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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이스라엘 투쟁 - 이치무라 씨와의 간담회(20100311)

뎡야핑, 2010-03-12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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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운동하다 한국어 공부차 한국에 유학 오신 이치무라님과 일본에서의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 이스라엘과의 관계 맺는 방식 등 운동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습니다. 


-와주셔서 감사! 돌아가며 인사-


-이치무라씨의 말씀 듣기-
현미씨 : 일본 운동 상황을 전혀 모르니까 우선 말씀을 듣고, 후에 질문답변 시간을 갖자.

이치무라 : (거대한 프린트를 나눠주며) 프린트보다는 간단히 말하겠다. 일본에서 역사적으로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어떻게 있었는지도 어느 정도 얘기하려 한다.

(1) 일본의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의 역사
일본에서 연대운동 시작은 아마 60년대일 것. 그 때는 소설가, 시인 등 작가들의 운동이었다. "아시아-아프리카 작가 회의"에 갔던 작가가 마흐무드 다르위시 등의 작가와 만나 팔레스타인의 문제를 알게 된 것이 시작. 그래서 일본에서 나온 문학 잡지에 팔레스타인 문학 작품 소개를 시작했다.

그 작가 회의에 모이는 작가들이 늘 아시아, 아프리카의 새로운 나라나 독립하려는 나라에서 모이는 경우가 많은데, 옛날에 일본 정부가 한반도나 중국 대륙에 있은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어떻게 지금 독립하는 나라들과 일본이 같이 했는지.. 지금 보면 일본이 왜 그런 입장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70, 80년대, 지금 있는 연대 운동에 많이 영향을 미친 일이 몇 가지 있었다.
1) 석유 파동(1973) : 일본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태도가 애매하여 아랍 국가들에 보이콧 국가로 지정된다. 그래서 석유 파동이 일어나자, 일본 정부(자민당)은 당황하여 '이스라엘이 67년 점령지에서 철퇴하지 않는 경우 이스라엘과의 국교를 단절할 것'을 선언했다. 획기적인 일이었음. 걸프전까지는 그 입장 유지. 일본 정부와 자민당 정권의 정치가들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에 많은 돈을 준다. 도쿄에 PLO 사무실 만드는 등.

PLO 사람들이 보기에는 자민당 사람까지 합쳐서 일본의 연대 운동이라, 우리가 일본에서 운동하며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얘기할 때 조금 어려운 점이 있다. 자민당에 팔레스타인에 관심 있는 여성 의원 - 고이케 유리코(이집트 카이로 대학 졸업한 아리비스트)가 있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그녀와 협력해서 일해야 한다고 말한다. 고이케 유리코는 우파/보수로, 역사왜곡 교과서를 열심히 만든 사람. 자기 머리속에서는 내셔널리스트.

2) 아랍 적군(이후의 일본 적군) : 로드 공항 습격으로 일본에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아랍 사람들이 일본에 대해 갖는 이미지도 바꿨다. 팔레스타인에 가면 그 이야기를 함. 그러나 그것은 그 후의 연대운동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일본 적군은 공산주의를 지키는 당이니까, 당이 대중을 지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도 당이 결정한다. 중동 지방에 있는 당이 일본의 당 배후 조정하는 것처럼, 일본은 팔레스타인 운동의 후방이라고 생각하게 되니까, 일본에서 하는 연대운동은 팔레스타인에 보내는 병사를 모집하는 게 됨. 연대운동에 의식 있는 사람은 다 팔레스타인 보내고. 그런 관계가 70년대부터 계속 된다.

아랍 사회에서 인정받는 일이라서, 그것이 제일 알맞은 방법이란 생각도 있어서, 다른 방법을 취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것이 90년대까지 계속 됨.

3) 히로카와 류이치라는 저널리스트의 등장 : 60년대까지 학생운동 많이 한 사람. 경찰 때문에 학생운동이 힘들게 됐을 때, 많은 학생들이 키부츠를 지상의 낙원이라며 이스라엘을 방문하고, 그 중 한 명이 히로카와 류이치였다. 키부츠에서 일하다 논/밭 뒤의 무너진 건물을 발견하고, 그것이 나크바 때 파괴된 것임을 알게 되고, 지상의 낙원인 곳에 왜 이런 곳이 있는가 모순을 느낀다. 이스라엘에서 반시온주의 운동하는 사람들과 만난 뒤 팔레스타인 문제를 일본에 보내는 저널리스트가 된다.

