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을 보면서
얼마 전 중국 하얼빈을 방문하여 그곳 지하교회의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한 바 있다. 강연을 마친 후 오후 반나절 하얼빈 역사 2층의 사진 전시관을 관람하였다. 그곳에는 하얼빈역과 관련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중앙에 있는 안중근 의사의 약사와 사진들을 볼 수 있었다. 이국땅에서 목숨을 던진 안의사의 사진을 보면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그분의 기개와 충절에 대하여 경외심에 가까운 숙연함을 느낄 것이다. 중국 당국은 그동안 하얼빈에서 안의사와 관련된 어떠한 행사나 전시를 매우 꺼렸다고 한다. 그 이유는 일본과의 관계를 고려했기 때문이란다. 그럴 것이다. 우리 눈으로는 안의사가 애국자이지만, 일본에서 보면 테러리스트였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거의 일방적으로 공격하여 이제 침략 수준에 이르고 있다. 많은 레바논인들이 죽고 있다. 세계인들의 눈은 고사하더라고 우리는 “이스라엘”하면 독일의 히틀러에 의하여 게토에서 핍박을 당하고 600만명이 죽음을 당한 불쌍하고도 끈질긴 민족으로 이해하고 있다. 사실 600만이란 숫자는 유대인들에 의한 수치일 뿐 정확하지는 않다. 이 수치는 세계 유대인 공동체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세계에 공인화 시켰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유대인들에 의하여 60만명, 혹자는 100만명 가까이 되는 팔레스타인들과 아랍인들이 죽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현재 이스라엘 내에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이 거주하는 곳곳에 현대판 게토를 만들어 출입을 통제한다는 사실도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의 이와 같은 행위 뒤에는 세계 경찰국가(?)라고 할 수 있는 미국 행정부가 있다. 부시행정부는 이스라엘의 든든한 배경이 되고 있다. 미 행정부는 테러리스트를 척결한다는 자가당착적 사고에 노예가 되어, 어쩌면 명분화하여, 팔레스타인을 비롯하여 아랍을 마치 테러리스트의 온상으로 몰고 있다(혹자는 석유와 무기판매 등을 고려한 경제적 실리, 또는 유대인 로비스트와의 관계라고 말하기도 한다).
부시행정부는 북한과 시리아의 핵개발 의지에 대하여 세계 평화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보고 강력하게 제제와 압박을 가하고 있다. 물론 핵은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공식적으로 핵이 400기, 비공식적으로 600기를 가지고 있는 세계 최대의 핵보유국이란 사실에 대하여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보수라고 지칭하는 일부 우리 기독교의 지도자들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통하여 이라크에 복음이 들어갈 수 있는 기회라고 강변한 적이 있다. 신앙의 무지가 얼마나 무한대로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더 나아가 아랍인들은 테러리스트이며 성경의 배경이 되는 이스라엘은 친(親)기독교적 국가로 몰이해하는 경향이 짙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다면, 그 인간은 모두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동등한 존재이다. 폭력은 어떤 이유로서든지 정당화 될 수 없다.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런데도 매일 아침 성경을 읽고 기도한다는 부시가 테러리스트의 온상을 척결한다는 명분에서 이라크를 공격하여 많은 사람을 죽였고, 지금은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에 뒤를 봐주고 있다. 도대체 부시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지 궁금하다.
나를 포함한 기독교인들도 각성해야한다. 종교는 신뿐만 아니라 인간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한 집안에서 가장을 존중한다는 것은, 가장이 존중받아야할 대상이기도 하지만 다른 편에서 보면, 가장의 권위에 근거하여 가족 내 질서를 확립한다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질서는 조화와 협력 곧 평화로 정리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한 것이다. 여기서 좋았더라는 하나님의 만족이며 인간들의 평화인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워, 신(新) 십자군 전쟁이라 칭하며, 타인을 당연히 죽여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는 부시 행정부의 작태는 하나님 앞에서 오만불손하기 그지없다. 더 가슴 아픈 것은 우리나라의 일부 기독교인들도 심정적으로 부시의 행위가 정당하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레바논에서는 어린아이가 아무런 이유 없이 팔 다리가 잘리고 부모를 잃고 죽고 있다. 천벌(天罰)이 무섭지도 않는지.
우리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타인을 멸시하고 오만방자한 모습과 작태 또한 부시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겸손은 조화를 낳고 조화의 종착역은 평화이다. 평화가 그리운 시간이다. 요즈음처럼 기독교인으로서 부끄러운 적이 없다. 많이 반성한다.
