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딱 팔레스타인에 관련된 뉴스는 아니지만 무기 거래를 감시하고 반대하는 국제사회의 운동을 공유하자는 차원에서 퍼왔어요 참 쥬타..
어제 스위스에서 국민투표가 있었다고 하는데 사안들이 참 흥미롭다. 하나는 이슬람 사원 건물의 첨탑 건축을 금지하는 것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스위스에서 생산하는 무기를 해외로 수출하는 것을 금지시키는 것에 관한 내용이었다.
난 최근에 WRI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을 통해 무기수출금지 국민투표 얘기를 처음 알게 된 건데 기사를 좀 찾아보니 한국에선 연합뉴스에서만 이 국민투표 얘기를 간략하게나마 언급한 것 같다. (불어나 독어 검색을 못 하니) 영어기사들을 검색해보니 이번 국민투표 관련 기사들이 적잖이 보인다. '첨탑건축금지'라는 선정적이고도 상징적인 사안때문인 것 같다. 예전에 프랑스 학교 내에서 히잡 착용을 금지했을 때에도 논란이 컸던 기억이 나는데, 이번 '첨탑금지법안'에 스위스 사람들의 57%이상이 찬성했다는 사실에 프랑스 히잡 건보다 더 상징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맘이 많이 아프다.
국민투표의 다른 사안이었던 무기수출 금지법안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이 생긴다.
자국에서 생산된 무기를 해외로 수출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에 대한 국민투표는 사실 이번이 벌써 세번째였다. 1972년과 1997년 이렇게 두 번이 더 있었는데 모두 부결이 된 바 있다. 심지어 72년 국민투표 땐 49.7%가 금지법안을 찬성했다고 하니 그 당시 통과되지 못한 게 무지 아까웠을 것 같다. 97년엔 찬성비율이 22%정도로 떨어졌다는데 이 수치의 차이를 불러온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이번 국민투표를 앞두고선 분위기가 상당히 괜찮았던 것으로 보인다. 스위스에선 10만명의 서명이 모여야 국민투표로 상정을 할 수가 있는데 이 무기수출 금지법안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활동해온 GSwA의 예상보다도 훨씬 빠르게 10만 명이 모였다고 한다(제주도지사 소환할 때는 4만 천몇명이 최소충족 요건이었다). 여론조사에서도 이 무기수출반대 법안에 41%가 지지 44%가 반대였다고 하니 한번 기대해볼만도 했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68%가 법안통과에 반대의사를 표함으로써 결국 또 다시 부결이 되어버렸다.
법안은 비록 아쉽게 부결됐지만, 국민투표 결과가 나온 뒤에 한국으로 치면 재경부장관쯤 될 듯한 사람이 나와서 앞으로 스위스가 수출하는 모든 무기 거래에 대해서 아주 엄격한 관리를 하겠으며 분쟁지역으로는 절대 무기를 수출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다고 하니 무기거래에 대한 한국과 스위스 사회 사이의 온도차가 실감된다. 한편 이 동네도 이 무기수출금지법안을 두고서 방산업체들은 일자리 감소를 들먹이며 줄곧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고 하는 걸 보면 역시나 자본가들의 논리는 어디든 비슷비슷한 것 같다.
이번 국민투표를 성사시키기 위해 주도적으로 활동한 그룹은 the Group for Switzerland without an Army (GSwA) 라는 그룹이다. 이 그룹 홈페이지에 소개된 내용을 보면, 이 그룹은 자국의 군대를 폐지함으로써 스위스 사회를 좀 더 "문명화civilizing"시키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아 1982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좀 더 찾아보니 스위스에서 군대 폐지를 골자로 하는 국민투표를 예전에 상정시켰던 바로 그 그룹이기도 하다. 89년에 있었던 군대폐지 투표에선 무려 35.2%의 사람들이 폐지를 지지했단다. 우와.
링크에 링크를 타고 좀 돌아다니다 보니 이런 글(abolishing the Draft in Switzerland)도 발견했다. 89년 있었던 군대 폐지 국민투표에 관한 짧은 글인데, 여성그룹이 GSwA에 함께 하게 된 배경을 분석한 부분이 흥미롭다. 80년대 중반 스위스에서 여성징병 논의가 불거지면서 많은 여성 그룹들이 군대 폐지 캠페인에 대거 합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워낙 그 동네에 관한 배경 지식이 없어서 조심스럽긴 하지만, 한국에선 일군의 여성그룹들이 오히려 '양성평등'을 위해 여성징병이 실시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것과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 견고한 한국의 군사주의.
