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카이 사토시(프랑스 문학 연구자)
번역: 리시올

『현대사상』, 특집 “팔레스타인에서 묻다: 100년의 폭력을 고찰하기”, 2024년 2월, 52-2호 수록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를 조사한다는 것은 순전한 반유대주의다.”
(벤야민 네타냐후, 2021년 2월 5일)

 

지금까지 나의 가자 체재 경험은 겨우 몇 시간뿐이고, 그것도 20년 넘게 지난 일이다. 길이 46킬로미터, 폭 6~10킬로미터에 달하는 가자 지구에는 당시 19개 불법 유대인 정착촌이 있었고, 6천 여명의 불법 유대인 정착민을 위한 이스라엘인 전용 도로에 의해 여러 토막으로 분단되어 있었다. 희소한 수자원은 우선적으로 정착민들에게 공급되었고, 세 갈래의 간선 도로 가운데 두 갈래는 이스라엘인용, 나머지 하나가 팔레스타인인용이었으며, 이스라엘에서 정착촌에 접근하기는 간단했으나 팔레스타인인은 정착촌을 우회할 것을 강요받았기 때문에 겨우 몇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데도 무수한 검문소에서의 대기를 피할 수 없었다. 점령은 토지 형상에 망측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팔레스타인인에게 일상은 치욕의 연속이었다.

현재 이스라엘군의 집중 공격을 받고 있는 칸유니스 난민촌과 정착촌 사이에는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이 우뚝 솟아 있었다. 팔레스타인 자치구를 침식하면서 증식하고 있던 격리 벽의 하나다. 벽 저편으로는 유대인 정착민 전용 해안, 호텔, 리조트 시설이 넘겨다 보였다. 격절된 두 세계의 황량한 경계 지대에서는 이스라엘 국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이집트 국경의, 마찬가지로 현재 공격 표적이 되고 있는 라파 난민촌에서는, 2개월 전에 경고 없는 공격을 받아 50호 넘는 가옥이 잔해만 남기고 사라졌다. 이집트와 난민촌 사이에 진을 친 이스라엘군에 의한 지근거리 일제 포격의 결과였다.

2007년 하마스에 의한 통치 장악 이후의 가자 지구 현실에 대해 나는 잘 알지 못한다. 사진가, 연구자, NGO 직원으로 일하는 벗들의 뛰어난 작업과 보고를 통해 사태의 추이를 멀리서, 가능한 한 다면적으로 뒤쫓으려는 노력만은 하고 있었다. 가운데서도 후루이 미즈에 씨의 영상 작품 두 편, 『가다: 팔레스티나의 시』(2005)와 『우리는 보았다: 가자 삼니가의 아이들』(2011)로부터 뇌리를 떠나지 않는 충격을 받았다. 현재 진행 중인 참극과 마주할 때도 이들 작품에 등장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팔레스타인인의 삶을 떠올리고, 적어도 15년의 시간을 거슬러 오르며 사태가 여기에 이른 경위를 돌이켜보지 않을 수가 없다.

잔해와 담벼락에 남은 살해된 친족의 혈흔을 카메라 앞에서 담담히 가리켜 보였던, 영상 속 당시 10대 전반이었을 소년들은 이제 20대 후반이다. 이번 작전에 참가한 특공대원 가운데에는 저 소년들과 동세대인, 끝없이 거듭된 공중 폭격, 침공으로 친족과 친구를 빼앗긴 청년들이 적잖이 있었으리라. 태어나 줄곧 가자에서 살아 온 젊은 팔레스타인인의 주체적 조건을 상상하는 노력 없이 우리는 ‘10월 7일’을 이해하는 출발점에 서는 것조차 불가능하리라.

이 작전에는 이슬람 지하드뿐 아니라 팔레스타인 해방 인민 전선, 파타 비주류파 등 세속주의적 조직들도 참가했다.1) 이 사실만으로도 하마스의 강령 문헌이나 이슬람 부흥 사상에 비추어서만 이번 사태를 해석하는 것이 오류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조직 간의 사상적 차이를 넘어, 지금껏 이스라엘의 침략 행위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거대한 위기가 다가왔다는 인식이 공유되어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16년의 봉쇄가 초래한 가혹한 현실을 생각하면 이번과 같은 사태는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것이 사실이었다 해도, 왜 이 시기에 이 작전이 결행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대답은커녕 질문 자체가 여전히 결여되어 있는 것이 기묘하다.

