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아불하와 susan abulhawa | 『일렉트로닉 인티파다』, 2024년 3월 12일 게재

* 번역: 수박
* 원문: A story of love and resistance

라얀은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다. 부러지고 화상을 입은 팔다리가 금속 외고정 장치와 이식한 피부, 화상 드레싱으로 기워진 채로.

부상이 심해서 라얀은(라얀은 가명이다) 현재 엎드린 자세에서 움직이지 못 하고, 고개만 간신히 좌우로 돌릴 수 있다. 고개로 반원을 그려 시선을 벽면에서 침대로, 침대 시트를 가로질러 병실을 가득 메운 다른 여성들에게로 돌릴 수 있다. 라얀처럼 이스라엘 군의 폭탄과 총알로 삶과 몸이 영원히 조각난 여성들이다.

그 중 한 여성은 라얀의 침대 옆 방바닥에서 잠을 잔다. 병원 인력이 워낙 없고 모두 힘이 부쳐서 그가 라얀을 직접 간병해야 해서다. 실명을 보호하기 위해 이 글에서는 그를 가다라고 부르겠다.

라얀과 가다가 가족임을 난 한눈에 짐작했다. 둘 다 20대 초반이다. “자매예요.” 두 사람이 내 짐작이 맞았음을 확인해 주었다.

이런 끔찍한 상황에서도 두 사람은 놀랍도록 아름답다. 신변의 안전을 생각해 생김새를 묘사하지는 않겠지만, 그와 별도로 두 자매에게는 마음으로만 감지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다.

서로를 다정히 돌보는 모습에서, 반복해 고통을 제조해 안기는 세상 속에서도 농담을 주고받고 함께 웃는 모습에서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두터운 자매애의 내밀한 원 안으로 나를 맞아들이는 태도에서도, 매일 내 방문을 기다리는 자세에서도, 결국 소중한 사연을 내게 털어놓고 이제 이렇게 서사화하는 것을 허용해 준 데서도 느껴지는 아름다움이다.

두 사람의 사전 동의 없이는 무엇도 게재되지 않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그저 사랑 이야기일 따름이지만, 팔레스타인 사람이 관계된 이상은 사랑과 연애도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기에 인적 사항은 모두 변경하거나 누락했다.

이들의 사랑 이야기는 딱히 이례적이지도 않고, 셰익스피어의 희곡이나 영화의 소재가 되는 극적이고 금지된 사랑에 해당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시시할 정도로 흔한 얘기다. 라얀의 일생일대의 사랑, 그가 더없이 사랑하는 남편 라이스 (가명)가 팔레스타인 저항 운동의 투사라는 점을 제외하면 말이다. 서구 대중 담론에서 라이스처럼 점령군에 맞서 싸우는 이들을 워낙 매도하고 비인간화해 온 까닭에 대다수 사람들은 이들에게 세심한 감성과 사랑을 할 도량이 있다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가다가 라얀의 목과 어깨를 마사지해 줄 동안, 나는 자매가 나눠 쓰는 휴대폰을 라얀의 눈높이에 들고 그가 신호를 보낼 때마다 사진을 좌우로 넘긴다.

라얀과 라이스의 행복한 한때를 담은 사진들이다. 가족 모임과 해변 나들이, 애정 어린 포옹과 행복한 포즈, 활짝 웃고 있는 셀카 사진.

지난 사진을 보니 두 자매가 그간 얼마나 야위었는지 알겠다. 라이스는 이보다도 더 야위었을 테다. 사진 속 라이스는 훤칠하고, 넉넉한 성품이 느껴지는 친절한 눈매를 가졌다.

가슴 저미도록 다정한 얼굴로 라얀을 바라보는 사진들도 있다.

“뒤로 하나 넘겨 보세요.” 라얀이 말한다. “약혼한 날 찍은 사진이에요.” 몇 장 더 넘기자 “이건 신혼 때 찍은 사진이에요.”라고 말한다.

라얀은 그 시절에 대해 다 들려주고 싶어 하고, 나도 반기며 귀를 기울인다. 이야기를 이을 동안 몸 구석구석 햇살 번지듯 생기를 더하는 기억들에 그의 얼굴이 활짝 펴지는 모습을 가만히 보면서.

