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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9 16:36

나의 삶과 글(사하르 칼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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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르 칼리파 






이야기는 팔레스타인 땅 나블루스의 한 가정에 여자아이가 태어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딸아이라는 게 원래 환영을 받지 못하는 존재이거니와, 이 아이는 딸만 넷 있는 집에 다섯 번째로 태어난 딸이었으니 아이를 맞이한 것은 눈물과 한숨뿐이었다. 그 뒤로도 딸이 셋 더 추가된다. 대를 잇고 재산을 물려받을 아들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는 딸의 출생이라는 반갑지 않은 사건에 크게 상심했다. 아랍 사회에서 딸은 가문의 대를 잇지 못할 뿐 아니라, 아버지는 5공주의 아비라는 사실만으로도 남자 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오명의 굴레를 영원히 벗지 못하리라는 예감에 사로잡혔다. 어머니의 반응은 더욱 심각했다. 자신이 저주받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여자라고 여긴 나머지 며칠을 그저 울기만 했다. 게다가 이 불운이 단순한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남편이 이 일을 구실삼아 새 여자를 맞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이런 암담한 분위기에서 나는 이 세상에서 내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알아차려야 했다. 나는 내 자신이 쓸모없고 가치도 없는 성(性)에 속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리고 무가치한 성의 일원으로서 유아기부터 스스로를 위축시키는 마음가짐을 체득하였다. 시키는 일에 고분고분 순종하는 것, 그리고 생활의 세세한 구석까지 간섭하는 법도를 따르는 것이 나의 본분이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굴레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나는 독서와 글쓰기, 그리고 미술에 매달렸다. 당시의 나를 대변하고 나의 세계관을 압축해 보여주는 그림 한 장이 떠오른다. 그림 제목은 <담장 뒤>였다. 그 그림은 장벽을 깨고 뛰어넘기 전의 내 생애 전체를 정확하게 묘사한 그림이었다. 그림은 한 사춘기 소녀가 울타리에 둘러싸인 정원에서 배를 깔고 엎드려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담장 너머 정원 내부에는 안쪽을 향해 팔을 넓게 벌린 버드나무가 높이 솟아 있고 소녀는 두려움과 좌절, 그리고 무력감에 사로잡힌 눈길로 버드나무 가지를 응시하고 있다.

<담장 뒤> 시절 내내 나는 나 자신이 사회에 소속된 한 성원이라고 여기지 못했다. 나는 아웃사이더이자 버림받은 존재였으며, 제물(祭物)이자 안식처 하나 없는 떠돌이 영혼이었다. 처녀작 장편소설 <우리는 이제 당신들의 하녀가 아니다>는 처음으로 다양한 인물을 다루어 보는 나의 경험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 작품의 인물들은 한결같이 출구가 없는 딜레마에 갇혀 있다. 아마도 이 소설은 당시 내가 삼키고 먹고 흉내내던 실존주의 문학의 영향을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런 류의 문학에 심취해 있었는데, 내가 느끼고 신앙하는 바를 실존주의 문학이 형상화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카프카의 <심판>에서 나는 내 자아를 반영하고 내 글이 표현하는 것들을 설명해주는 모종의 이미지를 발견했다. 카프카의 <심판>의 마지막 부분은 무력한 한 인간- 해결책 없는 부조리한 상태에 감금되어 있는 K - 의 경험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K는 어디에 가든, 무엇을 하든 연거푸 패배와 굴욕, 고통을 당한다. 결말은 저항한다거나 구조를 요청한다거나, 심지어 도주조차 하지 못하고 순순히 '운명'을 받아들이는, 패배주의에 젖은 체념적 멘탈리티를 구현한다.

그 즈음 나의 반항에 제동을 거는 데 앞장을 선 사람은 바로 엄마였다. 개성이 강하고 의지가 강철 같으며, 꺾이지 않는 자존심과 지성을 지닌 여인. 예전에 나는 엄마의 독선적인 행동이 천성적으로 타고난 엄격함의 증거라고 해석하고 있었다. 지금 보면 그것은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는 몸부림의 증거일 따름이다. 쉽게 말하자면 엄마는 내가 부정한 짓을 저지르지 않을까 두려워하신 것이었다. 거기에는 무가치하고 취약한 성에 속하는 여자애들을 한 무더기 낳았다는 데서 비롯된 뿌리깊은 죄의식도 한 몫을 했으리라. 더구나 나는 그 중에서도 가장 성가시고 가장 사탄 같은 계집아이였다. 엄마는 엄마대로 질긴 중압감에 시달렸지만 그런 속내를 내비치기에는 자존심이 하락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엄마는 뛰어난 명민함과 타고난 이야기꾼 소질로 두려움을 내면화하고, 겉으로는 강철 같은 강인함과 바위 같은 굳건함을 보여주었다. 엄마는 의연한 자존심이라는 후광 뒤편에 공포와 자기 연민의 감정으로 가득한 심장을 숨기고 있었다. 엄마는 자신에게 주어진 팔자에 만족하지 못하였다. 딸 여덟에 아들 하나라니. 아들이라곤 달랑 하나! 엄마는 우리 식구들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똑똑하고 가장 강인하셨다. 아니, 인근을 통틀어서도 그러했다. 동네 사람들은 누구나 엄마를 여왕처럼 대했고 엄마 또한 여왕 역할에 충실했다. 그러나 무더기 계집아이들 때문에 견디기 힘들도록 뿌리 깊은 죄의식에 시달려야 했다.

