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드라마 '모래시계'의 주제곡이었던 '백학'은 체첸 독립전사들의 죽음을 기리는 곡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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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이따금씩 다음과 같이 생각되곤 한다. 피비린내 나는 들판에서 돌아오지 않은 병사들이 아직도 우리 조국 땅에 묻히지 못하고, 백학으로 변해버렸다고..
그들이 저 아득한 시절부터 지금까지 날아다니며 우리에게 노래를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하늘을 바라보며, 그렇게 자주 그리고 슬프게 말을 잊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닌가?
때가 오면, 백학의 무리와 함께 나도 저 회청색 안개 속으로 흘러가리라, 하늘 아래 새처럼, 지상에 두고 온 당신들 모두의 이름을 소리내어 부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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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듣고 싶으신 분은 아래의 링크에 가시면 음악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hanbitkorea.com/technote/read.cgi?board=mboard&y_number=10
체첸인들은 왜 박터지게 그것도 세계 2위의 군사대국 러시아와 맞짱(?)뜨면서 싸우는 것일까요? 체첸을 설명하려면 잉귀쉬라는 민족도 설명을 같이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남북한 같은 관계이기 때문이죠.. 체첸과 잉귀쉬 두 민족은 모두 카프카즈 인종으로 같은 나흐족(Nakh)에 속해있습니다.. 7세기경부터 18세기 말까지 팽창정책을 폈던 러시아가 카프카즈 정복에 나서기 전까지 별 문제 없이 살고 있었습니다.. 카프카즈 전쟁 당시 동부에 거주하던 나흐족은 러시아에 격렬히 저항한 반면, 서부의 나흐족은 이 전쟁에 개입하지 않았죠. 그 후 러시아인들은 이 두 집단을 각각 다르게 인식하게 되었고, 이로써 이 두 집단의 거주지역 중 큰 도시의 이름을 따라 동부의 나흐족을 '체첸', 서부의 나흐족을 '잉구쉬'라 구별하여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 전쟁은 거의 반세기 가까이 계속되었으며 1859년에 이르러서야 체첸지방이 완전히 병합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전쟁의 끝이 아니고 1회전의 끝이었을 뿐이었죠..
2회전은 20세기 초 러시아 혁명기에 시작이 되었습니다.. 체첸인들은 전투적인 이슬람 교단을 중심으로 해방투쟁을 전개했죠. 이후 10월 혁명과 내전시기에는 한때 인접한 다게스탄 지역에 이슬람국가인 '다게스탄 체첸 회교국'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21년 소련군이 이들을 완전히 정복함으로써 2회전의 종이 울렸죠..
3회전은 1940년 초에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1936년에 체첸-잉구쉬 두 자치구의 합병으로 형성 된 체첸잉구쉬 자치공화국은 하산 이스라일로프(Khassan Israilov)의 지휘로 구 소련 정부에 다시 저항했으나 1942년 말에 진압되었습니다.. 가장 싱겁게 끝난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4회전은 또라이 스탈린 시키에 의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넘은 독일군에게 체첸인들이 협력했다는 구실로 1944년 2월 체첸-잉구쉬인 거의 전체에 해당하는 약 50만 명을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켰습니다 (우리 까레이쯔들도 일본인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20만명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했죠..-_-;; 하지만 까레이쯔의 경우 50킬로의 짐은 부칠수 있었지만 이들에게는 2킬로밖에 짐을 가지고 갈 수 없었다네요..). 당시 강제이주 대열에서 도망친 소수 사람들은 카프카즈 산악에 숨어들어 게릴라전으로 소련군을 괴롭혔고, 강제이주와 게릴라 투쟁 과정에서 약 23만여 명이 사망했습니다. 결국 후루시쵸프에 의해서 1957년 체첸민족은 명예회복이 이루어지고 고향으로의 귀환이 허용되었으며 자치공화국으로 부활되었지만, 서로간에 패인 감정의 골은 쉽게 아물지 않았습니다..
5회전은 소련연방의 해체와 때를 같이해 시작되었습니다.. 1991년 10월 조하르 두다예프 대통령은 러시아로부터 체첸의 독립을 선언하였고, 잉귀쉬 역시 1992년 10월 공화국으로 선포되었습니다. 5회전은 아직 진행 중입니다.. 전쟁 중에 러시아 준장이 죽기도 하고, 아파트를 가루로 만들기도 했구요, 모스크바 국립극장을 아들과 남편을 잃은 과부 게릴라들을 포함한 무장 괴한들이 점거하기도 해서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물론 독일제 신경가스를 사용해서 다 죽여버렸지만..
