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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31)

일본군‘위안부’생존자 김복동 할머니는 평화를 향한 미국 여정 중이던 2015년 7월 시카고의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활동가를 만나 전시성폭력 피해여성을 지원하는 나비기금을 전달했다. 기금을 받은 라스미아 오데(70세)씨는 이스라엘군에 고문과 성폭력을 당한 생존자다. 1994년 미국 이주 후 팔레스타인 평화운동과 미국의 아랍 여성을 위한 사회정의 운동에 헌신한 오데씨는 2004년 미국 시민권을 얻었으나 현재 추방의 위기에 처했다. 미 당국은 시민권 심사 당시 이스라엘에서의 복역사실을 밝히지 않았단 이유로 십년의 징역형과 추방을 명했지만, 당국의 행보는 반테러법부터 최근의 무슬림 입국 금지까지 일련의 반-아랍 흐름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오데씨의 인생 여정은 팔레스타인 사람의 뿌리 뽑힌 삶을 전형적으로 드러낸다. 오데씨는 1947년 예루살렘 인근 마을 리프타에서 태어났다. 마을 주민은 모두 이듬 해 이스라엘 건국을 전후한 전쟁 중 유대인 민병대에 추방당했다. 오데씨 가족은 서안지구 라말라로 피난갔지만 1967년에 서안지구를 비롯한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에 군사점령됐다. 1969년 2월 28일, 한밤중에 오데씨의 집에 들이닥친 이스라엘군은 당시 대학생이던 오데씨와 자매 2명, 아버지를 체포하고 며칠 뒤 집을 폭파시켰다. 이 과정에서 오데씨 언니는 사망했다. 오데씨의 혐의는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2건의 테러에 가담했다는 것이었다. 45일간의 심문 내내 구타와 성폭행 등 고문을 당했고, 이 중 25일은 밤낮으로 심문당했지만 오데씨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심문관이 아버지를 끌고와 딸을 범하라고 명령하기 전까지는. 거부하던 아버지는 심문관에게 맞다 기절했고 아버지가 고문으로 돌아가실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 결국 오데씨는 조작된 자백서에 서명했다. 고문당하다 죽은 사람을 목도한 후이기도 했다. 한 달 후 재판에선 자백내용을 부인했지만 군사법정은 종신형을 선고했다. 10년 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첫 수감자 교환을 통해 75명의 팔레스타인 정치범과 함께 석방된 오데씨는 같은 해 UN에 출석해 자신이 ‘테러범’으로 조작되기까지 당한 일련의 과정을 증언했다. 이후 레바논과 요르단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UN 구호를 받을 수 있게 지원하는 활동을 하다 암 투병 중인 아버지의 간호를 위해 1994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십 년 뒤 시민권을 얻었고, 십년 뒤엔 다시 징역형과 추방을 언도받았다.

오데씨는 고문 당시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무죄를 호소하지만 구제 절차가 없다. 자백서의 진실 여부를 다투려면 고문부터 다뤄야 하는데, 당사자들의 증언 외엔 어떤 증거도 없다. 반 세기 전 일이라서만은 아니다. 최근 사건도 증거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스라엘에서 고문은 아직도 범죄가 아니고, 심문과정에서 정보기관과 경찰의 녹화 의무가 면제되어 고문 증거를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2013년 이스라엘에서 수감 중 사망한 팔레스타인인의 시체를 부검한 검시관이 고문에 의한 사망이라 결론지었어도 이스라엘은 고문 증거가 없다며 자연사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인권단체 고문방지공공위원회(PCATI)에 따르면 지난 십여년간 이스라엘 정보기관 신벳이 자행한 고문에 대해서만 1천 건 이상의 고발이 있었지만 단 한건도 기소에 이르지 않았다. 단 한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이스라엘 정보기관고발조사위원회는 증거 부족을 이유로 한건도 기소한 적이 없음을 UN 고문방지위원회 심의에서 시인했다.

오데씨는 고문 끝에 서명한 거짓 자백서에 붙들려 십년을 복역하고, 다시 20년 넘게 살아온 미국에서 추방당하기에 이르렀다. 오데씨 추방은 비단 출입국 관리의 문제만도 아니다. 시민권 신청 전 십년간의 미국 생활 동안 오데씨는 이스라엘에 고문·수감당한 일을 공공연히 밝혔다. 오데씨가 석방된 1979년 첫 수감자 교환은 역사적 사건이고, 당시 주-이스라엘 미 대사관은 물론 미 국무부도 알고 있던 일이다. 비슷한 상황의 아일랜드계 시민권자에 대한 처우도 다르다. 오데씨 추방은 2010년 시카고 일대에서 FBI가 반전·팔레스타인연대 활동가 7명을 가택수색하고 연방법원이 23명을 소환한 연장선상에 있다. FBI는 3년간의 조사 끝에 활동가들이 외국 테러조직을 도왔다는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찾지 못했다. 그리고 조사가 끝날 즈음 국토안보부는 십 년 전 일을 발굴해 라스미아 오데씨를 추방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지난주 오데씨는 3년에 가까운 법정 투쟁 끝에 징역 없는 추방을 제안하는 당국의 사법 거래를 받아들였다.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더 이상의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다시 뿌리 뽑힌 오데씨는 어디로 가야 할까. 리프타는 1948년 이후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로 남아 당시 팔레스타인 마을 형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후보지에도 올랐다. 하지만 고향이 그대로여도 다른 수많은 팔레스타인 난민처럼 오데씨가 돌아갈 곳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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