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두세 달 전, 어떤 사람이 저랑 '영/미의 이라크 침략전쟁'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 말을 못 알아듣나 본데, 저놈의 XX들(이라크 아랍인들)이 한 짓을 못 봤어? 내가 다큐멘터리를 보니까, 쿠르드족 학살현장에 해골이 널려 있는데, 카메라 앞에 선 아랍 놈은 해골을 들고 낄낄거리면서 웃고 있더라! 그게 사람이냐?"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털어놔야겠습니다.
제가 이제서야 이 이야기를 털어놓는 까닭은 가끔 가다 '미국의 아랍인 탄압 반대'라는 목소리를 '아랍인의 쿠르드족 탄압 찬성'이나, '후세인 정권 찬성'으로 알아듣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죠. 저는 그런 평가는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TV와 신문, 잡지가 머릿속에 꾸역꾸역 집어넣는 정보에만 기대시는 분들은 - 마치 창고에 집어넣은 지 오래 된 물건은 깨끗이 잊어버리듯이 - '기억의 저 편'으로 내다 버리신 터키 정부의 압둘라 오잘란 납치를 기억하시는지요? 저는 여섯 해가 지난 지금도 그 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때 저는 "터키는 우리의 혈맹이다."라는 정부와 조중동의 주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큰 목소리로 터키 정부를 비난하고 터키의 쿠르드족 탄압을 반대했죠.
그로부터 4년이 흐른 서기 2002년 1월 3일에는 <※상큼한 껍질, 쓴 알맹이 ― 체리 속에 숨은 '현실'의 맛, 「체리 향기」>라는 영화 평론에서
"― 1차와 2차 세계대전 당시 추진된 ― 쿠르드족의 독립국가와 정부 수립이 물거품이 되고 난 뒤 이들에게 주어진 박해와 억압은 엄청났다. 터키 정부는 아예 쿠르드족과 쿠르드인의 말을 인정하지 않고 터키 안의 쿠르드족을 '산에 사는 터키인'이나 '동부 터키인'이라고 불렀고 그리스인, 아르메니아 인 같은 다른 소수민족과는 달리 아예 소수민족으로 인정하지도 않았다.
터키의 군사정권은 쿠르드인에게 일상생활에서도 쿠르드 말을 쓰지 못하게 했다. 심지어 "터키 군인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쿠르드 말)로 노래를 불렀다고 벌건 대낮에 총살당하는 일도 자주 일어났다."(" "는 쿠르드인이고 지금은 프랑스에 망명해 쿠르드 저항단체를 이끄는 알란 레쇼의 증언)
'당연히' "쿠르드 말로 씌여진 책은 불태워졌고, 쿠르드족이 세운 학교, 쿠르드인이 만든 모임은 모두 폐쇄되었다."(『한겨레 21』) 터키의 주요 행정도시나 그 주변에서 쿠르드인이 쿠르드식 차림을 하는 일도 '불법'이었다.
서기 1999년 터키 정부에 붙잡힌 쿠르드족 무장투쟁조직 쿠르드 노동자당(PKK)의 지도자 압둘라 오잘란의 고향도 서기 1938년 터키 정부가 쿠르드족을 강제로 이주시키면서 마을과 숲이 깡그리 불타 버렸다.(오잘란은 서기 1949년에 태어났으므로, 그의 아버지 세대가 이런 괴로움을 겪은 것이다)
...(중략).... 아랍인의 나라인 이라크도 터키와 마찬가지로 쿠르드족 문제에 민감하다는 사실은 터키와 싸우는 쿠르드 노동자당(PKK)을 이라크도 함께(!) 탄압해 왔다는 사실로 입증된다. 이라크 정부는 노동자당을 탄압하는 터키 정부를 도와 국경을 넘어 군대를 보냈고, 국경에 외국 비행기 한 대가 나타나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터키 정부는 유독 이런 일에는 침묵을 지켰다.
이제 서기 1988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터키 안의 쿠르드족과 손잡고 독립을 꾀한다."고 의심해 이라크 북부(이 일대는 쿠르디스탄의 일부분이기도 하다)에 사는 쿠르드족을 화학무기로 죽인 일(:이 때 쓴 독가스 - 화학무기 - 는 이란 -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이 이라크에 팔았던 것이었다! 또 이 화학무기를 만든 미국 회사는 2차 대전 당시 '마루타'로 악명이 높았던 일본의 731부대 출신 과학자에게서 만드는 법을 배웠다. 이 과학자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전쟁범죄자로 처벌받지 않고 미국에 협력한다는 조건으로 '당당히[!]' 풀려나 대접받고 살았다. 전쟁 당시 화학무기와 세균무기를 연구했고 하필이면 인간을 대상으로 생체 실험을 한 사람이 말이다)이나, 서기 1991년 걸프전 때 이라크에 반대하는 쿠르드족을 다시 독가스로 학살한 일이 왜 일어났는지 아실 수 있으리라.