여느 젊은 커플처럼 서로 깊이 사랑하고 희망과 꿈에 잔뜩 부풀어 있던 두 사람은 가족 소유지에 소박한 집을 지으려 성실히 저축을 했고, 공사를 마치기 위해 은행에서 상당액을 대출했다.

그러곤 타일과 부엌 찬장, 기타 마감재를 고심해 고르며 1년을 보냈다. 하루는 라이스가 길에서 구조한 고양이를 데려왔다.

일주일 후에는 부상을 입은 고양이를 데려왔다. 라얀이 반대하자 그는 말했다. “고통스러워 하다 죽게 둘 수가 없었어.”

라얀은 라이스가 연애 편지를 쓰고, 일하러 가기 전에 집 여기저기 라얀을 위해 쪽지를 남겨 놓는 다정한 남편이라고 말한다. 그간 서로 주고받은 연애 편지와 쪽지 모두 보라색 플라스틱 함에 빠짐없이 보관해 두었다고 한다.

라이스는 가족에 헌신하는 아들이자 형제이기도 하다. 매일 어머니를 찾아가고 형제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건 지지해 준다. 조카들이 그렇게 사랑하는 재미있는 삼촌, 다른 생명을 거두고 보호하는 성품을 타고나서 길에서 만난 떠돌이 동물들 사료와 물을 챙기는 사람, 자비와 정의라는 이슬람의 가치에 뿌리를 둔 사람, 잔혹한 외국인 식민주의자들로부터 나라를 해방하려고 사심 없이 무기를 드는 이 땅의 아들.

이들은 민족 해방에 대한 확고한 결의 속에 우리들 공통의 조국을 위해, 또 알아크사 사원에서 기도를 올리고 조상들이 가꾸어온 야산을 거닐 소박한 자존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의지와 준비가 돼 있는 가족이다.

깊은 신앙심

라얀과 라이스는 임신 시도를 몇 차례 해왔고, 아직 아이가 없는 것에 라얀은 마음이 쓰인다. 하지만 그는 금방 실망감을 털어내며 신의 뜻에 맡긴다.

“알함두릴라.”

라얀뿐 아니라 다른 모두가 되뇌는 이 말. 결국 돌아오는 이 말. 신은 우리 모두를 위한 계획을 갖고 있고, 우리가 감히 그에 의문을 품을 수는 없다고 라얀은 말한다.

워낙 신앙에 깊은 뿌리를 둔 사회의 신앙심 두터운 가족이다.

“지치기는 했어요.” 가끔 이렇게 덧붙이는 이들도 있다. “감당하기엔 좀 버거워요.”

그러곤 다시 되뇐다. “알함두릴라.”

나는 부아가 치밀어 신의 복수를 바란다고 종종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아니다.

“신께서 때를 아시어 책임을 물으실 거예요.” 라얀이 말한다.

라얀과 라이스가 새로 지은 집에 들어간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이스라엘이 가자에 폭탄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제대로 살아 보지도 못했죠.” 라얀이 말한다.

그날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몰랐지만, 라이스는 우선 짐을 꾸려 식구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켜야 함을 알았다. 그런 뒤에야 라이플총을 챙겨 싸우러 갈 수 있었다. 그는 두 고양이를 꼭 챙기겠다는 약속을 라얀에게서 받아 냈다.

“지금 그럴 겨를이 어딨어.” 라얀이 말했지만 라이스는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고양이들도 우리 보호 아래 있는 영혼들이야. 저희끼리 못 살아남아.”

라이스는 라얀의 이마에 불가침한 사랑과 헌신을 확인하는 뜻으로 입을 맞췄다.

입술과 볼, 목에도 입을 맞췄다. 라얀도 자기 안에 이는 그와 같은 기운을 느끼며 그에게 입을 맞췄다.

그렇게 둘은 오래 서로를 꼭 끌어안았다. 신이 허락하는 한 서로를 꼭 다시 찾겠다고 – 이 생에서가 아니면 다음 생에서라도 – 맹세하며. 라얀은 눈물을 흘리며 라이스의 안전을 기도했고, 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해 주길 끝없이 간청했다.