하마스의 아랍어 성명은 이렇게 말한다. “이슬람 성지 알 아크사 사원[예루살렘에 위치한 유대교 성지로, 2021년 5월 이스라엘은 이곳을 습격했다]을 유대교 수콧Sukkot[추수 감사절의 일종] 기간 동안 유대인 정착민들이 점령했다. 이스라엘군이 축제 종료 후 가자에 일제 공격을 시작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알 카삼 부대는 이스라엘 ‘가자 분대’의 괴멸을 주목적으로 하는 군사 작전 계획을 입안했고, 이 작전을 ‘알 아크사 홍수’라고 명명했다.”2)

하마스의 군사 부문인 ‘알 카삼 부대’가 입수한 가자 일제 공격 임박의 정보가 정확했는지, 정확했다면 어째서 이스라엘이 이 시기에 가자에 대한 새로운 집중 공격을 계획했는지는 검증되지 않았다. 이 점을 조명하는 조사 보도를 접한 것은 2023년 11월 21일, 프랑스 공산당 일간지 뤼마니테 지면에서였다. “가자 전쟁의 배후에는 천연 가스, 석유, 파이프라인이 있다”라는 제하의 기사에는 9월 22일 UN 총회에서의 이스라엘 수상 네타냐후의 발언이 인용되었다.

“우리는 자국과 인접 국가들을 분리하는 장벽을 소멸시키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과 이스라엘을 경유해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회랑을 함께 건설하는 것입니다. 이는 커다란 변화, 기념비적 변화이며, 또 하나의 역사적 전환점입니다.” 그가 제시한 ‘새로운 중동’The New Middle East 패널 지도에는 매직펜으로 붉고 굵은 선이 거칠게 그어져 있었다. ‘새로운 회랑’이란 가자 북부에서 지중해로 나가, 키프로스를 횡단해 그리스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물론 팔레스타인 국가는 흔적도 없었다.3)

이 ‘새로운 중동’ 구상 속에서 몇 가지 지정학적 문맥이 교차한다. 하나는 동지중해에서 과거 수십 년간 연달아 해저 천연 가스전이 발견되어, 이스라엘은 자국 앞바다 가스전 채굴을 2013년에 개시해 현재 그 40%를 이집트와 요르단에 수출하고 있다는 것, 그런 한편 가자 남부의 난바다에서도 가스전이 발견되었고, 팔레스타인 자치구 C지구 지하에 석유 매장지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뤼마니테의 다른 기사에 따르면, ‘마린’이라고 명명된 가자 앞바다 가스전은 정치, 외교적 이유로 오랫동안 채굴이 연기되었지만, 2018년 쉘석유가 계획에서 철수한 후 이집트 기업 연합 EGAS와 팔레스타인 투자 기금이 채굴권을 계승했다. 그리고 EU와 미국의 지지를 받아 가스 일부가 가자와 서안 제닌 발전소에 공급되는 것, 나머지는 이집트에서 액화되어 유럽 시장에 수출되는 것을 조건으로 해 2023년 10월부터 채굴이 개시될 예정이었다. 영어 중동 전문 뉴스 사이트인 더 뉴 아랍은 6월 20일, 가자를 통치하는 하마스가 이스라엘, 이집트와 미국의 교섭에 따라서는 가스 개발 수익의 일부를 수취하는 것과 맞바꿔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에 가스전 개발을 인정할 용의가 있다고 표명했음을 전했다.4)

2000년 초두에 발견된 ‘가자 마린’의 매장량은 장래 팔레스타인 국가의 수요를 훨씬 상회하는 약 400억 입방미터로 예상되었다. 이 발견은 팔레스타인인에게 커다란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당시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대통령 야세르 아라파트도 축하 연설을 했다. 그러나 같은 해 가을에 당시 이스라엘 야당이었던 리쿠드 당수 아리엘 샤론의 도발로 시작된 새로운 충돌(‘제2차 인티파다’)로 인해 이 밝은 전망은 증발해 버렸다.

