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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가장 짜증나고 두 번 다시 상대하고 싶지 않은 유형 중 하나는 바로 자신의 잘못과 그 잘못으로 인한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는 사람이다. 정작 자기가 한 헛발질로 고스란히 골을 내주고는 자기보다 약한 아이들에게 잔뜩 눈을 부라리던 어릴 적 골목대장 아이에서부터, 잘 나가던 회사 말아먹고 노동자들은 모두 거리에 나앉게 생겼는데도 미리 빼돌린 재산으로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사장님까지, 그런 인간 군상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식의 책임전가는 비단 개인 간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에서도 종종 나타난다. 작년부터 미국이 오사마 빈 라덴과 알 카에다, 그리고 탈레반 '잔당세력'을 잡겠다고 아프가니스탄과 인접해 있는 파키스탄으로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의 전선을 확대하는 모양새가 딱 그에 해당한다.

파키스탄, '혼돈'과 '폭력'

나라 밖 소식을 자주 접하는 사람들은 다들 느끼겠지만, 최근의 파키스탄 상황을 가장 잘 표현한 단어 두 개만 고르라면 아마 '혼돈'과 '폭력'일 것이다. 일단 그 대표적인 사건 몇 개만 꼽아보자.

먼저 작년 7월에는 수도 이슬라마바드 중심가에 위치한 이슬람 사원에서 신학교 학생들과 정부군이 서로 대치한 끝에 군의 무력진압으로 최소 108명이 사망했던 '붉은 사원(Red Mosque)' 사건이 있었다. 그 뒤 12월에는 9년간의 해외망명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권력으로의 복귀를 절치부심 노리던 베나지르 부토(Benazir Bhutto) 전 총리가 암살됐다.

그 직접적인 여파로 인해, 1999년부터 파키스탄을 철권통치 해오던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이 국민들로부터의 강력한 사임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올 해 8월 결국 독재자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국 불안과 사회 혼란이 진정되기는커녕, 지난 9월 20일 대통령궁과 국회 의사당에서 불과 1마일 떨어진 매리어트 호텔에서 일어난 대규모 폭탄 테러 사건으로 오히려 사회적인 갈등과 위기는 그 극단으로 치닫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들 굵직한 사건들 사이사이에는 수많은 크고 작은 무력 충돌과 자살 테러, 폭력, 저항과 시위 등의 중요한 사건들이 자리 잡고 있음은 물론이다.

왜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됐을까? 이 질문에는 여러 가지 대답이 복합적으로 가능하겠지만, 공통된 답변 하나가 있다. 바로 앞서 언급했던 미국 주도의 테러와의 전쟁, 더 구체적으로는 2001년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그것이 유일한 원인이라는 게 아니라 핵심적인 원인이라는 거다.

지구 반대편에서 결정되는 파키스탄의 운명

사실, 파키스탄은 그 전에도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안정된' 나라는 아니었다. 1947년 8월 14일 독립 이래로 세 번의 쿠데타와 잦은 정권교체가 있었고, 1971년에는 피비린내 나는 내전을 치른 끝에 동파키스탄(오늘날의 방글라데시)이 분리 독립되는 과정도 겪었다. 또한 내부적으로는, 파키스탄이 현대적인 이슬람 공화국으로 남길 바라는 사람들과 정교일치에 따른 정통 이슬람 국가가 되길 원하는 이슬람주의자들 사이에서 끊임없는 이념적, 정치적 투쟁이 있어 왔다.