나와 처음 만난 날에도 라얀은 라이스를 위해 매일 기도하고 있었다. 마음 아픈 그 작별로부터 5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사이 라이스가 이스라엘 군에 잡혔다는 소식을 받았지만, 그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나는 라이스가 최소한 고문을 받았을 것이고 아마도 여전히 고문을 당하고 있으리라는 걸 이해했고, 라얀 또한 의심의 여지 없이 이를 알고 있겠지만, 우리는 서로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아는 바를 입에 담음으로써 혹여나 거기 숨을 불어넣을까 싶었다.

부부가 헤어지고 오래지 않아 이스라엘이 그들이 새로 마련한 보금자리를 불과 몇 초만에 돌무더기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고 몇 주 뒤에 라얀은 수습할 삶의 흔적이 남았는지 보러 집터로 찾아갔다.

함께 소유했던 모든 것이 파괴된 가운데, 기적적으로도 두 사람의 연애 편지를 모아둔 보라색 플라스틱 함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었다.

잔해에서 구조되다

라얀과 가다 자매는 일가친척과 함께 안전한 곳을 찾아 몇 번이고 임시 거처를 옮겨야 했다. 매번 고양이 두 마리를 데리고 옮겼다. 그렇게 옮긴 집이 미사일 폭격을 받기까지는. 늦은 시간이라 3층에 위치한 집에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이미 잠들어 있었다.

가다는 잠자러 가기 전에 종종 그래왔듯 어머니 곁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미사일 소리를 듣지 못했다. 실은 폭격의 표적이 된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은 폭탄 소리를 듣지 못한다고 대부분 얘기한다. 소리가 들릴 정도면 폭격이 그만큼 멀리서 벌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가다는 소리 대신 붉은 섬광을 본 동시에 등에 묵직한 뭔가 닿던 느낌을 설명한다. 팔 한쪽이 목과 머리 위로 기묘하게 뒤틀려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소리는 전혀 없었다. 건물에 금이 가며 잔해가 떨어져 내리는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콘크리트 덩이가 몸 위로 떨어지고 다리가 그 무게 아래 튀어 오르더니 비틀리는 모습을 보았다.

먼지가 눈을 맵게 찌르며 시야를 가렸다. 가다는 어머니를 찾아 더듬거리려 했지만, 손이 움직이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엄마.” 불러보았지만 답이 없었다.

가다는 이슬람교인이 죽음을 앞두고 외우는 마지막 신앙 고백인 샤하다를 읊었다. 하지만 아직 살아 있었고, 얼마 뒤에는 남동생 쿠사이(가명)가 “누구 살아 있어?”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라얀은 폭격의 순간을 다르게 경험했다. 라얀은 미사일 소리를 들었다.

보통은 공기를 쉭 가르는 소리가 나고 이어서 쾅 소리가 나기 마련인데, 미사일이 날아드는 소리를 듣고 폭파음을 기다려도 들리지 않아 혼란스러웠다고 한다.

폭파음 대신 귀가 울리는 소리가 머리를 파고들었다. 입 안 가득 잔돌과 흙먼지가 느껴져 애써 침을 뱉어 보려 했다.

몸을 움직여 보자니 불가능했다. 그 순간에야 무너진 건물의 잔해 아래 몸이 파묻힌 걸 깨달았다. 샤하다를 외며 라얀은 죽음을 기다렸다. 그러다 “누구 살아 있어?” 외치는 동생 쿠사이의 목소리를 들었다.

“나 여기 있어! 살았어!” 하고 외쳤지만 정작 자기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공포감에 질려 다시 소리쳐 봤지만 이번에도 자기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살아 있기나 한 건지 아니면 죽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다시 한번 라얀은 샤하다를 외고 동생을 불러 봤다. 귓가의 울림이 잦아들고 무시무시한 내면의 정적만 남았다.

구조자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오는데도 정작 자기 목소리는 들리지 않아서, 라얀은 자기가 말하는 능력을 잃었나 보다고 생각했다. 건물 잔해에 파묻혀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 살려 달라고 외쳐대며, 추위와 어둠 속에 혼자,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러다 기절한 것 같아요.” 라얀은 말했다. “그다음에 보니 구조자들이 잔해에서 내 몸을 끄집어 내고 있었거든요.”