가자 앞바다 가스전의 발견은, 팔레스타인 국가에 배타적 경제 수역을 인정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이스라엘 우파 세력 및 가스 개발 회사에는 당연하게도 불쾌한 뉴스였다. 팔레스타인 국가의 자립적 발전이 가능해질 뿐 아니라 경계역에 존재하는 이스라엘 측 해저 가스전에 대해서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앞으로 해저 자원을 나눠 갖고 나아가서는 공동 개발하는 일조차 요청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5)

동결된 채였을 가스전 개발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재개되었다. 러시아의 천연가스에 에너지 정책을 크게 의존하고 있던 EU 국가들은 대체 공급처를 급히 찾을 필요에 쫓겼다. 미국산 셰일 가스는 EU의 환경 기준에 미달하고 수송비도 높다. 거기서 동지중해 해저 가스를 새로운 파이프라인을 건설해 유럽으로 공급하는 계획이 수립되어, 2022년 9월 당시 이스라엘 수상 야이르 라피드와 EU 집행위원회 위원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사이에서 합의가 오갔다. 여기에 더해 미국, 이집트,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참여해 교섭이 가속되었다. 이스라엘은 국교가 없는 레바논과도 마찬가지로 가스전 귀속을 둘러싼 해상 경계선에 관한 교섭을 행해, 비국가적 행위자인 민병 조직 헤즈볼라까지 관여하는 형태로 잠정적인 획정에 도달했다. 그 방식을 답습해 하마스의 합의를 얻는 공작이 비밀리에 행해진 모양이다. 그러나 작년 말에 성립한 네타냐후 정권은 극우 각료의 반발을 수용해 이 교섭으로부터 이탈을 꾀했고, 다른 한편 하마스의 내부에서도 가스전에 관한 자치 정부와의 거래를 거부하는 군사 부문과의 사이에서 골이 생겼다는 관측이 나왔다.6)

그러나 ‘새로운 중동’의 또 한 가지 더 가까운 결정적 추진력은, 2022년 7월에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제안한 인도와 유럽을 잇는 경제 회랑 구상이다. 이는 중국의 ‘일대일로’에 대항하기 위해 구상된 계획이며, 이스라엘에 1960년대부터 존재한 요르단강과 지중해를 연결하는 대운하 계획의 부활을 포함했다. 트럼프 정권기에 진행된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 간의 화해 공작, 이른바 ‘아브라함 협정’에 응한 것은 중동에서는 아랍에미리트와 바레인 두 국가였으나, 9월 9~10일에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G20 서밋에서 이 틀거리에 사우디와 요르단이 새로 참가하는 형태로 ‘새로운 중동’ 구상이 발표된 것이다.

이 계획이 실현되거든 수에즈 운하의 중요성은 크게 저하하고 대신 이스라엘이 세계 무역의 축이 된다. 미 해군도 강폭이 두 배인 새 운하를 통해 지중해와 인도양을 왕래하는 것을 상정하고 있었다. 뤼마니테 기사는 이 계획에 우크라이나 전쟁 과정에서 미국이 러시아에 너무 가까이 다가간 이집트로부터 정치적, 경제적 역량을 결정적으로 빼앗을 의도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라고 보았다.7)

