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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영선.


<글에 들어가기에 앞서>

반다님의 댓글을 보고 이 주제에 대한 글을 한번 써봐야겠다 란 생각을 했다. 그래도 개발도상국 생활 3년차인 나에게 어느 정도 문화에 대한 생각이 정립되어있지 않았을까 란 자만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3년차, 학교로 치면 이제 박사과정에 겨우 들어간 내가 이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쓰기 위하여 대한 사색과 프레임작성에 들어가고, 한 줄 한 줄 써 나가면서, 이 작업은 만만한 것이 아니란 걸 깨닫게 되었다.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오르고는 있으나 도대체 정리가 되질 않았다. 그리고 과연 내가 이런 주제에 대해서 글을 쓸 만한 자격이 될까 하는 본질적인 생각까지 가게 되었다. (아마도 아직 안 되는 것 같다.)


그러나 혹시나, 내 뇌에 포도당이 부족해 머리가 안돌아 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분말 우유를 숟가락으로 퍼 먹어 보기도 했지만 뱃살 증가에만 도움이 되었을 뿐 이 글에는 별로 도움이 안되는 게 분명 아직 내가 생각이 정립되지 않았다란 것을 증명한 꼴이 되었다.


또 다른 핑계를 대자면 우간다에 산 이후로, 출장오신 한국인들의 초대를 받아 처음으로 먹었던 최고급호텔에서의 저녁 식사가 그동안 현지화 되어있던 나의 위를 자극해 이틀 동안 먹는 족족히 설사하게끔 만들어 나의 몸에 이온의 불균형 상태를 초래해 머리가 백지가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어렵게 또 다시 해본다. 핑계는 이게 더 나은 듯싶다. 그러나 핑계는 핑계일 뿐이고 본질은 변하지 않겠지.


부족하지만 내가 3년이 좀 안 되는 그 시간들 동안, (여행까지 합하면 4년에 가깝지만 여행과 삶은 다르니) 느꼈던 것들을 말하려고 한다. 설사 본인의 의견과 충돌할지라도 이해해주길 바라고 그리고 그 의견에 대한 사항을 댓글로 써주신다면 정말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한국인이다. 그래서 고추장에 밥을 비벼 먹어야겠다.


어디선가 어느 책에 적혀 있다는 한 일화를 들었다. 어떤 내향적인 성향이 강한 똑똑한 아이가 있었다. 어느 날 이 아이가 아이큐 테스트를 하게 됐는데 결과는 80이 나왔다. 이 아이의 아이큐 결과를 이해 할 수 없었던 담임선생님은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의심을 했고 그 원인은 이 아이의 아이큐 테스트를 했던 담당자의 문제였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아이는 성향 탓에 대답을 하는데 시간이 필요한 아이였다. 그러나 아이큐 테스트를 담당하는 담당자는 답이 나올 때 까지 기다리지 못하는 외향적인 성향의 사람이었고, 아이가 잠시 시간을 두어 생각하는 동안, 담당자는 답을 모른다고 판단을 했던 것이다. 이 아이의 성향을 정확히 알고 있던 담임선생님이 다시 검사를 실시하자 이 아이의 아이큐는 놀랍게도 150이 나왔다고 한다.


문화를 알아 가는 것은 이 아이의 아이큐 검사와 비슷한 성향을 가지는 것 같다. 그 문화를 누가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80으로 볼 수도 있고 150으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문화를 바라볼 때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아이의 담임선생님이 더 정확한 아이큐 검사를 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내가 처음 라오스를 만났을 땐 한참 팔레스타인 문제에 빠져있었을 시기였다. 그리고 바로 그때 레바논의 헤즈볼라당과 이스라엘의 전쟁이 발발했다. 그래서 하루 종일 실시되는 라오스어 수업에 대한 관심 보단 BBC에서 방송되는 전쟁보도에 관심이 더 많았다. 그렇게 무관심 속에서 라오스를 만났다. 그러나 곧 라오스에서 살기 위해 이곳에 대해 알아야겠단 생각을 했고 관심을 갖고 바라보기 시작했다.


