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인들을 박해하는 유대인들.. 그들은 누구 일까요? 왜 그들은 그들 땅에서 잘 살지 세상을 떠돌다가 숱한 고초를 겪고, 옛날 자기들 땅이라구 우기면서 애꿎은 팔레스타인 인들을 못살게 굴면서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들에 대한 오래된 이야기는 모두들 잘 알고 계실테니까 (궁금하신 분은 성서를 읽어보세요.. ^^;), 결정적으로 유랑을 시작하게된 직접적인 원인제공자인 로마시대 이야기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물론 그 이전부터 유대인들은 바빌론 유수나 다른 민족들의 지배로 인해서 타국으로 많이들 이주를 했다고 합니다..
예수가 태어날 당시 유대는 로마의 보호 아래 헤롯왕이 강압적 통치를 펼치고 있었습니다.. 로마에서 파견된 총독 빌라도에 의해 예수가 처형된 사건은 아주 유명하죠.. 영화 “그리스도의 고난”에 잘 나와 있습니다(이 영화도 미국 헐리우드계에서 입김이 센 유대인들의 로비로 제작부터 상영까지 어려움이 많았다네요.. 이유는 유대인들이 잔인하게 묘사되었다나요..)..
그 당시 상황은 유대인 가운데 <열심당>이라고 하는 과격한 국수주의자(실제로 이들의 행동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테러와 유사했다고 합니다.. 영어로는 zealot이라고 합니다.. 어디서 많이 본 단어죠? 스타크래프트 프로토스 보병들 이름이랍니다.. 더 재미있는건 하마스 또한 Harakat al-Muqawama al-Islamiyya’ (the Islamic Resistance Movement)의 머릿글자 합성어이며, ‘열심(Zeal)’, ‘열정’의 뜻이라고 하네요.. 열심과 테러는 뭔가 관계(?)가 있는듯 합니다..)들이 제 1, 2 차 유대전쟁에서도 패하여 유대지역은 황폐해졌고 유대인은 세계각지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때 서기 70년 당시 로마 황제였던 티투스는 유대인의 거주권을 박탈해 버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저항한 유대인들은 유명한 마사다 요새에서 모여있다가 포로로 잡혀서 굴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제비를 뽑아서 서로 살해했다고 합니다.. 깎아지른 바위 위의 천혜의 요새였지만 애석하게도 우물이 없었다네요.. 로마인들은 깎아지른 절벽위에 위치한 이 요새주변으로 토성을 쌓아서 큰 피해없이 이스라엘을 접수합니다.. 이런 까닭으로 이스라엘 소위들은 임관할때 이 성에서 “마사다를 잊지말자”라고 소리지른다고 합니다..
이런 디아스포라(이산)이라고 부르는 이주 과정은 계속 이루어져서 6세기에 이르면 유대땅에서 유대인의 숫자보다 이민족 숫자가 많아지게되고, 첫번째 십자군 원정당시(11세기)에는 이스라엘 내의 유대인 숫자는 수천명 수준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세상을 유랑하던 유대인들은 중세 유럽에서는 토지소유를 할 수 없었고, 길드에도 참여 할 수 없었습니다..따라서 그리스도교도에게는 금지된 직업인 금융업과 고리대금업 등을 하면서 먹고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유럽은 살아있는 지옥 그 자체였습니다.. 1096년 일차 십자군은 Mainz, Speyer, Worms, 그리고 Cologne의 유대인들을 학살했고, 1182년 프랑스에서, 1290년 영국에서, 1492년 스페인에서, 1496년 포르투칼에서 유대인들은 추방당합니다.. 12세기 후반에는 그리스도교도가 유대인에게 고용되는 것과 동거 등이 금지되었고, 13세기 초에는 유대인에게 차별하기 위한 휘장을 달게 하는 제도가 생겼습니다. 한편, 왕들은 부유한 유대인을 재화의 원천으로 여겨 추방과 재산몰수를 되풀이하였습니다.. 1348년 흑사병이 돌자 이를 유대인들이 우물에 독을 타서 생긴 병이라고 비난하며 유대인을 학살합니다.. 유대인을 격리하는 게토(유대인거주지구)는1516년 이탈리아에서 처음 생겨나서, 16세기 후반 이후 본격화되었으며, 프랑스·독일·폴란드·보헤미아까지 행해졌습니다.