병역거부 자료를 찾을 때에도 스위스가 종종 회자될 때가 있었는데 이 참에 스위스 정치제도나 역사적 맥락 등 좀 더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싶은 욕구가 들었다.
이번 무기수출금지 국민투표를 앞두고 있었다는 플래시몹 영상이다. 영상 자체는 그닥 새로울 게 없어보이는데 마지막에 보이는 티셔츠에 새겨진 문구, "make cheese not war"가 참 귀엽다.
한국에서도 낼모레 12월 3일, 집속탄 금지 협약 채택을 기념하고 각 국의 서명을 촉구하는 국제공동행동의 날을 맞아 홍대쪽에서 데모가 있을 예정인데 앞으로 계속 무기거래 문제를 공론화될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 출처 : http://blog.jinbo.net/flyanthony/?pid=202
덩야핑이 보낸 최종참석확인메일;에 답장한 사람이 저밖에 없어서<;;;;;ㅋㅋㅋㅋㅋㅋㅋ
뭔가 공간이 텅텅 빌까바 긴장긴장 하고있었는데
예상외로!ㅋㅋㅋㅋㅋ 꽤 많은 분들이 평화박물관을 채워주셨삼 꺆
미니 얘기는 완전 계속 웃으면서 들엇어염 중간에 쩜 슬픈얘기도 잇었지만 ㅠㅠ
미니 얘기의 핵심은
요거심ㅋㅋㅋㅋㅋㅋㅋ
팔레스타인사람들과 부데끼는 일상ㅋㅋ
근데 미니 말투가 막 재밋고 웃긴 와중에도 되게
깊거나 중요한 얘기를 하는 것처럼
오늘 발표도 그랫던거 같음ㅋㅋ
특히 이번에 팔레스타인 가게 된 계기를 얘기할때
팔레스타인 사람들 자체에 대한 생각보다도
집회가 무사히 끝나길 바라고,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이야기를 더 잘 전달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기보다도
데드라인에 급급하고, 그런 자신의 모습을 발견햇다고 하셧을땜
개인적으로 참 와닿아씀 저도 그러케 되
지않게 노력하기보다는 얼릉 팔레스타인에 가겟엄 쿄쿄<
반다는 말 그대로 '점령의 일상' 에 대해 말해줬어요
그중에서도 "세명 중에 한명이 스파이",
"아니야.....두명 중에 한명일걸?"
이라고, 고립장벽도 장벽이고
바위와 돌멩이로 길을 막고
마을간의 물리적 소통을 막는 것도 막는것이지만
사람들 중에 이스라엘 스파이가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인식하면서 자기검열을 하고
이웃과의 감정적 단절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그게 바로 점령의 일상화고 분리라고 하셨긔.........
강똥은 완존 많은 얘기를 해줬삼 진짜 많은걸 보고듣고경험하고 온거같은데
막 시간은 너무 적고 ㅠㅠ 강똥얘기를 다들을려면 어제같은 자리를
한달에 세번씩은 해야할꺼 같았긔<ㅋㅋㅋㅋㅋ
그중에도 제일 기억나는거는 올리브 수확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테러하는
점령민이자 점령군이 흰 복장을 하고 기도하는거 그 폭력속에서 하느님을 찾다니 욕나와 -_-
글구 자기 마을의 사람들과 국제활동가들을 지키려고 밤잠없이 마을 순찰하는 젊은사람들 ㅠㅠ
못다한 얘기는 앞으로 정모에서 만나가면서 찬찬히 하긔.....
우리 정모는 1,3,5주 금요일에 경복궁 근처 사무실에서 합니다...
자세한건 저(발칙한)에게 전화를..... 영일영 둘둘둘육 팔팔오륙이라긔....
독립적이고 강한 그녀, 반다
인터뷰 및 정리_ 슈룩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은 단순하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 꿈을 가지고 있고, 그들은 대립 없이 평화롭게 지구에 존재하기를 원합니다.
나는 델알룩손 이라는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발전된 기술의 혜택 없이 단순한 삶을 살고 있는 마을입니다.
어느 날(이것은 마치 꿈처럼) 한국에서 친절한 친구가 이 작은 마을에 날아왔습니다.
