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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9월 28일, 팔레스타인 정책 싱크탱크 ‘알샤바카’ 웹사이트에 실린 수헤이르 다우드 교수의 Keeping Palestinian Women in Israel on the Economic Margins을 발췌 번역하고 설명을 덧붙였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에 들어선 나크바(아랍어로 대재앙) 이후 70년이 지났다. 이스라엘의 동예루살렘·서안지구·가자지구 군사점령은 51년이 되었다. 국제사회는 이 군사점령 당한 땅만을 ‘팔레스타인’이라고 인정하지만, 팔레스타인 민중은 이스라엘을 ‘48년 팔레스타인’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48년 팔레스타인에서 추방과 학살, 차별의 역사를 통과한 팔레스타인인은 현재 이스라엘 전체 인구의 20%를 점한다.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진 이 팔레스타인인들은 50개가 넘는 법규에 의해 노동, 교육, 거래 등 사회 전 영역에서 2등 시민으로 차별받고 있다.

나크바 이후 이스라엘의 노동시장에서 팔레스타인 여성을 배제하고 팔레스타인 공동체의 경제 발전을 저해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핵심 목표였다. 1948년 건국 당시 팔레스타인 선주민 인구가 더 많았던 이스라엘은 유대인 이민자를 공격적으로 유치했고, 팔레스타인 선주민의 집과 땅을 빼앗아 이들 이민자에게 제공했다.

이스라엘 건국 후 약 20년간 팔레스타인 선주민은 유대인과 달리 군사정부의 통치를 받았는데, 이 기간 동안 팔레스타인 여성 노동자는 특히 북쪽 지역의 팔레스타인인 마을에서 주로 청소노동자, 재단사로 일했다. 당시 팔레스타인인 마을은 일자리도 별로 없고 문맹률도 높았다.

1967년 이스라엘이 전쟁으로 동예루살렘·서안지구·가자지구를 군사점령한 뒤 이스라엘에 많은 자본과 투자·원조가 쏟아져 들어왔고, 이스라엘 경제는 근본적 변화를 겪었다. 이스라엘의 생활수준은 향상됐고 팔레스타인 여성은 유급 노동 시장에 진입하도록 강제돼, 여성 노동자는 가계에 기여하고 개선된 노동조건에서 일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해를 더하며 일자리의 안정성은 떨어졌다. 1990년대 소련 붕괴 후 백만 명의 유대계 러시아인이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팔레스타인 의사, 간호사 등 전문 직종은 유대 이민자로 대체되었다. 러시아에서 온 미숙련 노동자 특히 여성 노동자는 청소, 호텔, 공장 노동자로 취업했고 수십 년간 일한 팔레스타인 여성 노동자는 대량 해고당했다.

팔레스타인 사회에 신자유주의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오슬로 협정’의 체결 후, 기만적 평화의 분위기 속에 이스라엘은 주변 친미 아랍 국가와 우호적 관계를 맺고 투자를 시작했다. 특히 요르단과 이집트에 의류 공장을 세워, 90년대 중반에 섬유 산업에 종사하던 팔레스타인 여성 노동자는 10,700명에서 1,700명으로 줄어들었다. 게다가 태국, 터키 등에서 대규모로 이주 노동자를 받아들이기 시작해 팔레스타인 노동자의 일자리는 더욱 줄었다.

높아진 진학률, 여전한 실업률


1967년 전쟁 후 수 많은 팔레스타인인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이주했고 이로 인해 팔레스타인인 마을의 구조가 뿌리부터 바뀌었다. 이스라엘이 토지를 몰수하고 팔레스타인인을 값싼 노동력으로 만듦으로써 농업 기반의 전통적 생계 모델이 사라지고, 대가족은 해체되었다.

이런 변화는 팔레스타인 여성 교육 문제에 대한 태도와 같은 경제·사회적 관계 변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새로운 세대는 자유·사회정의·여성권리라는 개념에 더 개방적이었고 여성 교육은 훨씬 보편화 되었다. 또 고등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은 팔레스타인인의 대학 진학률은 군사통치가 끝나자 더 높아졌다.

대학을 졸업한 팔레스타인 여성은 특히 교육자와 간호사로 경력을 쌓기 시작했고, 이들의 수입은 가계에 부가적인, 어떨 때는 주된 소득원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여성 노동자는 법률, 의료, 예술, 영화, 공학 등 여러 분야로 진출했다.

하지만 아직도 팔레스타인 여성 노동이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취업 능력이 뛰어나도 교육 수준에 맞는 일자리가 잘 없다. 이들의 노동 참여율은 21% 정도로 세계에서도 손꼽히게 낮다. 1990년부터 2016년 사이 유대인 여성 노동자의 참여율이 47%에서 59%로 늘어난 데 비해(이는 미국의 56%보다도 높다), 팔레스타인 여성 노동자는 같은 기간 동안 거의 변동이 없다. 세계적으로 지난 수십 년간 여성 노동 참여율이 증가한 것과도 대비된다.

팔레스타인 여성 노동자에 대한 국가적 방해


고등 교육을 받는 여성이 늘어나는데도 노동 시장 진입이 어려운 것은 단순히 “팔레스타인의 문화”나 “이슬람”의 문제가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국가 자체의 조직적 방해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보안’이란 만능방패로 팔레스타인 인구의 시민권이나 고위직군 취업을 허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중앙은행과 같은 정부 기관은 팔레스타인인을 거의 고용하지 않는다. 성별, 인종, 종교를 이유로 한 고용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있지만 고용주는 히잡을 썼거나 히브리어 억양이 다르다는 둥의 명분으로 팔레스타인 여성 지원자를 떨어뜨린다.

또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마을의 도시계획, 대중교통, 산업 지구 발달과 같은 마을 개발을 거의 금지해 일자리 창출을 막는다. 때문에 이동 수단이 없어서 일자리를 차단당하기도 한다. 탁아시설도 없다시피 하다. 이스라엘의 아랍(팔레스타인·시리아) 지역의 정부 출연 탁아소는 총 25개지만, 유대인 지역에는 16,000개가 있다.

직업이 있어도 여성 노동자는 가부장제와 팔레스타인인 차별이란 이중 차별과 임금 격차에 시달린다. 법이야 동일 임금을 규정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의 모든 여성 노동자 임금은 남성 노동자의 85% 수준이고, 팔레스타인 남성 노동자는 유대인 남성 노동자 임금의 절반을 받는다. 물론 동일한 노동을 하는 경우이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여성 노동자는 70년간 그리고 지금도 점령, 신자유주의, 가부장제, 국가적 차별 정책 등 겹겹의 제약을 받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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