대외적으로는, 잠무와 카슈미르 지방을 둘러싸고 인도와 세 차례의 전쟁을 치렀으며, 1979년 12월에 구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는 미국과 손잡고 아프간 무자헤딘(전사들)을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전쟁에 간접적으로 엮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어떤 어려운 시기에도 파키스탄 국민들에게는 희망이라는 게 있었다. 한바탕 소나기가 내린 뒤 구름이 걷히고 햇살이 비치듯,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언젠가 그 모든 혼란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떤 글과 이야기를 읽고 들어봐도 희망 섞인 전망을 찾아보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북서부 산악지대의 부족민들뿐만 아니라 이슬라마바드, 카라치, 라호르 같은 대도시에 사는 국민들도 더 나은 미래는 고사하고 당장 자신과 가족의 생명과 안전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거기에다가 이제는 혹시라도 나라가 쪼개질까 봐 걱정해야할 판이다. '에이, 설마'라고? 물론 아직 그 가능성은 높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파키스탄 국민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지구 반대편의 정치인들이 어떤 수를 두느냐에 따라서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는 가정이다.

최근 잇다른 민간인 사망, 미군 군사작전의 전초전

지난 9월 3일, 아프가니스탄의 바그람 미 공군기지에 주둔하던 미 특수부대원들이 헬기를 타고 파키스탄 국경을 넘어 와지리스탄 남부에 있는 한 마을을 급습해 20명을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역시 알 카에다와 탈레반 목표물을 공격하기 위함이라는 게 그 명분이었는데, 사망자의 대부분은 민간인들이었다. 이는 결코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었다. 헬기를 타고 가다 주변 경치에 심취한 나머지 자기도 모르는 새 국경을 넘어간 특수부대원들이 거기가 아프간 마을인지 파키스탄 마을인지 헷갈려서 저지른 '실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미 행정부의 최고위 관리들에 따르면, 이 공격은 앞으로 파키스탄에서 미군에 의해 전개될 군사작전의 전초전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미 지난 몇 년간 아프간 주둔 미군은 프레데터라는 공격용 무인 헬기와 미사일을 이용해 아프간과 접해 있는 파키스탄의 북서 변경(North-West Frontier) 주와 부족연합자치지대(Federally Administered Tribal Areas, FATA)를 수시로 폭격해 많은 민간인 희생을 초래해왔다.

무엇보다도, 9월 11일자 『뉴욕 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지난 7월에 이미 "파키스탄 정부의 사전 승인 없이도 미 특수부대가 파키스탄 영토 내에서 지상 공격을 수행"하는 걸 허락하는 비밀 행정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뉴욕 타임즈』 가 소설을 쓴 게 아니라면, 이는 심각한 주권 침해, 아니 주권 유린 행위이자 침략 범죄에 해당한다. 몇 년 전에 우리 집을 털었던 도둑으로 '의심'되는 사람이 숨어있을 지 모른다고 저 건너 집을 모조리 때려 부쉈는데도 그 도둑을 못 잡자, 이번에는 그 옆집까지 뒤지겠다고 현관문을 박살내고 쳐들어가는 셈이다.

부패한 파키스탄 정치인들의 립서비스

여기서 당연히 드는 의문 하나. 외국군대가 자기네 국경을 맘대로 넘어와서 민간인들을 살해한데 대해 파키스탄 정부와 군은 그냥 팔짱만 끼고 있었을까? 물론 누구나 예상하듯이 즉각 미군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줄을 이었다. 최근 대통령에 취임한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Asif Ali Zardari, 사망한 부토 전 총리의 남편이다)가 공동의장으로 있는 파키스탄인민당(PPP)를 중심으로 한 의회는 비난 결의안을 채택했으며, 아슈파크 파르베즈 카야니(Ashfaq Parvez Kayani) 육군 참모총장은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국경과 주권을 지키겠노라고 공언했다. 그리고 그를 증명이라도 하듯, 지난 15일에는 파키스탄 영공을 넘어온 미군 전투용 헬기 5대와 병력 수송용 헬기 2대를 향해 지역 민병대와 보안군이 사격을 가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부패한 정치 엘리트의 대표적 인물인 자르다리 대통령이 이끄는 파키스탄 정부와, 테러와의 전쟁에 협조한 대가로 미국이 하사한 수십 억 달러에 달하는 원조의 가장 큰 수혜를 입었던 군부가 단순한 수사 차원을 넘어서 미국의 움직임에 강력하게 제동을 걸 거라고 기대하는 이는 거의 없는 듯하다.