얼마 전 중국 하얼빈을 방문하여 그곳 지하교회의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한 바 있다. 강연을 마친 후 오후 반나절 하얼빈 역사 2층의 사진 전시관을 관람하였다. 그곳에는 하얼빈역과 관련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중앙에 있는 안중근 의사의 약사와 사진들을 볼 수 있었다. 이국땅에서 목숨을 던진 안의사의 사진을 보면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그분의 기개와 충절에 대하여 경외심에 가까운 숙연함을 느낄 것이다. 중국 당국은 그동안 하얼빈에서 안의사와 관련된 어떠한 행사나 전시를 매우 꺼렸다고 한다. 그 이유는 일본과의 관계를 고려했기 때문이란다. 그럴 것이다. 우리 눈으로는 안의사가 애국자이지만, 일본에서 보면 테러리스트였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거의 일방적으로 공격하여 이제 침략 수준에 이르고 있다. 많은 레바논인들이 죽고 있다. 세계인들의 눈은 고사하더라고 우리는 “이스라엘”하면 독일의 히틀러에 의하여 게토에서 핍박을 당하고 600만명이 죽음을 당한 불쌍하고도 끈질긴 민족으로 이해하고 있다. 사실 600만이란 숫자는 유대인들에 의한 수치일 뿐 정확하지는 않다. 이 수치는 세계 유대인 공동체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세계에 공인화 시켰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유대인들에 의하여 60만명, 혹자는 100만명 가까이 되는 팔레스타인들과 아랍인들이 죽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현재 이스라엘 내에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이 거주하는 곳곳에 현대판 게토를 만들어 출입을 통제한다는 사실도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의 이와 같은 행위 뒤에는 세계 경찰국가(?)라고 할 수 있는 미국 행정부가 있다. 부시행정부는 이스라엘의 든든한 배경이 되고 있다. 미 행정부는 테러리스트를 척결한다는 자가당착적 사고에 노예가 되어, 어쩌면 명분화하여, 팔레스타인을 비롯하여 아랍을 마치 테러리스트의 온상으로 몰고 있다(혹자는 석유와 무기판매 등을 고려한 경제적 실리, 또는 유대인 로비스트와의 관계라고 말하기도 한다).
부시행정부는 북한과 시리아의 핵개발 의지에 대하여 세계 평화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보고 강력하게 제제와 압박을 가하고 있다. 물론 핵은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공식적으로 핵이 400기, 비공식적으로 600기를 가지고 있는 세계 최대의 핵보유국이란 사실에 대하여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보수라고 지칭하는 일부 우리 기독교의 지도자들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통하여 이라크에 복음이 들어갈 수 있는 기회라고 강변한 적이 있다. 신앙의 무지가 얼마나 무한대로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더 나아가 아랍인들은 테러리스트이며 성경의 배경이 되는 이스라엘은 친(親)기독교적 국가로 몰이해하는 경향이 짙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다면, 그 인간은 모두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동등한 존재이다. 폭력은 어떤 이유로서든지 정당화 될 수 없다.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런데도 매일 아침 성경을 읽고 기도한다는 부시가 테러리스트의 온상을 척결한다는 명분에서 이라크를 공격하여 많은 사람을 죽였고, 지금은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에 뒤를 봐주고 있다. 도대체 부시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지 궁금하다.
나를 포함한 기독교인들도 각성해야한다. 종교는 신뿐만 아니라 인간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한 집안에서 가장을 존중한다는 것은, 가장이 존중받아야할 대상이기도 하지만 다른 편에서 보면, 가장의 권위에 근거하여 가족 내 질서를 확립한다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질서는 조화와 협력 곧 평화로 정리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한 것이다. 여기서 좋았더라는 하나님의 만족이며 인간들의 평화인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워, 신(新) 십자군 전쟁이라 칭하며, 타인을 당연히 죽여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는 부시 행정부의 작태는 하나님 앞에서 오만불손하기 그지없다. 더 가슴 아픈 것은 우리나라의 일부 기독교인들도 심정적으로 부시의 행위가 정당하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레바논에서는 어린아이가 아무런 이유 없이 팔 다리가 잘리고 부모를 잃고 죽고 있다. 천벌(天罰)이 무섭지도 않는지.
우리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타인을 멸시하고 오만방자한 모습과 작태 또한 부시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겸손은 조화를 낳고 조화의 종착역은 평화이다. 평화가 그리운 시간이다. 요즈음처럼 기독교인으로서 부끄러운 적이 없다. 많이 반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