나는 엄마의 속마음을 눈치 채고 있었다. 엄마가 아무리 아닌 척하고 속내를 안으로 밀어 넣어도 나는 엄마가 감추려는 그것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엄마는 비밀을 알아챈 나를 어떤 방식으로인가 응징했고 나 또한 엄마가 나를 용납하지 않는 데 대해 앙갚음을 했다. 나는 엄마더러 위선자에다가 모진 사람이라고 대들었다. 엄마 면전에서 나의 소회, 나의 고통을 풀어냈다. 나는 분노와 증오에 싸여 폭풍처럼 쏘아대며 고함을 쳤다. "엄마는 우리 엄마가 아니야. 엄만 감정이 없는 사람이야." 엄마는 나 때문에 몇 차례 우셨다. 엄마는 내 머리통을 부숴버리겠다고 여러 차례 맹세를 하셨다. 그리고 그 말을 실천에 옮기려 하셨다. 시도가 무위로 돌아가자 엄마는 나를 예루살렘에 있는 기숙학교로 보냈다. 그 학교는 가장 엄하고 악독한 수녀들- 시온주의자 수녀들- 이 운영했는데, 그 수녀들도 엄마가 깨지 못한 것을 깨는 데 실패했다. 그래서 어른들은 나를 억지로, 서둘러서 강제결혼을 시켜야 되었다. 이 결혼이 내 마음은 부쉈을망정 머리를 부수진 못했다.

나의 결혼생활은 비참하고 파괴적이었다. 이 결혼 때문에 나의 두 딸은 나와 우리 식구 모두가 겪어야 했던 것과 같은 고통을 겪었다. 나는 가족들의 지속적인 격려에 힘입어 결혼 관계를 끝냈다. 나는 단호하지 못했고 목표 설정 또한 분명하지 않았기에 가족들의 응원을 필요로 했다. 가족들이 13년 동안이나 종용하고 압박을 가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단안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은 아무리 강인한 여자 나한테 이런 표현이 어울린다면 라 해도 모성 앞에서 약하고 결단하기를 두려워한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우리 여성들은 어려서부터 누군가가 대신 결정을 내려주는 데 익숙해 있다. 그래서 여성들은 행동 대신에 제 자리에 서서 갈팡질팡 말만 많이 하고, 실행에 옮기지 못하면서 한숨쉬고 응석 부리며 팔자를 저주하는 데 그치는 것이다. 나 또한 힐미 무라드로부터 구원의 편지를 받기 전까지 여러 해 동안을 망설였다. 무라드는 카이로의 다룰 마아리프(Dar Al-Maaref) 출판사에서 키타비(Kitabi)1) 총서의 편집장 일을 하던 사람이었다. 당시에 다룰 마아리프는 이집트뿐 아니라 아랍 세계 전체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출판사였다. 힐미 무라드는 내게서 위대한 소설가가 될 잠재력을 발견했다는 편지를 보냄으로써 나를 엄청나게 흥분시켰다. 난 그 말을 믿었다. 아니, 온 마음으로 믿고 싶었다. 나는 그런 확인이 필요했다. 내가 무라드의 예언이 빗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30년이 넘는 세월 내내 온 힘을 다해 일했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증언해 주실 것이다. 나는 노력했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으며, 죽을 때까지 노력할 것이다. 나는 꿈을 밝혀주고, 더 나은 이상으로, 더 넓은 지평으로 이끌어주며, 지난날의 가치관과 자아의 한계라는 비좁은 공간으로부터 끄집어내 줄 그 무엇에 매달려야 하는 것이 인생의 의미이자 가치라고 믿는다. 우리 여성이 약한 족속이라고? 사실 그렇다. 우리가 대물림으로 받아온 평가와 해석, 구실과 방해, 법률 면에서 본다면 이 말은 현실적으로 옳다. 하지만 현실은 변하게 마련이며, 더욱이 우리 손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이것이 내가 가지게 된 확신이다.