“우리 세상의 전부”

그날 라얀과 가다의 일가친척 중 여러 명이 순교했다. 이스라엘이 라얀의 형제 두 명과 사촌들, 부모님의 형제와 그 배우자 및 자녀 들, 라얀이 보호하겠다고 약속한 두 고양이를 살해했고, 가장 가슴 아프게도 라얀과 가다의 어머니를 살해했다.

두 자매는 어머니가 “우리 세상의 전부였”다고 말한다. 돈독한 가족의 가장이자 중심이었던 어머니의 사진을 내게 보여 주며.

가다는 아직도 꿈결에 어머니를 찾다가 병실을 함께 쓰는 다른 환자들을 깨운다고 한다.

두 번째 폭격에서 무사히 건진 유일한 물건은 역시나 라얀과 라이스의 연애 편지와 쪽지가 든 보라색 함이었다.

“우리 사랑이 진실된 걸 보고 신께서 보존해 주신 거예요.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이어 라얀은 말한다. “라이스가 괜찮은지만 알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가자에 간 지 일주일쯤 됐을 때, 가자의 다른 지역에서 긴 하루를 보내고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가다와 라얀이 나를 병실 구석으로 서둘러 불렀다. 아름다운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띠고, 잔뜩 흥분한 모습으로.

“기쁜 소식이 있어서 온종일 기다렸어요!” 자매의 말에 나도 호기심에 마음이 들뜬다.

라얀이 가까이 오라고 손짓한다. 내가 입 가까이 귀를 대자 그가 속삭여 말한다. “라이스가 살아 있어요. [이름 생략] 감옥에 있대요!”

한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이 살아 있다는 말에 뛸 듯이 기쁘다. 신이 그를 보호해 주기를, 그리고 무사히 라얀 곁으로 돌려 주기를 간청한다. 부부가 재회하기를 기도하면서 나는 이런 때에 너무도 드물고 귀한 안도와 희망의 순간을 함께할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이스라엘 TV 방송에서 최근에, 점령군이 어느 감옥에선가 납치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조직적으로 폭행하고 고문하는 스너프 영상을 공개했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벌레 취급하듯 모욕적인 발언을 해가며 모멸적인 자세를 취하도록 강제한 남성 중에 라이스도 있는 건 아닐까.

하마스가 집단 강간을 저질렀다는 서구의 선전을 볼 때마다 나는 라이스를 떠올린다. 그 주장이 시온주의자들의 거짓말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을 뿐임을 안다. 저들은 이야기를 뒷받침할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않았고, 세계 각지의 정직한 언론인들이 이미 그런 주장의 허점을 명확히 밝혔기에. 그중에서도 유난히 두드러지는 예로 전직 이스라엘 군 간부가 공동 집필한 「뉴욕 타임스」의 몰염치한 특집 기사를 들 수 있겠다. 이 필자는 사회 관계망에 올라온,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를 도살장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글을 포함해 집단 학살을 옹호하는 게시 글에 ‘좋아요’를 누른 사람이다.

그러한 주장이 거짓된 주장임을 나는 가슴 깊숙이 안다. 대부분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그렇듯 우리 또한 하마스의 동력으로 작용하는 가치들이 뭔지 아니까.

하마스를 비판할 이유는 여럿 있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비판한다. 하지만 강간, 더욱이 집단 강간은 이유에 들지 않는다.

하마스를 앞장서서 폄하하는 이들, 심지어 이스라엘조차도 애초 하마스 내부에서 그런 행위를 결코 용인하지 않을 뿐더러,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해도 당장 추방 그리고/또는 죽음으로 처벌하리라는 걸 알고 있다.

우리 모두의 해방을 위해 가족 곁을 떠나 목숨을 걸고 싸우는 라이스와 다른 모든 팔레스타인 투사들에게 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빈다.

나는 라이스와 라얀이 재결합할 날을 계속 상상할 것이다. 두 사람이 가자에 다시 지은 집이 어린아이들의 발소리와 남아 있는 일가친척들의 두런대는 목소리로 가득 찰 날을 그려 본다.


수전 아불하와는 작가이자 활동가로, 올해 2월과 3월 초에 가자를 방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