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
원래 전번 팔레스타인의 구매 거부 운동 기사를 보고 번역한 후에 이 작은 쪽글 하나 올리려고 했는데, 마침 반다님께서 제 글에 정착민이란 말 대신 점령민이란 말을 쓰신다는 말을 듣고 제 원래 쪽글에 약간 추가해서 그냥 제 의견 하나 올려봅니다.
<제가 원래 쓴 글>
번역을 하면서 언어의 애매성과 번역이라는게 얼마나 정치적이라는 것인지를
깨닫는다. 또 번역이라는 것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것들이 달라질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이질적 언어들간의 소통법으로 또 다른 방법인 통역의 중요성은 내가 예전에 종이신문으로 읽고 스크랩도 해둔 이 기사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0&aid=0000306098
비롯해서 이미 여러 매체들이 다뤘지만, 나는 내가 최근 번역을 하면서 느꼈던 오역의 실수가 아닌 비슷한 표현의 선택으로 인한 갈등과 선택의 기로, 그리고 그 기로들의 종착지에 대한 함의에 대해서 써볼까 한다.
http://www.guardian.co.uk/world/2010/jun/29/palestinian-boycott-israeli-settlement-goods 에 있는 기사에 대한 요약문인데. 여기서 몇몇 문단들을 번역한 것에 대한 감상을 적어보고 싶다.
"More than half the 5,000-6,000 employees in the Barkan zone are Palestinian, employed under Israeli labour legislation and entitled to the Israeli minimum wage of around $1,000 a month – considerably more than the average wage in the West Bank economy."
을
"바르칸 상업 지역의 5,000-6,000명의 노동자들 중에서 약 절반은 이스라엘 근로법에 의거해 고용된 팔레스타인인들이며 이들은 이스라엘의 최소임금인 한달에 약 1,000 미국 달러를 받게 된다."
처음에는 굵게 강조된 부분을 "근로법에 의거해 고용된 팔레스타인인들"이 아니라 "근로법의 보호를 받는 팔레스타인인들"이라고 쓰려고 했었다. 왜냐하면 문맥상으로 보면 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은 근로법에 의거하기는 커녕 최소 임금도 못 받는 불법 노동자들인 반면에 바르칸 상업 지구에 있는 5,000-6,000명의 노동자들은 "합법" 노동자라고 대비시켜놨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보호를 받는"으로 번역하면 나는 분명히 있지 않은 현실을 만들어낼수 있다. 단순히 근로법에 의거해서 일한다고 그에 합당한 보호를 받는다고 추론할 수 있는 근거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민주적 선거로 당선된 팔레스타인 의회 의원 4명의 예수살렘 거주 권한을 없애고 내쫓으려는 이스라엘 정부의 행동에 비춰봤을때 보호를 안받을 확률이 크다고 본다. 하지만 내가 보호를 받는다고 번역했으면 그건 현실에 대한 왜곡일 가능성이 크다.
내가 번역한 또 다른 문단을 보면....
"According to the Manufacturers Association of Israel, some 22,000 Palestinians are employed by settlement businesses – in construction, agriculture, manufacturing and service industries."
을
"이스라엘 제조사 협회에 따르면 약 22,000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정착촌 관련 기업들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은 건설, 농경업, 제조업, 서비스업 등의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로 번역했다.
처음에는 "기업들에 일하고 있다"가 아니라 "고용된 상태다"라고 번역하려고 했다. 하지만 여기 22,000명이라는 것이 불법 노동자들까지 포함한 수치인지, 합법 노동자들인지는 모른다. 만약에 내가 "고용된 상태"라고 하면 "불법 고용된 상태"라고 번역하지 않는 이상, 내 번역문을 읽는 사람들은 아마 이 22,000명이 합법적으로 고용되어 있는 상태라고 생각할 것이다. 고용되어 있거나 일하고 있거나 비슷한 표현이지만, 내가 어떤 표현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수천명의 불법 노동자들이 있을수도 있고, 없을수도 있다 (약간 보드리야르 식으로 말한거긴 하지만).
나는 신을 믿지는 않지만, 아르메니아에는 번역의 신이 있다고 한다. 나는 그런 신이 있다면 기도할 만하다고 생각할때가 있다. 오늘도 모든 것을 포괄할 수 있는 번역을 하게 해달라고.
반다씨가 정착민이라는 말 대신 점령민이라는 말을 쓰신다고 하셨죠? 제가 뭔가를 더 쓰기 전에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은건 저도 당연히 정착민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의 정당한 땅에 대한 권리를 빼앗고 점령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착민들을 점령민들이라고 표현하면 개인적으로 몇가지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실제 점령을 목격하신 반다씨가 저보다 훨씬 더 잘 알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제가 생각하는 문제점들이 뭔지 감히 한번 적어봅니다.