이런 '은근(?)한 탄압'을 참다 못한 쿠르드족이 때때로(터키에서처럼) 무장 항쟁을 하면 그때마다 이라크군에게 진압당했다. 할 수 없이 쿠르드족은 이라크의 대통령 후세인과 이란의 지도자 호메이니를 싫어하는 서구(미국 포함)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했고, 그들과 손잡고 맞서야 했다.....(중략)....이란에서도 2차 대전 이후 쿠르드족 지도자들이 정부가 보낸 사람에게 암살당했고 ('당연히') 진상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라고 말해 이란/이라크/터키의 쿠르드족 탄압이 잘못된 것이라는 제 입장을 밝혔습니다. 또 영/미의 이라크 침략전쟁이 일어났을 때에도 "이 전쟁이 침략자들의 패배로 끝나면, 이제는 쿠르드족의 독립이라는 문제를 꺼내야 한다."라고 주장했죠. 부시와 블레어의 침략이 이븐 후세인의 쿠르드족 탄압이라는 죄를 가려주지는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침략은 침략이고 탄압은 탄압이죠).
그러다가 - 후세인의 바스당 정권 아래서 탄압받았고, 그래서 그 누구보다도 민주화를 갈망한다던 시아파 아랍인들이 - 쿠르드족의 독립을 반대한다는 소식을 듣고 절망하여 그들에게 충고하는 글을 남긴 적도 있어요.
(이 말이 의심스러우시다면, <올리브사람들(팔레타인 평화 연대)>의 [자유게시판]에
<▶◀이라크 아랍인들이 쿠르드족의 독립을 반대한다는 소식을 듣고 쓴 글>이 남아있으니, 그 글을 한번 읽어보세요. 그 글은 올해 4월 11일에 제가 '▩이재환'이라는 이름으로 쓴 글이니 찾기 쉬우실 겁니다)
저는 영/미의 침략전쟁이 싫었던 거지(그리고 그 침략에 끼여드는 이 나라의 정부에 혐오감을 품었던 것이지) 아랍인의 쿠르드 억압이나 후세인의 독재를 좋아했던 것은 아님을 분명히 밝힙니다.
일찍이 서기 1920년대에 연합주의(아나키즘)를 받아들인 이회영 선생님이 "내가 하고 싶지 않는 바이면 다른 사람에게 베풀지 말아야 하며, 나 자신이 남에게 지배받고 싶지 않으면 나도 남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듯이, 그 원칙을 따르는 저는 영/미의 침략과 지배를 반대하는 것처럼, 이란인/아랍인/터키인의 쿠르드족 지배와 탄압도 똑같이 반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당시 한국인 아나키스트들이 "민족해방운동에 참가한 것은 강권으로써 한국 민족을 억압하고 있는 식민지 권력을 타도하고, 한국 민족을 해방시켜 자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지, 또 하나의 억압기구일 수밖에 없는 민족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한국의 아나키즘 - 사상편]에서)"듯이, 제가 부시와 블레어, 노무현의 전쟁에 반대하는 까닭도 어디까지나 지금 이라크를 침략해 폐허로 만들고 폭력을 휘두르는 자들이 미군이기 때문이지, 사담 후세인을 다시 권좌에 앉히거나, 이라크 아랍인들의 쿠르드족 죽이기를 찬성하자는 뜻은 아니었단 말입니다.
따라서 만약 영/미군이 이라크에서 쫓겨나고 한국군이 이라크로 가지 않으며 모든 외국군이 철수한 뒤, 이라크 아랍인들이 쿠르드족을 계속 지배하고 억누르려고 한다면 그 땐 그들을 상대로 싸울 것입니다.
이것이 제 기본 입장입니다. 나를 반대하시는 분들이여, 그러니 영/미군이 쫓겨난다고 해서 이 상황이 끝난다고 여기시거나, 미국 편 아니면 후세인이나 알자르카위 편이라는 이분법은 들이대지 말아주십시오. 이상입니다.
