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호주제가 폐지되었습니다. 호주제가 없어지면 짐승과 다름 없느니 하는 황당한 주장을 뒤로 하고 폐지되었으니 참으로 잘된 일입니다. 우리 엄마와 제가 같이 살면서도 ‘가족’이 아니라 ‘동거인’ 밖에는 될 수 없었던 황당함이란...
그리고 오늘 아침 [한겨레]에 실린 사진을 보았습니다. 사진에는 호주제 폐지를 요구하던 사람들이 손을 들고 만세를 부르는 장면 아래에 ‘......지은희 전 여성부 장관 등 여성계 인사들이 기뻐하며 만세를 외치고 있다’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이 사진을 보면서 기쁜 마음과 착잡한 마음이 함께 듭니다. 기쁜 이유야 당연하고 착잡한 이유는...
지은희, 이 사람이 누구입니까? 제가 자세한 개인사까지는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여성단체연합’인가하는 단체의 대표를 했고, 노무현 정권에서 여성부 ‘장관’을 하면서 침략전쟁에 침묵 또는 동조, 협력 했던 인물 아닌가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입니다. 여성을 위한다는 여성부 장관이 여성과 그의 이웃을 무참히 죽이는 침략 전쟁에 침묵 또는 동조, 협력 하다니.
그러고 보면 2004년에는 운동이 노무현 정권을 두 번 살렸습니다. 한번은 탄핵 때 운동단체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살렸고, 또 한번은 파병과 관련해서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 많은 운동단체들이 노무현 정권의 침략에 대한 정치적 부담을 상당 부분 덜어 주었죠.
‘파병은 반대한다 그러나 노무현이 무슨 죄냐’식의 태도도 모자라서 노무현을 지지하는 세력과 손을 잡고 파병반대 운동을 해야 한다는 민언련(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최민희 사무총장의 말은 저를 또 얼마나 황당하게 만들었던지. 그 분이 그것도 모자라 침략 전쟁에 적극 나서며 단식과 같은 정치 쇼(임종석)를 서슴지 않는 그들을 두고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재야나 학생운동권 출신이 70%인데, 이들이 실패하면 우리사회가 민주화운동의 절대적 도덕성을 가진 대체세력을 어디서 만들어낼 수 있을까. 열린우리당이 그래서 중요하고 열린우리당의 성공은 우리나라의 성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시민의신문과의 인터뷰 가운데)라고까지 하실 때는 그저 ‘대단하십니다’라는 말 밖에는 안 나옵니다.
앞에서 말한 이름들과 관계없이 이미 많은 운동단체들이 권력과 자본과 아주 가까워져 있습니다. 권력의 핵심에 우글거리는 그 인물들과 한솥밥을 같이 먹었고, 정신적 ․ 정치적 동질감을 가지고 있는 많은 이들이 운동단체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죠. 가깝다는 것은 꼭 지갑을 같이 나눈다는 것뿐만 아니라 ‘운동’의 정신보다 ‘권력’의 정신에 가깝다는 거죠. 정의를 위한 의리보다는 의리를 위한 정의를 수없이 만들어 내죠.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공과 사는 구별되지 않고,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 태도가 가능해지는 거죠.
운동의 생명은 ‘신의’입니다. 이것이 권력과 자본의 정치 놀음과의 가장 큰 차이입니다. 자본과 협력해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이 사과문을 신문에 내면서 최고의 품질로 보답하겠다는 식의 태도나 권력을 잡았다고 저 맘대로 조직을 쥐고 흔드려는 민주노동당 안의 한 세력이나 우습지도 않은 ‘386세대’의 동질감 때문인지 적당히 비판하고 적당히 지원해 주는 상생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일부 사회단체들이나 신의를 버리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신의가 없는 활동은 활동일 수는 있으나 ‘운동’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