그는 82년 사브라-샤틸라 학살 때 처음으로 난민촌에 들어가 세계에 알린다.

4) 노부하라 타카코 간호사 : 레바논 난민촌에서 간호활동.

히로카와, 노부하라의 운동을 지원하는 사람들이 일본에서 나와, 보통 사람들이 하는 연대운동이 시작됐다.

90년대는 인티파다 때문에 관심 가진 사람이 많이 생긴다. 오슬로 협정 때문에 80년대에 생긴 단체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에 가서 활동을 시작. 시각장애인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만드는 등의 구체적 성과를 만듬. 오슬로 협정 이후 팔레스타인에 유학 가기 쉽게 되어 비르자이트 대학, 하이파 대학 등에 많이 유학 감. 그렇게 간 사람들이 지금의 연대 운동을 시작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츠하크 라빈 암살 사건으로 팔레스타인 상황이 어려워진다. 팔 현지에서 활동하던 단체들은 활동을 계속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이스라엘에서 입국 거부를 당할 만한 건 하지 않게 됨. 유학 간 학생들은 현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게 되어 반대로 지금 있는 오슬로 협정에서 만든 그 상황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일본 정부와 이스라엘 정부 간의 대화로 현지에서 활동할 수 있는 단체와, 이스라엘에 대한 직접적인 비방도 하는 단체,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또 하나 일본 적군까지 세 가지.

2000년대가 되면 그런 운동과 관계 없는 운동들이 나왔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배낭여행으로 가끔 팔레스타인에 목적 없이 가서 팔레스타인에 묵다가 뭔가 하고 있는 걸 보고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팔레스타인의 '파'자도 모르고 갑자기 현지에서 몸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나왔다. 일본에서 연대 운동이 있는 줄도 모르니까 이렇게 하고 있다고 개인 블로그 등에 썼다. 블레인 마을에서 일본 사람 부상, 이라는 뉴스가 뜨면 연대 운동 측에서는 '그거 누구냐?'란 반응이 나오기도. 블레인의 투쟁을 영화로 만든 사람도 있다.

-잠시 한국어 완벽하다고 다같이 칭송-

-"Midan: 팔레스타인 대화 위한 마당"의 출발과 활동-

이라크 전쟁 때 중동 지역에 관심 가진 사람들이 모였는데, 이대로 끝내기는 아쉽. 아리엘 샤론이 2005년 일본에 올 예정이었다. 아리엘 샤론은 사브라/샤틸라 학살 주모자 등 나쁜 놈이니까 뭔가 하자고 많이 모였다. 그때 그 문제는 계속 해야 하니까 계속적인 모임을 갖자며 만들었다. 그래서 2005년부터 미단 시작.

시작할 때 6가지 입장을 정했다.

1)점령에 반대한다
2)억압이나 역사/문화의 찬탈에 항의한다.
3)자기결정권/선택권을 구한다
4)인종주의에 반대한다
5)군사지배의 종말과 공존의 논리를 구한다
6)이스라엘인에 대해서도 말을 건다

6번째를 확실히 적고 하는 단체는 없는 것 같다.

이스라엘 대학에 다니던 학생도 있고, 그 때 역시 이스라엘 내부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이나 유대인 중 시오니즘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어서 그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시오니즘이 없는 하나의 팔레스타인, 이라는 생각으로 시오니즘을 포기한 유대인은 같이 사는 사회라고 생각.

구체적 활동은 특별한 일은 없다(웃음). 회원들에 정보 제공, 강연회, 문화 행사, 요리 교실 등. 요리 교실은 요즘엔 하지 않았는데, 팔레스타인이나 이스라엘이나 중동 사회에서 산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가끔은 그 쪽 요리 하고 싶다고.(요리 교실 얘기에 모두 감탄&부럽&우리도 하자) 또 이스라엘 정부/일본 정부에 대한 항의 행동, 시위.

-팔레스타인 현지와의 교류-
교류도 조금 하고 있다. 2005년에는 팔레스타인 내 상황이 너무 어려워서 우리 활동만 생각할 때는 팔레스타인에서 사람을 불러서 팔레스타인 사람의 팔레스타인 이야기를 듣는 것도 하고 싶었으나 우리 모임 때문에 팔레스타인인이 출국하여 일본까지 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해 부담스러운 일. 이스라엘 당국은 그 사람이 일본에 왜 가는지 (감시하고) 그러니까, 확실히 필요할 때는 잘 생각해서 불러야 하지만 자주는 무리인 것 같아서 교류는 적어졌다.

