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식민 포럼에서 발표한 내용입니다

2015년 10월, 예루살렘의 구시가지에서 한 청년이 칼로 불법 정착민을 찌르고, 그의 총을 빼앗아 다른 정착민을 저격하였다. 당시 스무 번째 생일을 앞두고 있던 무한나드 할라비(Muhannad Halabi), 그는 이스라엘 점령군에 의해 순교하였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의 마음 속에 봉기의 도화선으로서 기억된다. 무한나드의 아버지, 샤피크 힐라비는 그가 생전에 표한 의지와 분노를 전한다. 아들이 알 아크사 모스크에서 이스라엘 점령군에 의해 폭행을 당하는 팔레스타인 여성들과 2014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무참히 학살하는 모습들에 영향을 받았다고 말이다. 묵묵히 참을 수만은 없는 현 상황과 자신이 이를 개선하기 위해 아무것도 한 적 없음에 ‘팔레스타인인의 존엄’을 지키고자 자리를 박찬 것이다.

이후 2016년 중반까지, 팔레스타인 사람들, 특히 그중에서도 25세 미만의 청년들이 칼이나 가위, 혹은 총을 들고 이스라엘 정착민과 점령군에게 생을 내던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이를 ‘나이프 인티파다(Knife Intifada)’라고 불렀다. 온 얼굴에 쿠피예를 두른 청년들은 어떠한 팔레스타인 정치세력과도 연계되지 않은 개체이자, 자기 몸을 해방의 디딤돌로 놓으려는 민족의 유기체였다. 이와 같은 약 1,700건의 저항 속에서 이스라엘인 42명, 팔레스타인인 285명이 목숨을 잃었다. 무한나드의 아버지, 샤피크 할라비는 인터뷰에서 그들은 결코 누구의 지도를 받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따른 것이라고 말하였다.―“그들은 저항하는 것 외에는 자신들이 처한 억압에 대한 대안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흐름의 원인이 76년째 현재 진행형인 나크바[대재앙],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식민 지배에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나이프 인티파다 당시 비르자이트 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예루살렘 출신 난민 리나 카탑(Lina Khattab)은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우리에게 저지르는 것들에 항변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삶을 생지옥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행은커녕 이동할 수 없으며, 일을 하거나 학교에 갈 수도 없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계속해서 알 아크사 사원과 다른 무슬림 및 기독교 성지를 공격하고, 또 무너뜨리려 시도 중에 있습니다. 어린아이인 알리 다왑셰(Ali Dawabsheh)와 모하메드 아부 크데이르(Mohammed Abu Khdeir)를 불태워 죽이고, 청년들을 살해한 바는 이스라엘이 영원히 우리의 적임을 백만 번도 넘게 증명한 것입니다. 예,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은 권리를 가집니다. 하지만 그것은 유대인 그 자체로서이지, 우리의 존재를 제거함으로써 이룩한 기반에서 존립할 권리가 아닙니다. 어떻게 그런 계획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요? …… 이것은 인종차별주의 국가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인간 이하로 취급하고 이유 없이 죽이려 들며 총을 쏴요. 그들은 우리의 올리브 과수원을 파괴하고 수천 명의 사람들을 혐의 없이 감옥에 가둡니다. 우리는 비등점에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대통령은 오히려 이러한 대중의 절박한 행위에 거리를 두기 바빴다. 그는 군인들을 보내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의 책가방을 뒤져 칼을 찾아내라 명령하고는 “미치지 않고서야 나는 아들에게 누군가를 찌르는 것이 좋은 행동이라고 말할 수 없다.”라고 말하였다. 이 한심한 망발을 두고 제닌 출신 마리암(Mariam Hamarsheh)의 인터뷰를 인용하고자 한다. “우리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이스라엘은 하루가 멀다고 우리를 멸시하는 적이라는 것을 알지만, 더 굴욕적인 것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이스라엘에 완전히 예속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청년들이 이스라엘에 의한 살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는 이유는 핍박이 무성해져 더는 잃을 것마저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 하기에 세 번째 인티파다를 지지합니다.”

