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릴라란 하나의 전술적인 의미일 것입니다.
예기치 못한 때와 장소에서 적을 급습, 후방을 교란시키고 후퇴한다는.
체 게바라, 게릴라였죠. 잘알다시피.
그는 총을 들었고,
그 총으로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 딸의 목숨을 앗아갔겠죠.
일본 적군파인 경우, 산악지형이 깊지않고 은폐물이 란게 도시밖에 없었기에 일본내에
서는 도시게릴라 전술(소위 테러라고 하죠)과 해외 혁명군들을 지원하는 방식이었다
고 합니다.스탈린주의자들이 많았다던 일본적군파는 그 과격한 방식때문에 민중들의
지지를 잃어버림으로서 전체 운동진영에 상당한 곤란함을 안겨 주었다고도 합니다만,
당시(68을 전후한) 일본 영화들은 내용에서부터 형식까지 혁명적인-부르조와적인 미학
과 윤리를 전복시키는-작업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 적군파에 대한 영화도 아마 그런 영화들의 한편이 아닌가 하는.
아마도 책상머리에서 탁상공론을 하는 지식인들에게 메세지를 전달하려는(기승전결이
없고 반복구조인것으로 보아 영화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전복을 시도하려는 영화적 실
험이 아니였을까 하는)의도라고 추측됩니다.
아마 그작가 자신은 자신의 카메라를 게릴라들의 총과 같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죠.
어쨋거나 그 영화든 게릴라전이든 투쟁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구요.
평화라든지 윤리라든지 이런 것들이 단순한'이미지'의 차원이 아니고 더 깊이 고민해야
될부분이 아니가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기치 못한 때와 장소에서 적을 급습, 후방을 교란시키고 후퇴한다는.
체 게바라, 게릴라였죠. 잘알다시피.
그는 총을 들었고,
그 총으로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 딸의 목숨을 앗아갔겠죠.
일본 적군파인 경우, 산악지형이 깊지않고 은폐물이 란게 도시밖에 없었기에 일본내에
서는 도시게릴라 전술(소위 테러라고 하죠)과 해외 혁명군들을 지원하는 방식이었다
고 합니다.스탈린주의자들이 많았다던 일본적군파는 그 과격한 방식때문에 민중들의
지지를 잃어버림으로서 전체 운동진영에 상당한 곤란함을 안겨 주었다고도 합니다만,
당시(68을 전후한) 일본 영화들은 내용에서부터 형식까지 혁명적인-부르조와적인 미학
과 윤리를 전복시키는-작업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 적군파에 대한 영화도 아마 그런 영화들의 한편이 아닌가 하는.
아마도 책상머리에서 탁상공론을 하는 지식인들에게 메세지를 전달하려는(기승전결이
없고 반복구조인것으로 보아 영화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전복을 시도하려는 영화적 실
험이 아니였을까 하는)의도라고 추측됩니다.
아마 그작가 자신은 자신의 카메라를 게릴라들의 총과 같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죠.
어쨋거나 그 영화든 게릴라전이든 투쟁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구요.
평화라든지 윤리라든지 이런 것들이 단순한'이미지'의 차원이 아니고 더 깊이 고민해야
될부분이 아니가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