지금도 5회전의 연장전이라고 생각됩니다.. 친러파 체첸 대통령을 폭사시키고, 러시아 비행기를 두대나 폭파시키고, 국민학교 인질극을 통해서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러시아는 94년 11월 대규모 군대를 체첸 공화국에 파병했습니다. 이것이 제1차 체첸전쟁의 시작이죠. 러시아군은 한달여 만에 체첸의 수도인 그로즈니를 점령하는 데 성공했지만 반군들은 남부의 해발 5천m에 이르는 카프카스 산맥 깊숙이 숨어 끈질기게 저항했습니다.. 장기전에 지친 러시아는 독립 여부에 대한 결정은 2001년까지 미루기로 하고 96년 철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당시 러시아 대통령이던 보리스 옐친의 인기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러다 99년 지금의 러시아 대통령인 블라디미르 푸틴 당시 총리가 다시 15만명의 대군을 파병했습니다. 체첸 구석구석까지 반군 소탕작전을 펼친 결과 6만2천여명에 이르던 반군 가운데 겨우 4-5천명만 살아 남았다고 하고, 체첸 인구의 20%에 가까운 20만명이 숨지고 30만명은 난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의 피해도 컸습니다.. 두 차례 전쟁에서 2만명 가까운 사망자가 생겼고, 무자비한 침공작전이 국제사회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BBC가 밝힌 러시아군들의 취중 10대소녀 집단 강간사건도 유명합니다..
그럼 왜 북구의 곰 러시아는 우리나라 경상북도와 비슷하고, 인구는 현재 80여만 밖에 안되는 이 조그마한 나라를 어쩌지 못해서 쩔쩔 매고 있는 것일까요? 그냥 귀찮은데 다른 나라처럼 왜 독립시켜주지 않을까요? 러시아내의 다른 땅도 넓어보이는데 말이죠..
이유야 많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석유입니다.. 아라비아의 걸프만을 제외하고 가장 채산성이 높고 매장량도 풍부한 바쿠 유전의 송유관이 체첸의 수도인 그로즈니를 지나기 때문입니다.. 이곳이 독립되면 석유에 있어서는 거대한 러시아가 목줄을 콱-잡히는 격이 되기 때문이지요..
독립을 하고 싶고, 주요한 전략적인 땅을 포기할 수 없는 서로의 입장은 이해 하지만 그 가운데서 죽어나가는 사람들만 불쌍할 따름입니다..
우리의 독립투사들은 백학 대신 뭐가 되었을까가 문득 궁금해집니다.. 20세기 초의 한국의 상황도 체첸과 그리 달라보이지 않는데 말입니다.. 한국에도 푸른 하늘을 보면서 말을 잃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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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이따금씩 다음과 같이 생각되곤 한다. 피비린내 나는 들판에서 돌아오지 않은 병사들이 아직도 우리 조국 땅에 묻히지 못하고, 백학으로 변해버렸다고..
그들이 저 아득한 시절부터 지금까지 날아다니며 우리에게 노래를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하늘을 바라보며, 그렇게 자주 그리고 슬프게 말을 잊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닌가?
때가 오면, 백학의 무리와 함께 나도 저 회청색 안개 속으로 흘러가리라, 하늘 아래 새처럼, 지상에 두고 온 당신들 모두의 이름을 소리내어 부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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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듣고 싶으신 분은 아래의 링크에 가시면 음악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hanbitkorea.com/technote/read.cgi?board=mboard&y_number=10
체첸인들은 왜 박터지게 그것도 세계 2위의 군사대국 러시아와 맞짱(?)뜨면서 싸우는 것일까요? 체첸을 설명하려면 잉귀쉬라는 민족도 설명을 같이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남북한 같은 관계이기 때문이죠.. 체첸과 잉귀쉬 두 민족은 모두 카프카즈 인종으로 같은 나흐족(Nakh)에 속해있습니다.. 7세기경부터 18세기 말까지 팽창정책을 폈던 러시아가 카프카즈 정복에 나서기 전까지 별 문제 없이 살고 있었습니다.. 카프카즈 전쟁 당시 동부에 거주하던 나흐족은 러시아에 격렬히 저항한 반면, 서부의 나흐족은 이 전쟁에 개입하지 않았죠. 그 후 러시아인들은 이 두 집단을 각각 다르게 인식하게 되었고, 이로써 이 두 집단의 거주지역 중 큰 도시의 이름을 따라 동부의 나흐족을 '체첸', 서부의 나흐족을 '잉구쉬'라 구별하여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 전쟁은 거의 반세기 가까이 계속되었으며 1859년에 이르러서야 체첸지방이 완전히 병합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전쟁의 끝이 아니고 1회전의 끝이었을 뿐이었죠..
2회전은 20세기 초 러시아 혁명기에 시작이 되었습니다.. 체첸인들은 전투적인 이슬람 교단을 중심으로 해방투쟁을 전개했죠. 이후 10월 혁명과 내전시기에는 한때 인접한 다게스탄 지역에 이슬람국가인 '다게스탄 체첸 회교국'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21년 소련군이 이들을 완전히 정복함으로써 2회전의 종이 울렸죠..
