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유대인이 2천 년이 지난 뒤에 해방과 자유를 추구할 수 있다면, 왜 팔레스타인은 그리하지 못합니까”
“저는 친팔레스타인이 아니라 진실의 편인 겁니다.”

캐나다의 의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트라우마와 심신 의학, 중독 분야의 권위자인 ‘가보 마테’(Gabor Maté)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입니다.

지난 5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예루살렘과 가자지구를 한창 공격 중이던 당시, 가보 마테 박사는 영국 코미디언 러셀 브랜드의 팟캐스트 [Under The Skin]에 출연해 “이스라엘을 비판하면 그 누구라도 반유대주의라 칭하는 것은, 진실의 편에 서고자 하는 선한 의지를 가진 비유대인들을 협박하려는 지독한 시도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목소리를 번역해 보았습니다.

번역: 자아
자막: 경진/수아/뎡야핑
전체 원본 영상: Israel / Palestine – This Needs To Be Heard

스크립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는)저에게는 그 어떤 일보다
마음 속 가장 가깝게 느껴지는 일입니다.
아주 오랫동안 그래왔지요.
저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저는 유아기 때 겨우 살아남은 홀로코스트 생존자이고
조부모님은 아우슈비츠에서 죽임을 당하셨고 친척들 대부분도 그랬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배경은 이렇습니다.
제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에 수치심을 느끼며
전쟁(2차 세계 대전) 후의 헝가리에서 자랐습니다.
유대인이라는 사실만으로 전 여전히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친구 중 한명이 저를 도와준답시고 와서 이렇게 이야기했던 것이 생각나요.

“얘를 괴롭히지마, 얘가 유대인인 건 얘 잘못이 아니야.”
잘못은 잘못이지만 ‘저의’ 잘못은 아니다, 라는 게 친구가 해준 방어였던 거죠.
자라는 내내 그런 식이었습니다.
아우슈비츠에서 돌아가신 저의 조부는 외과의사이자 작가였고
블라디미르 자보틴스키의 친구였습니다.
블라디미르는 훗날 현대 이스라엘의 집권당인 리쿠드당이 된 정당의 창시자이자 유력한 시오니스트 지도자였죠.

제가 자라온 배경은 이러합니다.
캐나다에서 보낸 10대 시절, 저는 시오니스트가 됐습니다.
‘유대인들이 역사적인 고향 땅에서 부활하고 아우슈비츠의 가시 돋힌 철조망을
강력한 군대를 갖춘 유대국가의 국경이 대신하는 꿈’이라니,
저는 해방감을 느꼈어요.
그 꿈을 상상하면 그저 짜릿했어요.
저는 그러한 관점과 견지를 몽땅 흡수했고 그것이 정말 사실이라고 믿었어요.
그리고 나서 저는,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됐지요.
유대인들의 꿈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지역 내 기존 주민들에게 악몽을 드리워야 한다는 사실을요.

시오니스트의 슬로건 중에 이런 게 있습니다.
“땅 없는 사람들을 위한 사람 없는 땅”
그런데 사람 없는 땅이란 게 없었던 겁니다.
그 땅에는 이미 수백년 혹은 그 이상을 살아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정말 흥미로운 사실 하나 알려드릴까요.
이스라엘의 초대 총리 데이비드 벤구리온도 동의를 표한 부분인데요,

그가 말했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누구인가?”

로마 시대에 유대인들은 거의 아무도 팔레스타인을 떠나지 않았고

그 중 일부는 수백년 후 이슬람으로 개종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팔레스타인인들이 결국 누구라는 말이겠습니까.
어떻게보면, 팔레스타인인들은 고대 유대인의 후손들일 수도 있는 겁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우리와 친척관계일 수밖에 없습니다.
기존 주민들을 억압하고 추방하지 않고 유대 국가를 세울 방도는 결코 없습니다.
그게 바로 이들이 1947년에 한 짓이고요.

영국 제국의 보호 아래 1947년에 (팔레스타인에 대한 추방이) 시작됐습니다.
이후 유대계 이스라엘 역사가들이 의심의 여지 없이 기록한 바에 따르면
1948년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추방은
지속적이었고, 만연했고, 잔인했고, 살인적이었고
이 모든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었습니다.