임지 파견 된 후 본격적으로 매일 매일 사람들과 부딪히며 살았다. 그리고 그들과 어울리고 이해하려고 노력 했다. 대부분 좋은 경험들이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우리에게 우리가 그곳에 살고 있다는 것과 전혀 관계없이 눈에 너무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가지고 우리를 속이는 경우들이 가끔 있었다. 가령 내가 라오스 글을 못 읽을 것이라 생각하여 전혀 나와 상관없는 세금 고지서를 들이 밀던가 하는 경우. 처음엔 ‘이 사람들이 우리를 바보로 아나 아니면 너무 순진한건가’ 생각하며 혼란스럽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했다. 어떤 때는 엄청 화가 나기도 했지만 곧 이것에 대해서도 이해를 하기 시작했고 어떤 것은 포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이해를 하게 되는 것이 단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단계가 있다. 3개월 정도엔 어떤 마음을 갖게 되고 6개월 정도면 어떻고 그리고 1년이 되면 또 어떤 단계에 이르고 그러다가 일 년 반 마지막 2년째....


그렇게 그곳에서 완전히 그들과 섞여서 지내다보면 어느 순간 내가 그들인지 그들이 나인지 의식이 없어 질 때가 온다. 아무렇지도 않게 현지인처럼 밥 먹다 바닥에 떨어뜨린 음식을 주워 먹고, 처음엔 위생이 의심스러워 절대 먹지 않던 시장 음식 (가끔 현지인들도 배 아플 수 있다고 먹지 말라고 한다.) 맛있다고 시장갈 때마다 쪽쪽 빨며 다니고, 먹으면서 ‘혹시 아프게 되면 약 먹지 뭐’ 란 생각을 자연스레 하고, 학생들이 사먹는 불량식품 그 학생들이랑 사서 나눠먹으며 헤헤 거리고. 길거리에서 사탕수수를 파리와 벌들이 몰려있는 압착기로 꽉 짜셔 만들어주던 사탕수수 주스, 거기에 노란 색소를 살짝 붓는 건 필수, 그리고 커피를 진하게 타서 연유를 막 퍼부어 주는, 살찌는데 최고인 라오스식 커피(다른 동남아시아도 같은 방법으로 커피를 탄다), 알 수 없는 벌레 튀김, 빳빳한 털이 듬성듬성 보이는 물소 껍질 튀김, 어떤 단원이 친해지기 위해서 먹었다라고 하는 염소 생피... (결국 그 단원 기생충이 검출 되어 한동안 약을 먹어야 했다). 재미있는 것도 있고 어려운 것들도 있지만 이 모든 것들이 그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가 자청해서 했던 것들이다. 그리고 우린 여전히 콘까오리(한국인)였지만, 그래도 위앙싸완(나의 라오스 이름, 수도인 비엔티안, 현지발음으로 위앙짠의 하늘이란 뜻)과 각자의 이름으로 우린 그 사람들의 생활 속에 한 부분이 될 수 있었다.


beer.jpg

<모든 상황에 빠지지 않는 라오스 맥주, “비어라오”>


그렇게 동네 친한 아줌마를 “엄마”라 부르고 그 남편을 “아빠”라 부르며 지내고, 동네잔치가 있으면 초대를 받아 참석하고 거기서 또 같이 라오스에서 생산되는 맥주인 비어라오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술을 같이 하지 않으면 친해질 수 없다. 아마 모두들 비어라오 먹다 거의 토할 뻔 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시간 되면 전통춤을 같이 추고, 그렇게 우리가 한국인이란 것을 굳이 인식하지 않으며, 잊은 채로 그렇게 살았었다.


그렇게 살다가 처음 도착해 느꼈던 그들의 소위 “나빠”보이는 습관이나 문화가 어느 순간 이것이 나쁜 것인지 아닌지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어떤 것은 이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떤 것은 그 삶에 빠져 자연스럽게 다가와 버려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판단한다는 게 의미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무슨 판단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나’란 생각과 ‘이 사람들을 그냥 이대로 살게 하면 안 될까’하는 생각, 그러나 이미 자본주의가 밀려 들어왔기 때문에 ‘돈 맛을 알아버린 사람들을 그냥 이대로 두면 분명 또 다른 제국주의의 희생물이 될 텐데‘라는 생각. 머릿속이 혼잡해 지고 갑자기 내가 발 담고 있는 국제개발이란 분야에 대해 회의가 들기 시작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일본 정부가 라오스의 주요 도로를 원조라는 이름하에 무상으로 건설해 준 후 라오스 내에서 일본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철폐시켜 라오스 내에 일본차로 가득 차게 만들어 버렸다는 말을 듣고, 그리고 호주가 또한 비슷한 방법으로 광산 채굴권을 독점했다는 말을 또 듣게 되면서 내가 도저히 풀 수 없는 또 다른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선진국은 개발도상국에서 원조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착취를 해가고 있는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국은 이 사업에 후발 주자이다. 한국이 앞으로 어떠한 식으로 이 사업들을 펼쳐 나갈지 궁금하다.