그렇다면, 미국이 테러리스트를 잡겠다고 한 나라의 국경과 주권, 주민들의 생명을 마음대로 유린하는 걸 막을 만한 제동장치는 없을까? 글쎄, 적어도 지금으로선 딱히 그렇다고 할 수 밖에 없겠다. 조지 W. 부시 현 대통령뿐만 아니라 차기 대통령 후보인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도 파키스탄 국경을 넘어선 군사 작전을 지지해왔으며, 공화당의 존 매케인 역시 그 점에 있어서는 견해를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대테러 전쟁의 전선을 파키스탄으로까지 확대하는 문제는 이미 미 정치권 내에서는 정파를 넘어선 합의가 이뤄져 있는 것이다. 다만, 의외로 강한 경고의 목소리는 현지 실정을 잘 아는 미 정보기관과 전문가들 내에서 들려온다.

<인터프레스>(IPS) 뉴스의 가레쓰 포터(Gareth Porter)에 따르면, 지난 8월 미 정보위원회는 미 특수부대가 파키스탄 국경을 넘어 지상 공격을 가할 경우 파키스탄 군부와 정부를 더욱 더 불안정하게 만들 위험성이 매우 높다는 경고를 부시 대통령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국방부 산하 전직 정보부 관리였던 패트릭 랭(Patrick Lang)도 "사실상 미 정보 기관들은 부시 대통령에게 '파키스탄 정부가 무너지는 걸 보고 싶다면 그렇게(지상 공격을) 하시지요'라고 말한 것이다"라고 확인해주었다.

또한 <국제정책센터>의 셀리그 해리슨(Selig Harrison)은 2007년 8월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에 기고한 글에서, 파키스탄 국경지대에서의 군사작전은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를 낳을 것이고, 그것은 "두 나라에 걸쳐서 살아가는 4천 1백만 파슈툰 족들의 단결로 이어져 파키스탄과 아프간 두 나라의 붕괴와 급진적인 이슬람주의자들이 이끄는 '파슈투니스탄'이라는 새로운 국가의 출현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물론 이런 경고의 목소리도 칼자루를 쥐고 있는 미국 내 최고위 정치인들에게는 전혀 씨도 안 먹히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 게 지금까지 드러난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질문 한 가지만 더, 현재의 부시 행정부와 미래의 대통령이 될 오바마 혹은 매케인은 왜 자기네 정보기관과 전문가들의 경고조차 무시한 채 그렇게 전선을 파키스탄으로까지 무리하게 확대하려고 할까?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몇 년 째 쩔쩔 매는 주제에 말이다. 이 질문에 대해 파키스탄 출신의 베테랑 언론인이자 비평가이며 활동가이기도 한 타리크 알리(Tariq Ali)의 대답은 간단명료하다.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점령의 실패를 덮기 위해 전쟁을 파키스탄으로 확대한 뒤 그 실패의 책임을 파키스탄에 뒤집어씌우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것이 비단 이번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미국이 한 나라를 점령하다가 궁지에 몰릴 때마다 늘상 써먹던 수법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베트남전의 수렁에서 헤맬 때는 캄보디아를 비난하며 폭격을 가했고, 근래에는 이라크 무장 세력을 지원하고 있다고 이란에게 침략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긴, 그러고 보니 한국 전쟁 당시에도 중국 공산당이 북한군을 지원한다며 만주 폭격 이야기까지 나왔었던 걸 떠올리면 타리크 알리의 이야기가 상당히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진짜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질문 하나만 더, 남의 땅, 남의 귀한 목숨을 놓고 마치 장기도박 하듯 자기네 마음대로 이랬다저랬다 하는 저자들을 도대체 귀신은 왜 안 잡아가는 걸까?

- 글 : 경계를넘어 http://www.ifi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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