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아랍

성추행의 축제 ‘수피 나이트’

by 올리브 posted Aug 12,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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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 “우리가 가진 것이라고는 천상의 약속뿐이구나.”

▣ 김남희/ 여행가 www.skywaywalker.com

소문은 사실이었다. 외국인 여자를 성추행하기 위해 ‘수피 나이트’(Sufi Night)에 오는 파키스탄 남자들이 많다는 이야기. 매주 목요일 밤 라호르의 사원에서 벌어지는 이슬람 신비주의 종파인 수피즘(Sufism) 의식. 음악과 춤을 통해 신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이미 연주는 시작된 뒤였고, 비좁은 장소에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 몇명인지 알 수도 없는 남자들의 손이 내 몸을 더듬고 지나갔다.

완벽하게 남성 주도로 돌아가는 사회

그건 끔찍한 경험이었다. 눈물이 솟고, 분노와 당혹감으로 어쩔 줄 모르는 상태가 한동안 지속됐다. 돌아나가고 싶었지만 다시 같은 일을 당할 게 두려워 그냥 주저앉아야 했다.

‘수피 나이트’는 드럼 연주로 시작됐다. 형제인 두 남자가 연주하는 드럼에는 쇳소리가 강하게 섞여 있어 듣기에 그리 편한 소리는 아니었다. 무대랄 것도 없는 연주자들 주변을 빽빽하게 둘러싼 파키스탄 남자들의 절반은 이미 넋이 나간 듯 보였다. 그건 음악을 통한 신과의 합일이라기보다는 약물에 의한 무너짐이었다.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마리화나나 하시시를 돌려가며 피우고 있었다. 약기운에 풀린 남자들의 눈은 연주자들에게가 아니라 나를 비롯한 외국인 여자들을 향하고 있었다.

그런 다음 트럼펫과 드럼의 합주가 이어졌다. 트럼펫 연주자의 실력은 뛰어났고, 무엇보다 그 자신이 연주를 즐기며 몰입하고 있었다. 그제야 몸과 마음이 조금씩 풀어졌다. 그가 연주하는 곡에 관중들은 열광적으로 추임새를 넣으며 호응하고 있었다. 중간중간 알라신의 이름이 외쳐지기도 했다. 연주는 세 남자들의 춤이 시작되면서 절정으로 치달았다. 테크노댄스를 연상시키는 격렬한 헤드뱅과 광적인 몰입의 분위기. 내림신을 받은 무당의 굿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 목요일 밤의 행사는 종교의 이름으로 공인된 탈출구, 해방구의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건 명백하게도 완벽한 남성들만의 문화였다. 그곳에 여성이라곤 스카프로 머리를 꼭꼭 가린 외국인 여행자들밖에 없었다.


△ 검은 옷과 스카프로 얼굴과 몸을 완전히 가린 파키스탄 여성이 가족과 함께 거리를 걷고 있다. 여성들은 어느 곳에서나 철저히 격리돼 있다. (사진/ 김남희)

파키스탄에 머무는 동안 그들의 친절과 호의에도 불구하고 내 가슴 한쪽에는 늘 불편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사회가 보여주는 성적(性的) 불균형 때문이었다. 파키스탄은 완벽하게 남성의 주도로 돌아가는 사회였다. 거리에서도, 상점에서도, 내가 만나는 이들은 남성이었고, 여성들은 철저하게 격리돼 있었다. 그리고 여행을 시작한 이후 한번도 겪지 않았던 성희롱을 두달 사이에 두번이나 겪는 동안 이슬람에 대해, 이슬람 국가의 남성들에 대해 어떤 고정관념이 내 안에 자리 잡아가는 걸 느껴야 했다. 내가 서구의 잣대, 특히 기독교 문명권에서 자란 이가 이슬람 문명권에 대해 갖는 생래적이고 본질적인 거부감에 빠진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여러 번 묻고는 했다. 지나가는 내가 들여다보는 것은 그저 표피적인 것뿐이라는 사실 또한 잊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파키스탄에서 내가 보고 들은 이야기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여성들의 삶은 나를 분노하게 하고 절망하게 했다.

레퓌스 사건에 항의하던 에밀 졸라의 글을 흉내내어 말해보자. 나는 분노한다. 부르카 밑에 짓눌려진 여성들의 말살된 꿈에 대하여. 나는 분노한다. 한해에 1천명씩 명예살인으로 죽어가는 여성들의 목숨에 대하여. 나는 분노한다. 부엌과 집 안에 갇힌 여성들의 사라진 공적 삶과 자유에 대하여. 그리고 나는 절망한다. 남성의 여성에 대한 정신적·육체적 폭력 행사율이 90%에 이르는 그 땅의 현실에 대하여. 나는 절망한다. 강간으로 인한 임신조차 정숙하지 않음의 종교적 증거이므로, 그 여성을 감옥으로 보낼 수 있도록 든든하게 지원해주는 법률의 구속력에 대하여. 또 나는 절망한다. 그 모든 차별과 억압에 침묵함으로써 불의를 정당화하는 파키스탄의 무력한 지성들에 대하여.

나는 분노한다, 짓눌린 여성에 대해

문제는 종교 자체에 있는 게 아니었다. 늘 그렇듯이 그걸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문제였다. 신의 이름으로, 종교의 이름으로, 인간에게 부여된 자유의지를 말살하는 사람들. 그들은 종교의 진정한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불행히도 그런 이들이 여전히 권력을 쥐고 있었고, 세속의 법은 종교의 법 앞에 무력했다. 파키스탄이 낳은 위대한 시인 알라마 익발(Allama Iqbal)은 20세기 초반에 유럽을 여행하며 이런 탄식을 했다고 한다. “이 땅의 사람들은 지금 이 생을 이렇게 풍부하게 즐기는데, 우리가 가진 것이라고는 오직 천상의 약속뿐이구나.” 천상의 약속이 아니라 지금 이 생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파키스탄 여성들에게, 한반도 남단에서 삶의 자유를 위해 싸워온 나의 작은 손을 내민다. 뜨겁게.


출처 : 한겨레 http://h21.hani.co.kr/section-021114000/2005/08/02111400020050811057202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