결혼생활은 고통스러웠지만 나에게 두 가지 결실을 가져다주었다. 하나는 예쁜 두 딸을 낳아 나의 사랑과 마음을 흠뻑 쏟아 부을 수 있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독서와 초상화 그리기에 전념할 기회를 제공해주었다는 것이었다. 파탄지경의 결혼 생활을 지속하는 동안 나 자신의 비좁은 공간으로부터 나를 구원해 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색채의 세계, 그리고 글이었다. 나는 박탈당한 가슴에 남아 있던 온 열정을 동원해 물감과 글의 세상에서 삶을 이어갔다. 나는 이 두 세상에서 인생과 인간에 관해 다른 어느 곳에서도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배웠다. 책에 씌어져 있는 글을 신뢰했고 그 내용에 대한 나의 판단을 믿었다. 책에는 명령을 내리거나, 특정한 방향으로 생각하거나 그렇게 느끼면 안 된다고 강요하는 하는 사람이 없었으며, 나는 어떤 사상이나 인물에 대해 나의 입장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었다. 이런 자유는 내가 마치 지평선에 우뚝 서서 음악에 따라 줄기를 이리저리 흔드는 대추야자 나무 같다는 느낌을 주었고, 갇혀있던 영혼이 훨훨 날아 먼 산으로, 봄의 푸른 초원 위로 배회하는 것 같았다. 말썽쟁이 계집아이였을 때 나는 색채의 꿈이 나를 엄청나게 먼 나라로 데려가 주기를 바랐었다. 책을 통해 나는 그간 꿈을 꿔왔던 대로 집을 떠나지 않고, 돈을 한 푼도 쓰지 않으면서도 바다 위를 항해하고 하늘을 날고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집에 앉아서도 아주 먼 곳을 방문할 수도 있었고 미지의 어두컴컴한 길을 배회할 수도 있었으며, 따스한 정과 꿈과 다양한 생각을 지닌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 소설의 인물을 통해 여러 가지 삶을 살 수 있으며, 책과 저자에 따라 나의 표정이 바뀔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여전히 나 자신이면서도 동시에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사람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만의 행복을 지어냈다. 그 어느 누구도 나의 소유물, 나의 마음 속 세상을 빼앗아 갈 수 없었다. 그 어느 누구라 해도 나더러 거짓말한다, 파괴적이다, 규범을 어겼노라, 지극히 신성한 곳을 모독했다 등의 죄를 덮어씌우지 못했다. 나는 상상 속에서 모험하고 세상을 세웠다가 주저앉히곤 했다. 사람들은 한 번도 나를 체포하지 않았고 단 한 차례도 처벌하지 않았으며 알지 못할 죄목으로 적발하지도 않았다. 남편은 내가 내면으로 감춘 무엇에 대해 의심을 품었지만 꼬투리를 잡을 방법이 없었다. 남편은 나의 생과 자신의 생을 지옥의 불구덩이로 몰아갔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확실하게 알았을 때 남편을 떠났다. 내가 원하는 것은 힐미 무라드의 예언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글과 생각, 그리고 물감과 날개, 음악이었다. 나는 내 목소리의 멜로디와 내 눈이 본 광경, 내 마음의 내면을 세상에 전하고 싶었다. 세상 사람들이 나의 관심사, 고통거리, 행복, 비통을 알아주길 바랐다. 내가 여자라는 것을, 더도 덜도 말고 여자라는 것을, 머리와 가슴과 투명한 영혼을 지니고서 사람들을 사랑하고 선(善)을 추구하며, 대가로 칼날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 앞에 할 말을 하는 여자라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내가 혼인관계에 있던 동안 나와 엄마, 나와 세상 간의 관계를 바꿔놓은 세 가지 사건이 일어났다. 첫 번째 사건은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이 교통사고로 척추가 부러져 평생을 전신마비로 살게 된 사건이다. 동생이 16살 한창 때였다. 이 끔찍한 사고는 단단하게 묶여 있던 우리 가족에게 파멸을 가져왔다. 사고가 난 직후부터 엄마는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세상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반면에 아버지는 완전히 다른 반응을 보이셨다. 며칠이 아니라 몇 주 동안 계속 울던 아버지가 나중에는 불현듯 기운을 회복하더니, 생의 의욕과 활기가 넘치게 되었다. 우리 가족의 역사, 남동생의 끔찍한 사고, 엄마의 은둔, 딸 떼거리 등을 싹 잊은 것 같았다. 아버지는 나이 어린 금발 미녀 각시를 찾아 다녔다. 그 때처럼 내가 여자라는 사실이 증오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나는 잠에서 깨어났을 때 콧수염과 부푼 근육을 지닌 강인한 남자로 변해 있기를 염원했다. 그래서 아버지를 강제로 끌어다가 엄마에게 되돌려 주고 싶었다. 다른 집 남자들이 그렇게 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런 수완도 힘도 없는 여자였고, 언니나 여동생들 또한 나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우리는 전신마비로 누워 있는 남동생을 제외하곤 세상에서 가장 무력한 상태였다. 그렇지만 나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가는 곳마다 졸졸 따라다니며 사정하고 애원했다. 이에 아버지는 귀를 막고 나의 눈물 어린 애원을 못 들은 척했다. 행복한 새 신랑이 된 아버지는 나를 버리고 예쁜 신부에게로 가 버렸다. 나중에 다시 아버지를 쫓아갔을 때 아버지는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얘야, 네가 엄마를 이해시켜라. 이건 하나님께서도 허락하신 거다. 넌 내가 대를 잇지 못한 채 죽었으면 좋겠니?" 아버지 말씀인즉 나나 전신마비인 남동생, 언니, 동생들 전부 다 합쳐도 대를 이어 후세에 길이길이 이름을 남길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재혼만 못하다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이 말씀은 당신이 돌아가실 때까지 4반세기가 넘는 세월 내내 피를 흘리는 상처가 되어 내 마음에 남아 있었다. 돌아가시기 몇 년 전에 내가 유명작가가 되었는데, 내 책을 본 아버지는 책망하듯이 물으셨다. "네 이름만 쓰여 있구나. 내 이름은 어디 있니?"2) 나는 아버지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그저 못 알아들은 체했다. 하지만 책에는 애석하게도 내 이름만 있었다.

아버지가 새 장가를 간 후 엄마는 한층 더 큰 절망에 빠져, 산송장이 되었다. 엄마는 생명이 말라버린 폐가(廢家)였다. 총명함, 미색, 활기,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당당하던 위세도 온데간데없었다. 엄마는 이제 더 이상 여왕이 아니었다. 그 때 나는 처음으로 엄마가 나와 나의 자매들 그리고 다른 모든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그저 희생양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의 비극과 나의 비극에서 나는 인습, 법률과 문명에서 비롯되는 모든 여인들의 비극을 보았다. 이렇게 나는 통찰력을 지닌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변화를 욕망하는 여자가 된 것이다.

세 번째 비극은 내가 혼인관계에 있던 기간 중에 일어난 1967년 전쟁의 패전이었다. 이 패전을 계기로 나는 아랍의 정치적 패배라는 것이 문명적 패배의 필연적 결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67년의 패전이 찢기고 상처가 났기 때문에 치료를 하지 않고서는 살아날 수 없는 만신창이의 나무에서 맺힌 열매라는 사실을 아주 똑똑히 보았다. 안에서 패배한 자에게 승리란 없는 법이다. 자신의 문명 내부에서 패배한 사람은 외부에서도 승리할 수 없다. 외부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려면 내부에서 시작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의 제반 문제들, 특히 위정자들의 부패, 사회 전반의 도덕적 해이, 가정과 학교와 마을에서의 인간교육의 부재 등을 치유하는 것으로 개혁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부드러운 밀가루 반죽을 빚고 또한 단단한 철강공장도 짓는다. 즉 어머니는 모든 일의 기원(起源)이자 주춧돌이다. 어머니는 움마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3)

내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67년 패전 이후, 즉 아랍이 이스라엘의 포로가 된 후였다. 남편에게 철저하게 숨긴 채 몇 차례 습작을 쓰고 나서,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다룰 마아리프에서 장편소설을 한 권 출판해주었다. 그리고 이것으로 나의 갈 길이 정해졌다.

32살에 내 삶은 새로이 시작되었다. 나는 베르자이트(Ber Zait) 대학교 영문과에 입학하여 그 북적대는 세계와 학생들 대열에 합류했다. 내 외모와 행동 그리고 불타오르는 열정은 주위 사람들을 속이기에 충분했다. 실제 나이보다 10년 또는 그 이상 어려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무엇이든지 속일 수 있었다. 심지어는 나 자신까지도 말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장밋빛 어린 나이라고 믿게끔 만들었다. 잃어버린 소녀 시절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다시 사춘기로 돌아간 것처럼 행동했다. 아무도 스무 살 여대생같이 행동하는 나를 말리지 못했다.

