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오승은

[원문 편집자 주] 2024년 1월 21일 영국 런던에서 이슬람인권위원회(IHRC) 등이 주최한 집단학살 추모의 날(Genocide Memorial Day) 행사 연설에서 일란 파페(Ilan Pappé) 교수는 우리가 지금 목도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인 집단학살이, 그 잔혹성 만큼이나, 소위 유대국가라는 것의 종말을 알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 이후의 새로운 세계를 상상할 준비를 해야 한다.

[역주]

  • 이하 연설 내용의 번역은 이슬람인권위원회(IHRC)가 발행하는 계간지 6권1호에 게재된 일란 파페의 연설문을 기본으로 하되, 번역자가 연설 동영상을 참고해 현장 발언 내용으로 원문을 대체하거나 보충한 부분이 포함돼 있다.
  • 이슬람인권위원회는 UN 경제사회이사회의 특별협의지위가 부여된 영국 런던 기반의 비정부기구다.
  • 일란 파페는 1954년 하이파 출생의 이스라엘 유대인 학자로, 시온주의와 이스라엘 국가를 비판하는 대표 지성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스라엘 하이파대학교 교수를 거쳐 현재 영국 엑시터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역사 및 정치 문제에 관한 연구와 저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의 주요 저서 <팔레스타인 비극사(원제: The Ethninc Cleansing of Palestine)>, <팔레스타인 현대사(원제: A History of modern Palestine)>는 한국에도 번역·출간되었다.

시온주의가 정착민 식민주의라는 것은 새로운 발상이 아닙니다. 이미 1960년대에 [레바논] 베이루트의 PLO연구센터*에 근무하던 팔레스타인 학자들은 당시 팔레스타인에서 자신들이 직면하고 있던 사태가 고전적인 식민지 프로젝트와 다르다는 걸 깨닫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을 영국 식민지나 아메리카 식민지의 틀로 보지 않고,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 일어나는 또 다른 현상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렇게 그들이 정의하게 된 게 정착민 식민주의입니다.
(*PLO연구센터: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당시 근거지던 레바논 베이루트에 1965년 설립한 연구 및 교육기관으로 ‘팔레스타인연구센터’로도 불린다. 초대 소장인 파예즈 세이아이Fayez Sayigh는 정착민 식민주의 연구의 선구자로 잘 알려져 있다.)

흥미로운 점은 시온주의를 설명하던 이 정착민 식민주의 개념이 이후 20~30년간 학술 담론과 정치 담론에서 사라졌다는 겁니다. 이 개념이 되돌아온 것은 세계의 다른 지역들, 예컨대 남아프리카, 호주, 북미의 학자들이 “맞아, 시온주의는 유럽인들이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를 창건하면서 벌인 [식민주의] 운동과 유사한 현상이야”라고 의견을 모으면서부터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또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그 전망에 대해서도 아이디어를 제공해줍니다.

1990년대에 동의를 얻은 이 [시온주의가 정착민 식민주의라는] 특별한 아이디어는 북미와 호주 등에서 유럽 정착민들이 벌인 행동과 19세기 후반 팔레스타인에 온 유대인 정착민들이 벌인 행동을 아주 분명하게 연결합니다. 이러한 연결은 팔레스타인을 식민화한 유대인 정착민들의 의도와 그에 맞선 팔레스타인 현지 저항의 성격을 더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줄 뿐 아니라,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정착민 식민주의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측면을 이루는 것이 바로 제거 정책입니다. 그 바탕이 되는 발상은 유럽 외부에 성공적으로 정착민 식민지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서는 그곳의 원주민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토착민들의 저항은 단순히 해방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제거에 맞선 투쟁이 됩니다. 이러한 의미는 1948년 이후 하마스와 여타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의 작전들을 고찰할 때 중요한 부분입니다.

