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청계천 물길이 47년만에 다시 열렸습니다. 주말동안 130만명의 시민들의 발걸음을 유혹했던 청계천에는 평일인 4일에도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일부러 배낭을 메고 멀리서 찾아온 분들을 비롯해, 점심을 먹고 바람을 쐬러 나온 직장인들까지 인산인해는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아직 여러 가지로 미흡하고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는 청계천이지만 콘크리트에 덮혀있던 도심에 물길이 흐르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입니다. 이명박 시장의 개인적 야심이 어떻든 간에 청계천이 복원된 것은 기쁜 일입니다. 더구나 화요캠페인을 진행하는 내내 청계천 공사로 인한 소음과 흙먼지에 시달렸기에 청계천 공사가 끝나고 물길이 다시 열린 것이 더더욱 반갑기만 합니다.
청계천을 끼고 있는 이스라엘 대사관 앞은 시민들의 왕래가 많은 곳이지만 특별히 볼거리가 없어 지나가기에 바쁜지라 팔레스타인 문제를 얘기하는데 그다지 좋은 상황도 아니었고, 유인물 한 장 나눠주기도 부담스러운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청계천 복원으로 시민들이 북적대고 발길을 재촉하기보다 커피 한 잔의 여유를 갖는 시민들이 많아졌다는 것은 여러모로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청계천이 복원된 후 처음으로 진행한 제71차 화요캠페인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나가는 시민들의 보행권을 침해하지 않으려고 현수막과 선전물을 최대한 인도 구석에 붙여놓았지만 그래도 불편했는지 핀잔을 하는 시민들이 다수 있었습니다. 또 어떤 시민은 ‘한심하다. 한심해’라며 팔레스타인 평화를 위한 캠페인 자체를 비아냥거리기도 했습니다. 물론 캠페인에는 전혀 관심조차 두지 않고 오로지 청계천에 흐르는 물에만 관심을 보이던 시민들이 다수였던 건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머릿속에 팔레스타인이 생각났습니다. 우리는 끊었던 물도 다시 잇고, 흐를 물이 부족하면 돈을 쏟아 부어 멀리서 끌어다 다시 흐르게도 만드는 ‘사치’를 하고 있는 반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그야말로 ‘마실 물’조차 없어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바로 얼마 전까지 식수원이 가까이 있었던 팔레스타인 마을이 이스라엘의 고립장벽이 가로막으면서 식수원과 끊어지기 때문입니다. 직선거리로는 장벽 너머 불과 몇십미터에 지나지 않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사막의 신기루인 셈이지요. 판자촌이 서울 시내 곳곳에 있던 개발독재 시절에 하루 한 번씩 물배급을 받았던 것처럼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이스라엘의 물배급을 받고 있지만 고작 일주일에 한 번 정도일 뿐입니다. 심지어 어떤 곳에서는 빗물을 받아 저장해 식수로 대신한다고 합니다. 바로 옆에 있는 이스라엘 마을은 풀장에서 아이들이 헤엄치고, 화단에 물을 주고, 세차를 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청계천이 다시 열렸고, 좀처럼 물을 볼 수 없는 서울에서 물을 만날 수 있다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 자체를 뭐라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시원스럽게 흘러내리는 ‘물’을 보면서 ‘물 때문에’ 고통받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통도 한번쯤 생각해 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그 원인으로는 이스라엘의 고립장벽이라는 반인도적 범죄가 있다는 점도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그래서 청계천을 찾을 때면 거기에 흐르는 물만 볼 것이 아니라 복원된 청계천이 시작되는 곳에 있는 청계11(청계 일레븐)빌딩 18층에 있는 이스라엘 대사관을 향해 손가락질이라도 한 번씩 했으면 합니다. 비록 소리쳐 외치지는 못하더라도 마음 속으로 ‘No Wall, Yes Water’(벽 대신 물)라고, ‘팔레스타인에도 물을’이라고 외쳐보았으면 합니다.
:: 출처 : 인권연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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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댓글
주걱
2005-10-07 22:06:23
사람에 치여서 가에 바짝 붙어서 하시는 모습이 영 불편해 보입니다
여하튼 많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도 고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