대학 3학년이 되어 나는 자아를 깨닫고 삶의 의미를 세우려는 시도에 착수했다. 두 학기를 휴학하면서 소설 <가시선인장>을 썼다. 이 소설은 내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성공을 거두었다. 당시 요르단 왕립 학술원의 발표에 따르면 <가시선인장>은 여러 해 동안 요르단, 팔레스타인 그리고 아랍세계 전체에서 베스트셀러 소설이었다. 이후 팔레스타인, 레바논, 시리아의 여러 출판사에서 중판을 거듭했고 외국어로도 번역되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찾는 사람이 있다.

<가시선인장>에서 나는 스토리, 사람들의 이야기, 주인공들의 이야기 등을 통하여 이스라엘 점령하 팔레스타인의 사회상을 기록하고자 했다. <가시선인장>은 우리가 고통스런 점령과 균형을 잃은 상황을 견뎌내며 살았던 혁명적 낭만주의 시기를 일정 정도 관찰하고 있다. 여기서 낭만주의란 사회와 개인과 집단이 보다 나은 방향으로 진화하는 것이 필연이라고 당시 우리가 굳게 믿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에게는 어둠은 물러가게 마련이고 정의가 언젠가는 승리하며 자유는 우리의 몫이고, 결국 우리가 전 세계 모든 민족의 등불이 되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이러한 믿음이 인물들의 삶의 현장과 뜨거운 맥박을 관찰하는 소설을 통해 구현되었음은 재론할 필요가 없다.

나는 <가시선인장>을 집필하는 동안 한 좌파 청년을 만났다. 그 청년은 똑똑하고 야심 많으며 담대한 사람이었다. 그는 혁명 정신과 대중의 의식화, 마술 같은 언변 등으로 나의 관심을 끌려 했다. 정말로 그랬다. 나는 그가 쓴 글, 그가 벌인 논쟁을 샅샅이 읽고 그가 지닌 모든 가능성을 검토했다. 그는 세상의 변화를 원했는데 그건 바로 내가 꿈꾸는 바였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하느냐가 문제였다. 그는 신념에 차 말했다. "체제의 변화, 규범의 타파에서 시작하자. 우리가 남들의 모범이 되자."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나는 이미 규범에서 벗어나 보았지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람들의 규범도 가족 체제도 변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나 자신조차 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사회에 반기를 드는 여자의 상황은 어찌 되겠는가? 체제의 틀에서 벗어나 있는 여자가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까? 여자가 송두리째 변했는데 사람들은 이전 그대로라면 그 여자는 사람들로부터 추방되지 않겠는가? 과연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 것인가? 웃음거리로 전락한 여자가 사람들의 호의를 얻고 삶을 얻고 신뢰와 존중을 얻을 수 있을까? 존중 받지 못하는 여자가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설득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모범이 된다는 말인가?"

그간 겪은 위선과 암흑 덕분에 나는 그 청년의 진실과 신념이 어느 정도인지를 시험해 볼 수 있는 능력과 냉철함을 갖추고 있었다. 그를 면밀히 지켜보았는데 매번 나를 실망시켰다. 마침내 그의 이론과 글과 언변을 제쳐두고 인간됨에 직접 맞부딪쳐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모든 사항을 적은 종이 한 장을 들고 어느 모퉁이에 앉았다. 그리고 빙빙 돌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미소를 걷고 진지하게 말했다. "이 목록이 내가 혁명을 위해 바칠 수 있는 것들이다. 당신은 무엇을 바치겠는가?" 그는 놀란 눈치였다. 나는 시선을 그의 눈에 고정시켰다. 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허둥대면서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했다. 그가 하는 말들은 어둠에서 잠깐 빛을 발하고 꺼지는, 갑자기 아무런 예고도 없이 스러져버리는 파편에 불과했다. 다른 문장이 이어지고 잠깐 반짝하더니 출렁대며 뒤엉켜 말의 홍수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저 공허한 말이었다. 나는 결론을 내렸다. '이 사람은 받기만을 바라고 내게 주려는 것은 없구나. 이게 이 사람이 정말로 나한테 기대했던 것이로구나. 큰 것, 위대한 것, 실질적인 것은 염두에 두고 있지 않구나. 이 사람은 변하지 않을 것이고 나 또한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태양으로 올라갈 수 있을까?' 내가 도전적인 어투로 말했다. "당신이 주장하는 바는 내가 모든 고난을 지고 당신은 영광의 열매를 차지하자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를 떠났다. 그러나 그와의 만남에서 얻은 교훈은 내 영감의 줄기와 가지가 되었다. 나는 그 경험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려 소설의 장면과 상징과 인물들을 그려냈다. 그 결과로 나는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로부터 여러 차례 화살과 창과 매를 맞는 표적이 되었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알게 된 것들은 나에게 고뇌와 당혹감을 안겨주었다. 나는 남자들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게 되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집안 남자들과 아버지 그리고 남편과의 관계에 국한된 나의 경험이 집 밖에서 겪게 될 세태의 표본이 될 것 같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나는 아버지가 못된 사람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정말로 나쁜 사람이 아니긴 했다. 아버지가 새 장가를 들고난 후 나는 아버지가 연약한 사람이며 남동생의 처참한 사고로 인한 부담을 피해 도망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 남편은 정상적이거나 평범한 남자가 아니었다.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우리 사회에서 그의 행동은 드물고 해괴한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우리네 여자들은 그렇게 들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우리 아랍사람들이 가장 깨끗하고 순수하기 때문에 가장 선하고 영예로우며, 우리 종교가 가장 올바른 종교이고, 우리의 샤리아4) 가 가장 공정한 법률이며, 우리의 윤리가 최고의 윤리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거짓말을 하거나 속이거나 훔치거나 거짓증언을 하거나 친구를 배반하지도 않는다고들 했다.

