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읽었던 책 가운데 윤정모의 [나비의 꿈]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군사독재정권 시절 한국을 떠나 먼 나라에서 살던 음악가 윤이상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책 내용에 보면 독재정권 시절이라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해서 일본쪽에서 배를 타고 와서 멀리서나마 고향을 바라보고 간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 부분을 읽으며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제가 또 읽었던 윤정모의 소설에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일제 식민지 시설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갔던 여성의 삶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아침 뉴스를 보니 일본의 한 장관이 국가가 위안부를 강제 동원한 사실은 없으며 일부 부모들이 딸을 팔았던 것으로 본다고 했다네요. 오랜 세월의 고통을 그대로 안고 살아가는 할머니들이 아직도 눈을 부릅뜨고 계시는데 말입니다.
한 사회가 어떻게 굴러갔었느냐는 인간의 구체적인 삶 속에 새겨지게 됩니다. 그래서 현재의 역사를 올바로 잡지 못하면 미래에까지 두고두고 고통들이 살을 파고듭니다.
어제는 한-미 FTA 협상 중단을 요구하며 농성을 하고 있는 기독교인들과 ‘이 땅의 가난한 이들과 생명살림을 위한 기도회’에 함께 하면서 팔레스타인에 관한 강연을 했습니다.
FTA와 팔레스타인, 생뚱맞다고요? 아니지요, 아니에요.
지금 세계에는 두 가지 큰 질병이 떠돌고 있습니다. 부자들은 더 많은 돈을 갖기 위해서, 권력자들은 더 많은 권력을 갖기 위해서 병들고 힘없는 이들의 주머니를 털고, 그들의 머리를 발로 짓밟고 있습니다. 종교가 달라서도, 국가가 달라서도 아니고 오직 돈과 힘을 더 갖기 위한 거지요.
그런데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습니까? 김치를 먹으려고 해도 배추의 목을 베어야 하잖아요. 누구의 호주머니에 100원이 더 들어 간다는 것은 누구의 호주머니에서 100원이 나왔다는 것이고, 어느 누가 더 큰 힘을 가졌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는 힘을 잃었다는 것을 말하지요. 그래서 겉으로 보면 달라 보이는 FTA와 팔레스타인이 약자의 시각에서 보면 그리 다르지 않게 보입니다. 약자의 희생 위에 쌓는 강자들의 번영과 흥청망청일 뿐인 거지요.
어제 기도회 안내장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참회하며 눈물 흘리는 이는
형제, 자매의 배고픔과 목마름과 헐벗음과 고통을 외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우리의 신앙은
여전히 종교와 사회, 하나님과 이웃, 나의 고통과 이웃의 아픔,
나의 축복과 이웃의 풍요가 드높은 장벽처럼 갈라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은, 신앙은, 종교는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의 형제, 자매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내 먹을 것, 내 입을 것을 나누어 주는 것,
그래서 샬롬의 대동세상을 함께 경험하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저토록 고통에 찬 영혼들을 가만두지는 않으셨을테니깐요. 하지만 저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습니다. 억눌리고 배고픈 이들의 삶이 달라지도록 자신의 삶을 쏟을 줄 아는 그들이 우리 곁에 계신 저의 하나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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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댓글
들국화밭에서
2007-04-01 18:16:13
하나는 대자연, 인간이 무심코 도전하여 패배를 맛보는 개발의 후폭풍입니다..
다른 하나는 인내천(人乃天) 입니다..
행동하는 다중이 하나님입니다..
두 하나님을 섬기는 이유는 폭력대신에 평화를 그리고 개발대신에 공존을 바라는 맘에서 입니다..
저의 하나님들은 고통속에서 울부짖는 이들에게 힘이 되어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공존과 연대로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