일단 작은 문제점부터 시작하면, 모든 정착민들이 점령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정착민들의 입장은 자기들도 팔레스타인인들과 이스라엘의 폭력적인 국가 정책의 피해자들이며, 강제이주나 마찬가지인 이주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팔레스타인 땅에 살 생각도 없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에 적극적으로 반대해주고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정착민들도 있습니다. 점령민이라는 말을 쓰면 정착민이되 점령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포함을 못 시키죠.
다음 문제점은 앞의 말과 모순된 말일수도 있지만 엄연히 따지면 이스라엘 국민의 대다수는 점령민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적극적으로 점령을 지지하는 극우파 정착민 단체 회원이든, 아니면 저희가 뒷풀이때 말했든 점령이고 팔레스타인인들이고 뭐고 아들의 바 미츠바에만 관심있는 유대교 랍비든 이스라엘 국민 대다수는 점령민들입니다. 하지만 점령민들이라는 말을 정착촌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문맥에 적용하면 이 점이 희릿해집니다.
이런 문제는 제가 번역을 할 경우 더 붉어집니다. 만약에 정착민도 점령민이라면, 그러면 정착촌에 안살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을 악마화시키고 강력하게 억압하는 무리들을 뭐라고 해야하는 거죠? 점령민들보다 더 강렬한 말을 써야겠죠. 정착민들 중에선 제가 말했듯이 점령에 반대하는 이들도 있고, 또 별다른 생각 없이 국가에서 거기다가 터를 잡아라고 했기에 터를 잡은 사람들도 있겠죠.
그리고 개인적으로 분석했을때 유대인들이나 시온주의자들 빼고는 세계 어디에서도 이스라엘의 정착민들이 사전 그대로 순수하게 어떤 땅에 정착을 하게 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 같습니다. 만약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정착 = 점령이라는 도식을 충분히 설명을 해주면 되는 거지, 정착민을 대신해서 점령민이라는 용어를 바꿔서 쓸 필요는 없는거 같습니다. 제가 봤을때는 윗 도식을 설명해줌으로서 얻는 효과가 정착민 대신 점령민을 씀으로서 발생할것으로 생각되는 문제점보다 훨씬 더 큰 거 같습니다.
제 생각중에 이건 틀렸다고 생각되는 있으시면, 말씀해주면 진심으로 감사하겠습니다. 저도 겸손하게 배우는 입장이고 싶네요.
반다
좋은 의제를 던져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역시 번역을 많이(?) 하시는 분이라 언어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대도무문 번역에 대한 기사는 읽다가 빵터졌습니다ㅎㅎ
점령촌-점령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건 팔연대에서 전에 <라피끄>라는 자료집을 만들면서 결정했던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점령촌-점령민이라고 번역했을 때 이스라엘이 서안지구 등에 점령촌을 세우는 의도가 좀더 잘 드러나는 표현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런데 위에 말씀하신 것 처럼 점령민이라는 단어로 번역함으로서 발생하는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까지는 그때 우리가 토론하고 그럴때 미처 고려하지 못한 부분들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기억력이 워낙 나빠서 겨우 3-4년 전 일인데도 그 당시 팔연대에서 사람들과 토론하고 결정했던 내용들이 다 세세하게는 기억이 잘 안나요--;;;;;
말의 정치성에 대해 좀더 섬세하게 고민해야 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해준 글이었습니다.
팔연대에서 이 주제만을 놓고 한번 진지하게 토론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 자리에 함께 하신다면 더욱 좋구요~~~~
저희가 고립장벽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이것도 점령민처럼 우리가 미처 생각치 못했던 영향이 발생할까요?
좀 구체적으로 보다 논의할 수 있는 덧글을 쓰고 싶었는데, 머리가 먹통이네요.... 아쉽--;;;;; 저도 좀더 고민해 볼께요~~
앞으로도 이런 이야기들 많이 던져주세요.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선생님 :)
kasak ya watan
뭘 선생님까지에요. 뎡야핑님을 비롯해서 여러 사람들이 비웃겠는데요 흐흐.
대도무문은 저도 웃었어요. 김영삼 꼬봉으로서 박진의 모습도 웃겼고요 흐흐흐. 그런데 솔직히 박진이 처음에 했던 통역도 못 알아들을만한 말이 전혀 아닌데, 제 생각엔 클린턴이 righteousness라는 개념 자체를 잘 이해 못해서 이해 못한거 같아요 하하하.
