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민족이나 모든 집단이 국가를 가져야 되는 것은 아닙니다.
최소한 자기가 속한 국가나 집단 속에서 민주적으로 살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쿠르드는 수천만의 인구가 터키,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지에 흩어져 살면서 억압 받고, 차별 받고, 학살 당했으며 오늘날에도 독립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쿠르드의 조국 쿠르디스탄을 갖기 위해서...
얼마전에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이란 영화를 봤습니다.
이란쪽에 사는 쿠르드 아이들이 나왔습니다.
어머니는 막내를 놓다가 죽고 아버지는 이라크와의 국경을 넘어 돈벌이를 나갔다가 죽고 남은 아이들이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아버지의 총’은 이라크쪽에 사는 아이가 주인공입니다.
이라크에 억압당하고, 소련은 이라크를 지원하고, 믿었던 미국한테도 배신당하고..
아무도 쿠르드를 도와 주지 않습니다.
오직 쿠르드 스스로 싸우거나 억눌린채 조용히 살던지 아니면 난민촌을 떠돌던지...
오죽했으면 이라크인들이 부순 집을 새로 지으면서 아이의 아버지는 설계사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자네 설계도에는 결정적으로 문이 너무 많아. 창문들을 줄여야 해. 어느 각도에서 날아오는 총알이라도 다 막을 수 있어야 하니까. 자네 설계는 이것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어. 그리고 벽을 생각해 보게. 난 미사일에도 견뎌 낼 수 있는 벽을 원한다네.”
지금도 터키쪽 산악에 있는 쿠르드인들은 터키에 대항해 총을 들고 있고,
이스라엘은 이란쪽에 있는 쿠르드를 이용해 뭔가 분란을 일으키려고 하고 있고,
이라크쪽 쿠르드는 미국의 이라크 침략을 기회로 독립을 하기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이 책에도 ‘바르자니장군’이 나오는데 지금 이라크쪽 쿠르드 진영의 KDP(쿠르드민주당) 우두머리가 바로 아버지의 빽을 업고 권력을 쥐고 있는 아들 바르자니입니다.
쿠르드인이 쿠르드 말을 썼다고 감옥에 가야 한다면 그게 어디 사람사는 세상입니까?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학교에 공부하고 있는데 이스라엘 탱크가 학교로 쳐들어 와서 총격을 해댄다면 그게 어디 사람사는 세상입니까?
아체인들이 사는 여러개의 마을에 남자들이라고는 모두 인도네시아 군인들에게 죽거나 인도네시아에 맞서 싸움을 하러 떠나고 여자들만 남아 있다면 그게 어디 사람사는 세상입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운동의 근본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이 자유와 해방을 되찾는 일일 겁니다.
그런데 어느새 한국 운동의 한 모습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과 함께 하기 보다 민족과 국가의 틀안에 앉아 습관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지하철 노조, 어렵다구요?
조종사 노조, 어렵다구요?
현대자동차 노조, 어렵다구요?
노동자는 하나다라구요?
연대하자구요?
신자유주의에 맞서 단결 투쟁하자구요?
민족의 생존이 위기에 처해 있으니 열심히 투쟁하자구요?
다 맞는 말씀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민중의 처지가 어디 그리 쉽기만 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연대를 얘기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좀 더 형편 나은 쪽이 영 형편이 어려운 쪽을 향해 연대하자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기 필요할 때만 연대고 남 필요할 때는 모른채 하는 운동이라면
그 '조직'은 오래오래 남을지 모르나 ‘운동’으로서의 의미는 얼마가지 못할 겁니다.
세계화 시대라면 세계화 시대에 맞는 국제적 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운동이란 것이 적당히 모여서, 적당히 즐기고, 적당히 인맥 쌓고, 적당히 좋은 일하면서, 꽤 괜찮은 명예를 얻는 라이온스클럽이 되지 않으려면 습관적으로 부르짖는 억압과 탄압이 아니라
정말 우리가 보지 못했고 생각지 못했던 고통 속에 사는 사람들이 없는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자기 자동차 몰고 다니면서 뒷풀이 술상에는 먹을 것이 넘쳐나는 활동가들이 어렵다고만 하고 주위를 둘러보지 않으려 한다면
오늘도 목숨을 걸고 먹을 것을 찾기 위해 헤매는 수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호주제 폐지만 중요하다고 하고 물을 얻기 위해 강간의 위협을 무릎써야 하는 수단 여성들을 외면한다면 여성성이란 것은 어디에 있는 겁니까?
어느새 몇몇 활동가들은 가난하고 힘들었지만 아름다웠던 영혼을 조금씩 잃어가면서 습관적인 운동과 생활의 편안함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닙니까?
왜 운동을 하려 했고 하고 있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제대로 한번 사는 건지를 다시 생각합니다.
맑게 푸르러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가을 하늘 아래서...
나도걱정
미니
답답하다기 보다
뭐 그냥 그렇다는 거죠.
이제 좀 바뀌어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