이게 바로 아랍어로 나크바라고 불리는 것이죠.
대재앙 혹은 대참사라고 하지요.
이제 캐나다에서는 홀로코스트는 부정할 수 없는 법이 생겼습니다.
참고로 저는 그런 법에 동조하지 않지만,
어쨌든 이스라엘에서는 나크바를 언급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건국의 시초이자 근간임에도 말이죠.
이 모든 것을 알게 된 후 저는 우리가 아름다운 꿈을 현실화 해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악몽을 투척했다는 것을 알게 됐죠.

그 후, 첫번째 인티파다 때 점령지를 방문했고, 그곳에서 제가 본 것들 때문에 방문한 2주 내내 매일을 울었습니다.
점령의 잔인함, 살인적인 비겁한 괴롭힘,
태우거나 잘려나가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올리브나무,

물을 사용할 권리를 부정 당하는 모습들, 일상 속 모욕감…
이것들은 계속 되었고 지금은 그 때보다도 더 나빠졌지요.

자, 이것이 이야기의 배경입니다.
다른 식으로는 이야기될 수 없습니다.
왜냐면,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지역 주민들을 억압하거나 추방하지 않고서는
배타적인 유대인 국가를 만들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20세기와 21세기에 걸친 최장 기간의 인종 청소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그리고 가자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가자가 어떤 상황인지 보려면 가자에 가봐야만 합니다.
수백 수천 명이 사는 작은 지역입니다.
거기 사는 사람들은 누구냐, 이스라엘 아니 지금은 이스라엘이 된 그 땅에서 추방된 사람들의 직계 자녀 또는 손자입니다.
여기에 이제 천인공노할 지점이 있습니다.
미국에 사는 당신의 시오니스트 친구가 나한테 이 얘기를 좀 해줬으면 좋겠네요.
유대인인, 저는, 내일 텔아비브에 비행기 타고 도착해서
귀환권에 근거해 시민권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벤쿠버에 사는 제 팔레스타인인 친구 한나 카와스는
예루살렘에서 태어났음에도 방문조차 할 수 없습니다.
자, 제가 2000년 후에 돌아갈 권리를 보장받는다면,
사실 2000년이라는 역사도 의문점이 들지만
여기서는 그렇다 치고 이야기 해보겠습니다만,

제가 2000년 후에 돌아갈 수 있다면
한나는 왜 70년 후에 돌아갈 수가 없나요?
그래서, 그렇다면 가자 지구의 이 절망적인 봉쇄 속에서 누가..
잠깐 멈추겠습니다.
제가 너무 길게 말하고 있나요? 미안합니다, 다만
이건 제게 너무 중요한 문제고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어디서 멈춰야 할지 모르겠어요.
(러셀 브랜드:) 괜찮습니다 계속해 주세요.
자 그래서 가자에 갇힌 비참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상 최대의 야외 감옥이라 불리는, 실제로 그러한 아주 끔찍한 곳에요.

믿을 수 없는 빈곤, 50%에 달하는 실업률…

자 이제 하마스 얘기가 나올테죠.
하마스는, 애초에 이스라엘이 상대하고 싶지 않았던
세속주의 팔레스타인 해방 조직에 대한 견제 세력으로써
이스라엘이 직접 독려하고 지원도 했던 이슬람 조직입니다.
그리고 가자의 착잡한 상황을 감안하면
가자 주민들은 극단주의적 리더십을 추구하게 될 겁니다.
너무나 비참하고, 절망적이고, 어떠한 가능성도 모두 박탈했을 때
인간이 하는 선택이 보통 그렇습니다.

팔레스타인인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하마스의 정책을 지지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팔레스타인인 권리 옹호=하마스 지지라는 논리는) 분명 거짓인 것이고요
그런데 가자에 국제사회가 지켜보는 와중에 치러졌던 선거가
하나 있던 건 사실이었습니다.
아랍세계에서 치러진 가장 자유로운 선거로 발표된 것이었는데요,

선거 결과는 하마스의 승리였습니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하마스를 상대로 즉각 군사 쿠데타를 지원했지만
하마스가 이를 제압해 버리죠.
그런 하마스에게 내려진 보복은 가자 지구 봉쇄였습니다.
봉쇄 조치로 가자는 음식이라든지 의료 지원, 충분한 물 등등
제가 끝도없이 말할 수 있는 여러 지원의 수급이 모조리 끊겼습니다.
그리고 이번 (5월의) 분쟁이 일어났죠.
이런 분쟁이 있을 때마다, 이스라엘은 소위 ‘잔디를 깎습니다’.
그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대량 학살하는 걸 ‘잔디깎기’라고 부릅니다.
자 그럼 이제, 가자 사람들이 로켓을 발포해
무고한 이스라엘 민간인을 죽인 것이 사실이냐고요?
네, 사실입니다.