여기저기서 정보를 수집하여 진실을 알게 되고, 모순으로 가득한 현실을 몸으로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우리가 진정으로 착하고 선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충격을 넘어 나를 공포에 사로잡히게끔 하였다. 이 충격 때문에 나는 종종 헛소리를 중얼거리게 될 정도였다. '아니야, 그럴 수가 없어.' 나는 내가 공연히 의심하고 악의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책망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그런 증상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쩍 벌리면서 내가 꼭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하고 어리석은 어린애 같다고 말하곤 했다. 사람들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나는 교수님이 말씀하셨듯이 정말로 순진했다. 나는 비밀의 창문을 열고 창 너머의 신기한 세상을 발견한 어린아이와 같았다. 모든 것이 새롭고 흥미롭고 경이와 수수께끼로 가득한 세상 말이다.

날이 가고 해가 가면서 나는 사물이 지닌 의미와 사물들 간의 관계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관계'는 내가 늘 생각하던 주제였다. 여자와 여자 간의 관계, 남자와 여자 간의 관계, 인간과 사회의 관계, 그리고 정치. 이 모든 관계에서 나는 사람들이 이기적이고 냉혹하며, 돈과 권력 앞에서 약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내가 보기에 사람들은 명성과 영향력을 유지하거나 돈을 좀 더 벌거나 권력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면,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을 포함해서 무슨 짓이든지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처음에 나는 "이런 게 바로 아랍 남자들이야. 그리고 그게 우리의 문화야" 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다가 나중에, 여러 나라 사람들에 관해 책을 읽고 공부도 하고 나서는 놀랍기도 하고 안도감을 주기도 했다 인간이 사는 세상이라는 게 다 그런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세상에는 나처럼 새로운 시각, 새로운 비전, 변증법적 이성으로 사물을 보는 여자들, 남자들도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모든 발견과 충격에도 불구하고 나는 새로운 투쟁에 뛰어들어 우리 내부의 리더십에 관한 토론의 문을 열어야겠다는 의지를 꺾지 않았다. 나는 주제의 핵심을 관통하는 거창한 이름을 부여하겠다는 의도로 내 책에 <라시드와 마르크스 사이의 아랍 남성>라는 제목을 붙였다. 관련 정보와 기록, 의견과 반론의 수집을 시작했다. 50명이 넘는 지식인 남성들과 50회 이상의 심층 인터뷰를 행하고 난 후 나는 그들의 부인이나 여자 친구를 상대로 유사한 방식으로 인터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결과, 대단히 실망스럽게도 나의 삶과 엄마, 언니 동생들, 친척 아주머니들의 생에 낙인처럼 찍혀 있던 착취, 열등감, 차별 등의 테마가 모든 인터뷰마다에 들어 있었다. 얘기의 겉 형식이 약간씩 달랐지만 내용은 본질적으로 동일했던 것이었다. 인터뷰에 응한 여성들은 상당히 유식한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치료할 길 없는 무력감의 포로가 되고 열등감과 자기비하의 감정을 가슴 깊숙한 곳에 감추고 있었다. 이 여성들은 아무리 일을 많이 하고 높은 지위에 오르고 가정을 위해 헌신한다 하더라도 결국 여자는 남자들보다 여러 계단 낮은 등급일 뿐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나의 이 경험은 흥미롭기는 했으나 동시에 절망이라고 할 정도로 무서운 느낌을 주었다. 나는 사회지도층 인사들, 또는 내가 선구자라고 믿었던 사람들, 혁명과 변화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겉모양만 현대식으로 바뀌었을 뿐, 속은 전 세대의 사람들과 먹지를 대고 복사한 문서처럼 똑같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우리의 남성 지도자들은 가짜에다 부패하고 한심하며, 앞서간다는 여성들은 가련하고, 내부의 문제를 도외시함으로써 깊이가 없던 우리네의 혁명은 제한적인데다가 불임(不姙)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절망은 나의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 회의의 바다 밑으로 가라앉혔다. 속수무책,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보고 듣고 발견할수록 우리에게 아무런 해결책도 희망도 없으며 두 번이고 세 번이고 패배를 반복하다가 영영 해방되지 못하리라는 두려움이 한 단계씩 높아졌다. 우리가 하는 일들은 시간 낭비, 피의 허실(虛失)에 불과했다.

이렇게 해서 <해바라기>가 출간되었는데, 이 소설 또한 예기치 못했던 성공을 거두었다. <해바라기>는 팔레스타인, 레바논, 시리아의 4개 출판사에서 아랍어로 여러 차례 중판 인쇄되고, <가시선인장>과 마찬가지로 수개 국어로 번역되었다. 당시의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는 이 두 작품의 TV 연속극 제작권을 사들여 이스라엘 점령 하 팔레스타인 민족의 투쟁사, 즉 억압을 생명으로 바꾸고 새로운 의식으로 승화시킨 한 민족의 파노라마를 그려내기도 했다.

<해바라기>에서 나는 혁명이 현실과 충돌하고 혁명에 참여한 사람들이 혁명의 로맨틱한 환상을 걷어내는 과정을 관찰하였다. 그로부터 2년 뒤, <어느 비현실적인 여자의 회고록>에서는 한 여자에게 초점을 맞추어 아동기부터 청년기까지, 즉 두려움과 좌절, 무력감, 열등감 등으로 가득찬 여자가 되기까지 세상을 향한 인식이 성장하는 과정을 그렸다. 여기서 나의 의도는 어린 시절의 환경의 중요성을 보여주며, 그 시절 경험이 토대가 되어 차후에까지 어떻게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평생 동안 계속되는가를 그린다는 것이었다.

