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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파크(Richard Falk) 교수
(리차드 파크 교수는 팔레스타인 인권에 대한 유엔특별보고관이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40년 동안 국제법과 국제관계학을 가르쳤다. 2002년 이후에는 캘리포니아주립대지방캠퍼스에서 국제학을 가르쳤다. 2005년 이후 미국 핵시대평화재단 의장을 역임했다.)

글로벌 리서치, 2012년 5월 6일
번역 : 부산지역일반노조 조합원 제일호

만약 팔레스타인 외에 전 세계 어느 국가에서 1300명 이상 사람들이 단식투쟁을 하고 있다면, 서방 언론은 틀림없이 그 이야기에 관심을 집중하지 않겠는가? 그 사건은 날이 갈수록 특종이 될 것이고, 장기간 음식 섭취를 거부하는 것과 관련된 심각한 의학적인 위험을 포함하여 모든 각도에서 보고가 될 것이다. 

이번에 처음으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이 저항의 물결을 일으키기 시작한 두 팔레스타인 사람인 타에르 할라헤(Thaer Halaheh)와 비랄 디아브(Bilal Diab)가 음식을 먹지 않고 64일째를 넘기고 있는데 그들의 생명유지와 함께 균형에 있어서도 위급한 상황에 빠져 있다고 수감자보호협회, 아따미르(Addameer 팔레스타인 정치 수감자 지원과 인권협회 -편집자 주), 비정부기구(NGO), 이스라엘인권의사회(Physician for Human Rights-Israel)가 보고를 하고 있다. 이 사건의 극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유럽은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고, 미국은 아예 아무런 관심도 없다. 

1981년 악명 높은 메이즈 교도소(Maze Prison)에서 IRA(아일랜드 공화국군)단원들의 단식투쟁이 발생했을 때처럼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심지어 1년 전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했던 사건과 같은 대규모 단식투쟁도 국가적이고 국제적인 주의를 거의 끌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의 갈등이라는 전반적인 맥락에서 이루어진 팔레스타인인들의 이 저항의 표현을 무시하는 것은 통탄할 일이다.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점령한 권력으로서 국제적인 지역공동체에 대한 특별한 의무를 가지고 있다.

대조적으로, 며칠 전 베이징에서 가택구금으로부터 겨우 도망쳐 나와 미국 대사관에서 안전한 피난처를 겨우 찾은 단 한명의 중국의 맹인 인권 변호사인 첸 구앙쳉(Chen Guangcheng)에 대해 헌신적이었던 서양의 언론들을 생각해보라. 

이 사건은 확실히 중요한 국제적인 사건이지만, 진정 이스라엘 감옥체계의 심각한 학대에 비폭력적으로 저항하기 위해 그들의 신체, 전적으로 아마 그들의 목숨을 희생하고 있는 이 수 천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의 특별한 항거에 대해 완전히 무시하는 것을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팔레스타인인들의 이야기보다도 훨씬 더 중요하단 말인가?

그들의 동포들 사이나, 어떤 범위의 지역까지를 제외하고는 이 수 천명의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은 1967년 이래로 불투명한 블랙박스 안에서 고달픈 생활을 해오고 있으며, 보호받지 못하고, 인권도 없으며, 심지어는 그들이 겪는 곤경에 대해서 인정을 받지 못하면서도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대항해왔다. 또 하나 비교할 것이 있다. 가자의 경계선에서 붙잡혀 5년간 팔레스타인에 억류되었던 이스라엘 군인, 질라드 샬리트(Gilad Shalit)에 대한 서방 전역에서 관심과 동정이 집중되는 것을 상기해보라!

그의 석방을 위해서 인도주의에 근거한 강력한 국제적인 운동이 조직되었고, 이 운동은 언론의 지속적인 지원을 받았다. 세계적인 지도자들은 그의 석방을 탄원했고, 이스라엘의 지휘 장교들은 심지어 1450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들을 죽였던 2008년 말 경 가자지구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하는 동안 이스라엘방위군(IDF)에게 그들의 진정한 임무는 샬리트를 구출하는 것이거나 적어도 가자지구의 전 민간인들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침내 샬리트가 몇 달 전 포로교환으로 석방되었을 때 샬리트가 포로로 잡혀있는 동안 좋은 대우를 받았다고 보고하자, 이스라엘 기관이 많이 실망스러워하면서 간단한 축하행사는 갑자기 끝나버렸다. 샬리트의 아버지는 더 나아가, 만약에 그가 팔레스타인이었다면 그도 아마 이스라엘 군인들을 생포하려고 노력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놀랄 것도 없이 샬리트는 이스라엘의 영웅으로서 추앙되기 보다는 공공의 시선으로부터 조용히 사라졌다. 