한편, 우리는 ―꼭 이 사례에서만이 아니지만― 대략 1년간의 나이프 인티파다만으로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 중의적인 힘의 불균형을 포착할 수 있다. 이스라엘 점령당국의 무자비한 폭력은 최첨단 무기로 중무장한 그 위세뿐만 아니라, 절박함에서도 그 차이가 명백하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 점령당국만 아니라 그들의 인종청소를 선도하는 정착민의 폭력에는 존엄한 삶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걸고 저항하는, 무장투쟁에의 불가피성과 정당성이 결여돼 있다. 나이프 인티피다 시기에 걸쳐, 이스라엘 점령군은 모든 팔레스타인인이 품에 칼을 가지고 있다고 의심했고, 아동을 비롯하여 무고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살해했다. 그들은 군인들이 느끼는 공포와 압박감을 내세웠지만, 이것이 변명에 불과함을 우리는 앞서 거론한 사상자 비교에서 알아야만 한다. 이스라엘인 42명이 죽고, 팔레스타인인 285명이 순교했다. 이스라엘의 첫 대답은 팔레스타인 인민의 자결권 고려가 아니라, 이스라엘인 최대 60만 명이 총기 면허를 신청할 수 있도록 규정을 대폭 변경하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무장저항이라고 하면 늘 떠오르는 단어가 ‘희생의 세대’이다. 2022년 들어, 나블루스의 아린 알-우쑤즈[사자굴]처럼 그 어떤 정치세력과 관련되지 않으나, 자생적으로 고향을 지키려는 청년 무장투쟁 집단들이 생겨났다. 서안지구의 제닌에서도 카티바 제닌[제닌 여단]이라는 단체가 조직되어 점령군에 맞서 싸우고 있다. 한 대원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지금 우리는 숨만 쉬어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총을 들고 죽을 때까지 저항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놈들이 급습한 집에 우리 가족이 있다면, 저는 당연히 저항할 것입니다. 사실 이런 일을 목격하느니 차라리 죽고 싶어요.” 팔레스타인 인민에게 있어서 폭력은 단순히 생존을 위한 필요악이나 해방을 위한 도구를 넘어, 그들이 비인간의 지위에서 벗어나기 위한, 주권자이자 정치적 주체로서 거듭나기 위한 수단이다.

민족의 해방에 ‘마법’과도 같은 일은 일어날 수 없다. 아울러 팔레스타인인의 폭력은 맹목적인 증오나 극단주의에서 비롯한 잔혹 행위가 결단코 아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희는 무엇보다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무장투쟁이 지니는 역사적 의의와 그 절규에 귀 기울여야 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무장투쟁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바, 즉 한 민족으로서, 한 정치적 주체로서의 자기 해방과 주권 회복의 열망을 말이다. 점령은 모든 면에서 매일 피지배 민중을 무겁게 짓누르며,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조차 감히 상상할 수 없도록 만든다. 바로 그렇기에 무장투쟁은 식민 지배의 폭력에 맞서 자신들도 맞서 싸울 수 있는 주체임을 선언하는 장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정치적인 각성이자 쟁취이다. 그동안 비주권자이자 조치의 대상일 뿐이었던 식민지 대중은 조치를 결단하는 주권자가 된다. 폭력의 대상은 주체로 거듭난다. 동시에 폭력의 표출을 통해서만 자신의 폭력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무장투쟁의 이중적인 무게를 자각하게 된다.

그리하여 탈식민은 단순히 제국주의자들을 타도하는 것을 넘어, 그 타도의 과정에서 피식민 민중이 인간성을 회복하고 새 사회의 정치적 주체로서 거듭나는 과정이다. 우리는 그들의 죽음을 무릅쓴 투쟁을 결코 폄훼하거나 야만으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들의 투쟁이 팔레스타인 인민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역사와 운명에 대한 주권을 되찾게 할 수 있는 길임을 인정하고, 그들과 굳건히 연대해야 한다. 물론 이는 지난하고 고통스러웠으며 그러할 것이다. 점령지로부터 자결권을 되찾기란 본래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행군이다. 깃발을 들고 “Free Palestine”을 부르짖는 것부터 펜을 들든, 무기를 선택하든, 혹은 비폭력 운동으로서 BDS를 개진하는 것마저 현지에서는 그 무엇 하나 목숨을 걸지 않는 투쟁은 없다. 동시에 우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치르는 희생이 헛되지 않음을 함께 믿고, 이를 입증하고자 꾸준히 저마다의 자리에서 연대의 망을 넓혀가야 한다.

뉴스의 한 지면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시체로서 나타날 때는 동정을 표하나, 그들이 폭압에 맞서는 전사로 나타나는 순간, 다급하게 “폭력은 나빠!”라고 나무라는 것이 늘 의아했다. 그러한 목소리들은 당장 자신의 삶을 파괴하는 것들로부터 내 삶, 그 기반이 되는 자유를 되찾으려는 시도를 감히 멈추라 부르짖었다. 이에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0분을 빌려, 객체로 전락해 있던 이들이 삶의 주인으로 거듭나는, 간절히 뗀 걸음으로서의 무장투쟁을 이야기해 보았다.

발표자료 다운로드: 무장투쟁의 무게.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