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는 한 중학교에 강연을 하러 갔습니다. 이번 주제는 이라크나 팔레스타인 뭐 그런 것이 아니라 ‘가슴 뛰는 삶을 살자’라는 제목으로 꿈에 대해서, 어떻게 살지에 대해서 얘기 하는 거였습니다. 제가 평소에 좋아하는 주제이기는 하지만 저도 이런 주제의 강연은 잘 안 해 보던 거라 어떨까 싶었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시간은 2, 3, 4교시 각 45분씩. 그래서 세 꼭지로 나눠서 얘기를 준비 했습니다. ‘1부 여행 - 다른 세계와의 만남’, ‘2부 내 삶의 길 - 다른 이를 보며 나를 찾다’, ‘3부 꿈 - 인간은 꿈의 세계에서 내려온다’ 이런 식으로요.
처음 교실에 들어가서 인사를 하고 간단한 얘기를 나눠 봤습니다. 어디든 그렇지만 첫 5분 동안 얘기를 해 보면 그날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대강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그날 분위기를 살피는 거죠.
그리고 첫 시간의 분위기는 예상했던 대로 무난하면서도, 친구들이 이런 저런 얘기에 조금 약하게 반응했습니다. 그리고 이 때 무난하다는 것은 특별히 집중하지도 않고, 특별히 쌩까지도 않는다는 거지요. ^^
아무튼 첫 시간은 주로 제가 인도 여행 하고 온 것을 말씀 드렸습니다. 그리고 쉬는 시간. 담당 선생님한테 들으니 학생들이 그 전날 소풍을 다녀와서 약간 피곤하기도 하고, 더군다나 같은 반 친구들이 아니라 특별 활동으로 1, 2, 3학년 섞여 있다보니 얘기하기가 좀 더 어색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곧바로 계획 변경. 원래는 2번째 시간까지 주로 저의 경험을 얘기하고, 3번째 시간에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꿈에 대해서 얘기를 나눠 보려고 했는데 분위기가 처지는 것 같아서 2번째 시간에 같이 꿈에 대한 얘기를 해 보기로 했습니다.
“꿈이란 ( )다”라는 말을 놓고 ( )에 들어갈 말을 각자 포스트 잇에 써서 칠판에 붙이는 거지요. 그걸 한 장씩 떼어가며 내용을 읽고, 쓴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겁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정말 다양한 대답이 있더라구요.
얘기를 하다보니 꿈이 없다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꿈이 있었는데 없어졌느냐 아니면 원래 없었냐고 물어보니 대부분은 있었는데 없어졌대요. 한 두 명도 아니고 많이들 그렇게 얘길 했어요. 그리고 그 이유도 대부분 비슷했어요. 있던 꿈을 버리게 된 것이 ‘성적’ 때문이래요. 마음 아프더라구요. 자신의 꿈을 성적에 따라 가지기도 하고 버리기도 하다니...
학교 교육이 정말 제대로 되려면 선생들이 학생들과 꿈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선생들과 그런 얘기를 해 본 적이 있냐고 물었어요. 그러니 역시 대답은 예상대로 ‘없다’더라구요. 근데 어떤 학생이 ‘있어요’라고 했어요. 영어 시간에 얘기를 해 봤대요. 반가운 대답이기도 하면서 혹시나 해서 다시 물어 봤어요. ‘정말 꿈에 대해서 얘기한 건가요, 아니면 수업 때문에 그런 건가요?’ 했더니 역시나 수업 때문에 그런 거였대요. ^^;;
이렇게 얘기를 하면서 꿈을 이루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제 의견도 말씀드리고 그랬답니다.
감동...
그렇게 두 번째 시간이 지나고 세 번째 시간을 준비하려고 앞에 앉아 있었어요. 근데 옆에 두 친구가 종이를 가져 와서 제 앞에 내미는 거에요. 그러면서 연락처를 적어 달라네요. 그래서 웃으면서 적으려고 하는데 들려오는 말...
“10년 뒤에라도 꿈을 이루게 되면 꼭 연락드릴게요”
“전 세상에서 가장 멋진 건축물을 짓고 나서 연락드릴게요”
약간 놀라기도 하고 마음에는 감동이 일었습니다. 수업 시간에 얘기할 때 한 명은 아직 꿈을 못 찾았다고 했던 친구고, 다른 한 친구는 건축가가 꿈이라고 했던 친구 거든요. 그런데 짧은 시간 함께 얘기했을 뿐이고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저 같은 뜨내기한테 그런 말을 던지니 제 가슴에 파문이 일 수 밖에요.