나블루스와 가까운 바라타 난민촌에서 'barata film collective'란 모임에서 직접 찍은 영상을 상영하는 프로젝트가 있어서, 그 영화들을 일본에서 상영하고 사진전을 열었다.

요르단 계곡(서안 지구의 C지구에 속함)에서 농업을 하는 파트히 크데이라트 씨를 불러, 이따 얘기할 목적으로 요르단 계곡의 실상에 대해 강연회를 열었다. 그 때는 일본 각지의 연대 운동 단체와 협력하여, 삿뽀로, 센다이, 도쿄, 오사카, 고베, 오키나와 등과 일주일을 걸려서 진행.

요르단 계곡 문제는 가자와 같은 점령 상황은 아닌데, 너무 힘들다. 가자에 사는 분들은 건물을 짓고 살고 있지만 요르단 계곡에서 제일 힘들게 사는 분들은 천막에서 산다. 모포같은 것을 덮어서 사람이 사는 집이 아닌.. 학교도 만들면 파괴당하니까 경제적으로, 파괴당해도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모래를 자루에 담아 옮겨다님.

그곳에 사는 분들은 역시 점령촌에 다니고 거기서 농업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적은 돈을 벌고, 물도 다 점령촌에 있어서, 먼 곳에서 물탱크를 가지고 가서 물을 가져옴.

-대 이스라엘 활동-

미단이 이라크 전쟁 반전운동 사이에서 만들어졌다고 얘기했다. 역시 미국이라는 문제는 진짜 크며 어떻게 그 문제를 이야기할 것인가도 생각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였다. 특히 중동에 있는 이스라엘과 동아시아의 일본은 미국을 지원하므로, 이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간단히 말하면 우리가 나빠서(웃음). 일본은 더 깊게 생각해야 한다고.

이스라엘과 일본은 지리가 다른데 식민주의를 전개하며 그 지역 안의 식민지를 가지고 있고 다른 나라에 나쁜 영향을 주는 등 성격이 비슷하다. 그래서 이스라엘 안에서 시오니즘에 반대하는 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일본에서 일본의 문제를 생각하는 사람은 이야기하면 뭔가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도, 비슷한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함. 그래서 이스라엘과 함께 일을 진행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미단을 만들기 전 : 일본 자위대가 골란 하이츠에 96년부터 파병돼 있다. 짐을 옮기는 트럭만이라고 하지만, 아마 그곳에 있으니까 이스라엘 군과 교류도 있을 것 같다. 그 문제에 대해 반대 운동 하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가 일본에 오면 항의, 시위. 일본에 오는 것이 무슨 문제가 있는지 토의도 한다. 대표적으로 아리엘 샤론에 대한 반대 운동이 있었고, 레바논 전쟁 때도 대사관 앞에서 시위했다.

미단을 만든 후에는 진보적 유대인들의 강연회를 몇 번 했다. 일란 파페나 사라 로이. 사라 로이는 미국에서 연구하는 유대인. 그 연구 분야에서는 제일 중요한 사람. 이스라엘 정부가 어떤 경제적인 메리트를 생각하면서, 어떻게 경제적으로 지배할 것을 생각해서 가자에 있는지를 연구하는 사람. 또 메론 벤베니스티는 히브라이 대학 지리학 교수. 그 아버지도 교수. 나크바 이후 팔레스타인인들의 마을을 파괴하고 만든 유대인 마을에 오래 있었던 것처럼 유대인들의 역사를 조작한 사람. 그 아들인데, 어느날 생각을 바꿔서 그 후로는 계속 아버지들이 어떻게 유대인들의 마을을 만들고 파괴된 팔레스타인 마을들이 어디에 어떤 상태로 있었는지 다 연구했다.

이런 사람들을 불러서 강연회를 염. 우리 멤버가 일본의 대학에서 연구자들이 모이는 모임 등을 통해 일본 초청비를 받아 보통 사람들의 열린 모임으로 했다. 일란 파페는 나크바를 유대인들의 계획된 '민족 정화'라 불렀는데,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에 관심 있는 사람들도 민족 정화라는 게 나치가 한 일인데 그 말을 유대인들에 쓰는 것을 반유대주의적이고 적절하지 않다고 반대의견조차 있었다. 그 강연회를 하고 책을 낸 결과 강연, 시위를 했을 때도, 보통 사람들이 이스라엘이 한 짓을 민족 정화라 부를 정도로 인식을 바꿀 수 있었다.

