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제 <▩다시 상복(▩)을 입으렵니다.>라는 글에서
고(故) 김선일 씨를 "침략군(미군)을 위해 일하는 군납업체에 들어간 사람", "그것도 침략전쟁이 안 끝났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들어간 그 사람"이라고 소개했는데, 지금은 제가 너무 가혹한 말을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분은 올해 5월 말에 자기 동무(:친구)한테 보낸 편지에서 "성대야, 이곳에서 약자에 대한 마음도 어느 정도 몸으로 체득하게 됐고... 소름끼치는 미군의 만행을 담은 사진도 가지고 갈 꺼다. 결코 나는 미국인 특히 부시와 럼즈펠드, 미군의 만행을 잊지 못할 것 같다(<프레시안>2004년 6월 23일자 기사인 [고 김선일씨 "부시와 럼즈펠드의 만행 못 잊을 것"]에서)."고 했는데, 그런 분이 결국은 이라크 독립군에게 붙잡혀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지금은 김선일씨의 죽음이 슬프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분이 한 일을 '잘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네요. 그분은 인터뷰에서 "미군 캠프에 물품을 대기는 했지만 나는 미국 사람들과 군인들 부시를 싫어합니다."라고 하셨는데, 애초에 군납업체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셔야 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이라크에 아예 안 가셨다면 좋지 않았을까요? 아니 그 무엇보다도 시간을 쪼개 반전활동을 하거나, 그런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도우셔야 하지 않았을까요? '대학원 학비를 벌려고' 전쟁터로 가셨다는 것은 사람의 목숨보다 학위를 더 중요하게 여기신 것으로 여겨져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차라리 돈이 모자라면 '좀 더 있다가', '나중에' 대학원에 등록하시지, 왜 그러셨어요? 왜...?)
고(故) 김선일 씨를 "침략군(미군)을 위해 일하는 군납업체에 들어간 사람", "그것도 침략전쟁이 안 끝났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들어간 그 사람"이라고 소개했는데, 지금은 제가 너무 가혹한 말을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분은 올해 5월 말에 자기 동무(:친구)한테 보낸 편지에서 "성대야, 이곳에서 약자에 대한 마음도 어느 정도 몸으로 체득하게 됐고... 소름끼치는 미군의 만행을 담은 사진도 가지고 갈 꺼다. 결코 나는 미국인 특히 부시와 럼즈펠드, 미군의 만행을 잊지 못할 것 같다(<프레시안>2004년 6월 23일자 기사인 [고 김선일씨 "부시와 럼즈펠드의 만행 못 잊을 것"]에서)."고 했는데, 그런 분이 결국은 이라크 독립군에게 붙잡혀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지금은 김선일씨의 죽음이 슬프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분이 한 일을 '잘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네요. 그분은 인터뷰에서 "미군 캠프에 물품을 대기는 했지만 나는 미국 사람들과 군인들 부시를 싫어합니다."라고 하셨는데, 애초에 군납업체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셔야 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이라크에 아예 안 가셨다면 좋지 않았을까요? 아니 그 무엇보다도 시간을 쪼개 반전활동을 하거나, 그런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도우셔야 하지 않았을까요? '대학원 학비를 벌려고' 전쟁터로 가셨다는 것은 사람의 목숨보다 학위를 더 중요하게 여기신 것으로 여겨져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차라리 돈이 모자라면 '좀 더 있다가', '나중에' 대학원에 등록하시지, 왜 그러셨어요? 왜...?)
밍밍
▩조약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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