제가 그 행위를 지지하냐고요?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무고한 민간인 죽음을 이야기하자면요,
이스라엘은 1982년 (레바논 전쟁에서) 민간인 2만명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집속탄과 같은 불법 무기를 사용해서요.
그 어떤 말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전쟁이었습니다.
(이러한 예시를) 저는 끝도 없이 말할 수 있습니다.
다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힘과 책임, 탄압의 불균형은 너무나 현저하게 한쪽에 치우쳐져 있기에,
하마스에 대해 여러분이 말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에 곱하기 천을 한다해도 여전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가한 억압과 살인과 강탈에는 맞먹지 못할 겁니다.

이게 제 생각입니다.

자 그럼 혹자는 제가 유대교리를 실천하고 있지 않은 냉담자라 말할텐데요.

그런 분이 있다면 매년 가족이 모여 유월절을 보내는 우리 집을 방문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유대인의 이집트에서의 해방이야기를 나누며 이것이 유대교에 국한된 사건이 아니라, 자유와 해방에 대한 보편적인 상징이라는 것을 함께 논의해봅시다.
만약 우리가 2000년이 지난 뒤에 해방과 자유를 추구할 수 있다면
왜 팔레스타인은 그리하지 못합니까.
시오니즘과 유대교를 혼동하는 것은 커다란 폐해를 끼치는 일이고 그 말에 반박하자면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아주 초기부터 시오니즘에 반대하는 유대인들은 계속 있었어요.
히브리인, 유대인 철학가이자 작가인 하암은 1895년에 말했습니다.
‘우리 유대인이 계속해서 아랍인을 이런 식으로 대하면 대재앙을 맞이할 것이다’
그가 이 말을 한 게 1895년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해온 유대인들이 늘 있었단 말입니다.
그에게 유대교나 유대인다움을 시오니즘이랑 한 데 묶어서 취급하는 것은
명백히 잘못된 일이었고
‘이스라엘에 반기를 드는 유대인들은 유대인이 아니다’라는 말은
중상모략이었으며
이스라엘을 비판하면 그 누구라도 반유대주의라 칭하는 것은, 진실의 편에 서고자 하는 선한 의지를 가진 비유대인들을 협박하려는 지독한 시도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늘상 마지막쯤 나오는 합리화에 대한 건데, 다른 나라엔 요구하지 않는 각종 기준을 이스라엘에만 요구한다는 말은, 그 정반대입니다.
서구 언론을 보면, 홍콩 시위대가 홍콩 경찰에게 돌을 던지면
미국 언론은 그건 영웅적 행동으로 조명합니다.
미얀마에서 탄압적인 군부에 새총을 겨누면 그것도 영웅입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돌을 던지면
그걸 두고는 테러리스트라 부릅니다.
이스라엘은 그 어떤 짓을 해도 그 어느 나라보다 서구 언론의 비난을 피해갑니다.
하나만 더 말할게요.
최근에 제리코에 사는 팔레스타인인 여성과 연락이 닿았습니다.
그녀는 이스라엘 감옥에 수감된 적이 있는 팔레스타인 아이들을 위한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14살, 15살, 16살 되는 아이들이 몇달 몇년씩을
가족이랑 만나지 못하며 수감되곤 하는데요
그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입니다.
그가 뭘 하는 줄 아십니까. 아이들을 데리고 명상을 합니다.
아이들 스트레스 완화를 위해 빙그르르 도는 전통 수피 춤을 춥니다.
그녀가 말하기를, “우리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게 없습니다.
트라우마 ‘이후’라는 게 성립되지 않으니까요.”
“트라우마는 현재진행형입니다.”
부디 당신의 시오니스트 친구가 저처럼
점령당한 팔레스타인에, 가자지구에 가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나서 지금했던 것처럼 계속 말해보라고 하세요.
그에게 인류애라는 것이 한 웅큼이라도 남아있다면,
그는 제가 가 있던 2주 내내 그랬던 것처럼 눈물을 흘릴 겁니다.
알베르트 슈페어가 누군지 아세요?
(러셀 브랜드:) 나치당의 건축가죠
맞습니다.
슈페어는 나치의 군수장관이자 경제부장관이기도 했고
히틀러 최측근으로서 그의 전담 건축가이기도 했습니다.
유죄 선고를 받은 전쟁범죄자였죠.

