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와 연합해서 외국에 군대를 파견한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경우를 들자면 고려시대의 여몽연합군의 일본정벌, 명말청초 강홍립 장군의 파병, 나선정벌, 월남파병, 이라크 파병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여몽연합군
일본정벌은 두 차례에 걸쳐 추진되었습니다. 충렬왕 즉위년(1274)의 제1차 정벌과 충렬왕 7년(1281)의 제2차 정벌이 그것이다. 1차 정벌에 동원된 4만의 여몽연합군(고려군사 15000)은 전함 90척에 타고 일본을 공격하나 태풍으로 1만3500명이나 피해를 입습니다.. 제2차 일본 정벌(1281)때에도 여몽연합군은 총병력 14만명(고려군 1만)에 전함 4400척이 원정을 떠났으나 ‘원사’ 일본전에는 10만명 가운데 살아 돌아온 자가 3명뿐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고려사’는 원정에 나갔다 돌아오지 못한 자가 무려 10만명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http://www.dominilbo.co.kr/gisa/description.html?no=113317
http://www.dominilbo.co.kr/gisa/description.html?no=113916
2. 강홍립장군의 파병
누르하치의 선전포고에 대해 명나라에서는 우리 조정에 원병을 요청하였고, 후금은 또 원병의 중지를 요구하여 왔습니다. 우리 조정의 모화사대파의 끈질긴 출병요구와 명나라의 연이은 원병의 재촉에 일단 평안도 경계에 1만 명의 군사를 대기시켜 놓고 기회를 보아 후금에게 항복하여 정묘호란시 화의를 주선하지만, 국제정세를 제대로 읽지못한 인조는 삼전도의 치욕을 당하게 됩니다..
http://www.hanter21.co.kr/kyonggi/2000/people/data/data3.htm
3. 나선정벌
흑룡강 방면의 풍부한 자원을 탐낸 러시아 인들이 1651년(효종 2)에 흑룡강, 송화강 방면으로 활동 범위를 넓히자, 청나라에서는 군사를 동원하여 이들을 격퇴하려 하지만 패배하였습니다. 이에 청은 조선에 조총으로 무장한 원군을 파병해 줄 것을 요청였고, 조선은 이에 1,2차 파병으로 러시아군을 물리쳤습니다.. 북벌을 위한 군대가 청을 도와 러시아를 치다니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http://my.dreamwiz.com/jabcho89/ko-data/cocept/te-text/502/t-5019.htm
4. 월남 파병
1964년 본격적으로 월남전에 개입한 미국의 요청으로 한국 정부는 1964년 7월18일부터 1973년 3월 23일까지 (8년8개월간) 8개 부대(주월사, 맹호, 백마, 청룡, 십자성, 비둘기, 백구, 은마) 32만여 명이 참전합니다.. 우리측은 5천여 명이 사망 만육천명이 부상을 입었고, 미군은 5만6천명 사망, 20만명의 부상자가 났습니다..
http://www.masteryun.com.ne.kr/korean/vietnam.html
5. 이라크 파병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를 찾겠다는 희망찬 부쉬에 의해서 시작된 명분없는 전쟁에 일단(?) 3000명 정도 파병이 될 예정이지만 월남전과 같이 앞으로 계속 파병 될 가능성과 국내외 상황에 따라서 돌아올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역사적인 4번에 걸친 파병에서 우리가 얻은 건 그리 많지 않아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4번의 파병 중 어떤 경우에 “NO!!”라고 이야기 할 수 있었을까요? 전 한번도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강대국들은 우리에게 병력 또는 병참을 요구했고, 그에 대해 우리 정부는 월남전을 제외하고는 적극적인 찬성 또는 거부보다는 밍기적 거림으로 대처합니다.. 거부할 만한 국력은 안되고 적극적으로 찬성해 많은 군인을 잃을 이유가 없었던 거지요.. 현 정부도 미국의 정권교체 후 이라크 철군 또는 감군을 염두에 두고 밍기적 거리는 것 같습니다.. 부쉬의 지지율이 높아지거나 이라크 저항세력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면 노통의 시름도 깊어지겠지요..