지금의 단식투쟁 물결은 팔레스타인 수감자의 날인 4월 17일 시작되었다. 이 단식투쟁은 행정구금(administrative detention), 폭력적인 체포와 폭력적인 심문과정 등 복합적인 사안에 반대하여 저항했던 최근에 끝난 길고 영웅적인 단식투쟁을 한 두 사람인 카데르 아드난(Khader Adnan)(66일간 단식투쟁)과 하나 샬라비(Hana Shalabi)(43일간 단식투쟁)에 의해 직접적으로 영감을 받았다.

행정구금은 비밀증거에 의해 유효하게 되고, 이스라엘인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어떠한 범죄혐의를 제출하지 않고도 한번에 6개월 이상 감옥에 가둘 수 있고, 시효가 소멸되었을 때에는 갱신하는 것을 허용하는 제도이다.

하나 샬라비(Hana Shalabi)는 수감자 교환으로 풀려난 사람들 중의 한 명이었지만, 풀려난 이후 이전의 구금기간으로부터 거의 회복되지 못한 채 어느 날 야간 체포급습 때 다시 체포되었으며 또 다시 4달의 감금을 선고받았다. 싸에르 할라흐라(Thaer Halahla)의 경우, 8회의 행정구금으로 합계 6년 6개월 동안 감금되어 있었다. 아드난씨와 샬라비 여사는 둘 다 그들의 육체적인 생존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죽음에 임박해서야 협상된 거래를 통해 풀려났다. 

이스라엘은 분명히 그러한 순교로 인해 세 번째 봉기가 터져 나오는 위험을 원하지 않았다. 동시에 이스라엘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후퇴하는 것처럼 비춰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또한 행정구금이나 징역에 의존하는 것에 대해 한 치도 의심하려 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최근까지 이 단식투쟁을 일으키게 했던 불만들에 대한 조사를 거부했다.

하나 샬라비의 경우 그녀의 석방은 곧 징벌적인 추방 명령과도 같은데, 그것은 그녀를 잔인하게도 향후 3년 동안 가자지역에 가둬 놓고, 그녀의 가족과 웨스트 뱅크(West Bank 요르단강 서안지구 -편집자 주)의 제닌(Jenin) 근처에 있는 그녀의 고향인 부르낀(Burqin)의 낯익은 환경으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다. 샬라비여사가 추방의 성격을 가진 그녀의 석방에 대한 정보조차 듣지 못했으며, 그녀가 교도소 당국과 그녀의 변호사들에 의해 부당하게 조정되었다는 몇 가지 정황이 있다.

지금의 단식투쟁가들에게 유사한 조건부 석방이 제공되었지만, 그것이 이송이나 국외추방의 결과를 초래했음에도 불구하고 단식투쟁가들은 지금까지 확고하게 음식을 다시 섭취하는 것을 거부해왔다.  

이번에 이스라엘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지금 단식투쟁가들과 교도소 당국 사이에, 지배라는 하드파워를 가진 사람들과 도덕적이고 정신적인 용기라는 소프트파워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 어떤 의지의 격렬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투쟁하고 있는 수감자들의 고통은 단지 어떤 상황이 충족될 때까지 음식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것으로부터 초래하는 결과뿐만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교도소 교도관들과 당국은 단식투쟁 중인 사람들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지금까지 단식투쟁가들이 독방유폐, 개인 소지품의 압수, 가족방문의 거부, 인도적인 비정부기구(NGO)에 의한 진상조사의 거부, 응급상황에서 의학적으로 치명적인 상태에 있는 단식자들을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민병원으로의 이송을 냉혹하게 거절한 것 등 수많은 처벌들과 괴롭힘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다는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단식투쟁가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응은 충격적이지만, 그러나 점령이라는 극단적 상황 하에서 이러한 태도는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런 극단적인 저항의 형태로 무언의 도덕적인 호소를 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 이외에도 이스라엘 교도 당국에 의한 징벌적인 대응에 대하여 이미 널리 알려진 신뢰할 만한 보고들이 있다.

