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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이슬람을 안을 수 있는가

by 올리브 posted Feb 01,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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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차도르 착용 문제 떠오르는 스위스… 유럽인과 무슬림의 충돌도 발생

유럽은 이슬람과의 ‘공존의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


요즘 스위스에는 직장 내 이슬람 여성의 차도르 착용 문제로 적잖은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스위스 제1의 유통업체인 ‘미그로’(Migro)에서 시작됐다. 이 회사의 제네바 지사장이 최근 관할 사업장 근로자들에게 “직장 내에서 어떠한 종교적 상징물도 착용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 이는 사실상 직장 내에서 이슬람 여성들의 차도르 착용 금지를 겨냥한 것이다. 이 유통업체의 경우 계산대에서 근무하는 종업원들 가운데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이슬람 여성들이 회사 안에서의 차도르 착용을 크게 제한받을 전망이다.


각 나라 취업시 차별 문제 우려


이 문제가 현지 스위스 언론들에 의해 공론화되면서 일각에서는 인종적·종교적 차별의 우려가 있다는 비판이 날카롭게 제기되고 있다. 그러자 회사쪽은 허겁지겁 “이번 조처는 제네바 지사에서 자체적으로 판단해 내린 결정이며, 최근 유럽 내 반이슬람 정서가 팽배한 상황에서 혹시라도 종업원들에게 가해질 수 있는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 취해진 안전 조처”라고 해명했다. 실제로 지난 11월2일 네덜란드의 테오 반 고흐 감독이 이슬람 사회의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를 촬영했다는 이유로 이슬람 근본주의 청년에게 잔혹하게 피살되는 일이 발생한 바 있다.

이 사건으로 최근 유럽 내에서는 반이슬람 정서가 전례 없이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사건 이후 불과 한주 동안에 반이슬람주의를 주장하는 청년들에 의해 네덜란드 내 이슬람 사원과 학교 20여곳이 파괴 및 방화됐다. 이에 다시 보복이라도 하듯이 같은 달 18일 벨기에에서는 영국계 유대인 청년이 유대교 회당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중 머리에 총상을 입고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와 같이 유럽 내 이슬람과의 갈등이 증폭되는 상황에서 불거진 이번 직장 내 이슬람 여성들의 차도르 착용 논란을 두고 스위스인들은 최근 유럽 내 이슬람과의 갈등이 대표적 다민족·다문화 국가인 스위스에도 확산되는 것이 아닌가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스위스 이민 2세대인 대학원생 리카르도(27)씨는 “스위스는 이민 2, 3세들의 국적 취득 조건을 완화하는 문제에 대한 국민투표를 수차례 부결하는 등 최근 수년간 경기 둔화로 외국인에 대한 시각이 점점 보수화되고 있다”며 “특히 그동안 이슬람인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취업 과정에서도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가까운 나라인 프랑스에서는 종업원 250명이 넘는 기업의 신입사원 모집시 사진과 이름을 넣지 않는 이력서를 받도록 입법화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이슬람인들의 취업시 차별 문제가 사회적 갈등을 증폭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직장 내 차도르 착용 금지 조처에 대해 스위스 내 다른 기업들은 아직은 상당히 조심스런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유통업체처럼 고객들과 직접 접촉하는 직원이 많은 회사들의 경우에는 차도르 착용 불허 문제를 이전부터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일단 여론에 대한 부담으로 이런 조처를 실제 시행하는 것은 다들 신중해하는 분위기이다.

스위스에서 두 번째로 많은 종업원인 5만여명을 고용하고 있는 스위스 우체국은 일반 사무 직원들은 물론 창구 직원들에게도 차도르 착용을 금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최근 밝혔으며, 스위스의 주요 은행 가운데 하나인 크레디은행쪽도 종교적인 상징물 착용에 대해 어떠한 조처도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공무원들의 경우에도 현재까지 특별한 제한 규정은 없으나, 취업 과정은 물론 근무 과정에서 종교적인 이유로 차별받는 일은 없을 것이며, 현재까지 차도르 착용을 허용해달라는 요구는 없었으나 만약 있을 경우에 문제 삼지는 않겠다는 것이 제네바 지방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그러나 공립 교육기관에 근무하는 교육자들에 한해서는 예전과 같이 종교적 상징물의 착용은 계속 금지할 예정이다. 교육 과정에서의 종교적 중립성은 계속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기 때문이다. 반면 학생의 경우에는 종전처럼 종교적 상징물 착용이 계속 자유롭게 허용될 예정이다. 이번 직장 내 이슬람 여성들의 차도르 착용은 유럽 사회가 현재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인 ‘정체성’ 문제로 귀결된다. 한편에서는 유럽 통합의 기치를 내세우면서 ‘다양성’에 기반한 ‘하나의 유럽’을 지향하고 있지만, 실제 유럽의 현실은 ‘다양성’의 한 측면에 ‘이질성’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 공장에서 재봉일을 하고 있는 무슬림 노동자. 직장 내 이슬람 여성의 차도르 착용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 Rex Peatures)

터키 가입은 왜 안 되나

과거 식민지 지배 이후에 유입된 아프리카 출신 흑인 이주민들과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해 받아들인 터키계 이슬람인들은, 유럽 내에서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측면에서 아직 백인 그리고 기독교라는 중심부에 대해 주변부로 남아 있다. 이는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 문제를 통해 다시 한번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터키 가입을 둘러싼 회원국들간의 논란 끝에 지난 12월17일 유럽연합이 터키 가입 회담을 개시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지만 프랑스, 독일 등 주요 회원국의 정부와 국민들이 터키 가입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표명하고 있어 결과를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들 국가가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견지하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터키의 인권 문제, 사이프러스 문제 등 때문이지만 사실은 터키가 ‘이슬람’ 국가라는 이유가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유럽 혹은 유럽연합이라는 정체성에서 ‘이슬람’이라는 단어가 아직은 유럽인들에게는 쉽게 공존할 수 없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유럽에 대한 성패는 이러한 유럽인들이 느끼는 ‘이질성’을 진실된 ‘다양성’으로 승화하는 문제에 달려 있다. 다민족 국가인 스위스인들은 물론, 최근 유럽통합의 샴페인 잔을 부딪친 25개국의 유럽 시민들은 유럽의 정체성 그리고 어우러져 함께 산다는 것에 대한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는 듯하다. 유럽인들이 ‘문명의 충돌’이 아닌 ‘문명의 공존’의 해법을 어떻게 찾아나갈지 주목된다.

출처 :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