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땅에 꽃냄새는 남아 있겠지?
사랑하는 동생 ‘카와’에게 :
8년 전, 내가 너와 헤어질 때 나는 내 정든 고향과 어릴 적, 그리고 성인이 됐을 때의 꿈들을 버리고 떠날 수밖에 없었어. 그래, 요르단 국경으로 향하면서 나는 내 정든 도시(이라크 북부에 있는 쿠르드인 도시)를 완전히 버렸단다.
목적지가 어딘지 알 순 없었지만 단 한 가지, 내 가방속에 왕복이 아닌 편도 티켓이 들어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했지. 나는 그 도시를 벗어나는 차 안에서 (내가 가는 곳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매일매일 가고 있다는 내용인) 노래를 부르면서 너의 밝은 눈동자에 했던 내 마지막 입맞춤을, 한살짜리 귀여운 얼굴에 떨어졌던 내 따뜻한 눈물을 떠올렸어.
내가 너와 함께 있을 때 텔레비전 뉴스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뻔하고 내용없는 사건들을 매일같이 말하면서도, 서기 1991년 이라크군이 우리집을 공격했을 때 네 누나가 입었던 상처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더구나.
언론매체들은 우리 젊은이들(쿠르드족 출신인 10~30대들 - 옮긴이)이 보안군에 의해 끌려가서 다시는 식구들한테로 돌아가지 못했다는 사실은 다루지 않더구나. 그들의 식구들은 여전히 희망을 품고 기다리고 있을까? 그럴 거야!
넌 그때 겨우 한살이라서 내가 극도로 공포에 떨면서 떠났다는 사실은 몰랐을 거야. 나는 그때 죽거나 식구들이 죽는 걸 보게 되는 두렵고 슬픈 상황이 일어나는 걸 바라지 않았단다. 그런 생각은 악몽처럼 나를 따라다녔고, 지금도 너의 ‘조용한’ 땅에서 진행중인 시나리오지.
나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너와 너의 이웃들이 혹독한 상황에서 살고 있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단지 살아남는 것이 너의 가장 큰 바램이라는 것을, 심지어 너의 가장 기본적인 인권마저도 매일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네가 내일에 대한 희망을 잃고 두개의 무자비한 ‘망치’아래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단다.
한 망치는 이라크 보안군과 그들의 무기고, 다른 한 망치는 서방의 경제 제재와 확전 위협이야. 국제사회는 우리의 ‘석유가 흐르는 땅’에 30년 동안 드리워진 어둠을 걷어내려는 우리의 노력을 지지해주어야 해. 그것이 없다면 상황은 절대 바뀔 수 없을 테니까!
그런 노력은 이라크 사람들(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라크 아랍인들 - 옮긴이)에게도 도움이 될 것임이 분명한데도, 너는 너의 땅에서 (이라크 아랍인들에게 - 옮긴이) ‘불쾌한 침입자’로 대접받으면서 살고 있겠지. 나는 네가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를 보장해주는 새로운 정부를 가질 권리가 있다고 확신한단다.
‘카와’야. 가까운 미래에 오게 될 새로운 이라크를, 어느 따스한 오후에 우리 정원에 있는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평화롭게 누워 있는 네 모습을 상상해보거라. 카와야, 우리 어머니가 키워오신 정원의 꽃냄새는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겠지?
내 어린 시절의 눈물로 젖어 있는 풀잎들과 내 젊은 시절의 평화와 자유와 사랑에 대한 꿈을 증언하는 잔디들도 아직 황폐해지지 않았겠지?
― 하산(가명)/이라크 쿠르드인 난민
: 『한겨레 21』제 390호(서기 2002년 1월 3일)에 실린 독자 편지에서
(문법과 어법에 안 맞는 부분을 고치고 나서 실음)
*옮긴이의 말 : 후세인의 바스당 정권이 무너진 지 어느덧 1년이 지났습니다. 하산은 과연 고향에 돌아가서 카와를 만났을까요? 그는 기뻐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절망하고 있을까요? 이라크 뿐만 아니라 이란이나 시리아, 터키에도 수많은 하산들이 떠돌고 있을텐데 그들은 언제쯤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까요? 그걸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분노가 차오릅니다.