정착민들은 19세기 후반 팔레스타인에 간 유대인의 일부 사례나 북미, 중미, 호주로 건너간 유럽인 사례처럼 박해의 희생자나 난민인 경우가 더러 있었습니다. 물론 난민이라고 해서 모두가 유럽 외부의 식민지 건설을 꿈꾼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유럽에서 축출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을 달가워하지 않는 유럽을 대신한 다른 곳에 새로운 유럽을 창조하고 싶어했습니다. 또 대부분의 경우 이미 다른 누군가, 토착민족이 살고 있는 곳을 정착지로 택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른 누군가의 땅을 식민화하는 데 종교적이고 문화적인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지도자와 이념가들이 정착민들 사이에 가장 중요한 핵심 집단이 되었습니다. 덧붙여 식민화를 시작하고 유지하는 데는 제국에 의존하는 것도 필요했습니다. 이러한 필요성은 정착민들이 자신들을 돕던 제국에 반기를 들고 독립을 요구하거나 실제 쟁취한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실제로 많은 경우 정착민들은 [독립 이후] 제국과의 동맹 관계를 획득하고 나아가 갱신했습니다. 영국-시온주의자 간 관계가 영국-이스라엘 동맹으로 전환된 것이 좋은 예입니다.

내가 갖고 싶은 땅에 누군가가 살고 있다면 힘으로 제거하면 된다는 [정착민 식민주의의] 발상은 16, 17, 18세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둘 때,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지만, 좀더 이해하기 쉬워집니다. 그 발상이 당대 제국주의, 식민주의, 그리고 이것들이 합쳐진 비서구인과 비유럽인에 대한 비인간화와 아주 잘 어우러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어떤 집단을 비인간화하면 제거하는 게 더 쉬워지는 법입니다. 정착민 식민주의 운동으로서 시온주의의 매우 독특한 점은 토착민족을 몰아내고 원주민을 제거하는 [제국주의적] 권리에 대해 전 세계인이 반성하기 시작한 시점에 국제무대에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시온주의 프로젝트와 이스라엘 국가가 정착민 식민주의 운동의 진정한 목표, 즉 원주민 제거라는 목표를 은폐하는 데 왜 그렇게 많은 노력과 에너지를 쏟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자에서 지금 이스라엘은 우리 바로 눈앞에서 원주민들을 제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팔레스타인인들을 제거하려는 게 아니다, 집단학살 하려는 게 아니다’라며 변명하던 지난 75년간의 시도를 왜 이제 와 그만두려는 걸까요? 그 답을 이해하는 것이 제가 특히 강조하려는 부분입니다.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팔레스타인에서 시온주의의 성격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정착민 식민주의 초기 단계에 시온주의 지도자들은 마치 동그라미로 사각형을 만들려한다는 비유가 딱 맞게, 원주민을 제거하는 동시에 민주주의를 건설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 제거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시온주의 지도자들은 이스라엘이 [서방국가들의] 문명국가 공동체에 속하기를 강렬히 원했고, 특히 홀로코스트를 겪은 후였기 때문에 문명국 연합이 제거 정책을 이유로 이스라엘을 배척하지는 않으리라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원주민을 계속 제거하면서도 집단학살자라는 비난을 피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그러자 이스라엘은 ‘보복’과 ‘대응’이라는 아이디어를 만들어냈습니다. 식민화 초기부터 유대인 정착민들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자행한 가장 끔찍한 행동들은 자신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이 행사한 폭력에 보복하고 대응하는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개시됐습니다. 그러나 이내 더욱 실질적인 제거 조치로 나아가고 싶어지자 시온주의 지도자들은 보복이라는 거짓 구실을 폐기하고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정당화 작업 자체를 중단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1948년 인종청소가 전개된 방식과 현재 가자에서 이스라엘 군사작전이 전개되는 방식 간에는 연관성이 있습니다. 1948년에 이스라엘은 4월 9일의 악명 높은 데이르 야신 마을 학살을 포함해 자신들이 벌인 모든 학살을 팔레스타인인들이 저지른 행동에 대한 반응이라고 정당화했습니다. 그 행동이란 버스에 돌을 던지거나 유대인 정착촌을 공격한 일 정도였겠지만, 이스라엘 국내에서든 대외적으로든 자신들의 조치가 느닷없이 벌어진 일이 아닌, 즉 자기방어인 것처럼 보여야 했던 겁니다. 이것이 이스라엘군이 ‘이스라엘방위군’으로 불리는 이유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착민 식민주의 프로젝트가 항상 보복 명분에만 의존할 수는 없습니다.

