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아주 작고 구체적인 일상의 궤적들이 전체의 삶을 비춰준다. 그리고 그건 점령지 팔레스타인에서의 삶도 마찬가지다.
그곳에서는 모든 일을 신중하게 생각하고 계획해야 한다. 약속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검문소와 유태인 정착촌의 위치를 파악한 뒤 우회로를 찾아야 하며 즐거운 주말 나들이를 망치지 않기 위해서는 도둑처럼 조심스레 이동해야 한다. 오랫동안 계속된 점령으로 인해 팔레스타인 내부에까지 스며든 불신과 분노도 경계해야 한다.
2008년 조지 오웰상 수상자인 저자 라자 샤하다는 바로 그런 점령 아래서의 삶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보기 드문 팔레스타인 작가다. 자신이 살던 지역인 라말라가 이스라엘 점령 아래 놓이게 된 1967년부터 지금까지 일기를 써 온 그는 일기라는 형식을 통해 자신과 가족, 팔레스타인 이웃들이 겪는 트라우마에 용감하게 맞서 왔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그의 일기를 엮은 이 책 '점령을 살다'에는 분노와 사색이 공존하는 작가 자신의 일상 속 경험들이 담담한 필치로 기록돼 있다. 눈물이나 환상을 만들어내지 않는 그의 문장들은 오늘날 팔레스타인이 처한 상황을 더욱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세계의 화약고'가 중동의 팔레스타인이다. 뉴스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지는 폭탄 테러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양측의 밤낮 없는 분쟁으로 유혈 사태가 벌어지는 곳으로 팔레스타인을 그린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에 총을 든 투사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지역에서 날마다 폭격이 벌어지거나 화약 냄새가 진동하는 것도 아니다.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그 곳에도 다양한 직업과 이름, 얼굴과 성격을 가진 갑남을녀들이 살아간다. 그들 역시 우리와 똑같이 매일의 의식주를 꾸려가고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성실하게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