폭격과 학살이 이어지던 10월 19일, 이스라엘 정부는 지중해 앞바다의 가스전 개발 면허를 영국의 BP, 이탈리아의 ENI를 포함하는 여섯 개 기업에 교부했다. 이스라엘의 전략 목표는 하마스의 괴멸, 가자 주민의 인종 청소뿐만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자원 약탈도 포함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 지금에 와서는 유력한 관점으로 부상하고 있다.8) 애초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근원에는 제2차 세계대전의 유럽-미국 석유 자본이, 중동의 석유 생산 수송 체제를 공산주의로부터 방위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교두보로 확립한다는 전략적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마주한 것은 오히려 19세기형 식민주의 침략 그 자체인, 채굴주의와 절멸주의 결탁의 극치라 말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9월 UN 연설에서 네타냐후는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간의 평화에 대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거부권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10월 7일, 가자의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은 이 도발에 응해 실력으로 ‘거부권’을 행사한 것 아닐까. 왜냐하면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의 화해를 조건으로 하는 ‘새로운 중동’ 구상은, 이날 이후로 전개된 사태에 의해 적어도 당면해서는 좌절된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퍼즐의 불가결한 조각인 요르단의 주민 과반수는 팔레스타인 난민과 그 자손이다. 팔레스타인 자체의 소멸을 의미하는 운하 계획을 위해, 제노사이드의 기세를 늦출 기미가 없는 이스라엘과의 협력에, 요르단 정부가 가까운 장래에 협조하리라고는 예상하기 힘들다.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가 무장 투쟁을 전개하고 있던 시기를 포함해, 팔레스타인인의 조직이 군사 작전으로 이만큼 중요한 ‘전과’를 올린 일은 일찍이 없었다. 그러나 터무니없는 그 대가는 팔레스타인 민중에게 강제로 부과되었다. 이스라엘 공격에 의한 가자의 사망자는 폭격 개시로부터 2개월 반 동안 이미 25,000명을 넘었고 의료 시설은 거의 모조리 파괴되었다. 주민 전체가 기아에 위협당하고 있으며 UN 직원, 기자의 희생도 어마어마하다. 1일 약 180건의 출산 가운데 진통제가 부족한 것은 차라리 나은 편이고 제왕절개는 마취 없이 행해지며 출혈 과다를 막기 위한 자궁 적출도 끊이지 않는다. 신생아와 산모가 무사한 경우에는 즉시 퇴원을 재촉받으며, 갈 곳도, 식량도, 약도 없는 채 폭격이 이루어지고 있는 마을을 헤매지 않을 수 없다. 재생산 정치는 이 ‘전쟁’ 최대의 공방선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9)

네타냐후 정권은 이제 공공연히 전 세계의 언론계, 인권 단체, 그리고 UN에 적의를 드러내고 있다. 이스라엘의 건국 자체가 UN의 팔레스타인 분할 결의에 의해 가능해진 한편, 창설 후 얼마 안 된 UN의 권위를 짓밟으며 실현되었다는 사실을 지금에야말로 상기해야 한다. 스웨덴인 UN 조정관 폴케 베르나도테 암살은 그 경위를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폴케 베르나도테 백작은 1948년 5월 20일에 팔레스타인에 도착해 9월에 유대인 테러리스트에게 암살당할 때까지 머물렀다. ‘굳이’ 국토를 이등분으로 재분할하는 제안을 해, 모든 난민의 무조건 귀환을 요구한 것이다.

그는 이미 1차 휴전 중에 난민의 귀환을 요구했으나 무시당했다. 그리고 UN에 제출한 최종 보고서에서 그 제안을 반복했기 때문에 암살된 것이다. 그러나 UN 총회가 그 유지를 계승해 이스라엘이 추방한 모든 난민의 무조건 귀환을 12월에 권고한 것은 베르나도테의 덕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나라 전체가 하나되어 무시한 다수의 UN 결의 가운데 하나[결의 194호]다. 베르나도테는 2차 대전 중, 스웨덴의 적십자 총재로서 나치로부터 유대인을 구하기 위해 진력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 정부는 UN 조정자로서 그를 지명하는 것에 찬성했다. 불과 몇 년 전에 그가 유대인에게 행했던 일을 팔레스타인인에게 행할지를, 이스라엘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10)

이스라엘 역사가 일란 파페가 거의 60년 후에 기록한 이 사실과 함께, 우리는 동시대의 평론 가운데 몇을, 예컨대 한나 아렌트가 암살 사건 직후에 쓴 글을 다시 읽을 수 있다. 「이성의 좌절: 베르나도테의 사명」에서 아렌트는 주로 두 가지 논점을 강조했다. 첫째로 베르나도테는 첫 보고서에서 사실상 팔레스타인 분할 결의의 재고를 요청하고, “국가 주권이 아닌 연합conferderation만이, 영속적인 협력을 정치적으로 실행하고 보증하는 것만이, 두 민족의 국민적 이익을 지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제안은 ‘난민’, ‘무국적자’를 필연적으로 산출할 수밖에 없는 국가 주권에 대한 아렌트의 비판과 공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둘째로, 베르나도테의 마지막 보고서에서는, 당사자 간의 직접 교섭에서 분쟁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는 이상, “국제적 관리 없는 문자 그대로의 자치는 비참한 결과를 부른다”는 것이 자명하며, “UN의 감시하에서 광범위한 비무장 지대를 설치함으로써 분쟁 당사자를 확실히 분리”할 필요가 있다는 그의 생각이 드러난다.