그래서 명함을 드리면서 꿈을 찾게 되거나 좋은 건축물을 보게 되면 연락 주십사 했습니다. 제가 여기저기 그동안 구라를 치러 많이 다녔지만 이런 식의 대화를 나누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수업을 다 마치고 학교를 나오면서 학생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수학 공식이 아니라 자신의 꿈이 무언지 생각하고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리고 교육이라는 것이 정말 제대로 되려면 학생들이 꿈을 찾고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데 지금 한국의 교육은 오히려 있는 꿈마저 포기하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 같았구요.
그리고 저에게도 참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구라 치기 약간 낯선 주제였지만, 하고 나니깐 정말 잘했다 싶더라구요. 팔레스타인이니 뭐니 할 때 보다 더 좋은 기분이었습니다. 꿈에 대해서 서로 말할 수 있다는 거... 그게 진짜 좋은 교육이고 사회고, 사람의 관계가 아닐까도 싶었구요.
꿈으로 만나는 세상
강연 끝나고 밥 먹고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화씨 9.11’을 만들었던 마이클 무어의 ‘식코’라는 영화였습니다.
영화가 시작되고 처음 한동안은 특별한 느낌 없이 바라 봤어요. 근데 영화가 진행되면 될 수록 집중하게 되더라구요. 미국의 의료제도와 캐나다, 영국, 프랑스를 비교하는 장면을 볼 때는 ‘야, 미국 새끼들 해도 너무 하네’ 싶더라구요.
어떤 사람이 일을 하다가 전기톱에 손가락 두개를 잘려서 붙이러 가서는 결국 하나만 붙이고 왔다네요. 어떤 엄마는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네요. 그래서 다른 병원으로 데려 가보니 그 사이에 아이는 죽고... 어떤 환자는 입원비를 내지 못해 병원에서 택시를 태워 억지로 내보냈다네요. 모두 돈 때문에요.
미국은 한발에 몇 억, 몇 십 억씩 하는 미사일을 잘도 쏘아올리고, 한 대에 몇 백억씩 하는 전투기도 잘 사들이면서 제 나라 사람이 병원을 제대로 가지 못해 고통 받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곳이다 싶더라구요. 부자들은 불어나는 돈다발에 입을 헤벌레 벌리고 즐거워 하구요. 다른 이들의 고통을 딛고 거둬들이는 돈다발이지요.
영화 막판에는 쿠바 얘기가 나와요. 영화 감독이 미국에서는 돈 때문에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없었던 사람들을 데리고 쿠바로 가요. 그곳에서 한 환자는 미국에 있을 때는 너무 비싸서 제대로 먹을 수도 없었던 약이 쿠바에서는 몇 센트 하지 않는 것을 보고는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며 울어요. 또 어떤 환자는 쿠바 병원의 도움으로 진료를 받게 되는데 여러 해 동안 너무 힘들었다며, 고맙다며 또 울어요. 저도 눈물이 찔끔 나더라구요.
다른 것은 잘 모르겠고 일단 사람이 아프면 치료 받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쿠바 혁명은 계속 진행되어야 하고, 미국은 쿠바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만약 미국이 쿠바를 집어 삼키면 쿠바 사람들도 미국 사람들처럼 돈이 없어서 잘린 손가락도 붙이지 못할 거잖아요.
이 영화가 좋았던 또다른 점은 미국의 현실을 말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세계를 보여 준다는 거였어요. ‘아, 맞아. 저러면 되겠구나’ 싶은 거죠. 그리고 혁명이란 것이 특별한 무엇이 아니라 아픈 사람은 치료 받고, 배우고 싶은 사람은 배우며, 한 사회 속의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를 책임지며 살아가는 거다 싶었어요.
그렇게 토요일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이 되어 사무실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메일을 열어 보니 10년 뒤에라도 연락하겠다던 친구가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회원가입 원서를 보내 왔네요. ‘아직 학생이지만 학생이라고 해서 세계에 등 돌릴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라는 말과 함께요. 제 기분이 어땠을지는 말씀 안 드려도 되겠지요?
꿈으로 만나 서로를 행복하게 하는 그런 세상을 만들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를 위해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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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댓글
역구라
2008-04-25 21:36:37
수업진도 안나가서 좋아는 하던데, 그때도 많은 아이들의 꿈이 없거나 아님 꿈이 없어졌거나, 돈과 권력에 초점이 맞춰진 꿈을 가졌던거 같다... 물론 아닌 애들도 있었지만~~.. "선생님 꿈은요"라고 물으면 농부가 되는거라고 얘기하던 모습도 떠오르고
하여튼, 난 꿈을 이루었으니..이제 꿈속에서 살란다~~~
산골에 인터넷이 들어왔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