- "누구에게도 억눌리지 않고, 누구도 억누르지 않으리라."는 연합주의자들의 구호를 되새기는 사람이 씀
두세 달 전, 어떤 사람이 저랑 '영/미의 이라크 침략전쟁'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 말을 못 알아듣나 본데, 저놈의 XX들(이라크 아랍인들)이 한 짓을 못 봤어? 내가 다큐멘터리를 보니까, 쿠르드족 학살현장에 해골이 널려 있는데, 카메라 앞에 선 아랍 놈은 해골을 들고 낄낄거리면서 웃고 있더라! 그게 사람이냐?"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털어놔야겠습니다.
제가 이제서야 이 이야기를 털어놓는 까닭은 가끔 가다 '미국의 아랍인 탄압 반대'라는 목소리를 '아랍인의 쿠르드족 탄압 찬성'이나, '후세인 정권 찬성'으로 알아듣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죠. 저는 그런 평가는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TV와 신문, 잡지가 머릿속에 꾸역꾸역 집어넣는 정보에만 기대시는 분들은 - 마치 창고에 집어넣은 지 오래 된 물건은 깨끗이 잊어버리듯이 - '기억의 저 편'으로 내다 버리신 터키 정부의 압둘라 오잘란 납치를 기억하시는지요? 저는 여섯 해가 지난 지금도 그 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때 저는 "터키는 우리의 혈맹이다."라는 정부와 조중동의 주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큰 목소리로 터키 정부를 비난하고 터키의 쿠르드족 탄압을 반대했죠.
그로부터 4년이 흐른 서기 2002년 1월 3일에는 <※상큼한 껍질, 쓴 알맹이 ― 체리 속에 숨은 '현실'의 맛, 「체리 향기」>라는 영화 평론에서
"― 1차와 2차 세계대전 당시 추진된 ― 쿠르드족의 독립국가와 정부 수립이 물거품이 되고 난 뒤 이들에게 주어진 박해와 억압은 엄청났다. 터키 정부는 아예 쿠르드족과 쿠르드인의 말을 인정하지 않고 터키 안의 쿠르드족을 '산에 사는 터키인'이나 '동부 터키인'이라고 불렀고 그리스인, 아르메니아 인 같은 다른 소수민족과는 달리 아예 소수민족으로 인정하지도 않았다.
터키의 군사정권은 쿠르드인에게 일상생활에서도 쿠르드 말을 쓰지 못하게 했다. 심지어 "터키 군인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쿠르드 말)로 노래를 불렀다고 벌건 대낮에 총살당하는 일도 자주 일어났다."(" "는 쿠르드인이고 지금은 프랑스에 망명해 쿠르드 저항단체를 이끄는 알란 레쇼의 증언)
'당연히' "쿠르드 말로 씌여진 책은 불태워졌고, 쿠르드족이 세운 학교, 쿠르드인이 만든 모임은 모두 폐쇄되었다."(『한겨레 21』) 터키의 주요 행정도시나 그 주변에서 쿠르드인이 쿠르드식 차림을 하는 일도 '불법'이었다.
서기 1999년 터키 정부에 붙잡힌 쿠르드족 무장투쟁조직 쿠르드 노동자당(PKK)의 지도자 압둘라 오잘란의 고향도 서기 1938년 터키 정부가 쿠르드족을 강제로 이주시키면서 마을과 숲이 깡그리 불타 버렸다.(오잘란은 서기 1949년에 태어났으므로, 그의 아버지 세대가 이런 괴로움을 겪은 것이다)
...(중략).... 아랍인의 나라인 이라크도 터키와 마찬가지로 쿠르드족 문제에 민감하다는 사실은 터키와 싸우는 쿠르드 노동자당(PKK)을 이라크도 함께(!) 탄압해 왔다는 사실로 입증된다. 이라크 정부는 노동자당을 탄압하는 터키 정부를 도와 국경을 넘어 군대를 보냈고, 국경에 외국 비행기 한 대가 나타나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터키 정부는 유독 이런 일에는 침묵을 지켰다.
이제 서기 1988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터키 안의 쿠르드족과 손잡고 독립을 꾀한다."고 의심해 이라크 북부(이 일대는 쿠르디스탄의 일부분이기도 하다)에 사는 쿠르드족을 화학무기로 죽인 일(:이 때 쓴 독가스 - 화학무기 - 는 이란 -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이 이라크에 팔았던 것이었다! 또 이 화학무기를 만든 미국 회사는 2차 대전 당시 '마루타'로 악명이 높았던 일본의 731부대 출신 과학자에게서 만드는 법을 배웠다. 이 과학자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전쟁범죄자로 처벌받지 않고 미국에 협력한다는 조건으로 '당당히[!]' 풀려나 대접받고 살았다. 전쟁 당시 화학무기와 세균무기를 연구했고 하필이면 인간을 대상으로 생체 실험을 한 사람이 말이다)이나, 서기 1991년 걸프전 때 이라크에 반대하는 쿠르드족을 다시 독가스로 학살한 일이 왜 일어났는지 아실 수 있으리라.