베르나도테는 “영토적, 정치적, 경제적인 통일성이 필시 비상히 바람직하다”는 것, 또한 “그러한 완전한 통일성을 결여할 경우에는, 모종의 정치적, 경제적인 통합이 아마도 그것을 대체하는 이치에 맞는 선택지”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랍인 공동체와 유대인 공동체 사이의 현상적 적대 관계에 의해, 그러한 해결책을 (…) 실행에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분명히 이해하고 있었다. 최초의 화평안을 제시하고서부터 3개월간, 텔아비브, 암만, 카이로, 다마스쿠스, 그리고 베이루트에서의 교섭을 계속하면서 그가 깨우친 것은, 두 공동체 사이에 있는 진정한 공통분모는, 이성이 아닌 무력만이 양자 사이의 분쟁에 끝맺음을 지을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이라는 사실이었다.

베르나도테의 주요 관심은 평화였다. 신념적 평화주의자인 그는, UN이 자신에게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근동에서의 전쟁을 멈추기를 요구하고 있다고 느꼈다. 만약 아랍인과 유대인이 귀를 기울이는 유일한 논거가 명백히 무력이라 한다면, 전쟁을 막기 위해 국제 사회는 무력을 행사해야만 했다.11)

75년 후, 가자의 참상을 앞에 두고 우리는 이 고찰로부터 어떤 논점을 새로이 이끌어 낼 수 있을까. 이 땅의 항쟁에서 두 주권 국가의 공존도, 두 민족이 주권을 분유하는 단일 국가의 존립도, 아마 ‘해결’이 되지 않을 것이다. UN 적대시는 이스라엘의 건국기 이래의 본질적 속성임을 전제한 다음, UN이 관여할 새로운 회로를 모색하면서, 주권의 논리 자체에 상호적인 제약을 가하는 ‘연방’의 형성이 유일하게 남은 가능성 아닐까. 『지상에서 함께 산다는 것』에서 주디스 버틀러는 아렌트의 저술들과의 끈질긴 대화를 통해, 공생의 가능성에 대해 다양한 각도에서 고찰을 거듭했다. 12월 6일, 파리 시가 중지시킨 강연에서 버틀러가 말하려 한 ‘반유대주의와 그 정치 이용’ 너머의 ‘혁명적 평화’도, 아마도 이 방향에서 구상된 것이 아닐까 한다.

버틀러는 디아스포라 경험을 중시하는 유대인의 ‘숨겨진 전통’을, 팔레스타인인의 디아스포라 경험을 발굴해 낸 에드워드 사이드와 마흐무드 다르위시의 사상과 맞닥뜨려, 무국적자에게 개방된 ‘연방’의 가능성을 모색했다.12) 『만들어진 유대인』의 저자인 이스라엘인 역사가 슐로모 산드도 “팔레스타인인이 없으면 이스라엘은 살아갈 수 없다”라는 제하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태를 마주하고서 오랫동안의 지론이었던 두 국가 해결책을 단념하고 모종의 ‘연방’ 구상으로 전회함을 시사했다. 가자 팔레스타인인의 시나이 반도로의 강제 이주인가, “연방 국가 내지 연방의 역사적 조건을 한 걸음씩 구축하기”인가. 선택은 이 둘 중 하나뿐이다. “역사상 모든 연방 국가는 분쟁으로부터, 폭력에 의해 탄생했음을 상기합시다. 오늘날 연방 구상에 확신을 갖는 것은 어려우며, 상상조차도 어렵지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연방에 의한 평화 공존 외에는 우리에게 선택지는 없습니다”라고 그는 말한다.13)

산드가 언급한 ‘연방’ 형성의 ‘역사적 조건’ 가운데 하나는, 국제법적 ‘제재’를 이스라엘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국제 사법 재판소 내지는 UN 결의에 의해 설립된 특별 법정에서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무장 조직이 각각의 군사 활동 속에서 범한 모든 전쟁 범죄가 평등하게 재판될 필요가 있다. 이 계기를 거치지 않고서는, 이스라엘의 유대인 다수파가 팔레스타인인과 대등하게 공생할 필요에 각성할 가능성이 없다.