이런 그 지역의 고민에 빠지고 사람들과 부비며 ‘네가 나’인지 ‘내가 너’인지 모르고 지내다가 어느 순간 다시 소위 문명에 맞닥뜨릴 때가 생긴다. 수도를 가게 되던 가 좀 더 잘사는 주변국을 가게 되는 기회가 오는 것이다. 그럴 때가 되면 다시 난 나도 모르게 원래 한국에서 살던 한국인으로 돌아가게 된다.


난 커피숍에서의 휴식을 무엇보다도 좋아한다. 그리고 책이 가득 찬 대형서점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여자들이 좋아하는 백화점 쇼핑 보다 더 좋아한다. 이 행동들이 내가 한국에 있을 때 유일하게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들이었다. 난 이 방법들이 이곳에서는 사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수도에서 마시던 커피 한잔이 15,000낍인데 지방에선 쌀국수 한 그릇을 5,000낍에 먹을 수 있으니(보통은 10,000낍) 난 한 마디로 한국에서의 스타벅스 캬라멜 마끼아또 한잔 보다 더 비싼 커피를 마셨던 것이다. 알면서도 이것들이 날 행복하게 했고 편안함을 가져다주었다.


이곳 우간다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내가 사는 곳은 전에 라오스에서 살 던 지역 보다는 약간은 번화한 곳이지만 (작은 슈퍼마켓이 몇 개나 있다.)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일들은 할 수가 없는 곳이다. 더군다나 수도로 나가는 길은 더욱 험난하다. 차비도 라오스보다 몇 배는 비싸고 그리고 차도 너무나 위험하다. 이곳 운전사들은 모두 다 카레이서이다. 토요타 봉고차를 개조해서 12승을 15승으로 만들고 그렇다고 15명이 타는 게 아니라 최소 16명에서 22명까지 사람들 태운다.(아마 더 태운 것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외의 짐들을 가득 싣고, 가끔 지붕에 닭들도 가득 싣고 마치 폭주족처럼 운전을 한다. 이 차에 타면 난 항상 기도로 시작한다. ‘오늘도 죽지 않게 해주세요’ 라고. 사실이다.


taxi.jpg

<다른 지역을 이동할 때 타는 현지 택시>


그렇게 수도에 도착을 하며 보상이라도 하듯이 현지생활에서의 물가와는 다른 소위 외국인용 가격인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고 마신다. 지방 시장에서 한 끼 밥이 약 1,500실링을 하는데(보통은 약 3~4,000실링) 커피 한잔 값이 4,000실링에서 6,000실링까지 한다. 여기엔 라오스와 달리 갈만한 서점이 있다. 그래서 서점도 꼭 들리는데 이때 내가 사는 책의 값이 약 18,000실링에서 많게는 60,000실링까지 사봤다.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개발도상국에 살기로 했으면 그 곳에 완전히 빠져야지 현지인들에겐 하루치 일당도 넘는 돈을 그렇게 쉽게 쓰면서 편한 대로 사냐고 누군가가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면 난 이렇게 물어보고 싶다. 해외여행갈 때 고추장 싸가지 않냐고. 대한항공타서 비빔밥 나오면 꼭 스튜어디스한테 요청해서 왜 튜브고추장 한 두 개씩 더 받냐고. 이게 모두 타지에서 적응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왜냐면 우리는 한국인이니까. 그래서 한국인이 어릴 때부터 해오던 습관이 있으니까. 왜 밥 할 줄 모르던 학생들이 외국으로 유학 가 몇 년씩 살면 김치 담그는 법을 배워 해 먹게 될까? 왜 외국에 맛있는 한인 식당에 한국인들로 바글바글할까?


여행할 당시 그리고 라오스에 처음 살게 될 당시 이것을 느낄 수 없었다. 모든 여행지가 비슷하다는 인식을 받으며 왜 여행객들이 외국에서도 자신들의 습관을 유지하기 위해서 모든 여행지를 똑같게 만들어 버렸을까 라고 그들을 비난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해한다. 습관이란 여간해서 바꿀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문화의 좋고 나쁨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문제다. 몇 개월씩 적응을 하며 현지음식을 먹다보면 가끔은 내 음식이 미치도록 먹고 싶은 것이다.


