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통곡의 벽’앞에서 울고 싶은 사람들은 따로 있다. 한순간 고향과 나라를 잃고 떠돌아 다녀야 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그들은 오늘도 전신 엑스레이 장치로 검문을 받으며 하루 일거리를 위해 이스라엘인들이 사는 곳으로 향한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서울 마포구 아현동 비탈길에 간판도 없이 영업(?)을 하고 있는 ‘팔레스타인평화연대’를 찾았다. 구절초 향이 그윽한 차와 쿠바의 저항적 노래운동인 누에바 뜨로바(Nueva Trova)의 대표적 가수였던 실비오 로드리게스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비오는 날의 분위기를 더했다. 이 곳에 팔레스타인 땅의 평화를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평화 활동가 미니(35, 본명 안영민) 씨는 팔레스타인평화연대를 만든 장본인이며 이곳의 유일한 상근자이다.
왜 팔레스타인인가?
팔레스타인평화연대는 시민단체라고 하기에 낯설다. 과연 한국에서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어떤 영향력을 지니느냐? 한국 안에도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지 않느냐?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미니 씨는 “어떤 사안이 하루아침에 해결되기는 힘들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나라가 일제 식민지였을 때 외국에서 한국의 독립을 위해 목소리를 내어주었다면 한국 국민들에게 커다란 힘이 되었을 것”이라며 “팔레스타인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그것에 팔레스타인평화연대를 만든 이유다.
“한국에서 중요한 일 중의 하나가 평화와 반전의 문제입니다. 이라크에서 미국이 승리하는 것과 패배하는 것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고 봅니다. 강자가 휘두르는 이러한 폭력을 어느 한군데서 멈춰 서게 하지 않으면 점점 확산됩니다. 그것은 한반도의 문제이기도 하고 다른 모든 나라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WTO(세계무역기구)나 FTA(자유무역협정) 체제의 확산 문제를 한국만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전쟁을 막든 자본을 막든 부당한 권력에 맞서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연대가 필요합니다.”
좁혀지지 않는 평행선,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폭력의 악순환
팔레스타인에서 최근 주목할 문제는 지난 1월 25일에 있던 ‘총선’이다. 총선이 문제인 것은 아니다. 문제는 총선의 결과였다.
총선 결과 하마스가 의회의 다수를 차지했다. 집권당이던 파타당이 부정부패로 인해 민중들의 신뢰를 잃은 것이 총선 패배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미국이 하마스를 인정하지 않고, 하마스가 다수당인 의회가 만들어지자 팔레스타인으로 들어오는 해외 원조를 끊어버렸다.
ⓒ 프로메테우스 최승덕
그는 이 상황에 대해 “현재 미국과 이스라엘은 파타당의 마무드 아바스 수반을 통해서 하마스를 무력화 시키려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정적으로 이 문제의 끝에는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대화를 시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마스는 아바스 수반이 국내 문제에 한해서 이스라엘과 협상하는 것은 용인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반면, 하마스 역시 이스라엘의 존재를 부정하고 붕괴시키려는 노력을 계속하겠고 밝혔다. 게다가 파타당은 하마스가 주도하는 연립정부에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이고, 아바스 수반은 최근 자신이 추진하던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상을 지속할 수 없다면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미니 씨는 “문제 해결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쉽지 않은 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국가로서 서로를 인정해야 하고, 화해를 위해 양보해야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인정하고 있지 않고, 팔레스타인 역시 너무 오랜 기간 당한 탓에 적대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는 “유럽에 있던 유대인들이 대규모로 이주해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건설한 것 자체는 부당한 일이었지만 이미 이주해서 터전을 만들고 생활하는 수백만의 사람들을 다시 내 쫓는 것 역시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 현 사태를 초래한 책임을 분명히 밝혀둘 필요가 있습니다. 팔레스타인과 아랍을 이야기 할 때 나오는 것 중 하나가 ‘테러’입니다. 보수언론이 주로 이 말을 쓰는데 이는 서방 언론의 시각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보수언론은 그 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놓고 이스라엘은 군사작전을 했고 팔레스타인은 테러를 했다고 표현합니다. 현재 미국이나 서구 언론이 이야기하는 시각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그들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두고 분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우리가 일본이 조선을 점령한 것을 두고 분쟁이라고 표현하지 않지 않습니까? 우리는 침략을 일방적으로 당한 것입니다. 분쟁은 대등한 힘을 가진 존재가 싸우는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은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 서구의 제국주의적 시각을 경계해야 합니다.”
거울 앞에 선 우리의 모습을 보자
올해 초에 그는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지역을 다녀왔다. 가자지구로 들어가기 위해서 검문소를 통과하며 겪은 일을 설명했다. 그는 “검문소 안에 들어가면 원통형 모양의 공간이 있다”며 “그 안에 들어가면 방송에서 손을 들라고 한다. 전신 엑스레이 촬영을 하는 것이다. 나야 그저 다녀가는 사람이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매일같이 그런 엑스레이 촬영을 한다.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 사람들은 가난하기에 돈을 벌기 위해 그 일을 감수하고 매일 그런 일을 당한다”고 덧붙였다.
“누구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일이 누구의 입장에서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인구가 3백 몇 십만 정도입니다. 그곳에 수 백 개의 검문소가 있는데 그들에게 검문 받는 일은 일상생활에서 흔한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가 길을 갈 때 그렇게 검문 받으면 어떻겠어요? 우리가 생각하기에 그저 길을 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지만 그들이 볼 때는 그것마저도 부러운 일입니다. 만약 누리고 있는 누군가 때문에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가 지금 많은 것을 누리고 있다고 그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이라크 파병에 대해서도 그는 “우리의 군대가 철군해야 한다는 사실은 더 이상 거론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명백하다”며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옆집에 강도가 들어 돈 뜯어 가는데 옆에서 망보면서 뭔가 생기는 것이 없나 하고 기대하는 상황이다. 어쩔 수 없어서 갔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난 적극적으로 갔다고 본다.”라며 “앞으로도 언제든지 이런 일이 일어나면 또 개입할 수 있다고 본다. 한국은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을 흉내내고 있다.”며 비판했다.
인터뷰 내내 그는 이라크 문제와 최근 국제결혼과 관련해 동남아시아 국가에 대한 한국의 태도를 이야기하며 변해가는 우리의 모습을 걱정했다. 얼마 전까지 피해자였던 우리가 그렇게 싫어하며 부정했던 가해자의 폭력을 배워간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점점 가해자의 모습으로 변해 간다”고 말했다.
(출처 : 프로메테우스 http://www.prometheus.co.kr/articles/107/20060616/20060616113100.ht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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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미니
2006-06-20 18:52:30
-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의 관계가 폭력이 악순환 된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점령자와 피점령자 사이에 폭력과 저항이 계속되고 있는 거지요.
- 지금 양쪽 관계에서 필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양보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점령 중단이라고 생각합니다.
- 평화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폭력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억압과 지배의 구조가 사라지고 모든 인간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서는 억압에 대항하는 투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구요 ^^
클라우디아
2006-06-24 17:3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