사랑하는 동생 ‘카와’에게 :
8년 전, 내가 너와 헤어질 때 나는 내 정든 고향과 어릴 적, 그리고 성인이 됐을 때의 꿈들을 버리고 떠날 수밖에 없었어. 그래, 요르단 국경으로 향하면서 나는 내 정든 도시(이라크 북부에 있는 쿠르드인 도시)를 완전히 버렸단다.
목적지가 어딘지 알 순 없었지만 단 한 가지, 내 가방속에 왕복이 아닌 편도 티켓이 들어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했지. 나는 그 도시를 벗어나는 차 안에서 (내가 가는 곳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매일매일 가고 있다는 내용인) 노래를 부르면서 너의 밝은 눈동자에 했던 내 마지막 입맞춤을, 한살짜리 귀여운 얼굴에 떨어졌던 내 따뜻한 눈물을 떠올렸어.
내가 너와 함께 있을 때 텔레비전 뉴스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뻔하고 내용없는 사건들을 매일같이 말하면서도, 서기 1991년 이라크군이 우리집을 공격했을 때 네 누나가 입었던 상처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더구나.
언론매체들은 우리 젊은이들(쿠르드족 출신인 10~30대들 - 옮긴이)이 보안군에 의해 끌려가서 다시는 식구들한테로 돌아가지 못했다는 사실은 다루지 않더구나. 그들의 식구들은 여전히 희망을 품고 기다리고 있을까? 그럴 거야!
넌 그때 겨우 한살이라서 내가 극도로 공포에 떨면서 떠났다는 사실은 몰랐을 거야. 나는 그때 죽거나 식구들이 죽는 걸 보게 되는 두렵고 슬픈 상황이 일어나는 걸 바라지 않았단다. 그런 생각은 악몽처럼 나를 따라다녔고, 지금도 너의 ‘조용한’ 땅에서 진행중인 시나리오지.
나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너와 너의 이웃들이 혹독한 상황에서 살고 있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단지 살아남는 것이 너의 가장 큰 바램이라는 것을, 심지어 너의 가장 기본적인 인권마저도 매일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네가 내일에 대한 희망을 잃고 두개의 무자비한 ‘망치’아래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단다.
한 망치는 이라크 보안군과 그들의 무기고, 다른 한 망치는 서방의 경제 제재와 확전 위협이야. 국제사회는 우리의 ‘석유가 흐르는 땅’에 30년 동안 드리워진 어둠을 걷어내려는 우리의 노력을 지지해주어야 해. 그것이 없다면 상황은 절대 바뀔 수 없을 테니까!
그런 노력은 이라크 사람들(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라크 아랍인들 - 옮긴이)에게도 도움이 될 것임이 분명한데도, 너는 너의 땅에서 (이라크 아랍인들에게 - 옮긴이) ‘불쾌한 침입자’로 대접받으면서 살고 있겠지. 나는 네가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를 보장해주는 새로운 정부를 가질 권리가 있다고 확신한단다.
‘카와’야. 가까운 미래에 오게 될 새로운 이라크를, 어느 따스한 오후에 우리 정원에 있는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평화롭게 누워 있는 네 모습을 상상해보거라. 카와야, 우리 어머니가 키워오신 정원의 꽃냄새는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겠지?
내 어린 시절의 눈물로 젖어 있는 풀잎들과 내 젊은 시절의 평화와 자유와 사랑에 대한 꿈을 증언하는 잔디들도 아직 황폐해지지 않았겠지?
― 하산(가명)/이라크 쿠르드인 난민
: 『한겨레 21』제 390호(서기 2002년 1월 3일)에 실린 독자 편지에서
(문법과 어법에 안 맞는 부분을 고치고 나서 실음)
*옮긴이의 말 : 후세인의 바스당 정권이 무너진 지 어느덧 1년이 지났습니다. 하산은 과연 고향에 돌아가서 카와를 만났을까요? 그는 기뻐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절망하고 있을까요? 이라크 뿐만 아니라 이란이나 시리아, 터키에도 수많은 하산들이 떠돌고 있을텐데 그들은 언제쯤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까요? 그걸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분노가 차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