이건 내 삶에서 외국인을 만난 첫 번째 경험이었습니다. 내 삶은 그 친구와 함께 멋지게 변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그녀를 만나면서 어떻게 사람과 관계를 맺어 가는 지에 대해서, 어떻게 다른 문화를 존중하는 지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그녀는 강하고 독립적인 사람인 것 같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향해 갑니다.
나는 그녀가 떠나면 몹시 그리울 것입니다.
어느 날 나는 내 친구 반다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녀의 삶, 그녀의 나라 그리고 몇 개의 질문들을 했습니다.
나도 정확하게는 모르겠어. 갑자기 생각하려니 생각이 잘 안나네. 대립과 전쟁 없이 평화로운 공간,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자신이 꿈꾸는 바대로 살아가는 삶. 그런 삶을 살아가는 세상에서 단 하루 살아 보는 경험을 해보고 싶어.
어떤 경험은 아주 짧은 순간일 지라도 그 경험으로부터 우리는 완전히 다른 그 무엇을 느끼게 되거나 알게 되는 것 같아.
이걸 설명하긴 무척 어려운데, 아무튼 그런 경험들을 해 보고 싶어.
꿈은 뭔지 모르겠다. 더 생각해 볼께.
내가 원하는 대로 내 삶을 살아가고 싶은 데 그러기 위해서는 독립적으로 사는 것이 중요하고, 혼자 사는 것이 더 내게 맞는 방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처음으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서 혼자 살기 시작했을 때 정말 멋졌어. 하지만 한 달 정도가 지난 후 내가 나를 온전히 책임지며 생활 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어. 부모님으로 부터 독립해서 생활한지 십년이 조금 넘었는데 혼자 살기로 했던 결정은 내게 정말 좋은 경험을 하게 했어. 요즘 한국에선 많은 젊은이들은 스무살이 넘으면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혼자 생활하는 것을 바라는 것 같아. 이곳의 문화와는 정말 다르지?
아랍 문화의 좋은 점을 많이 발견하기도 했지만, 사실 내가 아랍 문화에 대해 잘 안다고 말하긴 어렵잖아. 내가 경험한 것 안에서 말하자면, 아랍 문화에서 가족은 무척 중요한 가치인것 같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이 외국인들에게 정말 친절하다는 것. 전에 시리아에서 길거리에서 지도를 가지고 길을 찾는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어서 가게에 들어가서 길을 물어 봤는데, 그 가게 주인 아저씨가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가게 문을 닫고 내가 가려는 곳 까지 데려다 준 적이 있었어. 그때 너무 당혹스럽기도 하고, 너무 미안하고 고맙고 그랬던 기억이 있어. 한국에선 일어나기 힘든 일이거든. 사실 이건 경험의 아주 일부이고, 고마웠던 기억들이 정말 너무 많아.
그리고 이곳 문화를 존중하는 것을 시도하지만, 사실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에 대해 늘 헷깔리고 어렵게 느껴질 때도 많아. 사실 지금 라마단 기간이라고 해서 내가 이곳 친구들과 함께 낮 시간에 밥을 먹지 않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고맙다거나 칭찬 같은 걸 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리 어렵지 않아.
정말 어려운 것은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이곳 문화를 존중하는 것이고, 그 문화가 내가 태어난 곳의 문화 그러니까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것과 충돌할 때 어려움을 느껴. 네게 말했다시피 여성과 남성에 대해 문화가 무척 다른 것 말이야.
그리고 여성과 남성에 대한 다른 문화는 내게 많은 충격을 주기도 했어. 여성과 남성 간에 엄격한 공간 분리가 있다거나 대화를 하는 것도 터부시 되는 문화 같은 것 말이야. 지난번에 리함을 그 친구네 집 계단에서 만났었는데, 그때 리함 삼촌 친구들이 계단으로 막 내려오니까 리함이 벽보고 서있었던 것 말이야(삼촌의 친구인 남성들이 계단을 내려오자, 계단을 올라가던 중이던 여고생 리함은 얼굴을 그들에게 얼굴을 덜 보이기 위해 그들이 지나갈 때 까지 벽을 보고 서 있었다). 그런 상황들이 나에겐 참 어려워. 나는 그냥 그것을 보고 있는 것 뿐이라도 말이야.
