 하며 예능인을 꿈꾸던 어린 소녀가 살해됐습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삶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더이상 차를 이동시킬 연료가 없어 구급차 대신 말이 끄는 짐수레가 환자를 싣고 병원에 찾아옵니다. 그렇게 힘들게 온 병원에선 이스라엘 점령군에 피난민이, 환자가, 의료진이 살해되고 있습니다. 현장의 기자들은 PRESS라 크게 새겨진 조끼와 헬멧을 벗습니다. 조끼와 헬멧은 이들을 지켜주긴커녕 과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참상을 그대로 전하는 기자들과 그 가족들은 표적이 되었고, 가자지구와 레바논의 기자 64명이 살해됐습니다. 국경없는기자회는 전쟁범죄의 책임을 묻겠다며 이 중 몇 명의 사건을 국제형사재판소로 가져갔습니다.

이스라엘 점령군이 팔레스타인 주민을 학살할 때마다, 이들이 단지 통계에 불과한 숫자가 아니라고, 살해당한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우리처럼 얼굴이 있는 존재들이었다며 그들의 이름과 꿈을 기억하자는 다짐이 많았습니다. 이미 죽었을 실종자들을 포함해 47일간 2만이 넘는 사람들이 살해됐고, 이 숫자는 무서운 속도로 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고 추모하기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상황을 ‘분쟁’과 ‘갈등’이라 부르며 남북한의 상황에 비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상은 전혀 다릅니다. 남북한 어느 한쪽도 다른 쪽을 군사점령하거나 식민지배하고 있지 않습니다. 어느 쪽도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말하는 외국 군대의 통치를 받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민중이 겪고 있는 상황은 일제강점기 조선의 민중이 겪었던 것과 유사합니다. 차이점이라면 일제는 조선 땅에서 원주민을 모두 없애 버릴 계획이 없었던 데 반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땅에서 원주민을 모두 없애 버리는 것이 기본 계획이라는 점입니다. 학살이든, 추방이든,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말입니다. 이미 이스라엘이 건국될 때 그랬고, 지금 가자 지구를 폭격하며 유출된 이스라엘 점령당국의 문서 내용이 그렇습니다. 가자 주민을 남쪽으로 밀어내 이집트 시나이 반도에 살게 하게 하고, 그 땅은 온전히 이스라엘 땅으로 편입하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세계은행에 얘기해
이집트의 부채를 탕감시켜 주겠다며 가자 주민을 난민으로 받아들이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럽 각국에 이 안을 지지해 달라 로비를 벌입니다.

지금 학살의 잔인성 때문에 세계의 눈이 가자 지구에 쏠려 있지만, 팔레스타인의 다른 지역인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의 상황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완전히 없애겠다며 마치 하마스가 모든 문제의 원흉인 것처럼 서사를 짰고, 서방 정부와 언론은 이를 그대로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습니다(이 서사는 거짓말로 드러나 무너졌습니다. 뒤에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그러면 하마스가 없는 세상을 한 번 상상해 보자고 얘기합니다. 하마스가 없으면 폭력이 없는 세상이 될 것 같냐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죽이지 않을 것 같냐면서요. 답은 너무 뻔합니다. 하마스가 없는 서안 지구에서 이스라엘은 올해 하루 1.2명 꼴로 팔레스타인 주민을 살해하고 있었습니다. 하마스를 문제의 원흉으로 지목하기 어려운 이유가 또 있습니다. 하마스가 창립한 건 1987년의 일이지만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서안지구·동예루살렘이라는 팔레스타인 전역의 군사점령을 시작한 건 1967년으로 훨씬 앞서기 때문입니다. 이 군사점령이 지금까지 이어져, 팔레스타인을 UN 등 국제사회가 부르는 공식 명칭은 “피점령지 팔레스타인(occupied Palestinian territory, oPt)”입니다. 그리고 원주민 학살과 인종청소로 이스라엘이 들어선 것은 1948년의 일입니다. 이스라엘의 식민지배가 공식적으로 시작된 뒤 40년이 지나서야 하마스라는 저항 그룹이 생긴 겁니다.

