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도상국, 그리고 그 곳의 시골에 산다는 것에 대한 의미 첫 번째, 행복감

by 올리브 posted Nov 03, 200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우간다에 대한 두 번째 이야기-

 

 

나는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라오스에서 코이카로 활동 했을 당시에도 그리고 일반 NGO에서 활동하는 지금도 수도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했다.

수도에 산다는 것과 시골에 산다는 것에 대한 차이점을 우리의 입장에서 간단히 얘기 하면 어떤 문화적 혜택을 얼마나 더 많이 누릴 수 있냐 없냐는 것이다.

 

한국이야 어딜 가든 다양한 물품을 구입할 수 있는 대형 쇼핑몰, 서점 (한국은 인터넷 서점도 활발하지), 다양한 음식점, 맛있는 커피도 팔고 케이크도 파는 분위기 좋은 커피숍 등등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개발 도상국에 산다는 것은 이런 모든 문화적인 혜택을 어느 정도는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고, 특히 부산이나 대전처럼 제2, 제3의 도시에라도 살지 않으면 아예 생각을 말아야 하는 것들이다.

 

자기 라오스 시절이 생각난다.

그 곳에서도 현지인들도 말하는 소위 아무것도 없는 곳에 살았던 나는 6개월마다 한번씩 건강검진을 위해 태국을 가는 게 2년 동안 라오스 생활을 견디게 해 준 낙 중 하나였다.

태국에만 가면. 이란 생각을 같은 곳에 머물고 있는 다른 단원들과 하며 그 계획들을 종이에 적어 내려갈 때의 행복감! 그 도시는 방콕도 아니고 국경의 변두리 도시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눈에는 없는 게 없는 곳이었었다. KFC도 있고 피자집도 있고 패밀리 레스토랑도 존재 했다. 그리고 그 모든 시설이 있는 곳은 바로 백화점 안이었다. 그러니 다양한 물건들을 구경하고 마구마구 지를 수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순간은 행복했다.)

 

태국에 가게 되는 날이면 그 동안 아껴뒀던 옷을 꺼내 챙겼다. 우리동네에서 사용하던 물은 지하에서 퍼 올린 물을 저장탱크에 담아 놓은 것이었는데 깊이 펌프를 파기에는 돈이 많이 들어서 얕게 판 펌프다 보니, 보이지 않게 흙도 딸려 와 옷을 빨면 옷이 누렇게 되는 수가 많았다. 그리고 포장되지 않는 길을 창문이 닫히지 않는 버스로 달리다 보면 옷은 금새 누렇게 되어 있고 아무리 빨아도 그 색은 처음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특별한 날을 위하여 아껴놓은 옷들이 있었다. 시골티 난다고? 물론이지 난 시골에 살았으니까, 그것도 깡 촌에. 

 

1.JPG

<라오스 버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우간다 부시아 지역, 이 곳도 시골이지만 라오스에서 내가 살던 만큼 시골은 아니다. 그래도 이 곳은 군청 (district office) 소재지이다. 그나마 약간은 번화한 곳. 그러나 이 곳 또한 제 2의 도시 혹은 제 3의 도시도 아니고 이 district이 생긴지 그리 오래된 역사를 가진 것도 아니다 보니 이곳의 상황 역시 다른 큰 도시에 비교하면 열악하기 마찬가지다.

 

라오스에서 2년을 산 경험이 있는 내가 원했던 것은 아주 작은 것들이었다. 그래도 이 곳은 열대지방이니 다양한 야채와 다양한 과일이 존재할 것이란 상상을 했다. 그리고 이 것은 시골에 살면서 누릴 수 있는 작지만 큰 행복이었는데…… 흑! 무참히 깨져 버렸다.

 

지금 내가 산지 8개월이 됐지만 난 오직 바나나와 파인애플, 작은 수박, 망고, 현지 오렌지, 레몬 그리고 잭플룻 밖에 과일이라곤 보질 못했다. 망고 같은 경우도 철이 있어서 그 철이 아니면 먹질 못하고 파인애플, 수박도 마찬가지다. 아.. 아보카도도 있다.

라오스에서 살 땐 철마다 다른 과일들이 나왔다. 그 열대과일의 다양성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과히 흥분하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야채들!

 

이곳? 토마토, 양파, 가지, 양배추, 이곳에서 그린이라고 불리는 초록색 야채, 그리고 몇 가지 풀들. 이게 다다. 이 사람들은 이 것만 먹고 산다. 가끔 당근을 볼 수 있고 오이는 구경조차 못했다. 버섯도 없다. 마늘도 가끔 팔고, 파는 아예 없다. 배추나 무는 상상조차 못한다. 그래 배추와 무는 원래 약간 기온이 낮은 곳에서 자란다고 하니 포기하자. 그러나 라오스는 어찌된 일? 많이 파는데. 갑자기 슬퍼진다. 이 곳은 먹는 낙도 없었다. 처음 도착 했을 당시.