그리고 몇년 전에 팔레스타인과 아랍나라를 다닐 때는 혼자 다녔기 때문에 잘 몰랐는데, 이번엔 미니와 동행하는 시간이 있으면서 전에 몰랐던 것을 보게 된 게 있어. 이를테면 내가 어떤 사람에게 질문을 했는데, 그 사람이 내게 답변을 하지 않고, 옆에 있는 미니에게 답변을 하는 거야. 처음엔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그런 경험이 반복되면서 혼란스럽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했어. 물론 머리로는 알고 있었어, 미니가 남성이기 때문에 여성인 나에게 답변을 하지 않고 미니에게 답변을 한다는 것. 그러나 직접 그런 경험을 하니까 화가 나기도 하고 혼란스럽고 그랬어. 한국에서는 그건 무례한 행동 일수 있거든. 내가 질문을 했는데, 내게 답변을 하지 않고, 내 옆 사람에 답변한다는 것은 질문한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어. 그런 문화에 대해서 여전히 헷깔리고 어렵고 그래.
그리고 사람들이 거리를 지나가면 집 앞에서 "빠달로 빠달로" 그러잖아. 집으로 들어와서 차 한잔 하라고 하고 말이야.
전에 얘기했었지만 난 그게 진심인줄 알고 거절하는 것에 대해 무척 미안해 하면서 바쁜 일정이 있어도 잠시라도 그 사람들 집에 들어가서 차 마시고 했었잖아. 근데 그게 알고 보니 살람알레이쿰(당신에게 평화를; 안녕하세요.) 이나 킵할룩(잘 지내나요.) 같은 인사의 연장선 같은 거라는 걸 뒤늦게 알았잖아. 한국에서는 사람들을 그렇게 집으로 쉽게 초대하지 않거든.
네 말대로 그 초대를 거절하지 않고 집 으로 당당히 걸어 들어간 나 때문에 사람들이 당황했을 텐데 말이야.
그것을 전혀 내색하지 않았던 것이나...
아무튼 다른 문화를 만나는 건 설레임과 긴장감이 함께 있어.
몇년 전에 왔을 땐, 설레임과 신기함을 많이 느꼈다면 요즘은 어려움과 긴장감을 많이 느껴.
그리고 아랍문화와 이슬람 문화가 다르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데 아직 그것에 대해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네가 아침식사를 준비할 때, 다른 존재를 생각해봐.
비둘기 밥을 잊지 말아.
당신이 전쟁을 향해 갈 때 다른 것을 생각해봐.
누구에게 평화가 필요한지.
네가 물 값을 지불할 때, 다른 존재를 생각해봐.
누가 구름으로부터 온 물을 마시고 있는지.
네가 집으로 돌아 갈 때, 다른 것을 생각해봐.
캠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잊지 말아.
네가 잠을 자고 풀을 바라 볼때, 다른 것을 생각해봐.
누가 잠잘 곳을 찾지 못하고 있는지.
네가 비난 없이 이야기 할 때, 다른 것을 생각해봐
말할 권리를 잃어 버린 사람들을.
네가 네 주변의 것들에 대해 생각할 때, 네 자신에 대해 생각해봐.
말해봐: 나는 어둠 속의 촛불이 되기를 희망한다.
<마흐무드 다르윗시의 시 중에서.....>
* 슈룩은 인터뷰 글을 써본 적이 없다면서 자신 없는 목소리로 글을 쓰는게 어렵다고 했다. 이후에도 몇 번인가 내게 이 글을 주기를 주저하다가 결국 글을 건네면서 <마흐무드 다르윗시>의 시를 함께 적어 주었다.
인터뷰 글에 같이 올려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우리는 고립장벽 7주차 캠페인 동안 모든 조직, 네트워크, 기관, 연합, 관련 대중매체들의 결집을 요구합니다.
이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이스라엘의 장벽 건설을 통한 게토화 정책으로써 가자와 서안지구, 그린라인 내부 등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서로에게서 분리시키는 데 항거하기 위해서입니다.
-서안지구의 고립장벽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공동체들에 대한 억압에 항거하기 위해서 입니다.
