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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혁명 변수는 부족갈등·군부·석유
 

갈등 적은 이집트·튀니지는 독재 타도
예멘·시리아, 복잡한 이해관계로 파국

 

 

11-06-12 아랍 주요국 민주화 운동 상황_한겨레.jpg
 

올해 초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으로 시작된 아랍의 민주화 운동은 삽시간에 북아프리카와 중동 전역으로 번져갔다. 튀니지의 자인 엘아비딘 벤알리 정권에 이어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이 민중의 힘에 무너졌다. 그러나 수백명의 자국민 시위자들을 학살하며 버티고 있는 정권들도 적지 않다. 리비아 내전은 국제 전쟁으로 확산됐고, 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은 반정부세력의 공격에 중상을 입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치료를 받고 있지만 물러날 생각이 없다. 시리아도 시위 사망자가 1100명을 넘어섰다. 어디에선 독재정권이 쫓겨나고, 어디에선 참극이 계속된다. 이런 차이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살피다 보면 3가지 ‘키워드’가 손에 잡힌다.

 

■ 부족

각국의 혈연과 종교, 정치 시스템과 사회 구조의 차이는 반정부 시위가 전개되는 양상까지 갈라놓았다. 이집트와 튀니지는 국민의 98%가 같은 혈통이다. 또 종교적으로 튀니지는 인구의 98%, 이집트는 90%가 이슬람 수니파다. 이런 민족적, 종교적 동질성은 시위대를 하나로 묶고 부족·종파간 분쟁으로 빗나가지 않게 하는 접착제 구실을 했다.

반면 리비아, 시리아, 예멘 등은 부족 국가의 특성이 아직 강하다. 시리아는 이슬람 수니파 74%, 시아파 16%, 기독교 10%로 나뉜데다, 시아파 중에도 극소수인 알라위파의 아사드 가문이 정치·경제 권력을 독점하고 있다.

예멘은 영국의 분할에 따라 1990년 통일 전까지 30년 가까이 남-북 예멘으로 분단돼 있었다. 1978년 쿠데타로 집권한 살레 정권은 유력 가문인 하시드 부족과 오랜 갈등을 빚어왔다. 리비아도 수도 트리폴리를 중심으로 한 서부와 반군 세력의 거점인 벵가지를 중심으로 한 동부가 역사적으로 대립해왔다. 게다가 무아마르 카다피는 집권 이후 의도적으로 동부 토호세력들에 대한 차별정책을 펼치면서 부족·지역간 갈등을 키웠다.

리비아, 시리아, 예멘 등의 이런 사정은 반정부 민주화 시위가 다양한 세력의 이해관계가 얽힌 권력다툼 양상으로 꼬이게 한 결정적 요인이 됐다.

 

■ 군부

튀니지와 이집트 군부는 시위 초기 일찌감치 중립을 선언하거나 무력 개입을 자제했다. 두 나라에서 시위대에 대한 발포는 모두 내무부 소속 경찰과 보안군의 소행이었다. 특히 이집트 군부는 1952년 ‘나세르 혁명’으로 집권한 이후 이스라엘과 서방에 맞선 범아랍 민족주의의 견인차로 국민의 신망을 받아왔다. 이집트와 튀니지 시민들은 탱크 위의 군인들에게 꽃을 주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리비아, 예멘, 시리아의 군부는 사실상 독재정권의 사조직 성격이 강하다. 시리아 군대가 시위대에 대한 발포를 거부한 지역 경찰들을 처형했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나, 예멘에서 일부 군 지도부가 이탈해 시위대 쪽으로 돌아섰음에도 무자비한 유혈진압을 계속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서방

‘오만’과 ‘무지’. 스스로 보수 성향이라고 밝힌 영국 언론인 멜라니 필립스는 지난달 자신의 누리집에 쓴 글에서 아랍세계에 대한 서구의 태도를 한마디로 이렇게 규정했다. 그는 “영국과 미국, 유럽은 아랍의 독재정권 교체를 돕는다지만, 시리아의 반정부 시위에서 그들의 외교정책은 앞뒤가 안 맞는 혼란에 빠졌다”고 꼬집었다.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에 대해선 미사일을 퍼부으면서, 시리아의 민간인 대량살상 사태에는 뒷짐을 지고 있다는 것이다.

 


시리아는 이스라엘과 날카롭게 맞서고 있는 접경국인데다, 서방으로선 헤즈볼라 등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과 이란에 대한 지렛대로서 활용가치가 크다. 서방으로선 섣불리 개입할 이유가 없다.
미국과 영국은 사우디로 피신한 예멘의 살레에게도 ‘기소 면제’와 ‘재정 지원’을 대가로 퇴진을 회유했다. 서방은 ‘대테러 전쟁’의 전략적 동맹국인 예멘의 민주화보다 급격한 정변을 막는 데 관심이 크다.

반면 서방이 리비아 내전에 무력 개입한 것은 카다피 정권이 서방과 대립해온데다 양질의 석유자원이 풍부하다는 점이 큰 요인이 됐다. 리비아는 저유황 경질유의 세계 1위 수출국이다.

유달승 한국외국어대 교수(중동정치학)는 “카다피 정권이 정통 이슬람의 권위를 부정하는 세속주의 정책을 펴와 아랍연맹(AL)에서조차 따돌림을 당한 것도 이슬람권 국가에 대한 서방의 무력 개입의 부담을 덜어줬다”고 말했다.

 

등록 : 20110612 20:46 | 수정 : 20110612 21:03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출처] http://hani.co.kr/arti/international/arabafrica/4824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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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리브 2011.06.13 19:21 (*.128.27.225)

    다른 언론 매체에서 발표된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 옮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