팔레스타인의 무장 투쟁은 비교적 늦게 본격화됐습니다. 1967년, 그러니까 하마스가 존재하기 20년 전, 이스라엘에 군사점령당한 뒤 팔레스타인의 주로 좌익 저항 세력이 무장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무장 투쟁에 대해 각자가 어떻게 생각하든지 간에, 식민지배를 받는 민중에게 무장 투쟁은 집단적인 자기방어의 권리로 보장됩니다. 자본주의를 찬양하는 사람이라 해도 헌법상 보장된 노동3권을 부정할 수 없듯, 이스라엘 지지자더라도 유엔 헌장상 보장된 자기방어 권리를 마찬가지로 부정할 수 없습니다. 반면 점령자에겐 피점령자에 대한 방어권이 없습니다. 미국과 유럽의 정상들은 앞다퉈 이스라엘의 방어권을 지지한다고 말하지만 이는 국제법을 정면 거스릅니다. 이미 2004년, 국제사법재판소는 이스라엘에 자국이 점령한 팔레스타인에 대해서는 UN 헌장상 보장된 방어권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결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어찌 됐든 테러를 당해서,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가자 지구를 공격한 거라 칩시다. 이스라엘의 무차별 폭격에 이스라엘 인질이 60명 넘게 살해당했다는 건 논외로 하더라도요. 살해된 이들 중 절반에 가까운 숫자를 아동이 차지하는 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왜 이렇게 어린이가 많이 죽는 거냐고 묻는 분들이 계셨는데요. 인구 절반이 아동이기 때문입니다. 민간인을 무차별 살해하고 있기 때문에 인구 비율만큼의 아동이 죽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이의 죽음을 참아내는 임계점이라는 게 있는 걸까요? 아무리 이스라엘의 편을 들고, 이스라엘의 만행을 정당화 하려고 해도 실종 아동을 제외해도 6천 명 넘는 아동을 살해한 것은 이스라엘의 말처럼 “부수적 피해”로 치부되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아동의 인권을 중요시한다면서도 이스라엘을 결코 규탄하지 않는 미국과 유럽 사회에서도 조금씩은 신경이 쓰이는 모양입니다. 전례 없이 노골적으로 이스라엘의 편을 들며,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기자를 해고하기까지 한 뉴욕 타임즈조자, 마침내 가자 침공 5주 만에 1면을 가자지구의 어린이 이야기에 할애했습니다. 폭격으로 일가 친척 68명을 한 번에 잃고 동생의 죽음을 슬퍼하는 어린이가 표제 사진으로 실렸고요.

어찌됐건 하마스가 이스라엘 민간인을 학살했으니 하마스 만큼은 규탄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 75년간 식민지배를 받으며 팔레스타인 사회는 심각하게 분열됐습니다. 지배자들이 늘 하듯 이스라엘도 팔레스타인 사회를 분열 통치하는 전략을 썼고, 그게 위력을 발휘한 것이죠. 그래서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큰 두 저항 세력끼리 서로 죽이는 관계가 됐고, 그 반목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하나가 하마스고, 다른 하나는 ‘파타’인데요. 파타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대화” 파트너로 선정된 뒤 타협적인 태도를 넘어서 이스라엘의 하수인 노릇을 해오고 있어서 민중의 신임을 잃었습니다. 아무튼 그 파타조차도 하마스 규탄하기를 거부했는데요. 절대로 이스라엘 민간인을 살해해도 된다고 생각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누군들 비무장한 민간인 살해를 옹호할까요? 아무도 그러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민간인을 살해한 하마스를 규탄하지 않은 이유는 하마스 규탄이 곧 가자 주민 학살의 근거로 사용되기 때문인데요.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악마화하고, 하마스를 지지하는 가자 주민을 악마화해서, 죽여 없애도 되는 존재로 세상 사람들에 성공적으로 인식시켰습니다. 이미 학살 초기부터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 전문가들이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제노사이드(집단 학살)를 자행하고 있다고 입을 모아 규탄했습니다. 제노사이드의 전형적인 전단계가 그 인종 집단이 죽어 마땅한 미개하고 사악한, 인간 이하의 자들이라는 여론을 형성하는 것이고요.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가자 주민을 “인간 동물”이라 대놓고 일컬은 것은 국내에도 많이 보도가 됐죠.