현재의 폭력수준은 심각하며 이에 대한 교육과 인식이 중요합니다. Stop the Wall과 Addameer은 '억압 허용, 저항 거부'라는 제목의 반-고립장벽 민중 활동에 대한 포괄적인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가자지구 포위의 공범이거나 고립장벽 건설에 동참하는 회사들에 대항하는 캠페인을 시작합시다. 보이콧, 투자철수, 제제 캠페인은 이미 (예루살렘의 운송 대기업 베올리아와 점령촌 건설자 레브 레비브에 대해서는 특히) 중요한 일들을 해냈습니다. 고립장벽 건설에 연루된 기업들에 대한 캠페인들이 준비되고 있는데, 그 예로 콘크리트를 공급하는 CRH나, 센서 등 하이테크 설비를 공급하는 동시에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죽이는 무인비행체를 생산하는 엘빗 시스템즈 등이 있습니다.
가자는 벽과 철조망에 의해 15년동안 고립되어 있습니다. 고립장벽과 출입금지 구역은 굶주리는 가자지구 내 주요 농토의 25%를 앗아갔습니다. 가자지구의 농부들은 자신의 농지에서 농사를 지을 수 없고, 수십개의 우물과 가축 우리의 절반 이상을 비롯한 관련산업들이 파괴되었습니다. 많은 농부들은 자신의 농지를 돌보는 동안 살해되었거나 붐비는 도시지역으로 강제이주당해야 했습니다.
고립장벽이 가자지구 내의 팔레스타인 마을들을 고립시키고 있습니다. 장벽은 점령촌을 피해서 둘러지는데, 점령촌 건설 중단에 대한 진정성 없는 논의들이 진행되는 와중에 점령촌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78개의 팔레스타인 마을이 장벽이나 점령촌 (혹은)과 그린라인 사이에 고립되었고, 토지나 물을 비롯한 자원들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또한 고립장벽과 점령촌들에 의해 고립당한 상태이며, 갈수록 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점령자들에 의해 그들의 집을 빼앗기거나 파괴당했습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이러한 범죄행위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이는 또다른 나크바(대참사)입니다.
사진은 아름다운 뎡언니께서 찍으셧습니당 쿄쿄
그래서 아름다운 뎡언니와 행진장면은 사진에 안계심 ㅠㅠ아 콴도 행진할때 와서 없삼 사진에 ㅠㅠ 다음엔 뎡과 콴만 찍어야겟근여<ㅋㅋㅋㅋㅋ뭔가 용량이 너무 커서 + 뭔가 사진들이 너무 클로즈업대잇어서 ㅋㅋㅋㅋㅋ 그냥 콜라주로 올리는데 원본이 필요하신 분은 저에게 문의를 ㅋㅋ
바쁘다고 뉴스를 거의 안 보는 저는 오바마가 오는 줄도 몰랐네요.
오바마가 한국에 오고, 한국 정부는 아프가니스탄에 또 파병한다 하여
지난 토요일(10월 31일) 회원 5명이 우리 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반전평화연대 주관 아프간 재파병 반대 집회에 다녀왔습니다.
연대발언에서 발칙한이 용산, 이주노동자 강제추방 등을 이야기 하며 한국정부가 평화를 위해 아프간에 파병을 한다니
기만적이라고 언성을 드높였습니다<
집회 전날 집회 소식을 알게 되어 피켓도 안 만들고 맨몸으로 나가면서도 다함께에서 프린트물 다 준비해 오겠지..란 안일한 마음을 나는 가지고 있었는데 아니나다를까 어찌나 집회 준비를 철저히 해서 나오는지.. 참 감사했고
이번에는 구호가 적힌 큰 종이 뒷면에 "아프간 해방은 아프간 민중의 손으로!!"라고 급조해서 적어서 들고 다녔습니다.
다음 집회에는 꼭 피켓 만들어서 나가야지. 하지만 다른 활동으로도 너무 바빠서 다음주중에 파병반대 집회 나갈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다ㅜㅜ 다른 분들 많이 나가세요!! 월요일, 반전평화회의에서 집회 일정 나오는대로 공지 때리겠습니다.
나갈 수 있는 분은 꼭 직접 피켓 만들어서 나갔으면 좋겠긔..
사실 우리 단체는 전쟁의 참상을 담은 잔인한 사진을 쓰는 것에 반대하는데.. 회의에 한 번도 안 나갔었고.. 이런 입장차이는 연대체 회의에서 극복되리라 생각되지는 않지만. 할튼 우리는 회의에 한 번도 안 나갔습니다. 항상 자매단체 경계를넘어의 수진씨에게 의지ㅜㅜ 앞으로는 달라져야겠져
성명서 첨부합니다.