명분도 실리도 없는 전쟁에 참가하려는 경쟁율이 15:1이 넘는다는 현실이 서글퍼 지고 그 전쟁을 단호히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국력에 더욱 더 가슴아픕니다.. 그렇게 국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파병을 했지만, 공화당 전당대회 미대통령의 연설에서 주요 동맹국으로 언급되지도 못하는 영양가 없는 파병..
이런 파병을 철회한다면 어찌 될까요? 조선일보의 우려와는 달리 눈에 띄이는 급작스러운 변화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급격한 국가신인도의 하락이나 미국 자본의 급격한 유출, 미군철수, 미국 시장의 봉쇄 같은 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미국자본이나 미군주둔, 우리 상품의 수입 등은 그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니까, 파병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의 이익이 있는 한 그런 관계를 폐지하려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과의 관계는 특히 군부 강경파와 보수파의 관계는 심하게 손상될 것이고 장기적으로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단초가 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클린턴 정부 때 실행에 옮기려다가 우리 정부의 강한 반대로 무산된 북폭사건 같은걸 막기가 어려워 지겠지요.. 또는 카쓰라 태프트 밀약 때처럼 미국은 다른 강대국들과의 협상에 따라서 다른 이익과 한반도의 이익을 바꾸려 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유용한 가치가 있을수록 다른 이익과 바꾸기가 어려워 지겠지요.. 더 큰 팻감을 찾아야 할 테니까요..
박서종 기자님의 글( http://green.skhu.ac.kr/~ink/sub_1_4.html )에서처럼 대한 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이고 파병을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 월남전에서 우리의 피값으로 얻은 달러로 일어난 한국경제를 “한국군의 목숨과 바꾼 의미 없는 경제 부흥”이라는, 5000명의 월남전 사망자를 의미 없는 죽음이라는 그의 의견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말들을 합니다.. 이 말은 미국에게나 한국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북한과 중국, 러시아, 일본을 이웃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운신의 폭이 넓지 않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1. 여몽연합군
일본정벌은 두 차례에 걸쳐 추진되었습니다. 충렬왕 즉위년(1274)의 제1차 정벌과 충렬왕 7년(1281)의 제2차 정벌이 그것이다. 1차 정벌에 동원된 4만의 여몽연합군(고려군사 15000)은 전함 90척에 타고 일본을 공격하나 태풍으로 1만3500명이나 피해를 입습니다.. 제2차 일본 정벌(1281)때에도 여몽연합군은 총병력 14만명(고려군 1만)에 전함 4400척이 원정을 떠났으나 ‘원사’ 일본전에는 10만명 가운데 살아 돌아온 자가 3명뿐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고려사’는 원정에 나갔다 돌아오지 못한 자가 무려 10만명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http://www.dominilbo.co.kr/gisa/description.html?no=113317
http://www.dominilbo.co.kr/gisa/description.html?no=113916
2. 강홍립장군의 파병
누르하치의 선전포고에 대해 명나라에서는 우리 조정에 원병을 요청하였고, 후금은 또 원병의 중지를 요구하여 왔습니다. 우리 조정의 모화사대파의 끈질긴 출병요구와 명나라의 연이은 원병의 재촉에 일단 평안도 경계에 1만 명의 군사를 대기시켜 놓고 기회를 보아 후금에게 항복하여 정묘호란시 화의를 주선하지만, 국제정세를 제대로 읽지못한 인조는 삼전도의 치욕을 당하게 됩니다..