나는 베르자이트에서 공부하고 일하면서 <가시선인장>, <해바라기>, <어느 비현실적인 여자의 회고록>을 썼다. 전술한 바와 같이 처음에 나는 어리고 유치하며 세상과 맞설 준비가 되지 않은 설익은 상태였다. 하지만 세월이 나를 단련시켜 주었다. 문학, 사상, 인문학 등의 대학 교육이 나의 이성과 사고를 체계적으로 가다듬어주었으며, 연구서와 이론, 비판, 평가, 계량을 통해 세상을 보도록 안목을 길러주었다. 이제 세상은 더 이상 비밀이나 마법, 또는 충격이 아니었고, 모든 사물이나 현상에는 그에 상응하는 설명과 해석이 있었다. 모든 것이 순수함과 신비감을 상실했다. 사랑은 더 이상 상쾌한 감정이나 압둘 할림5)의 달콤한 노래가 아니게 되었다. 대학 내의 분위기 또한 호의적이지 않았다. 뒤죽박죽이 되어 학생들도 대학 당국도 예전과 같지 않았다. 정치 파벌간의 투쟁이 대학 캠퍼스로 밀려와 우리 학생들도 권력을 향한 갈등으로 치달았다. 우리는 사사건건 서로를 비방하고 협박하곤 했다. 나는 유니온 운동에 가담해 싸움을 벌였으며, 스스로의 역량 부족과 정치권의 압력을 무릅쓰고 팔레스타인 작가협회 결성에 참여하기도 했다. 무슬림 형제단과 좌파 작가들로부터 동시에 공격을 받은 일도 있었다.6) 이렇게 1980년이 되자 나는 기력이 소진해 모종의 전환을 갈망하게 되었다. 당시 두 딸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외국으로 나가 있었다. 나도 미련 없이 베르자이트를 떠났다. 캠퍼스는 모든 파벌의 격투장으로 변했으며 피점령지7) 전체가 토종 아랍 까마귀8)들이 다투는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타지에서 나는 책에 머리를 박고 살면서 내게 유용하거나 그간의 공백을 보상해줄 만한 지식을 길어 올렸다. 이 기간에 펜은 생산을 중단했다. 그렇게 10년을 보내고 <광장의 문>과 함께 요르단 강 서안으로 돌아왔다.

미국은 나에게 잃어버린 세월에 대한 보상과 도피처를 체공해주었다. 당시 나는 나 자신이, 그리고 내 나라가 갈기갈기 찢어져버렸다는 느낌에 사로잡혀 있었다. 사랑과 남성 위주 세계에서의 좌절, 두려움과 헛구역질, 혁명 조직의 내부 갈등, 부패 추문 같은 것들이 있었고, 자유에 재갈을 물리며 확산되는 복고사상, 이스라엘의 공격과 그에 이은 지도부의 튀니지로의 이동, 이런 것들이 나로 하여금 고아처럼 외톨이인 데다가 길까지 잃었다는 느낌을 주었다. 이에 나는 도피처와 망각의 오아시스를 찾고 있었다. 그리하여 몇 달 동안 안식과 평안을 발견했다. 대자연과 쇼핑 몰을 전전하면서 정신과 신경을 마비시키는 한편 석사, 박사 학위를 향한 지리한 여행을 시작했다.

1987년 1월, 인티파다9) 가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수 주 후 나는 미국을 떠나 서안 지역으로 돌아와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전율을 맛보았다. 길거리에서 여자들이, 어린아이들이 눈 한 번 깜짝이지 않고 당당하게 구타를 감내하고 있었다. 젊은이, 중년 할 것 없이 감옥으로, 벌판으로, 산속 동굴로 내쳐지고 실전용 총탄과 최루가스가 난무했다. 탱크가 위협하는 가운데 스피커에서는 예배시간을 알리는 "알라후 아크바르"10)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곤봉과 최루탄을 앞세운 모스크 난입이 자행되고, 어디를 가나 카세트에서 국가가 흘러나왔다. 도망치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빠르고 피는 뜨거웠다. 현실 같지 않은 날들이었다. 숱한 희생담, 무용담은 소설책 또는 역사책에나 나옴직한 것들이었다. 여성들은 여자가 단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심장과 머리가 있으며 혁명을 향한 감정과 양심을 지닌 존재임을 세상 앞에 입증해 보였다.

그리고 나서, 우리가 여전히 포로 상태로 남아 있는 가운데 마드리드 평화협상이 나왔다. 인티파다는 우리의 힘을 소진시켰고 우리는 인티파다를 소진시켰다. 우리는 회의(懷疑)의 바다에서 표류하는 배였다. 지도부가 분열하여 사람들의 영혼과 운명을 멋대로 쥐고 흔드는 타락한 무리가 된 것도 이번으로 천 번째는 될 것이었다. 지도부의 폭력과 팽창하는 하마스11)의 엄격함을 겪은 우리는 무기력 상태에 빠졌다. 우리는 안팎으로 이중의 점령 하에서 살게 되었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오슬로 협정이 해결책을 가져왔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는 환호하며 길거리로 나가 오슬로식 해결에 찬성한다고 외쳤다. 그러나 얼마 후 우리는 오슬로가 속임수였으며 가뜩이나 먼 곳에 있던 해결이 더욱 멀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해방은 우리의 목표였다가 이제는 신기루가 되었다. 해결이나 평화는 그 어느 때보다도 멀어졌다. 그 결과 우리는 해결책도 혁명도 모두 잃었다. 목표가 없는 우리는 목자 없는 양떼가 되었다.

이런 배경에서 나는 <유산>을 썼다. 따라서 <유산>은 당시 현실의 반영이라 하겠다. 늘어만가는 비애와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내뱉는 신음의 반영 말이다. <유산>은 모든 측면에서 온갖 종류의 패배를 다 맛본 민족의 이야기이다. 혁명 과정에서 지도자의 패배, 가정에서 아버지의 패배, 조상의 땅에서 당하는 자손들의 패배 등등.

나는 <유산> 후에도 장편 두 작품을 출판했고, 지금 세 번째 작품을 쓰고 있다. 그 둘은 <그림과 아이콘과 구약성서>와 <뜨거운 봄>이다. 세 번째 소설은 아직 제목을 붙이지 않았다. 이 세 소설에서 나는 앞 소설들에 이어 억눌렸으나 운명에 저항하는 민족의 정치, 사회적 현실을 관찰했다. 이런 종류의 문학을 통해 나는 나의 자아와 타인의 자아를 반영한다. 나에게 있어서 두 자아 사이에는 큰 차이도, 분명한 경계선도, 그리고 담벽도 없다.