[성명서] 아프가니스탄 재파병 방침 공식 발표에 부쳐이명박 정부는 학살 전쟁에 또 다시 군대를 보내지 말라1. 어제(30일) 이명박 정부가 반전평화를 열망하는 국민의 뜻을 거슬러 기어이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에 PRT을 130명 이상 확대파견하고 이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300명 규모의 경계병을 파병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는 정부가 아프간에서 한국군 피랍 사태로 인해 동의다산부대를 완전히 철수했던 결정을 2년 만에 전면 뒤집고 또 다시 국민적 합의조차 없는 재파병을 추진한다는 점에서 커다란 우려와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정부는 ‘국제사회 위상을 고려한 결정’이라는 점을 강조했지만, 이미 이번 재파병은 미국의 요청에 따른 결정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지난 날 한국 정부의 파병으로 인해 파병된 한국군뿐만 아니라 민간인들도 목숨을 잃어야 했던 아픈 상처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정부는 철군한 군대를 아프간에 또 다시 보냄으로써, 점령군의 하위 부역자를 자처하는 것에 대해 이명박 정부는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2. “정부는 아프간의 안정화와 재건을 위한 노력에 보다 적극 동참하기 위해 아프간에 PRT를 확대 설치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금까지 PRT는 ‘지역재건팀’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얼마나 아프간의 안정화와 재건에 기여했는지 검증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더군다나 정부는 “우리 인력과 시설의 보호를 위한 자체 경비와 이동시 안전호송을 위해 적정 수의 경찰 및 군 경비 병력을 국회 동의 등 국내법 절차에 따라 파견할 방침”이라고 했다. 이는 PRT도 언제든지 무장저항세력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으로, 사실상 정부의 말과 달리 PRT는 순수한 민간 활동 기구가 아니라는 것을 또 한 번 확인시켜 준 셈이다. 무엇보다 정부는 이들 PRT를 보호하기 위해 경계병을 파병하며, 이들은 ‘전투 병력’이 아니라 ‘보호병력’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아프간의 불안정이 최악의 상황에 달한 지금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국민이 누가 있는가? 김태영 국방부 장관조차 “불가피한 교전이나 피해가 있을 수 있고”, “전투병이나 비전투병을 구별할 수 없다”고 인정했다. 3. 우리는 이명박 정부에 엄중히 경고한다. 지금 당장 아프간 재파병 결정을 철회하라. 정부의 이번 아프간 재파병 결정은 국민의 반전평화 열망을 거스르는 것이자 ‘제 2의 베트남전’이 될 수도 있다는 아프간 전쟁의 수렁에 또 다시 발을 담그는 무모한 행동이다. 우리는 정부의 아프간 재파병 추진을 중단시키기 위해 적극 저항할 것이며. 나아가 국제반전평화 운동의 일부로써 아프간 점령이 끝나고 모든 점령군이 아프간에서 철수할 때까지 또한 투쟁할 것이다. 끝. 2009년 10월 31일반전평화연대(준),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대학생나눔문화
며칠전 추석전 판매한 참기름 판매 수익금이 팔레스타인의 한 가정에 전달 되었습니다..
팔회원들도 함께 구매를 해 주셔서 감사하구요.. 수익금은 팔레스타인에 있는 파티마&라흐마 모녀에게 전달 되었습니다.
다음은 팔레스타인에 있는 미니가 누리에게 보낸 메일 전문입니다.
=============================================================================
10월 8일 강제연행, 10월 23일 강제출국. 한국에서 18년이나 살아온 한 활동가가 쫓겨나기까지 16일밖에 안 걸렸다. 강제단속에 대한 이의신청을 기각한 지 불과 2시간 50분 후에 법무부는 비행기에 미누 씨를 실었다. 표적단속을 규탄하는 여러 단위의 성명서도, 그를 석방해달라는 많은 사람의 탄원서도, 재빨리 열린 기자회견도, 효력을 발휘할 시간이 없었다.
