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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067.jpg

   공원에 앉아 있는 여성과 반이스라엘 구호 _20040605             

 

몇 년전 팔레스타인에 갔을 때, 어느 작은 도시 어딘가를 걷고 있을 때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산하던 거리에서 십대 중후반의 팔레스타인 남자 아이들을 떼로 만났다. 그 아이들은 동양인 여자가 혼자서 길을 걸어가는 모습이 지루한 일상의 구경거리 였는지 걷는 내내 내뒤를 따라 오면서 히히덕 거렸다. ‘친니, 친니!(중국인을 의미하는 말), 젝키 첸!(성룡)’ 이러면서 까무러치게 웃기도 했다. 처음에 서너 명이던 아이들은 어느새 열 명 넘게 불어났고, 의미를 알고나 하는 것인지 모를 영어 욕설이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뭔가 귀여움과 장난으로 넘길 나의 인내심은 이미 지나가고 있었고, 슬슬 심기가 불편해지던 무렵. 몇몇의 아이들이 내가 지나 가려던 길을 막고서는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비켜 달라고 몇 번이나 실랑이를 벌였지만, 아이들은 막무가내였다. 나를 사방으로 둘러싸고서 내가 머리에 쓰고 있던 히잡을 잡아당겨 벗기려고 시도하기도 하고, 나보다 몇 뼘이나 큰 키를 하고선, 내 얼굴을 향해 느끼한 눈빛을 쏟아내며 어깨와 얼굴로 뻗쳐오던 손들.

순간 불쾌감과 손발이 차가워지고 심장이 빠르게 뛰는 불안감 엄습했다. 나의 기억은 아직도 그 순간에 고착되어 있는 것 같다. 그 이후에 뭔가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여차 저차 그 상황을 빠져나왔던 것 같긴 한데, 정확한 기억은 이제 남아있지 않다.

 

지금까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당시 내 몸을 관통하던 불안감과 소름끼쳤던 그 느낌. 그리고 나는 이내 오십여 미터 정도 거리에 있던 검문소와 이스라엘 군인을 떠올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이스라엘 군인에게 들릴 정도로 소리를 지른다면, 이 아이들이 도망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1) 그 순간 내가 떠올린 것이, 이스라엘 군인이었다는 생각에 대한 죄책감(?)은 몇 년 동안 마음 한 구석에 무겁게 자리하고 있다. 그 십대들에게 이스라엘 군인은 자신의 땅을 점령한 점령민인 동시에 자신의 친구나 가족을 죽인 살인자이기도 하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 팔레스타인 십대들에게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인 이스라엘 군인이라는 것을 떠올린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그 생각은 비겁한 짓 인거 아닌가. 내가 어떤 것을 떠올렸다면 비겁했다는 자괴감에 시달리지 않아도 됐던 걸까. 불안한 상황에서 나를 보호하기 위한 나의 궁여지책은 그들을 ‘보호’ 하는 것과 충돌하고 있었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에 의해 점령된 땅, 수많은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건설하고 있는 고립장벽에 의해 하늘 없는 감옥에 갇혀 가는 곳, 길거리에서 만나는 수많은 팔레스타인 사람 누구와 이야기를 해봐도, 친구나 가족 중에 이스라엘 군인에 의해 살해 되거나 감옥에 갇혔다는 이야기를 듣는 게 어렵지 않은 곳이다.

또한 가부장제가 뿌리 깊게 내려져 있는 곳. 여성들이 하루에 여러 번 집 밖을 출입하는 것은 설령 그것이 집 앞의 채소가게를 가는 것일지라도 가족의 명예에 이롭지 못한 행동이라는 정서가 여전히 강고한 곳. 히잡을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회로부터 비난과 이웃의 쑥덕거림을 감수해야 하는 곳. 남성으로부터 청혼을 받지 못한 여성들은 결혼하지 ‘못’ 하고, 부모님 집에 ‘얹혀’ 살면서 나이를 먹을 수 록 가족의 명예에 반하는 존재로 혹은 집안의 소리 없는 오래된 먼지 같은 존재로 ‘취급’되는 곳이기도 하다.

 

 

1.jpg

 

 

팔레스타인평화연대에서는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 점령 만행과 반인권적 행태를 알리고, 가자지구 봉쇄에 항의 하는 집회나 고립장벽 건설 반대 등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행동을 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점령이 누구에게나 동일한 무게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여성에 대한 억압 방식 자체가 다르게 발현되기도 하는데, 우리는 아직 그런 문제에 대해 사회적으로 발언을 하고 의제화 한 적이 없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팔레스타인평화연대가 해온 활동은 팔레스타인의 여성 억압적 현실에 침묵으로 공모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나는 아직도 그 문제를 잘 풀어가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내부적으로 긴 호흡을 갖고 변변한 토론을 제대로 진행한 적이 없다.