하이파에서 유학한 멤버 타나미아오에의 <부재자들의 이스라엘>에서 이스라엘의 10대 여성군인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팔레스타인 마을이 원래 있었던 곳에 새로 만든 에쓰루카(?)들의 마을, 그곳에 사는 게이 유대인 사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등 여러가지를 썼다.

진짜 만났으면 얘기할 만한 사람들인데 여러가지 물어보면 역시 뭔가 그 당이 유대잉네 있는 당이다, 란 생각은 계속 갖고 있다 (---->????)

현재 한국어 번역 진행 중이라 들었으나 어떻게 되는지는 모름.

제일 중요한 것은 요르단 계곡 문제. 코이즈미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방문했을 때 갑자기 '평화와 번영의 회랑'이란 걸 발표. 일본/이스라엘/팔레스타인/요르단 4 국이 협의체로 얘기하자고. 구체적으로는 요르단 계곡에 농업 단지를 만들고 팔레스타인인들이 만든 채소를 요르단에 보내고, 요르단은 가르프 지구 등에 보내어 팔레스타인인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계획이라고. 조금 들으면 좋은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당연히, 여러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일본 정부의 문제이다. 일본 정부가 왜 갑자기 그런 일을 하는지 의심스러움. 당시 일본 정부가 야스쿠니 문제로 한국, 중국 등과 외교적으로 어려웠다. 이걸 성실하게 해결하는 게 아니라 회피한 것. 또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고자 하나, 동아시아에서 완전 인기 없어서 중동에서 정의로운 척 한 것.

이것은 일본 정부가 생각해 낸 게 아니라 시몬 페레스 가 운영하는 싱크탱크가 밝힌 계획과 똑같다. 그 계획은 요르단 계곡을 개발하고 이스라엘이 점령할 곳을 고정하고 물자원을 다 이스라엘이 쓸 수 있게 하는 계획인데, 일본 정부가 이야기도 그 일부라고 의심.

돈을 내는 것도 문제다. 이스라엘이 분쟁 당사자이고 요르단 계곡은 점령지인데, 그런 곳에서는 정부가 이스라엘에 대해서 돈을 내서도 안 되고 점령지에 내서도 안 되니까 문제이다. 그리고 계곡 주민들의 심각한 인권 문제, 그 계획에 대한 반대가 있다. 그 프로젝트에 대한 조사회사가 있는데(니혼코우에이) 1920년대 한반도에서 수은 개발하는 회사를 만들고 그 후 일본군과 같이 만주에 가서 개발하던 회사. 이도 역시 문제.

마지막으로 연대 운동 진영에 인기 있는 저널리스트가 있는데, 찬성 운동을 시작했다. 주로 팔레스타인에 사는 팔레스타인인, 이스라엘에 사는 유대인을 인터뷰해서 다른 사람이 하지 않은 구체적 일을 하고 있는데, 그 사람의 말을 들으면 팔레스타인인들의 어러운 상황을 더 이상 가만히 볼 수 없다, 어떤 수단을 쓰고도 생활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니까 이를 위해서는 그 계획이 필요하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우리는 운동하기 힘들다. 그 사람은 연대 운동 안에서 인기 있고 확실한 성과도 거뒀고, 발도 넓은 사람. 이스라엘 안에서 활동하는 단체들에 그 계획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기도.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순 없어서 운동하고 있다. 웹사이트를 통한 홍보활동, 외무성에 가서 일본 정부 원칙으로 봐도 이상하지 않느냐고 제안했다. 지금은 정권 교체 때문에 일단 휴지 중.

일본 정부가 만든 '잘 아는 중동 문제'란 웹사이트에 팔레스타인이란 말은 한 번도 나오지 않고 갑자기 그곳에 유대인들이 나라를 만들기 시작하자 아랍인들이 전쟁했고, 난민은 아랍인들이 시작한 전쟁 때문에 난민이 생겼다며, 그 난민에게 귀환권이 있다는 언급도 없다.

외교적인 행동에서도 이스라엘 정부와 여러 가지를 같이 하고 있다. 지금은 정권 교체했으니까 그런 정세를 바꿀 찬스라서 활동하고 있다.

2008-09 가자 공격에 대한 항의 캠페인에서는 대사관 앞 행동과 모임 시위, <이스라엘을 변화시키기 위해>라는 이름으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심포지엄에서는 이스라엘 상품/관련 기업을 보이콧하기로 했다. 보이콧은 계속 실행이 어려웠다. 유럽인들은 시장에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서 온 물건이 진짜 많다. 아침에 보낸 야채가 저녁에 런던 슈퍼에 전시된다. 그래서 문제제기할 것이 많은데, 일본은 다르다.