시온주의 부대는 나크바 와중인 1948년 2월 인종청소를 시작했고, 이후 전개한 모든 무력작전의 구실은 팔레스타인인들이 1947년 11월에 나온 UN의 [팔레스타인] 분할안에 반대하고 있어서 이에 보복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겨우 한 달만인 1948년 3월 10일, 시온주의 지도부는 보복을 운운하기를 멈추고 팔레스타인 인종청소를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채택했습니다. 인종청소 계획은 정당화를 위한 어떤 내용도 없이, 현장에서 가능한한 많은 팔레스타인인을 축출하기 위한 내용만을 담고 있습니다. 1948년 3월부터 그해 말까지 팔레스타인 인구 절반에 대한 추방, 마을 절반에 대한 파괴, 거의 모든 시내의 탈아랍화라는 결과를 낳은 팔레스타인 인종청소는 이처럼 체계적이고 의도적인 인종청소 기본계획에 의해 수행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1967년 6월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점령한 이스라엘은 현실을 근본적으로 바꾸거나 전면적인 인종청소 작전을 펼치고 싶을 때마다 정당화 작업을 건너뛰게 됐습니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도 비슷한 양상입니다.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은 최초엔 [하마스 등 팔레스타인 저항세력이 10월 7일 개시한] 알아크사 홍수 작전에 대한 보복으로 이야기됐으나, 이제는 가자를 이스라엘의 직접적인 통치 하로 되돌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실질적으로는 집단학살 작전을 통해 가자 주민을 인종청소 하고 있는 ‘전쟁의 검’이라는 이름의 전쟁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드는 큰 의문은 서양의 정치인들, 언론인들, 학자들이 왜 1948년에 빠졌던 것과 똑같은 함정에 빠졌냐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지금 가자에서 자위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걸 여전히 믿는 걸까요? 10월 7일의 행동에 이스라엘이 대응하고 있다고 보는 걸까요?

아니면 함정에 빠진 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들도 이스라엘이 지금 가자에서 10월 7일의 사태를 그저 구실로 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겁니다.

이 구실라는 것이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합니다. 팔레스타인을 공격할 때마다 이스라엘이 제시한 구실은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국제사회의 유의미한 반발을 두려워하지 않고 범죄 정책을 밀고나갈 수 있게 해주는 면책 방패를 존속시켰습니다. 그 구실은 이스라엘이 민주주의와 서방세계의 일원이라는 이미지를 강화했고, 따라서 어떠한 비난과 제재도 가뿐히 넘어설 수 있었습니다. 자기방어와 보복에 대한 이 모든 담론은 이스라엘이 북반구 정부들로부터 누리는 면책 방패에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1948년에 그랬듯 이번에도 이스라엘은 군사작전이 장기화되자 구실 내세우기를 생략하기 시작했고, 결국 그들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들조차 이제는 이스라엘의 정책을 지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 중입니다.

가자에서의 대규모 파괴, 대량 살상, 집단학살 등은 이스라엘인 스스로도 자신들이 벌이고 있는 이 일들이 진짜 자기방어나 대응 차원이라는 것을 납득하기 어려워지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앞으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가자 집단학살에 대한 이스라엘 측의 설명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질 겁니다.