그러나 인간은 진화하는 동물이라고, 나 역시 이 곳의 사정에 맞춰 진화를 해왔고 이젠 그 제한된 야채 및 곡물을 가지고 이것 저것 음식개발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내 취미는 요리가 되 버렸다.

 

2.JPG

<간이시장>

 

그러나 이게 불행이라고 생각하질 마시길.

아까 태국얘기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런 제한된 환경에서 살다 보면 얻는 것이 있다. 작은 것에 감사 할 줄 알게 됨 새롭지 않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가끔 수도에 나가게 되면 내가 제일 먼저 하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커피숍에 가서 커피를 마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 만드는 샌드위치나 간단한 식사를 주문한다. 가격은 약간 비싸지만 환상적인 음식이 나온다. 주로 내가 주문하는 샌드위치는 토스트 한 빵에 토마토랑 양파 그리고 햄과 치즈를 넣어서 나오고 약간의 샐러드도 같이 나온다. (그래, 단순하다. 그러나 나에겐 환상적이다.) 수도에 와야 햄과 치즈의 맛을 볼 수 있는 나는, 이 샌드위치를 한 입 무는 순간 행복함을 느낀다.

 

수도에 있는 대형 쇼핑몰과 그 옆에 얼마 새로 생긴 대형쇼핑몰을 보는 것도 나의 행복 중 하나다. 여러 가지 물품 외에도 여러 가지 야채, 그리고 과일을 판다. 물론 배추, 무, 파 그리고 버섯을 살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곳 한 편에 자리잡은 큰 옷 가게 구경하는 것도 나를 행복하게 하고, 수도에서만 볼 수 있는 서점다운 서점을 방문해서 몇 시간이고 책 구경하는 것도 날 행복하게 한다. 그리고 몇 군데 있는 서로 다른 빵집에서 파는 각 자 파는 식빵과 그 빵집만의 빵을 사 먹어 보는 것도 날 행복하게 한다.

 

3.JPG

<우간다 어느 커피숍>

 

특히 요즘 날 행복하게 하는 것은 우리 집에서 핸드폰 전파가 아주 잘 잡힌다라는 것이다. 처음 이 곳으로 왔을 때 우리 집은 핸드폰 전파가 잘 잡히지 않아서 전화기를 창문에 대고 통화를 해야 했다. 그리고 문자 하나를 보낼 때도 전화기를 들고 다니며 어디가 전파가 강한가 체크하며 가장 강한 곳에서 문자를 보내야 했고, 같은 회사의 GPRS 모뎀 인터넷을 사용했기 때문에 내 노트북의 위치는 마치 데스크 탑처럼 항상 고정돼있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 어찌된 영문인지 핸드폰의 전파와 인터넷의 전파는 가장 강한 축에 속하는 90~98%를 달리고 있다. 역시 세상은 점점 좋아진다. 어디든 오래 살고 볼일이다.

 

그러나 최고의 행복은 뭐니 뭐니 해도 요즘 들어 전기와 물 공급이 전만큼 말썽을 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전이나 단수가 되도 요즘은 하루 만에 돌아온다. (오~ 주여 감사합니다!)

준비가 안된 채 단수 4일 정전3일을 동시에 겪어 보지 못한 사람들은 이해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기쁨을. 낮은 전압의 전기, 괜찮다. 들어오기만 한다면.

 

이 행복감들, 내가 수도에 살았다면 혹은 내가 한국에서 계속 살았다면 느낄 수 있었을까? 출근길 만나는 화려한 색깔의 새를 보면서 파란 하늘과 구름을 보면서 행복함을 느꼈을까? 그리고 아스팔트 위에 널 부러진 뱀을 보면서 다행히 내 자전거로 치지 않았다고 안도해 하며 행복해 했을까?

물론 자전거로 달려드는 닭 대가리를 가진 닭을 보면 짜증이 나기도 한다. 근데 이럴 땐 포기라는 것이 있지. 닭들은 원래 그런걸 라오스 시절부터 알았으니까.

 

4.JPG  

<시골풍경>

 

5.JPG

<kingfisher>

 

2009년 11월 02일

by 나뷔레(함영선)

 

* 나뷔레는 우간다 말로 "밤에 태어나다"라는 뜻이래요 너무 예쁘다+_+

Who's 올리브


Articles

1 2 3 4 5 6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