사실 일본에서 뭘 가장 많이 수입하고 있냐면 비디오 카메라이다. CCTV. 감시 시스템을 이스라엘에서 수입. 아마 한국에서도, 일본보다 CCTV 많으니까..

생협에는 그 문제를 이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서 설문 조사를 했다. 설문 조사에 적극적인 대답은 거의 없었는데, 그 사람들은 팔레스타인의 물건을 사는 것이라면 쉽게 시작할 수 있지만 어떤 물건을 사지 말자는 운동은 역시 기업이라서 하기 어려웠다. 또 뭐가 이스라엘 상품인지는 구별하기 어렵다. 특히 식품. 유통 현장에서는 하려고 해도 너무 어렵다.

성지순례를 해결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기독교인들도 있고.

반다 : 일본에는 기독교인들이 많지 않잖아요? 오히려 여행자로 이스라엘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훨씬 많고.

성지순례에 대해 지식이 없다. 기독교 사람들은 자신의 가까운 문제라, 주변사람들에게 얘기하기 힘든 문제 등을 얘기했다.

무기생산/거래/사용 실상을 밝히려 했다. 엠네스티 사람들을 불러 가자 공격 때 어떤 무기가 어디에서 왔는지 그런 리포트를 보고 발표를 들었다. 또 일본에서 군대와 기지 문제로 운동하는 사람과 함께 합쳐서 이야기를 들으며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얘기.

전쟁 범죄를 재판해야 한다고도 애기했다. 국제법적으로 어떻게 문제가 있고, 국제법 사안에서 범죄로서 인정할 수 있는지를 얘기. 또 역사상 진실부터 확인하자는 것. 일본 정부가 팔레스타인 문제를 어떻게 왜곡했는지를 이야기했다.

전쟁과 공격이 있을 때는 사람들의 관심이 높지만 지금은 진행이 어려운 상황.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어려워서 (웃음) 지금은 양력 설에 이집트 장부가 고립장벽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그것을 인정하고 이집트 정부가 공사 중. 그런 일이 있었으니까 아랍 정부에 대해 어떻게 말할지 고민했는데, 항의 서한을 보냈다.

일본 민주당 정권에 중동 정책 바꾸라고 요구. 이스라엘 '아하바'사 제품 관련한 캠페인도 한다. 사해의 진흙을 이스라엘이 다 가져가는 것도 문제이고, 공장이 점령촌 안에 있다. 이스라엘산이라는 씰이 붙어 있어서 일본 관련 부문에 수입 정지를 요청.

아하바는 일본에서 제일 유명한 상표라 보이콧하기 좋다고 생각.

아하바를 한글로 검색하니 역시 G마켓에 있더라. 골란 하이츠에 있는 점령촌에서 만든 와인도 G마켓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것저것 하고 있는데 뭐가 효과 있는지 몰라서 효과적인 것을 서로 나눴으면 좋겠다.

-박수-

냐옹 : 회원수는?
이치무라 : 뉴스레터를 받은 사람은 다 회원이라서.. 그건 아마 200명. 그런데 주로 모임을 준비하고 회의하는 사람은 10명도 없다.

현미씨 : 미단 말고 다른 단체는?
이치무라 : 두 단체 써놨..;

현미씨 : 타단체들과 연대 운동은?
이치무라 : 조금 생각이 다른 것이 있고, 같이 할 수 있는 게 있고, 어려운 것도 있고. 때마다 다르다.

반다 : 평화를 생각하는 모임과 미단의 차이점은? 사업을 같이 할 수 없다거나, 정세에 대한 판단이 다르거나.
이치무라 : 서로 하는 일도 비슷하고, 자주 같이 하고 있다. 요르단 계곡 문제, 오슬로 협정에 대한 문제에 대한 입장도 비슷하고, 세대도 비슷. 평생모는 진지는 오사카인데 역사가 조금 있으니까 여러 곳에서 하고 있고, 우리는 주로 도쿄.
센다이의 팔레스타인 올리브는 공정무역 단체. 물품 구매로 돈을 팔레스타인에 보내기도 하고 소비자에게 팔레스타인 문제 알리고 해설하고 있다. 센다이 사람들은 같은 멤버. 도쿄에서 같이 회의함.
NGO 단체들은 조금 다르다. 아까 말했 듯, 현지에 사무실 있거나.. 그 관계로 이스라엘을 직접 비방하는 것이 어렵다는 단체들.