법무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미누씨가 "불법체류자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미취업 상태에서 불체자 단속·추방 항의집회, 자이툰철군 반전집회, 한-미 FTA 반대집회 및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 등 각종 집회에 참석하는 등 정치적 활동에 주도적으로 가담"했다며 이것이 그를 추방할 사유라고 말한다. 이 모든 집회가 국가 권력이 행하는 불법 행위에 대항하는 정당한 것이었거니와 집회 참여 등의 각종 표현의 자유가 국내외인 막론하고 보장되는 만큼, 이따위 것을 추방 사유로 든 법무부는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또 보도자료를 통해 직접 밝힌 바, 미누 씨에게는 법원에서 판결을 받을 권리가 있었다. 법원의 판결을 기다릴 새도 없이 무엇이 무서워서 그토록 빨리 그를 내쫓은 것인가?
그가 외국인 취업제도가 생기기도 전부터 한국에서 살아서, 체류 허가를 받은 적이 없다고 그를 내쫓다니?! 체류 허가를 내주면 되지 않는가?!
현재 미국에 불법체류자는 1200만, 합법화 추진중일본에서는 자민당과 한국 전경련과 같은 단체인 경단련에서도 이민/합법화 추진중.영국에서는 지위 상관 없이 14년 이상 거주자는 합법화.프랑스는 심사 후 체류권 취득.멕시코와 스페인은 사면 형식으로 체류 허용.
세계적으로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합법화하는 흐름이 보여준다. 법무부가 말하는 '일반인의 법감정'도, 그것이 투영된 합법화도 시대의 대세라는 것을.
정부는 한편으로는 다문화주의 정책을 내세우면서, 이주노동자에 대해서는 몰이식 추방을 자행하고 있다. 심지어는 12월까지 이주노동자 다 내쫓겠다고 천명하기까지 했다. 미누 씨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될 단속과 추방을 목도하지 않겠다. 용서하지 않겠다.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하라!
STOP CRACK DOWN!!!!
ACHIEVE WORKING VISA!!!!
-팔레스타인평화연대-
지 난 2008년 6월26일에는 12번째 이라크/중동 연대사랑방이 있었습니다. ‘이라크/중동 연대사랑방’은 말 그대로 전쟁이나 점령으로 고통 받고 있는 이라크/중동 지역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보자는 뜻에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매달 한번씩 주제를 바꿔 가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이날 모임에는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홈페이지를 보고 처음 모임에 오신 2분을 포함해 13분이 참여하셨습니다.이번 주제는 ‘가자지구 봉쇄와 이스라엘의 정책’이었습니다. 그리고 발표는 가자지구 출신으로 현재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마나르씨께서 맡아 주셨습니다. 마나르씨가 영어로 말씀을 하시면 중간에서 통역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처음 모임에 참여하신 이정희님과 시온심판님
이야기의 시작은 1917년 영국이 자기 땅도 아닌 팔레스타인을 유대인들에게 주겠다고 약속한 ‘발푸어 선언’, 팔레스타인을 유대인 국가와 아랍인 국가로 나누는 1947년의 유엔 분할안,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 선언, 1967년 전쟁, 1993년 오슬로 협정 등 팔레스타인의 역사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역사 이야기가 중요한 것은 현재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는지를 알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그 다음 얘기는 오늘의 본론인 가자지구 봉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봉쇄 원인은 2006년 1월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하마스가 집권을 하자 미국+이스라엘+파타가 나서서 하마스를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이 과정에서 2007년에는 파타와 하마스 사이에 전투가 벌어져 많은 사람이 죽거나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에 대해 마나르씨는 자신은 하마스 지지자는 아니지만 파타가 미국+이스라엘과 협력하면서 문제를 일으킨다면 하마스가 이를 멈추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그리고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 결과로 192명이 사망하고, 470여명의 암 환자들이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또 16만 명의 노동자들이 봉쇄 이후에 추가로 실업자가 되었으며, 가자지구 공장 가운데 96% 가량이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평화협상에 대한 믿음은 점점 사라지고 팔레스타인인들이 급진화 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언론인 기든 레비(Gideon Levy)의 말을 전해 주었습니다.“75만 명의 사람들에게 전기를 끊는 일은 정당화 될 수 없다. 2만 명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집에서 떠나라고 하거나 그들의 마을을 유령의 마을로 만드는 것은 정당화 될 수 없다. 정부 장관 가운데 절반 가량과 의회 의원 가운데 1/4 가량을 납치하는 것은 정당화 될 수 없다. 이런 행동을 취하는 국가는 테러리스트 조직과 더 이상 다르지 않다.”
미니 / 2009년09월30일 17시22분
팔레스타인평화연대의 최근 활동 소식을 이메일로 받아보세요!