또 하나의 ‘역사적 조건’은, 이스라엘이 앞으로도 유대인이 다수파인 국가여야만 한다는 시오니즘의 근본 전제를 폐기하는 것이다. 입식 식민지로부터 태어난 국가가 이 전제를 고집하는 한, 선주민에 대한 인종 청소 및/혹은 인종 격리(아파르트헤이트)는 필연적으로 등장한다.14) 가자에 대한 제노사이드적 공격의 잔학성을 전 세계가 목격함으로써, 국제법상 인정될 여지가 없는 이 체제를, 그에 대한 비판을 모조리 ‘반유대주의’라고 강변하며 언제까지나 무시할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

네타냐후는 재작년, 이스라엘에 전쟁 범죄의 혐의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이미 반유대주의라고 단언한 일이 있다. 어떤 행위가 범죄인지 아닌지, 전쟁 범죄가 참인지 거짓인지는 행위자가 아닌 법정이 결정할 일이다. 10월 7일 이전, 이스라엘에서 몇몇 독직 사건으로 소추되었던 네타냐후가, 자신의 유죄 판결을 면하기 위해 최고 재판소의 권한을 제한하는 사법 개혁을 꾀한 데 대해 몇 개월에 걸친 항의 행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많은 이스라엘인이 놓치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 국내에서 네타냐후가 향수하고자 한 ‘제재받지 않는 자유’가, 유럽-미국의 옹호를 등에 업은 이스라엘이 국제 사회에서 현재 향수하고 있는 ‘자유’와 동질적이고 같은 뿌리를 가진다는 점이다.

‘제노사이드’는 행위자의 의도가 명백히 입증될 것을 적용의 조건으로 하는 법적 개념이다. 처벌받을 가능성을 상상조차 하지 않는 이스라엘 현직 관료들은, 네타냐후를 필두로 해 팔레스타인인을 집단적으로 말살하려는 의도를 너무나도 공공연히 표명해 버렸다. 국제법 전문가 다수는 법정이 재차 설립되거든 ‘제노사이드’ 인정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15)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이처럼 명백한 전쟁 범죄를 재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국제법의 ‘권위’는 결정적으로 땅에 떨어진다는 것이다.

아무리 비대칭적이어도, 테러와 대항 테러는 모두 상대에게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것’을 추구한다. 강자 측의 테러인 ‘진압의 폭력’은 약자를 깨부수고 패배를 인정시켜 힘의 차이를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것’을 욕망한다. 그에 대항해 약자의 대항 테러인 ‘저항의 폭력’은 강자 측을 구성하는 이들도 개인인 이상 폭력 앞에서, 죽음 앞에서는 자신들과 평등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것’을 욕망한다. ‘테러리즘’이라며 지탄받는 것은 후자의 테러다. 이 고통스러운 승인 불가능성의 비변증법을 정지시키기 위해서는 ‘제3자’가 개입해야만 한다. ‘제3자’ 또한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것’을 욕구한다. 강자에게 상위의 법이 있음을, 세계를 적으로 돌리고서 언제까지나 아집을 부릴 수 없음을. 이스라엘 보이콧 운동은 벌판을 불태우는 들불처럼 번지리라.