일본 적군과 관련된 사람들과는 원칙적으로 같이 하지 않는다. 같이 회의하고, 그 회의에서 정하는 것을 같이 한다고 하면 괜찮은데, 다른 곳에 자기들 회의가 있고, 거기서 생각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시키는 스타일이라서.

뎡야핑 : 같이 했다 그런 일이 있던 것?
이치무라 : 우리 모임에 있는 사람은 아까 말했 듯 기본적으로 젊은 세대이다. 나이드신 분들은 70, 80년대 적군의 활동을 보고, 같이 하기 어렵다고 판단.
우리가 부르는 연대 운동의 정의니까, 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른다.

뎡야핑 : 적군이 망했다고 들었는데..
이치무라 : 그것도 진실은 모른다. 그 사람들은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군대처럼 활동하고 있었는데, 90년대에 그것이 어렵게 되어 살아남기 위해 전략을 바꿔야 한다며 합법적 정당이 되기 위해 여러가지 했다. 일본 경찰들이랑 싸워서 대중적인 정당을 만들기 전에 중심 멤버들을 잡았다. 그래서 지금은 무장투쟁을 포기했다고 하지만 열린 곳에서 회의하는 단체는 아니라서 지도자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른다. 스타일은 계속 같다.

현미씨 : 이스라엘 무기 실상 밝힌다는 것은 이스라엘 내 무기 생산-사용인지, 일본과 관련된것인지?
이치무라 : 일본과 관련된 무기에 대한 것은 없다. 원칙적으로 일본은 무기 수출/수입을 금지하니까. 미국에서는 수입하지만. 돌려서 수입할지는 모르지만. 기술 교류는, 군사적 이용이 가능한 것도 있는데, 이스라엘 기업과의 교류는 뭐가 있는지 모르니까 왓치.

누리 : 지금까지 실상을 밝혀둔 자료가 있나?
이치무라 : 가자 공격 때의 보고서는 만들었다.

누리 : 자료를 받을 수 있을까? 한국말로...
이치무라 : 하하;



참가자 : 이치무라님, 냐옹, 누리, 뎡야핑, 반다, 현미씨(이치무라님 외에는 가나다순< ㅋ)


*참고로 피곤해서 뒤에 반 정도는 검토 안 하고 기냥 올렸음을 밝힙니당.. 중간에 내가 못 들은 부분 보충해주세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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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댓글

현미씨

2010-03-12 11:07:50

정말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이치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긴 시간의 강의를 이렇게 정갈하게 정리해주신 덩야핑님에게도 박수를!!!

 

일본의 팔레스타인연대활동 상황을 알게 되어 기뻤고

개인적으로는 이스라엘 정부인들의 방한시 항의행동,

한국 정부에의 대이스라엘, 대팔레스타인 정책 변화 유도,

일본과 상항이 동일한 한국에서의 보이콧 운동 방법,

한국과 이스라엘의 군사교류 자료화 등등

이런저런 생각을 확장시켜야겠다는 뜻깊은 결심도 다시 하고.....

 

함께 시간을 보낸 곁의 분들에게도 정이 새록새록 솟는.. ㅋㅋ

냐옹

2010-03-12 13:46:49

지현우씨 닮으신 이치상 아리가또고자이마스 쿠쿠

자료도 만들어오시고 감동 ;ㅅ;

말씀도 너무 좋았구요,  일본 현지에서 팔레스타인의 문제를 생각하는 방법이랄까,

우리와는 다른 국내의 분위기 속에서 운동하는 일본인들의 마음가짐이 참 새로웠습니다.

자주 뵐 수 있었으면 좋겟네요

 

사무실에 내 카드지갑도 있었으면 조케따 ㅠㅠㅠ

알리아

2010-03-12 16:49:53

와!!와!!!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으면 좋았었겠다..하는 생각이 드네용~

멋집니다 모두들!

 

그리고, 냐옹님....카드지갑 꼭 찾으시길 바래요!

까밀로

2010-03-16 18:47:19

경계를넘어 까밀로입니다.

냐옹님의 카드 지갑은 책상위에 있던 걸 보고 저희가 보관하고 있습니다.

사무실 들르실 때 언제든 말씀하셔요.

냐옹

2010-03-16 21:59:22

앗~~너무너무 감사드려요 ㅋㅋㅋ

내 토끼지갑이 살아있어 눈물이 주루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