저도 진심으로 의견 감사합니다 :) 미래에 이거에 대해서 또 얘기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뎡야핑
저는 이스라엘 국민 대다수가 점령민이라고 생각 안 합니다. 이스라엘 국가 인정 여부와 별도로 이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땅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인들의 삶은 기정사실화되었고, 그들을 점령민으로 규정하고 그 땅에서 떠나라는 건 강제이주하라는 거고, 그에는 단호히 반대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점령촌'이라고 지칭하는 대상은 성격이 좀 다릅니다. 뭐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애초에 생겨나길 국제법상 불법적인 점령을 통해서였다는 건 명확한 사실이죠. 하지만 그 뒤로 몇 세대가 지나면서 이제는 떠나라고 할 수 없게 되었죠. 그러나 점령촌은 현재 진행 중인 사건으로, 점령촌 건설을 막고 당장 그 땅을 떠나라!고 요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점령민 중에 강제이주당했거나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만나보거나 특별히 얘기를 들은 적은 없지만, 당연히 있겠지요.(이스라엘 내에서 활동하는 그룹들에 대해서는 대강이나마 알고 있습니다. 점령촌에서 활동하는 그룹은 전혀 들어본 일이 없구요) 하지만 그들의 의지가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상태가 그들을 규정합니다. 현재진행형의 점령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들의 노동, 구매, 삶이 점령촌의 확장을 만들고 있다면 그들은 점령민임에 분명합니다.
그리고 운동하는 입장에서 만나본 수많은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하는 줄 모르는 경우도 많고, 정착촌이란 걸 짓고 있는 줄 모르는 경우는 더 많습니다. 점령촌이라고 쓰는 것보다 정착촌이 곧 점령촌이 되는 맥락을 설명하는 게 나을 것이라는 말씀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일일이 대면하고 설명해 줄 수 없는 이상, 한 번 읽고 스쳐지나갈 정착촌이라는 말보다는 불편하고 낯선, 그래서 신경 쓰이는 점령촌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그래서 한 번이라도 의구심을 가지고 생각해 볼 수 있게 널리 쓰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kasak ya watan
역사적인, 상황적인 문맥 설명하는게 더 낫다는 것에 동의해주신다니 다행이네요 :) 점령촌이라고 표현하는게 제가 말했듯이 효과가 크겠죠.억압적인 상황, 그리고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에 있어서 정착이라는 행위의 비정상성을 바로 표현하는 것. 제가 봤을때는 그로써 얻는 효과보다는 여러 의미들을 잃는 효과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정착촌에 사는 정착민이면서 점령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긴 있습니다.그 기사가 지금 어디있는지 모르겠는데. 그 기사는 심지어 그들이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을 해결하는데 "희망"이 될수도 있다고 썼죠. 제가 썼듯이, 그들의 입장은 (제가 지지하는 입장이 아니라 그들의 입장) 그들도 팔레스타인인들과 마찬가지로 국가 정책의 피해자라는 것입니다. 또 이 중간의 입장인 정착민들도 있습니다. 중간 입장도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여기가 정착촌인 걸 알았으면 애당초에 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정착촌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렇게 여러 부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전략 (그게 정착촌 완전 철거든, 타협적 공존이든)을 펼쳐야 할것입니다. 팔레스타인이고 정착촌이고 뭐고 아무것도 인지 못하고 평생을 살아가는 정통 유대교에 심취한 이스라엘인인들도 많습니다. 이 기사에 나오죠. http://www.nytimes.com/2009/07/27/world/middleeast/27settlers.html?pagewanted=1&_r=1
참고로 영어에서도 점령자라는 의미의 occupier 혹은 점령하는 권력(자)들을 뜻하는 occupying power라는 말을 쓰는데, 이 말은 보통 이스라엘 정부 및 국가라는 의미로 쓰이고, 보통은 이스라엘 국민들을 포함하지는 않습니다 (즉 정착민들도 제외하죠). 뎡야핑씨가 이스라엘 국민들 대다수가 점령민들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면 정부와 국가들을 제외한 점령민들을 말하는 occupying population 혹은 occupying people이라는 말은 못 쓰게 됩니다.
그러므로 제가 만약에 한국어에서 영어로 번역을 해도 한국의 팔레스타인연대에서 만약에 정착민 대신 점령민이라는 말을 쓰면 약간의 문제가 있습니다. 영어권 사람들이 occupier, occupying power를 사용하는 용도와 한국의 팔레스타인연대에서 쓰는 정착촌에 점령민이라는 용도가 다르기 때문이죠. 물론 영어는 명사를 꾸미는 방법들이 잘 발달되어 있어서 occupying settlers 혹은 occupying settlement 혹은 settlers, who are occupiers 라고 쓰면 되기는 한데, 그렇게 하면 약간 동어 반복의 느낌이 듭니다. 상황을 아는 사람들은 settlers = occupiers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죠. 또한 무엇보다도 앞서 제시한 세 가지 표현을 표현을 쓴것에 정당성을 충분히 설명해줘야되는 글쓴이의 의무가 발생하죠.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