http://www.hanter21.co.kr/kyonggi/2000/people/data/data3.htm
3. 나선정벌
흑룡강 방면의 풍부한 자원을 탐낸 러시아 인들이 1651년(효종 2)에 흑룡강, 송화강 방면으로 활동 범위를 넓히자, 청나라에서는 군사를 동원하여 이들을 격퇴하려 하지만 패배하였습니다. 이에 청은 조선에 조총으로 무장한 원군을 파병해 줄 것을 요청였고, 조선은 이에 1,2차 파병으로 러시아군을 물리쳤습니다.. 북벌을 위한 군대가 청을 도와 러시아를 치다니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http://my.dreamwiz.com/jabcho89/ko-data/cocept/te-text/502/t-5019.htm
4. 월남 파병
1964년 본격적으로 월남전에 개입한 미국의 요청으로 한국 정부는 1964년 7월18일부터 1973년 3월 23일까지 (8년8개월간) 8개 부대(주월사, 맹호, 백마, 청룡, 십자성, 비둘기, 백구, 은마) 32만여 명이 참전합니다.. 우리측은 5천여 명이 사망 만육천명이 부상을 입었고, 미군은 5만6천명 사망, 20만명의 부상자가 났습니다..
http://www.masteryun.com.ne.kr/korean/vietnam.html
5. 이라크 파병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를 찾겠다는 희망찬 부쉬에 의해서 시작된 명분없는 전쟁에 일단(?) 3000명 정도 파병이 될 예정이지만 월남전과 같이 앞으로 계속 파병 될 가능성과 국내외 상황에 따라서 돌아올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역사적인 4번에 걸친 파병에서 우리가 얻은 건 그리 많지 않아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4번의 파병 중 어떤 경우에 “NO!!”라고 이야기 할 수 있었을까요? 전 한번도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강대국들은 우리에게 병력 또는 병참을 요구했고, 그에 대해 우리 정부는 월남전을 제외하고는 적극적인 찬성 또는 거부보다는 밍기적 거림으로 대처합니다.. 거부할 만한 국력은 안되고 적극적으로 찬성해 많은 군인을 잃을 이유가 없었던 거지요.. 현 정부도 미국의 정권교체 후 이라크 철군 또는 감군을 염두에 두고 밍기적 거리는 것 같습니다.. 부쉬의 지지율이 높아지거나 이라크 저항세력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면 노통의 시름도 깊어지겠지요..
명분도 실리도 없는 전쟁에 참가하려는 경쟁율이 15:1이 넘는다는 현실이 서글퍼 지고 그 전쟁을 단호히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국력에 더욱 더 가슴아픕니다.. 그렇게 국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파병을 했지만, 공화당 전당대회 미대통령의 연설에서 주요 동맹국으로 언급되지도 못하는 영양가 없는 파병..
이런 파병을 철회한다면 어찌 될까요? 조선일보의 우려와는 달리 눈에 띄이는 급작스러운 변화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급격한 국가신인도의 하락이나 미국 자본의 급격한 유출, 미군철수, 미국 시장의 봉쇄 같은 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미국자본이나 미군주둔, 우리 상품의 수입 등은 그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니까, 파병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의 이익이 있는 한 그런 관계를 폐지하려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과의 관계는 특히 군부 강경파와 보수파의 관계는 심하게 손상될 것이고 장기적으로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단초가 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클린턴 정부 때 실행에 옮기려다가 우리 정부의 강한 반대로 무산된 북폭사건 같은걸 막기가 어려워 지겠지요.. 또는 카쓰라 태프트 밀약 때처럼 미국은 다른 강대국들과의 협상에 따라서 다른 이익과 한반도의 이익을 바꾸려 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유용한 가치가 있을수록 다른 이익과 바꾸기가 어려워 지겠지요.. 더 큰 팻감을 찾아야 할 테니까요..
박서종 기자님의 글( http://green.skhu.ac.kr/~ink/sub_1_4.html )에서처럼 대한 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이고 파병을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 월남전에서 우리의 피값으로 얻은 달러로 일어난 한국경제를 “한국군의 목숨과 바꾼 의미 없는 경제 부흥”이라는, 5000명의 월남전 사망자를 의미 없는 죽음이라는 그의 의견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말들을 합니다.. 이 말은 미국에게나 한국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북한과 중국, 러시아, 일본을 이웃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운신의 폭이 넓지 않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