분명하게도, 사람들이 중요시하는 것은 구실이 아니라 맥락입니다. 역사적으로나 이념적인 맥락에서 매우 분명한 것은 10월 7일의 사태가 시온주의 운동이 1948년에 완수하지 못한 일을 완수하기 위한 구실로 쓰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1948년 당시 시온주의의 정착민 식민주의 운동은 제가 저의 책 <팔레스타인 비극사(원제: The Ethnic Cleansing of Palestine팔레스타인 인종청소)>에서 상술한 일련의 특정한 역사적 상황을 이용해 팔레스타인 인구의 절반을 추방했습니다. 팔레스타인 마을의 절반을 파괴했고 촌락 대부분을 괴멸했습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인의 절반은 여전히 팔레스타인 땅에 남았습니다. 팔레스타인 바깥에서 난민이 된 팔레스타인인들은 팔레스타인인으로서의 저항을 이어갔습니다. 따라서 원주민 제거라는 정착민 식민주의의 이상은 실현되지 않았고, 그후 1948년부터 지금까지 점증적으로 이스라엘은 원주민 제거에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원주민들을 시종일관 제거하려는 계획은 어떤 장소를 점유하거나 사람들을 학살 또는 추방하는 식의 군사작전만으로 구성되지 않습니다. 원주민 제거에는 온갖 종류의 이념적이고 철학적인 인프라구조가 뒷받침돼야 합니다. 그 사회가 팔레스타인인들을 비인간화하기를 절대로 멈추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인간은 자신과 같은 인간으로 여기는 누군가를 대량으로, 집단으로 학살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비인간화는 이스라엘의 교육 시스템과 군대 사회화 시스템에 통합되었고, 언론과 정치 메시지에 통합되어 자국민들에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원주민 제거가 완수되려면 이러한 작동이 항상 유지되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원주민 제거를 완수하려는 특히나 잔혹하고 새로운 시도를 목도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절망적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지금 사태에서 드러난 긍정적인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자에 대한 이번의 비인간적인 파괴가 시온주의의 정착민 식민주의 프로젝트의 실패를 폭로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터무니없게 들릴 수 있는 게, 지금 저는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이라는 소규모 저항운동과, 오로지 팔레스타인 원주민 파괴만을 정조준하는 군사 기구와 이념 기반을 갖춘 강력한 국가 사이의 대결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겠죠.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은 배후에 힘 센 동맹이 없지만, 그 상대편 국가는 미국에서부터 다국적기업들, 군산보안업체들, 주류 언론 및 학계에 이르기까지 강력한 동맹을 누리고 있습니다. 시온주의 초창기에 시작돼 지금에 이른 원주민 제거 정책이 국제적으로 면책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 우리가 절망적이고 우울하게만 들리는 상황을 이야기 중인 건 맞습니다. 이스라엘의 공격은 최악의 장에 들어선 것처럼 보일 것인데, 현재 이스라엘은 전례 없는 엄청난 집중 공격을 통해 단기간에 수천, 수만 명을 학살하는 새로운 수준으로 제거 정책의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엄두도 내지 못한 수준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긍정적인 면, 어떤 희망의 순간을 찾을 수 있을까요? 가장 먼저, 누군가의 제거를 정당화하기 위해 그들을 비인간화하기를 지속해야만 하는 상태의 정치체, 그런 국가는 더 먼 미래로 볼 때 매우 취약한 기반 위에 서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구조적 약점은 10월 7일 이전에도 확인되고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인 제거 정책을 빼놓는다면 과연 이스라엘에서 스스로를 유대 민족으로 규정하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줄 끈이 있을까요? 팔레스타인인들과 싸우고 그들을 제거할 필요성을 제외한다면 텔아비브와 예루살렘의 거리에서 2023년 10월 6일까지도 실제 교전을 벌이고 있던 전쟁 상태의 유대인 진영 두 곳만이 현실에 남게 됩니다. 대규모 시위의 한 쪽인 자칭 세속 유대인들은 대부분 유럽계로, 점령과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적 통치 체제(아파르트헤이트)를 유지하면서도 민주적인 다원주의 국가를 창건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이들이 대치하는 상대는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내 유대인 정착촌에서 발달한 메시아적인 새로운 유형의 시온주의로, 제가 언젠가 언급했듯 그 추종자들은 서안지구에 어느날 갑자기 ‘유대Judea 국가’라는 것을 세웠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민주주의를 아예 고려하지 않고도 시온주의 신정국가를 창건할 수 있으며 바로 그것이 미래 유대인Jewish 국가의 유일한 비전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 두 비전 사이에는 한 가지를 제외하고 공통점이 없습니다. 그 공통점이란 두 진영 모두 팔레스타인인들을 전혀 신경쓰지 않으며, 두 진영 모두 팔레스타인인 제거 정책이 지속되어야만 이스라엘이 생존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믿음은 어불성설입니다. 내부에서부터 붕괴와 파열이 일어날 것입니다. 21세기는 구성원들의 공통된 소속감이 제거-집단학살 프로젝트에 관여되는 식으로는 어떤 국가와 사회를 통합하고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분명 효과가 있을 것이지만 모두에게 그럴 수는 없습니다.