3회전은 1940년 초에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1936년에 체첸-잉구쉬 두 자치구의 합병으로 형성 된 체첸잉구쉬 자치공화국은 하산 이스라일로프(Khassan Israilov)의 지휘로 구 소련 정부에 다시 저항했으나 1942년 말에 진압되었습니다.. 가장 싱겁게 끝난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4회전은 또라이 스탈린 시키에 의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넘은 독일군에게 체첸인들이 협력했다는 구실로 1944년 2월 체첸-잉구쉬인 거의 전체에 해당하는 약 50만 명을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켰습니다 (우리 까레이쯔들도 일본인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20만명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했죠..-_-;; 하지만 까레이쯔의 경우 50킬로의 짐은 부칠수 있었지만 이들에게는 2킬로밖에 짐을 가지고 갈 수 없었다네요..). 당시 강제이주 대열에서 도망친 소수 사람들은 카프카즈 산악에 숨어들어 게릴라전으로 소련군을 괴롭혔고, 강제이주와 게릴라 투쟁 과정에서 약 23만여 명이 사망했습니다. 결국 후루시쵸프에 의해서 1957년 체첸민족은 명예회복이 이루어지고 고향으로의 귀환이 허용되었으며 자치공화국으로 부활되었지만, 서로간에 패인 감정의 골은 쉽게 아물지 않았습니다..
5회전은 소련연방의 해체와 때를 같이해 시작되었습니다.. 1991년 10월 조하르 두다예프 대통령은 러시아로부터 체첸의 독립을 선언하였고, 잉귀쉬 역시 1992년 10월 공화국으로 선포되었습니다. 5회전은 아직 진행 중입니다.. 전쟁 중에 러시아 준장이 죽기도 하고, 아파트를 가루로 만들기도 했구요, 모스크바 국립극장을 아들과 남편을 잃은 과부 게릴라들을 포함한 무장 괴한들이 점거하기도 해서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물론 독일제 신경가스를 사용해서 다 죽여버렸지만..
지금도 5회전의 연장전이라고 생각됩니다.. 친러파 체첸 대통령을 폭사시키고, 러시아 비행기를 두대나 폭파시키고, 국민학교 인질극을 통해서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러시아는 94년 11월 대규모 군대를 체첸 공화국에 파병했습니다. 이것이 제1차 체첸전쟁의 시작이죠. 러시아군은 한달여 만에 체첸의 수도인 그로즈니를 점령하는 데 성공했지만 반군들은 남부의 해발 5천m에 이르는 카프카스 산맥 깊숙이 숨어 끈질기게 저항했습니다.. 장기전에 지친 러시아는 독립 여부에 대한 결정은 2001년까지 미루기로 하고 96년 철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당시 러시아 대통령이던 보리스 옐친의 인기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러다 99년 지금의 러시아 대통령인 블라디미르 푸틴 당시 총리가 다시 15만명의 대군을 파병했습니다. 체첸 구석구석까지 반군 소탕작전을 펼친 결과 6만2천여명에 이르던 반군 가운데 겨우 4-5천명만 살아 남았다고 하고, 체첸 인구의 20%에 가까운 20만명이 숨지고 30만명은 난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의 피해도 컸습니다.. 두 차례 전쟁에서 2만명 가까운 사망자가 생겼고, 무자비한 침공작전이 국제사회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BBC가 밝힌 러시아군들의 취중 10대소녀 집단 강간사건도 유명합니다..
그럼 왜 북구의 곰 러시아는 우리나라 경상북도와 비슷하고, 인구는 현재 80여만 밖에 안되는 이 조그마한 나라를 어쩌지 못해서 쩔쩔 매고 있는 것일까요? 그냥 귀찮은데 다른 나라처럼 왜 독립시켜주지 않을까요? 러시아내의 다른 땅도 넓어보이는데 말이죠..
이유야 많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석유입니다.. 아라비아의 걸프만을 제외하고 가장 채산성이 높고 매장량도 풍부한 바쿠 유전의 송유관이 체첸의 수도인 그로즈니를 지나기 때문입니다.. 이곳이 독립되면 석유에 있어서는 거대한 러시아가 목줄을 콱-잡히는 격이 되기 때문이지요..
독립을 하고 싶고, 주요한 전략적인 땅을 포기할 수 없는 서로의 입장은 이해 하지만 그 가운데서 죽어나가는 사람들만 불쌍할 따름입니다..
우리의 독립투사들은 백학 대신 뭐가 되었을까가 문득 궁금해집니다.. 20세기 초의 한국의 상황도 체첸과 그리 달라보이지 않는데 말입니다.. 한국에도 푸른 하늘을 보면서 말을 잃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테러리스트
노래가 오늘따라 굉장히 다르게 들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뎡야핑
미니
다른 곳에도 퍼 나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