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 조하, 팔레스타인 가자 출신
조하에게서 실제로 작품에 대한 설명을 줄줄 들었던 건 아니구요,
제가 개인적으로, 나홀로, 그냥 그동안 느꼈던 걸, 필터링 없이 마치 당연한 듯 마구마구 써넣었으니
참고하세요~
1. 2004년
조하는 생생한 색감으로 팔레스타인, 가자의 풍경을 그립니다
길에 앉아 골목에서 아이들이 노는 것을 바라보다가, 아이들과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놀이와 애들의 마음을 그렸습니다
조하의 그림에서 주로 나오는
동물들(당나귀, 닭, 특히 고양이), 자전거, 여러 개 달린 눈이나 다리, 등이 이때부터 그림에 등장합니다
저는 처음에, 이때의 그림들을 보고 조하에게 반했는데,
조하의 그림은 아이들에 대한 동정이나 연민으로 범벅이 되어있지 않아서였습니다
정면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표정이 때로는 멍하기도 하고, 총을 든 광경이 분명 점령상황 속의 생활을 보여주고 있는데도,
그걸 보여주는 그림에서는 그 아이들에게서 고난을 쥐어짜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한번 그 작가 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듯한 광경들, '내가 바라보고 있다'는 게 보이는 담담한 시선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만나본 조하도 그랬습니다
2004년, 조하는 팔레스타인 독립문화재단인 까딴 재단 A.M.Qattan에서 첫 전시회를 엽니다
빨랫줄에 그림과 옷과 인형들을 주렁주렁 걸어놓은 <빨랫줄 프로젝트>입니다
이후 까딴은 지금까지도 조하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2. 파리, 2005년
조하의 그림이 약간 바뀌죠
본바탕은 크게 안변한 거 같은데, 깊이와 성숙함이 물씬 물씬.
까딴의 후원으로 파리에서 생활하면서 그림을 그리는데,
파리의 광경과 사람들이 가자의 풍경과 분명 다르면서도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조하는 자기 얘기도 그렇고 그림에 대한 설명도 말로는 잘 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림 설명을 들어보려고 애썼지만,
말하는 조하도 지루하고 듣는 나도 지루하고, 결국 우리는 포기하고 술이나 마시자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반가운 자전거나 동물들이 있어서
어디서나 사람과 함께 있는 것들은 비슷하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조하는 이때 인형들로 가자의 아이들을 만드는데
이건 2011년 런던을 비롯한 유럽 전시의 주제가 되기도 합니다
3. 파리 2008년
이태리에 머물다가 다시 파리로 온 조하는, 그림체에 변화를 줍니다
조하는 정열적이고 인간적인 이태리 사람들을 좋아했는데(이태리는 우리와도 정서가 비슷하다고들 하죠), 차갑고 높이 있는 듯한 프랑스는 별로 좋아하진 않았습니다
조하는, 머물러서는 안된다, 면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안에서 끌어내며 변화하는 길 위에 서 있어야 하는 게 예술가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재료나 화법에서 다양한 시도를 합니다
점 칠한 듯한 스타일이 낯선 듯도 하지만
잘 보면 그 안에 물고기, 여러눈의 얼굴, 아이들 등등, 조하의 그것들이 숨어 있습니다
제가 조하를 만났던 게 이 때였는데,
저는 옛날 그림체를 더 좋아했기 때문에 조하를 따라다니면서 왜 바꾸었냐고 괴롭혔던 거 같습니다
조하는 웃으면서,
-예술가는 끊임없이 탐구하는 길 위에 있고, 그래야만 한다
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그림들에서는, 말 그대로 복잡하게 잡탕이 되어 있는 현실과 이상의 장을 보았습니다
이건 조하의 이전 작품들을 봤기 때문에 떠올랐던 거죠
팔레스타인, 특히 가자는 너무도 노골적인 폭력의 장이고, 대항해야 하는 적도 이겨내야 하는 현실도 명확한 편입니다
하지만 파리는 어땠을까요?
파리 뿐 아니라, 분쟁지역이 아니라는 지구상의 고요한 여러 지역들 속에
사실은 팔레스타인의 폭력을 언제든지 재현할 수 있는 사람들의 소소한 욕심, 질시, 폭력, 차별이 있지 않나요?
그리고 거꾸로 말하면, 그런 것들을 포함하여 일상과 현실이 만들어지고,
그 안에는 옳고 그름으로 나눌 수 없는 무수히 많은 나의 취향과 즐거움들과 그 결과로 생격나는 감정들이 있습니다
실제로 조하는 자유로운 영혼이었고,
파티와 커피와 술을 좋아하는 젊은이였습니다
가자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그런 자유를 유럽에서 맛볼 수 있었고
그게 조하의 숨통을 틔워주었죠
하지만 조하는 끊임없이 자신이 가자를 떠났다-버렸다,는 죄책감과, 그래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그림으로 갚음을 해야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이 현실과 저 현실, 이 선택과 저 선택, 이런 감정과 저런 감정,
그 모두가 진짜고 진심이고 자기 것이었던 거죠
4. 서울, 2009
한국작가들과 합동으로 연 <서울61+가자59>에 전시된 09년도 작품들입니다
사실 조하를 위해 시작되었던 이 전시회에, 조하는 오지 못합니다
망명자 신분으로 노르웨이에 있느라, 외국으로 여행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들은 조하 초기 작품들과 08년 프랑스에서의 변화가 섞여 나타났기 때문에
저는 개인적으로 매우 반갑고 기뻤습니다
이렇게 마음에 드는 작품들로 한국 전시를 할 수 있게 되어서 좋았고, 조하가 한국에 오지 못해서 말할 수 없이 서운했구요
'조하의 것들'인 나귀, 고양이, 아이들 등등이 좀 더 내면화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은, 그래서 그림만 보고서 노르웨이에 있는 조하의 상태가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었어요
지금 조하는 이태리에 머물고 있습니다
반감금 상태가 풀렸기 때문에, 이제는 어디든 여행할 수 있고 어디서든 전시회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현재 유럽에서 전시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조하가 철저하고 각잡힌 종류의 사람이 아니라서,
사방팔방에 여기 쪼끔 저기 쪼끔 자기 정보를 흘리고 다니는 편인데-_-;;
그래도 페이스북에 가면 조하의 소식을 들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