10월 7일 이전에도 이중국적, 직업, 재정 능력 등을 갖춰서 다른 나라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는 이스라엘인들이 자신의 돈과 일신을 이스라엘 국가 바깥으로 옮기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한다는 징후가 보이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실행될 경우 남는 것은 경제가 취약한 사회, 그리고 메시아적 시온주의와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인종주의 및 제거 정책 간의 융합 노선이 주도하는 사회가 됩니다.

네. 힘의 균형이 처음에는 제거 당하는 쪽[팔레스타인]이 아닌 제거하는 쪽[이스라엘]으로 기울겠지만, 힘의 균형이란 지역적이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힘의 균형은 권역적이기도, 국제적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제거 정책은, 끔찍하게도 지금 현실로 나타나고 있듯, 그 강도가 심해질수록 점차 ‘대응’이나 ‘보복’이라는 구실로 은폐될 수 없게 되고 잔혹한 집단학살 정책으로 비춰지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현재 누리는 면책특권이 미래에도 지속될 가능성은 사그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순간은 물론 매우 암울합니다. 팔레스타인인 제거 시도가 전례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암울한 순간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동원하는 담론, 제거 정책의 강도와 목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역사에 지금 같은 시기는 한번도 없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시온주의의 잔혹함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습니다. 그렇게 악랄하고 끔찍했던, 상상하기 힘든 재앙인 1948년 나크바조차도 우리가 지금 목도하고 있는 광경, 그리고 앞으로 몇 달 안에 보게 될 광경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는 제 생각에 2년 정도 될 기간 중 첫 3개월을 지나고 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우리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입힐 수 있는 최악의 참상을 보게 될 겁니다.

그러나 이 어두운 순간에도 우리는 붕괴 중인 정착민 식민주의 프로젝트들이 종말 직전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매번 최악의 수단을 택해왔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남아프리카와 남베트남에서도 그랬습니다. 이제 제가 하려는 말은 희망사항이나 정치 활동가로서의 발언이 아닙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저의 확신을 갖고 하는 말입니다. 냉철한 전문가적 검토를 바탕으로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지금 우리는 시온주의 프로젝트의 종말을 목격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 역사적 프로젝트는 끝에 다다랐고 그 끝은 폭력적입니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대개 폭력적으로 붕괴되기 때문에 프로젝트 희생자들에게 그 끝은 매우 위험한 순간입니다. 희생자는 항상 그랬듯 팔레스타인인들이고, 더불어 유대인들이기도 합니다. 유대인도 시온주의의 희생자기 때문입니다. 시온주의의 희생자들은 붕괴의 마지막 잔혹함 때문에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붕괴 과정은 희망의 순간만으로 채워지는 게 아니라 어둠 뒤에 터져나올 새벽이고, 터널 끝에 나타나는 빛이기도 합니다.

한편 이러한 식의 붕괴는 공백 상태를 만들어냅니다. 공백은 갑자기 생겨나는데, 균열들에 천천히 잠식되던 벽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과 같습니다. 이 붕괴에 대비해야 합니다. 하나의 국가가 사라지거나 정착민 식민지 프로젝트가 해체되는 것에 대비해야 합니다. 아랍세계에서 공백의 혼돈이 다른 건설적이고 대안적인 프로젝트로 메워지지 않았던 것을 우리는 이미 보았습니다. 이러한 경우 혼돈은 계속됩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시온주의 국가의 대안을 고심할 때 이 붕괴하는 국가를 대체할 모델을 유럽이나 서양에서 찾아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마슈라크(지중해 동부)와 아랍세계 전반에서 가깝거나 먼 과거에 형성된 지역 사례나 유산에 훨씬 좋은 모델들이 있습니다. 장기 오스만 시대에서 우리가 과거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미래를 내다보는 데 도움이 될 그런 모델과 유산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모델들은 집단 정체성과 개인의 권리를 함께 존중하는 매우 다른 유형의 사회를 건설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고, 그 사회는 아랍세계와 아프리카 등 세계의 많은 지역이 과거 탈식민화 과정에서 보인 실수들을 교훈 삼아 첫 단추부터 새로운 종류의 모델로 구축될 것입니다. 아랍세계 전체에 거대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정치체가 탄생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