단식투쟁가들은 독방에 유폐되어 왔고, 그들의 쇠약해진 신체조건에도 불구하고 수갑이 채워졌고, 가족방문은 거절되었고, 개인 소지품은 압수를 당했고, 사기를 꺾기 위해 의도된 교도관들의 괴롭히는 말들에 의해 고통을 받았다. 이스라엘 언론은 이 단식투쟁에 대하여 대체로 냉소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언론들은 이 단식투쟁가들이 ‘감옥에서 자유를 찾기’위한 목표를 알려내기 위한 선전수단으로 단식투쟁을 하고 있고, 그들은 자유의지로 자발적으로 음식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목숨이 위태로워져도 공감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 결과 이스라엘 교도 당국은 그들의 죽음에 대해 책임이 없다는 암시를 던지고 있다.

이스라엘에서 일부 언론은 만약 한 명 혹은 더 많은 단식투쟁가들이 감옥에서 죽는다면 그것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봉기의 불꽃이 될 것인지 가늠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이번 사건으로 발생할 수 있는 미래의 사태에 대해 근본적으로 우려하기 보다는 미봉책으로 문제를 검토해 보려는 관심이나 의지의 표현에서 나온 것에 불과하다.

더 광범위한 문제들이 위급한 상태에 있다. 과거에 팔레스타인인들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저항했을 때 그들은 서방에 의해 테러리스트로 낙인이 찍혔고, 그들은 온통 말썽만을 일으키는 사람들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인들이 단식투쟁, BDS(Boycott, Divestment and Sanctions against Israel 이 운동은 2007년 설립된 운동으로 이스라엘 제품 불매, 투자 거부, 제재 등 국제적 운동을 말한다. - 편집자 주) 운동 혹은 인티빠다(아랍어로 ‘봉기’라는 뜻으로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들의 투쟁 -편집자 주)와 같은 비폭력에 의지했을 때, 그들의 행동은 ‘'소귀에 경 읽기'가 되었다. 이보다 더 나쁜 상황으로는 비폭력적인 저항이라는 특별한 전술을 불법으로써, 동정을 얻기 위한 값싼 속임수로써,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파괴하기 위한 더러운 속임수로써 묘사하기 위한 왜곡된 선전용 공격이 있다.

그러는 동안 팔레스타인의 정착이 늘어나고 최근 정착 전초기지가 확대되면서, 예전에는 이스라엘 법으로 조차도 불법이었던 팔레스타인 정착촌 합병을, 소급적용해서 합법화하려는 이스라엘 내 합병주의자들의 흉계가 빨라지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일단 네타냐후(Netanyahu) 지도력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팔레스타인과의 평화조약을 협상하는데 헌신하고 있다고 계속해서 말할 때, 거기에는 일말의 성실함도 보여주고 있지 않다는 신호이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것은 팔레스타인 당국이 의미 없는 또 한판의 직접대화의 재개하려는 4중창단(미국-EU-러시아-UN)으로부터 나오는 속임수적인 요구에 주의하면서, 그것을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외교적인 침착성을 갖지 못한 것이다. 건너갈 곳 없는 불필요한 다리는 진작 부셔야 했다.(외교상의 오류를 진작 바로 잡았어야 한다는 의미. -편집자 주)

자유주의 주교들의 록 스타인 토마스 프리드만(Thomas Friedman)은 이스라엘이 원칙적인 도전에 직면하여 결과물을 낼 수 있는 강한 도덕적 감수성을 가진 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을 은연중에 풍기면서 수년 동안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비폭력을 설교해오고 있다. 그러나 다수 팔레스타인인들이 이른바 “텅 빈 위장 전쟁”이라고 불리는 무기한 단식투쟁 방식으로 비폭력저항으로 떨쳐 일어섰을 때, 프리드만은 그의 자유주의적인 형제들과 함께 돌처럼 단단한 침묵을 지키고 있고, 뉴욕 타임즈와 같은 신문들의 뉴스 기사에는 이스라엘의 행정구금과 체포, 심문, 수감 동안에 이루어지는 폭력적인 대우에 대해 저항하는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하여 보도하는 단 한 줄의 기사도 찾아볼 수가 없다. 