이런 '은근(?)한 탄압'을 참다 못한 쿠르드족이 때때로(터키에서처럼) 무장 항쟁을 하면 그때마다 이라크군에게 진압당했다. 할 수 없이 쿠르드족은 이라크의 대통령 후세인과 이란의 지도자 호메이니를 싫어하는 서구(미국 포함)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했고, 그들과 손잡고 맞서야 했다.....(중략)....이란에서도 2차 대전 이후 쿠르드족 지도자들이 정부가 보낸 사람에게 암살당했고 ('당연히') 진상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라고 말해 이란/이라크/터키의 쿠르드족 탄압이 잘못된 것이라는 제 입장을 밝혔습니다. 또 영/미의 이라크 침략전쟁이 일어났을 때에도 "이 전쟁이 침략자들의 패배로 끝나면, 이제는 쿠르드족의 독립이라는 문제를 꺼내야 한다."라고 주장했죠. 부시와 블레어의 침략이 이븐 후세인의 쿠르드족 탄압이라는 죄를 가려주지는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침략은 침략이고 탄압은 탄압이죠).
그러다가 - 후세인의 바스당 정권 아래서 탄압받았고, 그래서 그 누구보다도 민주화를 갈망한다던 시아파 아랍인들이 - 쿠르드족의 독립을 반대한다는 소식을 듣고 절망하여 그들에게 충고하는 글을 남긴 적도 있어요.
(이 말이 의심스러우시다면, <올리브사람들(팔레타인 평화 연대)>의 [자유게시판]에
<▶◀이라크 아랍인들이 쿠르드족의 독립을 반대한다는 소식을 듣고 쓴 글>이 남아있으니, 그 글을 한번 읽어보세요. 그 글은 올해 4월 11일에 제가 '▩이재환'이라는 이름으로 쓴 글이니 찾기 쉬우실 겁니다)
저는 영/미의 침략전쟁이 싫었던 거지(그리고 그 침략에 끼여드는 이 나라의 정부에 혐오감을 품었던 것이지) 아랍인의 쿠르드 억압이나 후세인의 독재를 좋아했던 것은 아님을 분명히 밝힙니다.
일찍이 서기 1920년대에 연합주의(아나키즘)를 받아들인 이회영 선생님이 "내가 하고 싶지 않는 바이면 다른 사람에게 베풀지 말아야 하며, 나 자신이 남에게 지배받고 싶지 않으면 나도 남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듯이, 그 원칙을 따르는 저는 영/미의 침략과 지배를 반대하는 것처럼, 이란인/아랍인/터키인의 쿠르드족 지배와 탄압도 똑같이 반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당시 한국인 아나키스트들이 "민족해방운동에 참가한 것은 강권으로써 한국 민족을 억압하고 있는 식민지 권력을 타도하고, 한국 민족을 해방시켜 자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지, 또 하나의 억압기구일 수밖에 없는 민족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한국의 아나키즘 - 사상편]에서)"듯이, 제가 부시와 블레어, 노무현의 전쟁에 반대하는 까닭도 어디까지나 지금 이라크를 침략해 폐허로 만들고 폭력을 휘두르는 자들이 미군이기 때문이지, 사담 후세인을 다시 권좌에 앉히거나, 이라크 아랍인들의 쿠르드족 죽이기를 찬성하자는 뜻은 아니었단 말입니다.
따라서 만약 영/미군이 이라크에서 쫓겨나고 한국군이 이라크로 가지 않으며 모든 외국군이 철수한 뒤, 이라크 아랍인들이 쿠르드족을 계속 지배하고 억누르려고 한다면 그 땐 그들을 상대로 싸울 것입니다.
이것이 제 기본 입장입니다. 나를 반대하시는 분들이여, 그러니 영/미군이 쫓겨난다고 해서 이 상황이 끝난다고 여기시거나, 미국 편 아니면 후세인이나 알자르카위 편이라는 이분법은 들이대지 말아주십시오. 이상입니다.
- "누구에게도 억눌리지 않고, 누구도 억누르지 않으리라."는 연합주의자들의 구호를 되새기는 사람이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