 

팔레스타인의 여성 억압적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한국 사회에서 풀어내 보고자 할 때 자주 갈피를 잡지 못하는 지점은, 이슬람이나 아랍 사회를 공격하기 위해 여성 차별 문화를 강조하는 보수주의자들의 ‘언어’와 어떻게 다르게 읽혀 질 수 있도록 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이를테면 부시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면서 이라크의 여성 인권을 들먹였던 것이나 한국의 기독교 선교단체들이 이슬람 경전인 꾸란에 일부다처를 명시한 글귀를 두고 종교적 미개함으로 공격하는 것처럼 이미 이슬람이나 아랍 사회를 공격하기 위한 기제로서 여성 차별 문화를 강조하는 주장들이 퍼져있다. 물론 그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사실상 젠더 억압 문제에 별 관심이 없고 단지 이슬람이나 아랍의 공격 기제로 활용할 뿐이지만. 그것을 이 사회가 받아들이고 읽어 내는 방식의 차이를 어떻게 명확하게 둘 수 있을 것 인지에 대한 전략과 관점을 아직은 잘 고민하고 있지 못하는 것 같다.

 

팔레스타인 페미니스트 작가인 사하르 칼리파가 한 인터뷰에서 여성작가로서의 어려움을 묻는 질문에 ‘오늘날 팔레스타인에서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것 자체를 반민족, 반혁명, 친서방, 친이스라엘로 규정하는 민족주의자들의 공격을 이겨내는 일 이었다’2) 이라고 답한 적이 있다.

우리가 팔레스타인의 여성 억압 문제를 제기 할 때, 그것은 팔레스타인의 ‘민족해방운동진영’이 보이는 어떤 모습들과 충돌하기도 할 것이다. 팔레스타인 안에서 여성과 남성을 비롯한 여러 정체성들은 단일하게 이스라엘의 점령과만 충돌하고 있는 게 아니므로. 이를테면 내가 몇 년 전 팔레스타인 십대 남자아이들의 괴롭힘에 못 이겨 이스라엘 군인을 떠올렸던 것 처럼. 때로 무엇이 대안일지 아득한 질문을 하거나, 자괴감에 시달리거나 우리를 공격하는 ‘상대’의 안전도 동시에 염려해야 하면서 말이다.

 

아직 팔연대의 운동이 위에 이야기한 내용을 담아내며 가고 있지 못 하지만, 언젠가 이 고민을 잘 안고 풀어 보겠다는 마음으로 난해한 주제로 쓰기 시작한 글을 맺는다.

성글게 풀어낸 이야기가 읽는 이들에게 잘 전달이 될 런지 불안하다.

 

 

 

사진 615.jpg

공장의 여성 노동자 _ 20090925 

  

 

사족>

작년에 팔레스타인 여성 억압의 현실에 대한 글을 썼다가 아랍사회는 역시 미개하다는 덧 글을 보게 된 이후로는 팔레스타인 여성에 대한 글을 쓸 때는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소심한 마음에 짧지 않은 글 밑에 몇 줄 더 보탠다.

 

나는 한국도 팔레스타인도 가부장제가 강고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위에서 언급한 사하르 칼리파가 어느 글에서, 자신의 어머니가 딸만 넷 있는 집에서 또 다시 딸인 자신을 낳고 사흘 밤낮을 울었다3) 이야기를 쓴 적 있다. 나의 어머니도 딸 셋을 낳고 또다시 딸인 나를 낳아서 사흘 밤낮을 울었다. 우리의 차이는 사하르 칼리파는 60대 중반의 팔레스타인 사람이고, 나는 30대 중반의 한국 사람이라는 것이다.

여성의 몸은 팔레스타인이나 한국이나 극도로 성애화 되고, 통제의 대상이 된다. 팔레스타인에는 히잡에 대한 자유가 없고, 한국에는 브래지어에 대한 자유가 없다. 팔레스타인은 이란이나 사우디아라비아처럼 히잡을 착용할 법적 강제를 두고 있지는 않지만, 히잡을 착용하지 않는 여성에 대해 ‘경박한, 천박한, 개념 없는’ 등의 이미지가 있다고 한다. 마치 한국에서 노 브라로 다니는 여성에 대해 그렇듯이.

   

   

 

사진 736.jpg

    여성단체 RWDA활동가 란다와의 만남_20090904

 

 

 

* 각주

1) 사실 이스라엘 군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이의 치안이나 안전에 관심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에는 그랬었다. 여전히 군인은 우리를 ‘보호’하는 존재라는 이미지를 나는 깊게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2) 송경숙, ‘팔레스타인 여성 하위주체의 삶에 대해 말하기: 사하르 칼리파의 소설 읽기’, <여/성이론>, 9호, 2003년

3) 사하르 칼리파, ‘나, 나의 삶, 나의 글’ <아시아>, 2007년

 

사진 1185.jpg

  바비인형을 들고 있는 아이들_ 20090830

 

 

 

:: 지난달 <전쟁 없는 세상>소식지에 보냈던 원고 입니다. 너무 늦게 올려서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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