이런 모진 박해를 견디다 못해서 1211년 프랑스와 영국에서 온 300명의 랍비들이 팔레스타인에 정착하여(Eretz Yisrael), 시오니스트들의 시조라고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16세기에 Eretz Yisreal이 오토만 터키령이 되고, 골란고원에 위치한 Safed시가 중심이 되어 스페인과 포르투갈로부터 추방된 유대인들을 받아들이려고 했습니다만 신통치 못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이스라엘이 국가로서 성립할 수 있었던 원인은 시오니즘과 계속 되는 박해였습니다.. 랍비의 아들이었던 테오도르 헤르쩰이라는 사람이 드레퓌스 사건을 취재하면서 유대인 문제를 해결하기위해서는 국가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유대국가'라는 책을 쓰게 됩니다.. 이것은 곧 시온주의의 교과서가 됩니다.. 이 책에 따르면 유대인이 그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유대국가가 필요하다는 것이었고 시온으로 즉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책에 감화를 받은 유대인들이 박해를 경험하면서 이스라엘로 이주를 하게 됩니다..
1882 - 1903 제 1차 알리야 (대규모 이민); 주로 러시아로에서 20,000-30,000명
1904 – 1914제 2차 알리야(주로 러시아와 폴란드에서 왔으며35,000-40,000명)
1909 - 최초의 키부츠인 데가니아와 최초의 근대적인 유대인도시 텔아비브 건설됨
1919 – 1923제 3차 알리야(주로 러시아에서 35,183명)
1924 – 1932 제 4차 알리야(주로 폴란드에서 81,613명)
1933 – 1939 제 5차 알리야(주로 독일에서 366,061명)
1939 - 영국 백서, 유대인 이민을 제한
1948 – 1952 유럽및 아랍각국에서 대규모 이민
이들이 과연 팔레스타인으로 불리는 땅을 차지할 권리가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저로서는 '신이 약속한 땅'라는 말도 이해가 안되구요.. 다만 제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중동의 분열을 조장하기 위한 강대국들의 이해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다시 세우겠다는 시오니스트들의 의지가 맞아 떨어진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1948년 그들을 핍박하던 유럽세력을 등에 업고 그동안 그들에게 비교적 관대한 정책을 편 아랍인들의 땅에 이스라엘을 건국합니다.. 이들은 2000년을 떠돌면서 박해를 받았지만, 똑똑하고 능력있다고 인정을 받았지만, 저에게는 이들의 행동이 그리 현명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얼마나 갈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자료는 책과 야후에서 검색한 유대인 사이트와 이스라엘 문화원에서 인용했습니다..
http://www.jewishvirtuallibrary.org/
http://www.israelstudy.co.kr/seminar.asp
물론 위의 사이트에서는 유대인들은 항상 이스라엘을 지켜왔으며 고로 그들의 땅이라고 주장하는 점이 제 생각과 극명한 차이를 보입니다..
http://www.jewishvirtuallibrary.org/jsource/myths/mf1.html#k
테러리스트
자기 눈에서 눈물이 흘러 봤으면 다른 사람 눈에서도 눈물이 흐른다는 걸 알아야할텐데요
허긴 이라크에 파병한 나라 국민으로 이스라엘만 뭐라 그러고 있을 처지는 아니긴 합니다만^^;(역사에서 못 배우는 건 우리 위정자나 그들이나 똑같죠)
잼스
하지만 이라크 파병을 바라보는 견해는 님과는 조금 다릅니다.. 전 이라크 파병을 명말청초 때의 강홍립장군의 파병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로서는 파병의 명분이나 이익은 없으나 강대국의 요구를 거절할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테러리스트
그리고 강홍립 파병이랑은 성격이 다른 것 같은데요
그 때와 지금은 일단 명분 자체가 다르죠
지금 우리는 제국주의의 용병이 된 거죠^^;
제국주의의 하수인이 되느냐 아님 자주 국가가 되느냐
그리고 이라크 사람들 앞에서 침략군의 일원이 되느냐
역사 앞에서 죄인이 되느냐
나는 타이타닉처럼 스스로 자기파괴를 해 가면서 서서히 침몰하는 깡패집단의 요구를 거절함으로 얻을 대가가 님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살라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