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폐허 된 가자지구 동편 난민촌 vs 서편 바닷가의 부유층
(가자=연합뉴스) 김선형 특파원 = 14일(현지시간) 오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가자 시내 알 아잘 대학교 정문 앞은 계절학기 수업을 마치고 나온 대학생들로 붐볐다.
삼삼오오 모인 대학생 무리는 우리나라 대학생 모습과 외견상 다를 바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들은 줄곧 남녀 두 성별로 따로 나뉘어 다녀 서로 간 내외를 강조하는 무슬림 신자임을 알 수 있게 했다.
차선 없는 왕복 6차선 너비의 도로에는 아우디와 벤츠 등 고급 승용차, 맨발로 남동생 손을 잡고 길을 건너는 소년, 척추와 갈비뼈를 드러낸 채 수레를 끄는 말들로 아수라장이었다.
담벼락과 교차로에 자살 폭탄 테러로 영웅 대접을 받는 무장 정파 하마스 대원의 벽화와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휴일인 금요일을 하루 앞두고 이날 오전부터 많은 이들은 가자 지구에 하나밖에 없는 항구로 향했다.
해변은 맨몸으로 바닷가에 뛰어든 남자 어린이들로 시끌벅적했다.
풍선 장수와 회당 2세켈(약 600원)이면 탈 수 있는 아동용 장난감 자동차를 중심으로 가족들이 몰렸다
항구 끝에서야 이곳이 2천 100명의 목숨을 앗아간 뒤 휴전한 지역이란 사실을 상기할 수 있었다.
길이 500m가 넘는 방파제 위에는 무너진 가옥이 즐비했다. 2008년부터 이스라엘과의 세 차례 전쟁으로 부서진 건물들을 트럭으로 옮겨온 것이다.
폐건축 자재 사이에서는 바다를 바라보며 데이트 중인 커플들도 볼 수 있었다.
◇ 전쟁 폐허 속 하루하루…난민의 삶
지난 13일 오후 가자시 동편 슈자에야는 2014년 50일 전쟁으로 쑥대밭이 된 동네다.
모하메드 알 파시스(57) 씨와 아들 11명은 3달 전부터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기구(UNRWA)의 지원 아래 난생처음 직접 집을 짓고 있었다.
2년 전 전쟁 때 방 4개 구조였던 보금자리는 폭삭 무너졌다.
그는 "집과 함께 가슴이 무너졌지만, 폭격 당시 집에 아무도 없어 인명피해가 없었던 것을 위안 삼고 있다"고 말했다.
UNRWA에 따르면 2014년 가자 전쟁으로 총 14만2천71가구가 파괴됐다
각국의 원조 덕에 이 가운데 8만1천740가구가 일부 수리비를, 약 1천 가구가 재건축비를 지원받았다.
4만9천300가구는 여전히 자금 부족으로 무너진 집을 방치한 채 난민촌을 전전하고 있다.
무인 모카트 UNRWA 기반정비 담당관은 "건축 자재가 하마스 군사시설을 만드는 데 사용될까 봐 이스라엘이 반입을 막기도 한다"고 어려움을 설명했다.
이어 "실제로 집을 건축하는데 자재와 돈을 사용했는지 확인하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중재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곳에서 3㎞ 거리에 있는 난민촌 알 투파에서는 올해 들어 세 번째인 식량 배급이 실시됐다.
투파는 아랍어로 과일 사과를 뜻한다. 전쟁 전 이곳은 사과 과수원이었다고 난민들은 설명했다.
1인당 하루 소득 1.74 달러(약 2천 원) 이하인 극빈층과 3.85달러(약 4천 300원) 이하인 절대 빈곤층은 유엔으로부터 1년에 4차례 식량 배급을 받는다.
이날 난민촌 분배센터에는 아들들과 연두색 식량 쿠폰을 들고나온 아버지들로 가득 찼다.
어린이들은 순서대로 쌀, 밀, 해바라기 씨, 설탕, 분말 우유, 렌틸콩, 병아리콩, 생선 통조림을 받고 나오며 마주친 기자에게 껌을 팔기도 했다.
아들 9명을 데리고 나온 아버지 바삼 알 가파리(43) 씨는 "보통 2달이면 배급분을 다 먹는다"라며 "돈을 벌고 싶어도 일이 없다.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 개인 수영장 펜션, 어린이 놀이방…특권층의 삶
이스라엘과의 갈등에 10년째 고립된 가자지구에도 특권층은 존재한다.
하마스 집권세력, 의사, 사업가 등 부유층이 사는 가자시 서쪽 동네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일반적인 가자지구와 모습이 달랐다.
14일 오전 가자시 서편에 있는 대형 슈퍼마켓 '케어포'(CareFor)의 규모에 놀란 기자에게 한 점원은 "무엇을 상상한 거냐. 우리도 자본주의 사회다"라고 말을 건넸다.
올해 문을 연 이 슈퍼마켓에는 한국산 수세미, 미국산 과자가 이스라엘 평균 소매 가격 10분의 1수준에 판매됐다.
진한 분홍색 차도르를 입은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신선한 올리브와 치즈를 카트에 담았다.
슈퍼마켓은 가자지구의 미혼 중년 여성 사업가 모나 가라이니 씨가 차린 다섯 번째 사업이다. 그는 가자지구 내 비즈니스 파트너들과 손을 잡고 호텔 2곳, 식당, 대형 어린이 놀이방을 지었다.
이 동네는 도로도 깔끔했다. 도로는 가자지구 내 무선통신 서비스를 독점한 '자왈'(Jawal)이 하마스의 세금 압박에 건설한 것이다.
경찰이 일방통행 도로에 거꾸로 들어온 승용차를 붙잡자 운전자는 경찰관에게 선뜻 100세켈(약 3만 원) 지폐를 손에 쥐여줬다.
카페에서 만난 여성 지브릴 씨는 기자에게 "남편이 의사"라며 "난민 지원 같은 건 받지 않는다"고 으스댔다.
'샬레'(오두막)라고 불리는 우리나라의 펜션과도 같은 피서 공간도 100여 개가 있는데 하룻밤 숙박비는 약 300세켈(약 9만 원)이다.
개별 수영장이 있는 오두막 숙박비는 1천 세켈(약 30만 원)에 달하기도 했다.
가자지구 정부 역할을 하는 하마스 내무부 직원들은 이스라엘과 이집트를 향한 땅굴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으며, 오히려 기자가 몰래 들어갈 경우 많은 벌금을 물어야 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한 공무원에게 하마스의 주 수입원을 묻자 "이집트와 연결된 라파 쪽 땅굴로 담배가 4세켈(1천177원)에 밀수된다"며 "이걸 17세켈(5천 원)에 재판매하는데 수익이 10세켈(약 3천 원)이 남는다"고 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