라오스에 계신 이장님 몇 분이 코이카의 초청을 받아서 2007년 11월에 약 열흘 일정으로 한국에서 농업연수를 받을 기회를 갖게 되셨다.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하시게 된 그 분들, 한국에 오셔서 그 엄청난 빌딩들, 편리한 시설, 그리고 고급 음식을 보면서 즐거워 하셨을까? 아니다 그 분들은 땀막훙(파파야로 만든 김치 같은 것, 라오스전통음식 중 하나)이 먹고 싶으시다 며 그 연세의 분들이 우셨다고 한다. 그리고 당연히 감기로도 고생을 하셨고.


요즘 세상이 돈이 최고이다 보니 돈이 많은 나라에서 행해지는 문화나 생활 습관들이 옳은 것 인양 착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반대급부 적으로 어떤 사람들에겐 그 돈 많은 나라의 사람인양 행세를 하는 것이 죄의식처럼 느끼는 면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문화를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문화는 존중되어져야 한다고 하면서 사실 어느 문화가 더 우세하게 작용되는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 어디를 가던 서양문화가 그 모든 곳에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우린 그 서양 문화를 즐기고 있고. 그런 것을 볼 때 마다 각 나라 속에 고유한 의식과 생활 방식들이 사라지는 게 아닐까 안타깝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발견 한 것은, 우리가 아직 우리나라에 대한 고유 전통을 지키려고 하는 노력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이곳 또한 오랫동안 식민지 생활과 전체 나라가 영어라는 공용어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들의 각자 부족어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보면서 그들의 문화는 계속 살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smileBar.jpg

<모든 관광지는 똑같다>


내가 3년 정도 살면서 느낀 결론은 이것이다. 전체의 공통적인 도덕률 아래에서 그냥 한국인은 한국인, 일본인은 일본인, 중국인은 그냥 중국인 그렇게 느끼고 사는 것이다. 내가 그들에 비해 좀 더 잘사는 나라에서 왔고, 그것을 현지인들이 인식하고 있다면 이미 우리가 아무리 그들을 존중하고 내가 아무리 현지인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노력한다고 해도 그들이 당신을 친구로는 받아들일 순 있지만 자신과 같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아무리 돈 없는 척 해도, 또 정말로 돈이 없을지라도 당신의 피부색 때문에, 그리고 그들에 비해서 빛나는 옷(?)때문에 당신에게 돈이 있다 생각할 것이고 꼬마들은 “Omuzungu, Give me 500.(외국인, 500실링만 줘)" 아니면 ”빡싼떼(돈줘)“ 라고 말하며 쫓아다닐 것이다. 그리고 당신을 속여서 돈을 뜯어내려고 어른들을 여러 번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한 파견된 기관에서는 당신을 한국인으로 보기에 앞서 그 기관에 컴퓨터실이라도 설치해줄 돈으로 볼 것이다.(코이카 자원봉사자의 경우) 물론 이런 일들은 여행을 다니면서도 종종 경험할 수 있다고 하지만 막상 이웃이라고 생각 되어졌던 사람, 그리고 매일 보는 동네 꼬마들이 그런다면 기분은 분명 다르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외국인이 때문에 겪는 일이다. 다르기 때문이다.


brothers.jpg

<밥 먹고 있는 형제>


다름이란 것은 또 다른 다름을 만들고 그 다름을 좁히기 위해선 이해란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이해란 것이 하나가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해는 이해다. 서로 다른 문화 그리고 그 속에 사는 것이란 바로 이런 것 같다. 다름을 알기 위해서 시간과 노력을 들인 이해가 필요하지만, 이해를 했더라도 그 다름은 여전히 존재한다. 처음의 일화에서 아이큐 150의 아이가 내향적인 성향을 가졌고 그 아이큐 테스트 담당자가 외향적인 성격을 가진 것처럼 말이다. 성향을 파악해서 80이란 결과를 다시 정확하게 150이라고 냈지만 그 성격은 그대로 있다. “자신들의 마을에 포장된 도로를 놓기 위해 마을 처녀를 선정해 다른 지역에서 매춘을 시켜 돈을 벌어오게 한 후 그 돈으로 도로를 놓고 그 돌아온 처녀를 선정된 마을 총각과 결혼을 시켰다”란 사례를 우리가 심히 노력을 기울여 여러 정황과 그 곳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들어 이해 할 순 있지만 우린 절대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본질은 남는다. 그들의 문화와 우리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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