부끄러운 줄 아시오! 프리드만 양반! 마침내, 2012년 5월 3일 뉴욕 타임즈는 신문 앞면에 단식투쟁에 대해 보도했다. 지금까지 침묵을 지킨 것에 대해 이제야 부끄러움을 느낀 모양이다!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중동 자문관이고 또 다른 영향력 있는 자유주의자이나 프리드만 보다도 더 엄격한 로버트 말리(Robert Malley)는 비폭력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의 투쟁이 만약 이스라엘의 폭력과 충돌하게 된다면 워싱턴을 당황스럽게 할 것이라고 암시를 한다. 말리는 만약 팔레스타인인들이 타흐리르 광장(Tahrir Square 이집트 반독재 투쟁의 상징이 된 광장 -편집자 주)의 정신을 가지고 길거리로 몰려들어서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정부가 확실히 폭력적으로 대응한다면, 그것은 “미국을 이스라엘의 대응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 지에 관하여 격렬한 진퇴양난에 빠지게 할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말리(Malley)가 언급하고 있는 진퇴양난은 한편으로는 오바마가 그들 자신의 국가를 가져야 한다고 반복적으로 말해왔던 사람들의 민주주의적 열망에 대한 오바마의 일관된 용기와 또 한편으로는 이스라엘과 무조건적인 동맹으로부터 유래한다. 

견문이 넓고 객관적인 관찰자가 미국정부가, 과거에도 그래왔듯이, 공공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스라엘의 주장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오직 확고부동한 자유주의자만이 이것을 진짜 진퇴양난이라고 부를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팔레스타인들의 비폭력은 무시되어 왔고, 범죄에 대한 이 두 국가의 특별한 동맹은 일단 더욱 더 재확인되고 있다.

그러면 이제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에서 증가하고 있는 이러한 도전의 도덕적이고 정신적인 배경을 명확히 짚고 넘어가 보자. 무기한 단식투쟁은 위험과 불확실성이 서려있는 본질적으로 용감한 행동이며 또한 극단적인 좌절감이나 급격한 박탈감의 표현이다. 그것은 가볍게 나서거나 단순히 이목을 끌려고 하는 행위가 아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저항을 표현하려고 시도했던 사람들에게 누구나 있는 것처럼, 내가 베트남 전쟁 반대를 했던 10년 동안의 짧은 기간 동안 경험한 것처럼, 단식투쟁은 두렵기도 하고 며칠 동안 육체적으로 부담이 되는 것이지만, 동시에 몇 주 동안 그런 투쟁을 지속하기 위해 강한 의지와 규율을 유지하기위해서는 보기 드문 용기와 결의의 결합이 요구되는 것이다. 오로지 특별히 헌신적인 사람들만이 그런 전술을 채택하고 고수한다.

그 정도로 대규모 단식투쟁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랍의 봄의 뜨거운 여파 속에서 서방의 정치의식으로부터 거의 지워져버렸던 팔레스타인인들의 비참한 고난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팔레스타인 식 타흐리르 광장을 만들어내기 위한 팔레스타인인들의 보다 폭넓은 자발적인 의지를 입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전 세계는 수 년 동안 이스라엘과의 투쟁이 평화적으로 마무리되도록 하기 위해 팔레스타인인들이 벌인 일방적인 노력에 대하여 오랫동안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1988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1967년에 이루어진 경계선 내로 이스라엘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서 거대한 영토의 양보로 말미암아 독립적인 주권 국가를 설립하려고 했던 역사적인 팔레스타인 땅의 단지 22%만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남겨지게 되었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하마스(Hamas)측을 포함하여 이스라엘의 점령에 대해 팔레스타인인들이 저항했던 주요 전술은 폭력과는 완전히 거리가 먼 것이었고, 두 국가의 국민들 사이에 장기간의 평화로운 공존을 바라는 실행과 외교를 고수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양국 발전에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을뿐더러 대신에 팔레스타인인들의 노력에 계속해서 찬물을 끼얹었다. 정치적 억압과 폭력을 피하려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움직임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식적인 대응은 단식투쟁을 유발시켰던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억압을 강화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자제력을 잃은 정착 확대 프로그램, 광범위한 표적 살인, 과도한 보복적인 폭력을 착수해왔다. 

이러한 폭압은 이스라엘의 수형제도 전반에 걸쳐 공식적으로 법적 처우가 개악되면서, 지난 해 행정구금이라는 명목 하에 구속된 팔레스타인인들의 숫자가 50% 증가한 것으로도 잘 드러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