이렇게 해서 나의 지나간 얘기의 끝에 도달했다. 자, 이제부터는 어디를 향해 갈 것인가? 2년 전에 예상했던 것처럼 인티파다를 향해? 그리고 무엇을 쓸 것인가? 혹자는 말한다: "당신은 지금까지와 같은 파노라마 방식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을 것이다. 작가가 진정성을 인정받고 작품의 가치를 오래 유지하려면 자신의 자아를 다루어야 한다. 여러 민족의 이야기 같은 것은 변화하는 세월을 당해내지 못한다. 문학에서 오래 가는 것은 예를 들어 사랑 이야기, 애국과 매국, 전쟁과 평화, 이별의 고통과 재회의 기쁨, 연인들의 미칠 듯한 사랑처럼 원초적이고 영속적이며 보편적(Universal)인 것들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내 작품이 이런 것들을 담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가? 파노라마를 통해 우리는 개인들 간의 관계,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 사회 없이 개인이 존재할 수 있을까? 우리의 현실은 굴종과 오욕의 현실이자 포로화하고 점령당한 현실이며, 저항과 혁명과 반란을 통해 민족 전체가 해방을 희구하나 해방을 이루지 못한 현실이다. 사람들이 앞다투어 혁명의 대가로 청춘과 피를 바치지만 혁명은 내부로부터 부식되며, 꿈이 사라지고 거리의 박동이 느슨해져 죽음이 다가온다. 그러다가 다시 한 번 꿈이 생겨 감방의 문을 부수고 바깥세상으로 쏟아져 나온다. 이런 것은 픽션인가, 아니면 넌픽션인가? 감방에 갇힌 개인의 이야기, 억압을 향해 들고 일어나는 민족 이야기, 카페트 위에 서 있는데 갑자기 카페트를 잡아당기면 넘어지듯이 발 밑으로 땅을 빼앗긴 농민 이야기, 환영받지 못하고 태어나 "나도 사람이다. 나도 살과 피와 감정이 있다. 나는 어머니의 양심이자 움마의 양심이다" 라고 절규하는 여자 이야기, 이런 것들은 영속적이고 보편적인가, 아니면 변하게 마련이므로 예술작품 대열에 끼지 못하는가? 문학과 소설의 세계에서 원초적이고 영속적인 것을 정하는 것은 누구인가? 도대체 누가 정한단 말인가?

파노라마, 그것은 성취인가, 장애물인가? 나는 파노라마를 통해 현실을 관찰하고, 대부분의 또는 모든 디테일을 포착했다. 독자 역시 파노라마를 통해 흙의 향기, 꽃의 꿀, 말똥 냄새, 저녁의 산들바람 냄새와 나무의 수향을 맡는다. 독자는 또한 우리와 함께 광장, 발코니, 골목길 따위를 보고, 감옥, 산중 동굴, 공장, 밭, 매음굴, 귀족의 저택, 폭탄이 터지는 전쟁터 등으로 들어간다. 그 뿐 아니라 독자는 최루가스를 마시거나, 우리의 꿈이 좌절되는 배경에 공감하며 눈물을 흘린다.

파노라마, 그것은 성취인가, 타락인가?

나에게 있어서 그것은 성취이다. 나는 내가 산출한 것들을 보면서 정말로 찬탄한다. 이것이 정녕 <담장 뒤>로 시작한 그 여자아이가 지어낸 것인가? 팔레스타인 문학 전체를 살펴봐도 그만한 총체성, 그만한 넓이, 그만한 거리를 발견할 수가 없다. 이 같은 성취를 일구어낸, 여자로서의 내 위치는 어떠한가? 이 모든 게 여전히 담장 뒤에 갇혀 있는 내가 쓴 것이란 말인가? 맹세컨대 진실로 나는 담장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 안이 나의 심장이요, 나의 어린 시절이며, 나의 감각이자 나 자신의 경계이기 때문이다. 난 나오지 않았다. 만일 내가 나왔다면 그렇게 꿈을 꾼 것일 뿐 실제로는 나온 것이 아니다. 나는 집을 떠나지 않고서도 바다를 항해하고 하늘을 떠다니고 돌아다닐 수 있다는 사실을 벌써 몇 년 전에 발견했다고 고백하지 않았던가? 내 얼굴을 버리지 않고서도 다른 인생을 살 능력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내가 내 자신이면서도 동시에 남이 될 능력이 있음을 발견했노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발견하고, 나오고, 행복해졌거나 그리 되리라고 꿈을 꾸었다. 나는 억압을 넘어서는 강한 혁명투사가 되었거나 그리 되리라고 꿈을 꾸었다. 나는 울타리 위로 높이 솟아올라 넓은 지평선에서 이리저리 줄기를 흔드는 대추야자 나무가 되어 두려움을 이겨냈거나 그리 되리라고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자아보다 높이 오르기도 하고 자아를 들어올리기도 하며, 세상을 세웠다 앉혔다 한다. 나는 비록 그 대가가 칼날을 받는 것이 될 지라도 하나님께, 절대정의께 이렇게 말하겠다. 사람들은 단 한 번도 나를 주저앉히지도, 나의 아리송한 범칙을 제어하지도 못했다고.

(번역: 박재원 외국어대 아랍어과 교수)




사하르 칼리파(Sahar Khalifeh)

사하르 칼리파(Sahar Khalifeh, 1941~)는 팔레스타인의 독보적인 여성 작가이다. 이스라엘 안에서의 팔레스타인 문학과 이스라엘 점령지의 팔레스타인 문학, 점령지 밖 즉 전 아랍권은 물론 온 세계를 전전하는 소위 망명지의 팔레스타인 문학까지를 포함해서도 그녀는 가장 대표적인 소설가라 할 수 있다.