 

각주

1) 시게노부 후사코重信房子, 「이스라엘(네타냐후 정권)의 제노사이드를 용납하지 말라!」イスラエル(ネタニヤフ政権)によるジェノサイドを許すな!, 救援, 655호, 2023년 11월10일.
2) 후지타 스스무藤田進, 「이스라엘의 가자 폭격, 점령 중지와 팔레스타인인 형무소 수용자의 석방을!」イスラエルのガザ空爆·占領停止と刑務所からのパレスチナ人の釈放を!, 救援, 656호, 2023년 12월 10일.
3) Pierre Barbancey, Hassan Faraj, “Derrière la guerre à Gaza : gaz, pétrole et pipeline”, l’Humanité, le 21 novembre 2023.
4) Sally Ibrahim, “Exclusive: Hamas ‘to allow’ development of Gaza Marine natural gas, amid US-brokered negotiations between PA, Egypt and Israel”, The New Arab, 20 june, 2023.
5) David Ansellem, “Les problématiques des réserves gazières au large d’Israël, de Gaza, de l’Egpte, du Liban et de Chypre”, in Observatoire du monde arabo-musulman et du Sahel, juin 2018.
6) “Derrière la guerre à Gaza: gaz, pétrole et pipeline”.
7) 같은 글.
8) Seyed Hossein Mousavian, “Guerre à Gaza : Israël veut s’emparer d’un gisement gazier palestinien de plusieurs milliards de dollars”, in Middle East Eye(édition française), le 16 novembre 2023.
9) Noémie Merleau-Ponty, “Accoucher à Gaza”, AOC, le 21 décembre 2023. 다른 한편, 이스라엘 측 군사 작전의 내용에는 ‘사후 생식’ 목적의 전사한 병사의 정자 보존이 포함되어 있다.
10) 일란 파페イラン・パペ, 『팔레스타인의 인종 청소: 이스라엘 건국의 폭력』パレスチナの民族浄化: イスラエル建国の暴力, 田浪亜央江・早尾貴紀 옮김, 法政大学出版局, 2017, 238쪽[팔레스타인 비극사: 1948, 이스라엘의 탄생과 종족 청소, 유강은 옮김, 열린책들, 2017]. UN 조정관 암살의 관여자는 사건 직후에 이스라엘 경찰에 체포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전원 사면된다. 직접 실행범인 인호슈아 유헨은 이내 이스라엘 초대 수상인 다비드 벤구리온의 보디가드가 되었고, 주모자 가운데 하나인 이츠하크 샤미르는 훗날 국회 의장을 거쳐 두 차례 수상직을 지낸다.
11) 한나 아렌트, 「理性の蹉跌: ベルナドットの使命」, アイヒマン論争: ユダヤ論集2, J・コーン, R・H・フェルドマン 엮음, 齋藤純一・山田正行・金慧・矢野久美子・大島かおり 옮김, みすず書房, 2013, 244~245쪽[「이성의 좌절: 베르나도테의 임무」, 유대인 문제와 정치적 사유, 홍원표 옮김, 한길사, 2022에 수록]. 이 원고에서 UN 조정관의 이름 표기는 ‘베르나도테’로 통일한다.
12) 주디스 버틀러, 分かれ道: ユダヤ性とシオニズム批判, 大橋洋一・岸まどか訳、青土社, 2019[주디스 버틀러, 지상에서 함께 산다는 것, 양효실 옮김, 시대의창, 2016].
13) Shlomo Sand, “Sans les Palestiniens, Israël ne peut pas vivre”, l’Humanité, le 19 octobre 2023.
14)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아파르트헤이트 시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비교에 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미네 요이치峯陽一, 「아파르트헤이트 경험을 통해 ‘다른 미래’를 보다」アパルトヘイトの経験を通して「違う未来」を見る, 우카이 사토시鵜飼哲, 「역사적 비교와 정치적 비교 사이」歴史的類比と政治的類比のあいだ(미단, ‘팔레스타인 대화를 위한 광장’ミーダーン, 〈パレスチナ・対話のための広場〉 엮음, ‘거울’로서 팔레스타인: 나크바로부터 동시대를 묻다〈鏡〉としてのパレスチナ: ナクバから同時代を問う, 現代企画室, 2010).
15) 예를 들어 가자의 UN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UNRWA 원래 책임자이자 국제 변호사 및 검사인 요한 수피의 12월 7일 인터넷 토론, 「중동 전쟁: 세계를 바꾼 2개월」에서의 발언을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