하마스가 야만을 자행했다면 이 야만은 이스라엘의 75년간의 식민지배라는 근본 원인인 더 큰 야만이 낳은 결과입니다. 언제나 이스라엘의 책임이, 압도적으로 더 큽니다.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날의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이날 이스라엘의 음악 축제가 열린다는 걸 사전에 알게 된 하마스가, 군사작전을 짜서, 축제 장소에 쳐들어가 비무장한 민간인을 200명 넘게 살해했다는 이야기에 저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온전히 믿기는 힘들었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먼저 저는 이슬람 정치 운동의 대척점에 서 있는 세속주의자기 때문에 하마스를 조금도 지지하지 않습니다. 그렇대서 하마스를 실제 이하로 깎아내리거나, 반대로 어찌됐든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이기 때문에 좋게 볼 생각도 없습니다. 제가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하마스는 온건한 이슬람주의 세력으로, 예전에 시리아나 이라크에서 창궐했던 IS같은 극단적 이슬람 정치 세력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IS와 같다며, 하마스가 아기 머리를 베었다거나 여성의 몸이 부서질 때까지 강간했다는 둥 입에 담기도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고 무수한 프로파간다를 퍼뜨렸지만, 이후 이런 사실이 없다는 게 이스라엘 언론을 통해 속속들이 드러났습니다. 일단 사실여부와 무관하게 가짜 뉴스(허위 조작 정보)를 퍼뜨려 집단 학살을 자행할 근거를 만든 것 뿐입니다. 아무튼 그런 IS나 할 법한 짓을 하마스가 했다는 이스라엘의 주장을 서양의 정부들과 언론들이 사실이라고 퍼뜨렸습니다. 일단 퍼뜨리고 나중에는 정정하고 있지만 자극적인 가짜 뉴스가 퍼지는 것과 정정된 뉴스가 퍼지는 속도와 범위는 무서울 정도로 다릅니다. 저는 하마스가 IS와 다르며, 오히려 서로 적대하며 서로 죽고 죽이는 관계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무엇보다 첫 군사작전이 목표로 한 게 고작 민간인 학살이라면 팔레스타인 사회에서 신임을 유지할 수가 없기 때문에, 어째서 하마스가 그런 짓을 한 건지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더더군다나 한국 언론에는 하마스 단독으로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처럼 나오지만, 실제로는 지난 몇 년간 오랜 분열을 딛고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들이 단일한 무장 투쟁 전선을 만들었고, 10월 7일 알아크사 홍수 작전은 이들이 함께 계획한 것입니다(참고로 앞서 말한 ‘파타’는 무장 해제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함께 하지 않습니다). 하마스도 그렇지만, 좌파 세력이 그런 민간인 학살을 작전으로 짰다는 걸 그대로 믿기가 어려웠습니다. 또한 하마스는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의혹을 부정하며, 고의적으로 민간인을 노린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 군경과, 무장한 경비대와 정착민 등과 교전하는 과정에서 민간인들이 살해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인질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하는 영상을 계속 내보냈죠. 이번 군사작전의 목표는 이스라엘 감옥에 갇힌 5천에 가까운 해방 운동가들을 석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수감자와 교환 협상하기 위해 이스라엘 인질을 최대한 많이 데려가고, 또 군사 기지를 공격하는 게 그 수단이었고요. 참고로 수감자(인질) 교환은 거의 유일하게, 이스라엘이 협상에 응하는 영역입니다.

전 세계 연대자 중, 저처럼 10월 7일의 일에 대해 의혹을 품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당연하죠. 우리는 하마스가 IS처럼 행동하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요. 이스라엘이 공개한 사진과 영상을 보면 자동차와 사람이 완전히 새카맣게 불타 죽고, 키부츠의 집이 완전히 부서져 있었는데, 하마스의 경량화기로, 그리고 중장비 없이 그렇게 파괴할 수 없다는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언론에서, 10월 7일 이스라엘 민간인 일부를 살해한 것은 이스라엘 점령군이라는 보도가 조금씩, 계속해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이 이스라엘에 준 아파치 헬기가 달리는 사람과 자동차에 미사일로 폭격하는 영상과, 자신이 이스라엘 민간인을 폭격하지 않았다고 100% 확신할 수 없다는 조종사의 인터뷰도 나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마스는 축제가 있단 걸 몰랐다는 이스라엘 경찰 조사결과가 보도됐습니다. 경찰이 생포한 하마스 대원들의 진술도 그렇고, 원래 목/금 개최 예정이었던 음악축제는 불과 이틀 전에 하루 연장이 결정돼, 하마스가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또 이스라엘 점령군의 아파치 헬기가 음악축제에 온 사람들에 발포했다는 내용도 나왔습니다.
이스라엘이 고수해온 내러티브가 깨진 것입니다.

이스라엘 점령군이 자국민을 많이 죽였다고 해도, 그 범위와 10월 7일 사건의 진상을 지금 단계에서 전부 알 수는 없습니다.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전쟁범죄를 조사하고 책임자들을 처벌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국제형사재판소 검사장의 입국을 금지했습니다. 반면 하마스는 그의 조사를 반긴다는 성명을 냈습니다.

이스라엘은 2007년 가자지구의 육해공을 봉쇄한 뒤 모든 의약품, 생필품 등 모든 물자의 반입과 주민의 출입을 최소한도로 허용해 왔습니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대규모 폭격을 가했습니다. 천 명, 이 천 명, 살해하는 사람 수가 늘다 이번엔 2만 명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뉴노말이 될까봐 저는 너무 두렵습니다. 다음 공격 땐 최소 2만 명은 죽일 때까지 세계가 꿈쩍하지 않을 거란 게 예상이 돼서요. 임시 휴전 소식이 들리자 사람들은 이 문제가 해결됐다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4일간의 임시 휴전을 앞둔 이스라엘은 더 많이 폭격했고, 휴전 기간이 끝나면 더 많이 가할 거라 밝혔습니다. 완전한 휴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걸로도 부족합니다. 이스라엘이 언제든 팔레스타인 사람을 죽이고, 인종청소하고, 자원을 수탈할 수 있는 식민지배와 군사점령 자체가 끝나야 합니다. 이를 끝내도록 할 것은 전 세계 민중의 단결된 연대 행동밖에 없습니다. 함께 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