사하르 칼리파는 1941년 요르단 강 서안의 나불루스 시에서 출생하였다. 어린 나이에 아랍의 전통적인 형식에 따라 소위 ‘장님 결혼’을 하였고, 13년간의 고통스러운 결혼 생활을 청산한 이후에는 여성 운동과 소설 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1998년, 미국 아이오와 대학교에서 여성학 및 미국 문학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2005년 현재, 나불루스 시와 가자 지역의 여성문제 연구소에서 간사로 일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 <우리는 더 이상 너희들의 노예가 아니다>(1974), <가시 선인장>(1976), <해바라기>(1980), <실재하지 않는 여인의 고백>(1986), <바훗 싸하>(1990), <유산>(1997), <형상, 성상, 그리고 구약>(2002) 등이 있다. 그녀의 책은 히브리어, 이태리어, 불어, 독어, 네델란드어, 영어 등 많은 외국어로 번역·출판되었다. 우리나라에도 <가시 선인장>(송경숙 역, 한국외대 출판부, 2005)이 번역·출판되어 있다.

사하르 칼리파의 소설들은 <우리는 더 이상 너희들의 노예가 아니다>, <실재하지 않는 여인의 고백>처럼 철저한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여성문제만을 중점적으로 다룬 작품과 <가시 선인장>, <해바라기>와 같이 민족 해방 투쟁이라는 조국의 현실을 주제로 하면서 여성문제를 함께 조명하는 작품들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후기로 갈수록 여성주의 시각이 더욱 심화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작가의식의 변화는 무엇보다도 작가가 1970년대 중반부터 요르단 강 서안과 가자지구에서 벌여오고 있는 여성인권 운동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녀의 출세작 <가시 선인장>은 우리에게 처음으로 소개된 현대 팔레스타인 소설로, 1967년 6월 전쟁에서 아랍 측의 패전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점령 아래 놓이게 된, 1970년대 초의 요르단 강 서안의 나불루스 시를 배경으로 하여, 이스라엘의 점령이 팔레스타인 사회에 가져다 준 구조적 변화와 그 변화에 대응하는 인물들의 다양한 사회의식과 행동유형을 보여주고 있다. 이 한 권의 소설로 그녀는, 향토를 상실하고 이스라엘 점령 아래 신음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분노의 일상을 우리에게 생생히 보여준다. 다른 곳, 다른 시대의 이야기이지만, 식민지 체험이 있는 우리에게 낯설지만은 않은 소설이다.

사하르 칼리파 장편소설 [가시 선인장] 줄거리


(우리말 번역 제목 <가시 선인장> 송경숙 외대 아랍어과 교수 번역. 외대 출판부. 2005)

소설은 1967년 6일 전쟁 이후 오랫동안 조국을 떠나 있던 우싸마가 이스라엘 측의 이른바 <가족재결합프로그램>에 따라 국경 다리를 건너 팔레스타인 땅(요르단강 서안 지구)으로 들어가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이스라엘군의 검문소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여전히 점령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팔레스타인 동포들의 참혹한 현실을 목격한다. 검문에 걸린 한 여자가 고문을 당하면서도 완강하게 저항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를 구해주지 못했다. 팔레스타인 비밀조직으로부터 특별한 지령을 받고 들어가는 우싸마 역시 섣불리 나서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가 한탄스러울 뿐이다. 우싸마는 점령당한 고향 나불루스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그가 만나는 사람들은 도무지 그런 희망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싸마는 이스라엘의 점령 정책이 사람들의 일상생활 깊숙이 침투해 마침내 저항의 어떤 기미조차 포기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심지어 그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사촌형제 아딜은 지주인 아버지가 물려준 농장을 포기한 채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서 일하는 노동자가 되어 있었다. 우싸마는 그를 만나 계속 저항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강조하지만, 아딜은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면서 완강하게 고개를 저을 뿐이다. 우싸마는 그런 아딜에게 자신의 비밀 임무에 대해서 털어놓는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로 일하러 가는 노동자들이 탄 버스를 공격하는 일이었다.

한편, 아딜의 동료 노동자 주흐디는 이스라엘 공장에서 아랍인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공장장을 드라이버로 찌르고 구속당한다. 감옥에는 수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저항운동을 하다가 잡혀와 있는 상태였다. 순진하기만 한 주흐디는 거기서 학습을 통해 의식화되기에 이른다. 아울러 아딜의 동생 바씰도 시위 도중 체포당해 감금되는데, 그 역시 거기서 새로운 전사로 거듭 태어난다. 이스라엘 감옥은 말 그대로 팔레스타인 저항운동의 학교였던 것이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우싸마가 길에서 이스라엘 장교를 찌르고 달아나는 사건이 벌어진다. 우싸마는 그 길로 달아나서 무장투쟁 그룹에 본격 합류하고, 마침내 이스라엘로 향하는 노동자들이 탄 버스를 습격한다. 하필이면 그 버스에는 엊그제 석방된 주흐디가 타고 있었다. 부상을 당한 주흐디는 동포들이 탄 버스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가하는 우싸마 일행을 향해 분노를 터뜨리며 다가가는데, 그 과정에서 이스라엘 군인들로부터도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러자 그는 이스라엘 군인들의 총을 빼앗아 그들을 공격한다. 결국 우싸마도 주흐디도 이스라엘 군인들의 공격을 받고 숨지고 만다.

우싸마와 달리 개량주의적 방식으로 이스라엘의 점령 정책에 대해 대응하던 아딜은 그들의 교묘한 술책을 깨닫는다. 이스라엘인 공장 주인이 작업 도중 팔을 다친 팔레스타인 노동자에 대해 보상을 하라는 법원의 명령을 피하기 위해 위장 파산 선고를 했기 때문이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아딜의 동생 바씰이 가족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아버지와 형, 그리고 누나의 뜨뜻미지근한 의식과 행동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것으로 절정에 이른다. 즉, 형이 아버지를 속인 채 이스라엘 공장에 나가는 것을 비판하고, 딸(바씰의 누나)을 본인의 의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결혼시키려는 아버지를 비판하고, 저항투사를 사랑하는 자기 속마음을 당당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누나 누와르를 싸잡아 비판하는 것이다. 그러던 중 저항운동에 연루된 혐의로 이스라엘군이 습격해 오자 바씰은 지붕을 타고 달아난다. 얼마 후, 그 지역에서 오랜 동안 지주로 군림했던 아딜 가문의 집은 이스라엘군의 폭탄 앞에서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 계간지 <아시아 > 2007년 봄호에 실린 글입니다.

* 2차 출처는 팔레스타인을잇는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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