그는 처형당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후 슈판다우 교도소에서 40년을 보냈습니다.

그는 일련의 심경의 변화를 겪었고, 회고록에 이렇게 썼더군요.

“나는 종종 당신은 무엇을 알고 있었냐는 질문을 받곤 했다.

하지만 내가 뭘 알고 있었느냐는 것은 옳은 질문이 아니었다.”

나치의 대량학살 범죄, 잔인성, 전쟁 중 다양한 잔악행위, 특히 유대인 대량 학살을 시도한 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그는 말합니다. “올바른 질문은 내가 ‘무엇을 알고 있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알고자 했으면 알 수 있었느냐’여야 한다”고,
“왜냐면 내가 짐작하고자 했다면 할 수 있던 충분한 암시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기에.”

이를 테면, 그는 자신이 군수 물자 생산 공장에서,
집단수용소에 있다가 생산공장으로 옮겨져 온 이들에게
‘수용소보다 공장에 있는 게 더 나은지’ 물었을 때
선연했던 그 충격적인 표정을 봤음에도,
이 질문에 왜 그리 놀라냐고 질문하지 않았다고.
또는 그가 독일의 나치 장군에게 ‘동쪽에 한번 가야겠군요’, 하자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르시는 게 좋을 겁니다’, 하는 대답에

슈피어는, 자기는 한번도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고.
그래서, 질문은 ‘그가 무엇을 알고 있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알고자 했으면 알 수 있었느냐’여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독일 나치시대에 살고 있지 않지요.

누구나 유튜브에서 일란 파페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파페는 이스라엘 역사에 박식한 이스라엘인 역사가로 영국에 살고 있지요.
그와 같은 입장을 견지한 채 이스라엘에서 살기가 너무 힘들어졌으니까요.
누구나 유대인 교수 노만 핀켈슈타인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죠.
가자지구에 관한 세계적인 전문가인 그는 대중강연에서 이스라엘 정책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근무 중이던 학교에서 종신 교수직을 박탈당했죠.

혹은 수많은 이스라엘 군인들이 말하는,
이제와 후회하는 만행에 대해 찾아 들을 수 있습니다.
가자지구 상공으로 비행하기를 꺼려하는 이스라엘 조종사 이야기도
들을 수 있어요.
자기들이 저질렀던 잔혹 행위들이 떠오르기 때문이죠.
당신이 찾는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요즘 세상에 문제를 ‘모르는’ 이가 있다면
그건 정보가 부재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당신이 알고 있는 게 무엇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당신이 알고자 했다면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대해 유대인들이 느끼는 온정을 이해합니다.
저도 한때 그랬으니까요.
나치의 무시무시한 집단학살을 겪고 나서
일말의 보호가 간절했던 그 마음, 저도 압니다.
하지만 그 어떤 이유도 우리가 저지르고 있는 일에 대한 변명이 될 순 없고,
그 어떤 이유도 진실을 모르는 것에 대한 변명, 진실을 말하려는 이에게
재갈을 물리기 위한 고의적인 시도들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없어요.
유대인이건 아니건 말입니다.
‘양측 이야기’라는 것은 없습니다.
힘과 통제력 측면을 고려했을 때, 이건 아주 간단한 이야깁니다.
어떤 사람들이 어느 땅에 살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도 그 땅을 원했기에 강탈을 했고,

계속해서 또 강탈을 하고, 그 땅에 살던 사람들을 차별하고
억압하고 침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게 과거에 일어난 일이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러셀 브랜드:) 당신은 정말이지 감명 깊어요

그리고 저는 부디, 선한 의지를 가진 비유대인들이 반유대주의를 구실 삼은 공격에 겁먹지 말고 그런 중상모략에 맞서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친팔레스타인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친팔레스타인이 아니라 진실의 편인 겁니다.
궁극적으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장기적으로 이스라엘인에게
재앙이 될 겁니다. 왜냐면 지속가능하지가 않으니까요.
계속 이렇게 갈 수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저와 뜻을 같이 하는 선한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팔레스타인 편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와 자유와 해방과 진실의 편이냐 아니냐의 문제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